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화 고대 정령의 가호 (5)
베르테니아 마왕성 지하에서 제조되고 있는 정체 모를 무구.
사실 이전에 물어보았을 때 마왕 벨라도 정확히 저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었다.
그저 마신을 죽일 수 있는 무구라고 했었던가?
당연히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고.
이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마신의 파편이라고?”
“응, 마신의 파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너무 정확하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생각해 보면 마신을 죽일 수 있는 무구니까 마신의 파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마신 정도라면 그에 걸맞는 뭔가가 준비되어야 할 테니.
확실히 금속의 정령을 데려와 보길 잘했어.
아니었으면 저게 완성될 때까지 정체조차 모르고 계속 구경만 할 뻔했다.
그런데 르아 카르테의 검신에서 나와 마신의 무구를 감싸고 있는 마법진 주변으로 빙글빙글 날아다니던 금속의 정령이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 같은 딱 그런 자세로.
흐음.
뭐지?
그걸 방해하기는 애매해서 옆에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뭔가 이상한가 본데요?”
“아마 정령이니까 마신 쪽 무구들하고는 잘 안 맞을 수도 있고.”
“흠, 그렇다기보다는…….”
저건 마신의 무구를 꺼려해서 멀리하기보다 흡사 물건을 감정하듯 열심히 살피는 모습에 더 가깝지 않나?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데 금속의 정령이 마신의 무구를 감싸고 있는 마법진의 결계를 손으로 만지려고 했다.
“위험하지 않아요?”
“일단 지켜보자. 금속의 정령이 아무 생각 없이 저러진 않을 테니.”
그리고 마침내 금속의 정령이 손을 뻗어 마신의 무구에 걸린 마법진들에 손을 대었다.
화아악!!
그때 기다렸다는 듯 마법진에서 강렬한 마력이 쏟아져 나오며 금세 우리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계속 지켜봐야 하나?
재중이 형 말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하겠지만.
당장 저 마신의 무구에 들어간 타르가 광산 몇 개 분량은 되는데 말이지.
혹시나 잘못되어 마법진이 부서진다거나 작동을 멈추기라도 하면 정말 낭패였다.
그런데 그런 우려와 달리 결계에 손을 대고는 뭔가의 파동을 일으키며 계속 살피던 금속의 정령이 이내 손을 떼고는 뒤로 물러섰다.
휴,
일단 잘못된 건 없어 보이네.
마신의 무구의 마법진도 그렇고.
금속의 정령도 마찬가지.
특별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신의 무구와 마법진을 모두 살펴본 금속의 정령이 내게 다시 날아오더니 곧 말을 꺼냈다.
“이거 누구 작품이야?”
“글쎄……?”
일단 금속의 정령이 우리는 아니라고 판단했으니 물어보는 건데…….
지금 생각나는 건 마왕 벨라밖에 없었다.
이곳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주인이기도 하고.
“아마 마왕이 아닐까?”
“아까 그 마왕?”
“그래, 이곳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맞을 걸?”
그런데 내 되물음을 들은 금속의 정령이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적어도 그 마왕은 아냐.”
“아니라고?”
“좀 전에 보니까 전형적인 전투형 마왕 같은데…….”
“전투형 마왕? 그럼 다른 유형의 마왕도 있다는 거야?”
“응, 마왕이 모든 분야를 잘하진 않는데? 그리고 꼭 마왕이 아니더라도…… 이런 마법진을 연구하는 존재들도 있어.”
금속의 정령에게 처음 듣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마법진을 만든 특수한 존재가 있다는 건데…….
역시 다른 마왕이려나?
혹은 전대의?
계속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마왕 벨라가 소유하고 있던 건 아닐 테니까.
그때 재중이 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당장은 못 찾아.”
재중이 형 말에 금속의 정령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 넌 저 마법진이 어느 정도 파악된다는 거겠지?”
“응, 하지만 내 전문은 아니야. 난 금속의 정령이니까.”
그러면서 지하 제단 마법진 위의 마신의 무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마신의 파편이 잘못되어 있다는 건 확실히 알아.”
“미완성?”
“응, 미완성.”
“그건 이미 우리도 알고 있는 건데?”
재중이 형 물음대로 마왕 벨라도 알고 있고 나 역시도 알고 있었다.
마신의 무구가 미완성이기에 지금까지 마법진에 계속 타르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광산에서 구해와 꾸역꾸역 우리가 쌓아 둔 대량의 타르를 저 마법진에서 흡수해 마신의 무구에 전달해 주었고.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금속의 정령이 우릴 보면서 또렷하게 말했다.
“아니야, 그냥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야. 저 마신의 파편이 힘을 잃지 않게 할 정도로만 타르의 마력으로 막아 내고 있는 걸?”
쿵!
방금 금속의 정령이 한 말은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들을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있는 게 그냥 저 마신의 파편의 명줄만 살려 두고 있었다는 거야?”
“응, 딱 그래.”
금속의 정령의 말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찼다.
“하, 이거 참……. 그동안 아주 제대로 삽질했다는 거네.”
“꼭 그렇지는 않아.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계속 타르를 공급하지 않았으면 저 마신의 파편은 예전에 힘을 잃고 소멸됐을 거야.”
“호오, 그렇다면 마왕 벨라와 우리가 겨우 살려놓은 셈이군.”
아마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 마신의 파편은 그냥 사라졌을 지도 모르겠는데?
