#810화 마신의 무구 (1)
지금처럼 마신의 무구에 바치는 제물은 아니지만.
예전에 분명히 비슷한 형태로 작업을 한 기억이 있었다.
그런 내가 엄청나게 많은 제물을 바친다는 말에 재중이 형이 바로 눈치챘는지 곧장 웃음을 보였다.
“아퀼라스 주니어처럼 먹이려고?”
“네, 어차피 먹이나 제물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먹이든 제물이든.
일단 삼켜지면 사라지는 건 매한가지.
지금 금속의 정령의 설명을 들어보면 제물로 이런 아이템들이 가능해 보이니까.
원리만 생각해 보면 아퀼라스 주니어 때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금속의 정령에게 물어보았다.
아주 많은 아이템을 먹였을 때.
어떻게 될지를.
내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금속의 정령이 손가락을 펴서 숫자를 세듯 꼼지락거리더니 곧장 나를 보며 조금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외쳤다.
올려놓은 로케, 마누스, 가낙스를 흘깃 바라보며.
“네가 먼저 거지가 될 거야!!”
제물로 많이 바친다는 말을 그렇게 알아들은 건가?
이런 마수의 무기들이 흔한 것은 아니니 계속 제물로 먹이다보면 내가 거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이번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음 지었다.
“걱정해 주는 모습이 꽤 귀엽네.”
“역시 그렇죠?”
우리 둘의 그런 표현에 금속의 정령의 볼이 빨갛게 변하더니 꽥 하고 소리 질렀다.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거야!”
그래, 그래.
네 마음 다 안다.
아닌 것 같아도 꽤 신경 써 주고 있잖아?
하지만 이건 금속의 정령이 내가 가진 스킬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온 오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금속의 정령의 얼굴이 빨갛게 폭발할 지경이라…….
이쯤에서 보여 줘야겠지.
곧장 로케를 들어올려서 금속의 정령의 앞에 세워 보였다.
여기서.
【 웨폰 카피! 】
카피 스킬을 쓰자마자 곧장 다른 손에 로케와 똑같은 모양의 검이 생성되었다.
그런 웨폰 카피를 바라본 금속의 정령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앗!!”
확실히 놀랄 만도 하지.
완전 똑같은 형태의 무기가 생성되었으니까.
물론 내구도가 엉망인 반쪽짜리에 불가하지만
실제로 몇 번 휘둘러보면 바로 박살 난다.
사실 마신의 파편이 이 복사본 무기를 제물로 쳐 줄지는 의문이기도 하고.
과연 금속의 정령은 이 무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깜짝 놀란 것도 잠시.
금속의 정령의 흔들리는 동공이 곧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복사본 로케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완전히 똑같네?”
“그렇지?”
그 뒤에 따라오는 금속의 정령의 평가는 꽤 확실했다.
“이거 짝퉁이야!!”
너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니?
이 모습을 본 재중이 형도 재밌다는 듯 큭큭 거리며 웃어버렸다.
뭐 여기서 짝퉁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건 아니지.
“어때?”
내가 물어본 것은 제물로 가치가 있겠냐는 뜻이었다.
원본인 로케야 당연히 제물로 쓸 수 있겠지만.
이 복사본은 또 모르는 문제라.
만약 이게 안 통한다면.
처음부터 완전히 계획을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정말 엄청나게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가령 예를 들면.
먹일 만한 무구들을 구하러 마계 사방팔방 모든 코스를 돌아다닌다던가.
마계 탐사대를 싹 돌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르려나?
혹은…….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올라오는 아이템들을 직접 돈으로 사던가.
마계 경매장에 올라오는 물건들을 구해서 제물로 먹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정말 지금까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 않을까.
아이템 하나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말이지.
거기다 저 마신의 파편이라는 게 단순히 아이템 몇 개만 먹어치우고 끝날 녀석 같지도 않았고.
아퀼라스 주니어나 다른 펫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성장시키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아이템들을 먹였었다.
고작 펫이 그런데.
무려 마신의 파편이니…….
걱정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정 안 되면 포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신의 파편을 포기한다?
그건 안 되지.
과연 이 복사본이 값어치가 있을까?
내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던 금속의 정령이 결국 답을 꺼내놓았다.
