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화 고대 정령의 가호 (3)
금속의 정령의 머무를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르아 카르테와 금속의 정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있으면 머물 수 있다는 건가?”
“응, 나 여기 있으면 돼.”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버렸다.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왔는데?”
“그러게요. 정령의 검이라니…….”
설마하니 르아 카르테가 금속의 정령이 머물 수 있는 축복받은 정령의 검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런 나와 재중이 형 사이로 금속의 정령이 불쑥 날아들더니 날 보고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혀를 찼다.
응?
뭐야?
저 눈빛은?
“하아, 너 바보야? 르아 카르테잖아! 르아! 카르테!”
“그게 어쨌다고?”
“세상에, 그것도 모르고 이걸 가지고 다녔던 거야?”
“……꼭 알아야 하나?”
조금은 김빠진 듯한 내 말투에 금속의 정령은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
“으와, 와…… 어떻게 네가 르아 카르테의 주인이 된 거야?”
“어쩌다 보니?”
이거 로가슈 왕국에서 그냥 주워 온 건데?
거기 사람들도 그냥 왕국 창고 속에 먼지 쌓은 채로 고이 모셔두기만 했고.
아마 우리가 가져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세상에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뭐 나중에 누군가가 가질 수도 있긴 한데.
이 정도까지 르아 카르테를 키운 유저는 다른 서버를 통틀어서 나뿐이라.
대부분 중간에 죽거나 해서, 온전히 완성해 쓰고 있는 유저는 거의 내가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제대로 쓸 수 있는 조건들 자체가 다른 무기들과 달리 완전 넘사벽이라.
르아 카르테를 제대로 쓰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속으로 말을 삼켰다.
어차피 다른 서버 이야기를 해 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거고.
전부 다 설명하기에는 그간 지나온 일들이 적지 않기도 하니까.
내가 능청스럽게 넘기자 다시 한 번 금속의 정령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르아 카르테 뜻 몰라?”
순간 나 역시 멈칫했다.
뜻?
그냥 검 이름 아니었어?
뜬금없는 금속의 정령의 말에 우리 팀을 바라보니 다들 고개를 옆으로 저어보였다.
이쁜소녀, 막내별, 챠밍 할 것 없이 모두 다.
“몰라요.”
“저도.”
“음,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그 모습을 보고는 당연하다는 듯 금속의 정령에게 말했다.
“보통은 모른다고?”
“세상에…….”
우리 전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경악한 금속의 정령이 한숨을 길게 푹 쉬고는 말을 꺼내놓았다.
“르아는 정령신이야!”
정령신?
그런 것도 있었나?
재중이 형을 보자 역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내가 알 리가 있나.”
“역시 그렇죠?”
나와 재중이 형의 대화에 금속의 정령이 혼이 나간 듯 비틀 거리더니 회의실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외쳤다.
“이 바보들이 진짜!! 무려 정령신이라고!!!”
오히려 놀란 건 이쪽이라고.
저 작은 체구에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나.
그런 감탄을 할 때 재중이 형이 금속의 정령에게 물었다.
“그럼 카르테는 검인가?”
“헹! 끼워 맞추기는. 어쨌든 비슷해.”
“비슷하다면?”
“정확하게 신의 무구를 뜻해.”
금속의 정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르아 카르테로 향했다.
전사 형도 꽤 놀란 표정이었고.
“이게 신의 무구씩이나 되는 거냐. 음, 생각해 보면…… 꽤 조건이 까다롭긴 했었지?”
“네, 다른 영웅의 무구하고 달리 유독 특이한 조건이 많았으니까요.”
소유하는 것까지야 뭐 어떻게든 다른 서버에서 가질 수 있으니까 그건 됐고.
문제는 키울 수 있느냐 없으냐인데.
정말 신의 무구라면…….
그런 조건들이 이해될 법도 했다.
실제로 다른 무기들보다 범용성이 엄청 좋으니까.
쓰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는.