마왕 벨라는 더 이상 타르를 공급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흠.
하지만 지금 중요한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저 마신의 파편을 누가 살려 둔 것보다…….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재중을 형을 보고 말했다.
“마신의 무구가 제대로 준비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네요.”
“뭐 그런 셈이지.”
금속의 정령 말대로 딱 목숨만 살려두는 정도라면…….
마왕 벨라가 원하는 대로 마신의 무구가 성장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냥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을 뿐.
이걸 마왕 벨라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되려나?
아마도 그 자리에서 뒷목을 잡고 바로 쓰러지지 않을까?
꽤 높은 확률로 그럴 것 같은데.
지금껏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지킨다고 그 노력을 했는데 말이야.
그것도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이붓고 적금까지 모두 깨서 들이부었는데 알고 보니 깡통이었다?
누가 와도 뒷목 잡을 만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정말 열 받아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통째로 날려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충분히 가능하지. 마왕 벨라라면.”
그럼 마왕 벨라가 의뢰한 메인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완전 날아가는 거려나?
고대의 무구에 고갈된 마력을 보충해서 무구의 봉인을 해제하라는데…….
그 무구가 사실은 그냥 마신의 파편 조각에 불과했다니.
저걸 당장 무기로 쓸 수 있는가도 잘 모르겠네.
그러면서 마법진 위에 붕 떠 있는 검은색의 길쭉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박하다고 했어.
형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때 뭔가가 생각나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마왕성 지하에 이런 물건들이 더 있을까요?”
“모르지…… 직접 들어가보기 전에는.”
“흐음, 다 이런 식이라면. 꽤 곤란하겠네요.”
그리고 보니 이전에 운영자 가른이 마왕성의 지하를 굉장히 궁금해했었는데 말이야.
이걸 알고 나면 딱히 더 관심 가질 것 같진 않았다.
재중이 형이 뭔가 궁금한 게 있는지 금속의 정령에게 물었다.
“마신의 파편이라……. 그럼, 저건 무기의 재료라도 되나?”
이거 나 역시도 궁금했던 건데.
당장 마신의 파편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면…….
뭔가의 다른 무기의 재료로 쓰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게 지금 보기에는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만약 무기의 재료로 들어간다?
그럼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재료가 또 있을까?
무려 마신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데.
재중이 형의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저었다.
흐음.
재료는 아닌가?
금속의 정령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답을 주었다.
“마신의 파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이자 재료인 걸.”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꼭 그 말은 누군가 저 마신의 파편을 가공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응, 맞아.”
물론 자체적으로 무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신의 파편 스스로의 무기 스펙이 높다면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가능할 테니까.
혹은 어떤 특수한 기능이 있다던가.
하지만 아마 저런 부정확한 형태로 일반적인 무기의 힘을 발휘할 수는 없을 터.
파편의 단단함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보기에도 날의 예기나 날카로움 쪽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그럼 결국 누군가의 손을 빌려서 저걸 무기화해야 한다는 말이겠지.
“대장장이?”
“으음, 보통의 대장장이로는 아예 불가능할 거야. 마신의 힘을 다뤄야 하니까.”
그러자 생각나는 녀석들이 있었다.
“혹시 드워프라면?”
내가 아는 인맥 풀에서는 가장 무기를 잘 다루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금속의 정령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버렸다.
“그 드워프가 마왕만큼 강하다면……?”
재중이 형도 역시 따라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되겠군. 우리에게 마왕만큼 강한 녀석은 없어.”
결국 제자리인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 중에는 도저히 그런 스펙에 도달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대장장이하고는 거리가 멀기는 한데.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운영자 가른에게 한 번 물어보죠. 그 녀석이라면 혹시 알고 있을지 몰라요. 마왕만큼이나 강한데 대장장이가 가능한.”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마계에서의 인맥이라고 하면 우리보다는 운영자 가른이 월등히 많은 존재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평범하게는 알지 못하는 녀석들도 다수 포함해서.
그 과정에서 돈이 좀 들어가긴 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마 정보가 좀 샐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하려는 말을 바로 눈치챘는지 재중이 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운영자 가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인가?”
“네, 우리가 마신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는 몰라도 결국은 알게 될 거예요.”
만약 정말 그런 녀석이 있어 소개해 주는 과정에서 알게 될 수도 있었고.
혹은 다 만들어진 마신의 무구를 보고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마신이라는 이름 값이 적진 않으니까.
“마신의 무기라면요. 당장 판을 뒤엎고도 남을 정도 아닐까요?”
“충분히 눈이 뒤집힐 만하지.”
중간에 이어 줄 녀석들도 믿지 못하는.
꽤 골치 아픈 상황인데.
하지만 운영자 가른이 아니면 빠르게 알 만한 녀석들도 없는 것도 사실이고.
어쩐다.
“운영자 가른은 좀 더 생각해 보자. 지금은 협조하지만 잘못하다가 칼을 거꾸로 쥘 수도 있어.”
“확실히 그렇겠네요.”
당장은 다른 마왕과의 전쟁에 힘을 빌려주는 형식이라 어떻게 보면 동맹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이익 관계가 벗어나면 바로 깨질 수도 있는 관계였다.
혹은 운영자 가른이 다른 마왕에 붙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그때 금속의 정령이 내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아마 제대로 만들어도 바로 쓰지는 못할걸?”
“마신의 파편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응, 마신의 파편은 성장시키는 데 제물이 필요하거든.”
제물로 성장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