“짝퉁 안에 들어있는 정기가 너무 적어.”
얼핏 이 말만 들으면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지.
“적어도 가능은 하다는 말이야?”
“으응…… 아마도 그럴걸?”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금속의 정령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휴.
다행이네.
혹시나 완전히 못 박아서 ‘안 돼!’라고 하면 어쩌나 했다.
그럼 빼도 박지 못하고 노가다를 해야 할 판이라.
그것도 엄청난 돈을 소모해 가며.
재중이 형을 보면서 웃어 보이자 재중이 형 역시도 마주 보며 미소지었다.
“시작이 나쁘지 않네.”
“네, 일단 해 봐야 알겠지만 가능성은 있네요.”
“그럼, 저 마신의 파편은 어떻게 해야 한다?”
재중이 형의 시선이 각종 마법진으로 둘러싸여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마신의 파편.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저 마법진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딱 다가가려고 하면 나타나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 허가되지 않은 자가 베르테니아 마왕성 지하 제단의 고대 마법진의 결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
《 마기가 유저의 스탯보다 월등히 강해 마법진의 중앙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
《 마신의 파편의 인정을 받아야 접근할 수 있습니다. 》
하나도 아닌.
무려 세 가지 각기 다른 시스템이 동시에 빨간색으로 경고를 보내며 우리의 접근을 막아섰다.
“호오, 일단 마법진의 결계에 들어갈 허가를 받고 마기를 이겨내면서 마신의 파편의 인정까지 받아야 해?”
“단순하게는 안 된다는 뜻이네요.”
일단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마왕 벨라의 허락이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이곳 베르케니아 마왕성은 마왕 벨라의 소유이니까.
집사의 권한으로는 마법진 바깥에서 구경하는 정도가 전부겠지.
그리고 마기라…….
“스탯보다 월등히 강하다면 역시 레벨업밖에 없겠죠?”
“그렇긴 한데 말이지.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재중이 형 말대로 정말 레벨이 몇 백 대까지 가야 접근할 수 있다면…….
당분간 마신의 파편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야 했다.
흐음.
그렇게까지 기다리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잠시 고민하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돌려 보았다.
“일단 어떻게 해도 무리겠네요.”
심지어 이곳 제단을 폭발로 무너뜨린다는 생각까지 해 봤으나 그건 무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마신의 파편을 잡을 수 있느냐 없으냐는 또 별개의 문제니까.
어차피 스탯이 낮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마법진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으면 되는데.
“저걸 가져올 방법이라…….”
역시 당장은 안 되려나?
조건상 나나 재중이 형이 들어가서 마신의 파편을 가져올 방법은 일단 전무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내 어깨를 금속의 정령이 툭툭 건드렸다.
갑자기……?
“응? 왜? 무슨 일 있어?”
“저거 내가 가져다줄까?”
금속의 정령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더니 곧 손가락으로 마법진 안의 마신의 파편을 가리켰다.
설마.
지금 저걸 가져오겠다는 건가?
그게 가능하고?
“가져올 수 있어?”
“응. 난 가능해.”
곧장 시선을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이게 맞는가 싶기도 하고.
“해볼까요?”
“뭐, 시도는 괜찮겠네.”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표정을 굳히면서 무겁게 말을 꺼냈다.
“다만, 마왕 벨라는 몰라야 해.”
“그래요?”
의외네.
솔직히 방금 금속의 정령이 마신의 파편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마왕 벨라에게 이야기할 생각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 마법진과 결계는 그냥 평범하게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
“나도 선택지가 하나뿐이라면 그쪽을 선택하겠는데 말이야. 사실 마왕 벨라가 마신의 파편에 대해 다 알아 버려도 곤란해.”
“곤란한 건가요…….”
“어, 무엇보다 네 녀석의 효용성이 급격히 떨어져.”
“그게 무슨……?”
“지금 네 힘으로 이 지하 제단을 돌리고 있잖아. 저 마신의 파편에 타르를 쏟아부으며. 그리고 마왕성의 돈도 전부 네가 굴리고 있고.”
“네, 확실히 그렇죠.”
“그런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면?”
재중이 형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이 지하 제단이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되면…….