그런데 그때 금속의 정령이 의아한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영웅의 무구?”
“아, 르아 카르테가 그렇게 불리고 있더라고. 신마 전쟁에 영웅들이 쓰던 무기라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속의 정령은 세상 무너질 것 같은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맙소사…….”
흠.
저 반응을 보면 뭔가 아닌 모양이네.
“아냐?”
“당연히 아니지! 고작 영웅의 무기 따위로 불릴……! 어디서 그런 녀석들과 동급으로……!!!”
그 뒤로 버럭하면서 화를 내는 금속의 정령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잔뜩 화를 내는 금속의 정령을 보고 재밌다는 표정인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거 계속 영웅의 검이라고 했다가는 욕먹겠는데요?”
“크큭, 지금도 잔뜩 먹고 있잖아.”
하아.
이거 참.
르아 카르테가 애초에 영웅의 검도 아니었던 건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간 알려진 영웅의 무구들과 같은 등급도 아닌 듯 했다.
“그래서 이게 정령신의 무구라는 거지?”
과정이야 어쨌든 이 무기의 기원을 알았으니 된 건가?
그때 생각지도 않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서브 퀘스트 : 고대 정령의 가호 봉인 해제 (완료). 》
- 고대 정령의 가호 입수.
- 고대 정령의 가호 봉인 해제.
- 퀘스트 보상.
금속의 정령의 가호.
응?
난 이 퀘스트를 받은 적도 없는데?
그리고 연이어서 다른 퀘스트도 또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 : 정령신의 흔적 (완료). 》
- 고대의 정령신의 흔적을 찾아라.
- 고대 정령신 관련 NPC와 접촉하거나 정령신에 대한 정보 입수.
- 혹은 고대 정령신에 관련된 아이템 습득 시 연계 퀘스트 발동.
- 퀘스트 보상.
< 메인 퀘스트 : 정령신을 찾아서 > 연계
《 메인 퀘스트 : 정령신을 찾아서 (특급). 》
- 미지의 존재인 고대 정령신을 찾아라.
- 고대 정령신에 대한 추가 정보 입수 및 위치 확보.
- 퀘스트 보상.
???
이번엔 메인 퀘스트인가?
아마 고대 정령의 가호를 입수해서 어떻게든 금속의 정령을 보게 되면 연계해서 나오는 퀘스트 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보조 퀘스트와 달리 메인 퀘스트가 나온 것은 꽤 의외였다.
직접적인 시나리오와 연결되어 있을 때만 나오는 거니까.
이를 테면 전에 고대의 무구를 얻어 마신을 잡는 그런 메인 퀘스트라던지.
이거 핵심에 꽤 근접해 가는 느낌인데…….
“형, 방금 퀘스트 떴는데요?”
“그래?”
“그런데 그냥 나오자마자 완료예요.”
방금 완료된 두 개의 퀘스트를 보여 주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로 생긴 메인 퀘스트까지.
“정령신이라는 게 있기는 있나 본데.”
“네, 아니면 찾으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요.”
단순히 무기의 기원에 관련된 존재이고 문헌에만 있는 존재라면 이렇게 찾으라는 시스템이 뜨지도 않을 것이다.
고대 정령신이라...
곧장 금속의 정령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이 금속의 정령은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럼 고대 정령신을 찾을 수 있어?”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금속의 정령에게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 했다.
“몰라. 나도 봉인되어 있는지 오래됐는걸.”
“흐음, 그래?”
하긴.
얼마나 된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소 몇 백년은 고대 정령의 가호 안에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정령이니까 정령신과 접촉할 수는 없는 건가?”
봉인되어 있어서 당장 정보는 모르더라도.
이 녀석도 정령이니까.
가능할 지도?
그런데 이번 역시도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획 저어보였다.
“안 돼. 그리고 알아도 알려줄 수 없고.”
이건 명백한 거부였다.
혹은 정말 저 말대로 정보를 줄 수 없거나.
으음…….
메인 퀘스트를 쉽게 날로 먹진 말라는 건가.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불멸> 아무래도 호감도가 낮아서 그런 것 같은데?
<주호> 그래요?
<불멸> 보통은. NPC들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호감도 낮으면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거.
<주호> 확실히 그렇죠.
그간 스쳐온 NPC들 대부분이 호감도에 따라 완전 다른 반응들을 보였었다.
이 녀석이라고 다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럼 결국 호감도를 좀 올려놔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데 정령은 무슨 수로 호감도를 올린다?
<주호> 일단 좀 생각해볼게요.
나중에 우리 팀하고 따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아마 좋은 수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 계속 지켜보던 이쁜소녀가 완전 뜻밖의 이야기를 물어왔다.
“오빠, 전에 마신의 무구도 있었잖아요?”
“베르테니아 마왕성 지하에 있는 무구 말하는 거지?”
마신의 무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금속의 정령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거기다 귀도 쫑긋하며 이쁜소녀의 말에 관심을 표했고.
뒤늦게 본인은 아니라는 척 관심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어.
이걸 확인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불멸> 호오, 저 녀석 관심을 보이는데?
<주호> 네, 방금 엄청 관심 있어 보였어요.
<불멸> 크큭, 저 숨기는 표정 봐라. 재밌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아마 정령은 관심을 보여서는 안 되는 그런 거려나?
혹은 뭔가의 금제 같은?
일단 이쁜소녀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물어본 것 같은데 말이지.
이미 듣고 있던 금속의 정령은 더할 나위 없이 이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둘 다 신이잖아요.”
“음, 뭐 마신도 신이고, 정령신도 신이니까?”
“그럼 마신하고 정령신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리고 이쁜소녀의 돌발 발언으로 금속의 정령에게 완전히 불을 질러 버렸다.
아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덕분에 금속의 정령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당연히 정령신 님이 이기지!! 그걸 말이라고 해?!”
호오라.
역시 넌 둘 다 알고 있구나?
딱히 이기고 지는 문제라기보다는.
둘 다 알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어디선가 한 번씩 봤다던가.
특히 마신의 무구를 말할 때 아주 크게 관심을 보였던 것도 있고.
“그래? 마신을 정령신 님이 어떻게 이길 수 있는데?”
“그건!”
순간 말렸다고 생각하는지 금속의 정령이 낭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익!! 됐거든?! 난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
<불멸> 오오, 금속의 정령 똑똑한데?
<주호> 네, 확실히 지능이 높네요.
이 녀석에게 쉽게 정령신이나 마신에 대해서 들을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어지간히 함정을 파놔도 마찬가지.
하지만 네가 이것의 유혹도 이길 수 있으려나?
녀석이 반드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금속의 정령이라는 녀석의 특성상.
이건 물 수 밖에 없다.
만약 이것도 물지 않으면.
그래, 솔직히 인정하지.
졌다고.
음흉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지긋하게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자 뭔가 기분이 나쁜지 금속의 정령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바라봐도 난 알려주지 않을 거라고!”
“아니, 누가 뭐라 그래? 안 알려줘도 돼.”
자, 그럼 슬슬 한 번 떡밥을 던져 볼까나?
“흐음, 여기가 어딘지는 알지?”
내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 마왕성이야.”
“칫, 어쩐지. 공기가 탁하다 하더니…….”
정령은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는 건가?
뭐 아무튼.
“그리고 말이지. 이곳 지하에는 무시무시한 녀석이 잠들어 있다고?”
“마왕? 별로 관심 없어.”
누가 마왕이라고 하든?
그리곤 속으로 씨익 웃으면서 확실한 떡밥을 던졌다.
“아니, 마신의 무구. 아마 지하에 그게 있었던가?”
내 발언에 금속의 정령의 맑은 눈망울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어서 결정타.
“나 이제부터 그거 보러 갈 껀데. 혼자 가야겠네? 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그 말을 하자마자 금속의 정령이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확 고함을 질렀다.
“야이, 나쁜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