마왕 벨라가 굳이 이 지하 제단을 열심히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
타르 역시 필요 없어지고.
지금 마왕성에서 잔뜩 살고 있는 유저들도 마찬가지.
특히 내가.
집사 역할을 하면서 신성 제국과 이곳을 이어 주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오히려 마왕 벨라가 마왕성을 떠나 버릴 수도 있어. 저 마신의 파편을 가지고.”
“……그건 좀 문제네요.”
당장 마왕 벨라가 이 마왕성을 떠나 버려도 우리는 그걸 막을 힘이 없었다.
아니, 막는 건 고사하고 손도 못 대지 싶은데?
스컬 드래곤을 타고 날아가 버리면 답도 없으니까.
“나중에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돼.”
재중이 형의 말에 시선을 돌려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꽤 곤란하게 될 뻔했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자 금속의 정령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가져다줘? 말아?”
“필요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속의 정령이 마법진들 사이로 유유히 날아가 아주 쉽게 마신의 파편에 도달했다.
“저 녀석은 영향을 안 받는가 본데?”
“네, 덕분에 살았어요.”
그다음은 볼 것도 없었다.
금속의 정령이 아기자기한 두 손으로 마신의 파편을 만지자 순간 강렬한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금속의 정령도 뭔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었고.
하지만 결국 금속의 정령이 마신의 파편을 두 손에 쥐고 마법진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자, 이거!”
그리곤 마치 선물이라도 주듯 마신의 파편을 가볍게 내 앞에 내려놓았다.
정말 옮겨왔잖아?
방금 금속의 정령이 할 수 있는 일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 마신의 파편의 인정을 받아야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이 시스템은 다시 떠올랐고.
흐음.
인정이라…….
혹시 내가 마왕이라도 되어야 하나 해서 금속의 정령에게 물어봤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도 옮겨올 수 있는걸?”
“하긴 그렇네.”
만약 정말 마왕만이 자격이 있다면.
금속의 정령도 마신의 파편을 들고 나오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나쁘지 않네.
그럼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든 인정만 받으면 된다.
곧장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역시 제물을 줘야 인정을 하겠죠?”
“뭐, 당장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는 없으니까.”
제물을 주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당장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형, 저기 빈자리는 어떻게 하죠?”
“흐음, 금속의 정령 말대로 짝퉁 하나 만들어서 넣어놔.”
“네?”
“마신의 무구라고 짝퉁 못 만들 리가 있나. 웨폰 카피 있잖아.”
“지금 가짜를 넣어놓고 속이라는 말인가요?”
“잘 아네.”
하.
재중이 형은 진품을 빼돌리고 복사된 가짜를 넣자는 말을 아주 태연하게 했다.
으음, 하긴 지금 방법은 그거뿐인가.
마법진 안이 텅텅 비어 있으면 당장 마왕 벨라와 대판 싸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마신의 파편이 내 정면 바닥에 놓이자 슬쩍 손을 뻗어보았다.
완전히 닫진 않아도 돼.
이것만 된다면……!
【 웨폰 카피! 】
무려 마신의 파편을 복사하는 일이다 보니 정말 신중하게 손을 뻗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시스템 메시지가 내 귓가에 머물렀다.
《 고랭크 아이템인 마신의 파편을 복사하기에 스킬 랭크가 부족합니다. 》
《 웨폰 카피가 실패합니다. 》
그간 웨폰 카피를 쓰며 한 번도 뜨지 않았던 문구가 뜨다니.
거기다 실패를 한 것도 처음.
이제까지 하도 많이 써서 이미 랭크 5를 찍고 있는데.
더 필요하다는 말이지?
일단 웨폰 카피가 만능은 아니라는 거려나?
“형, 이거 안 되는데요?”
“왜?”
“스킬 랭크가 낫다네요.”
“하, 그럼. 지금부터 죽어라 랭크부터 올려!”
“네, 그래야겠어요.”
다행히 마신의 파편을 제단에 다시 가져다 놓는 일도 가능했다.
들키지 않으려면.
원상복귀 해놔야지.
“뭐 마침 잘됐네요. 안 그래도 제물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복사 한번 피 터지게 해 보자.
내 손에 마신의 파편이 들어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