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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01화 (791/1,404)
  • #801화 마계 상인 연합 (5)

    드디어 왔나?

    우리가 여기 남아서 운영자 가른과 마계 탐사대에 대해 협의를 하는 동안 저들은 각자 마왕성에 들려서 보유한 아이템 목록을 보내왔다.

    물론 마왕들이 다시 마계 경매장에 오지는 않았고.

    밖에 대기 중인가?

    아니지.

    잠시 살펴봤던 마왕들은 밖에서 얌전히 기다릴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마왕들이 직접 올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옆에 있던 운영자 가른이 따로 설명해 주었다.

    “결과의 공정함을 위해 제가 일부러 집사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왕님들이 오시면 아무래도 압력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나쁘지 않네요.”

    『 피닉스의 알 』이 마왕들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다 보니 직접 올 줄 알았지만 운영자 가른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마왕들이 좀 껄끄럽기도 하고.

    “마왕이 깽판이라도 치면 곤란하지.”

    재중이 형의 말에 나도 그저 웃고 말았다.

    여기서야 힘이 억제됐다고는 하나.

    마왕이 대놓고 깽판을 치면 답도 없다.

    아예 마계 경매장에서 눌러 살 것이 아니라면.

    딱 이 정도가 좋아.

    “그럼 주시죠.”

    내 신호에 마왕 바르카르, 데미안, 올펠, 아르곤의 집사들이 각각 운영자 가른에게 다가가 두루마리로 된 명단을 건네주었다.

    옆에서 아스티아 역시 뚫어져라 그 두루마리들을 바라보았고.

    평소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잘 없는데.

    확실히 신경이 쓰이긴 하나 보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게, 이때까지 무기 하나만을 찾아서 여기까지 온 셈이라.

    여기서도 찾을 수 없다면…….

    아스티아가 어디로 튈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꼭 저기 있으면 좋겠네요.”

    “응. 그러게.”

    만약 아니라면 정말 고생해야 할지도.

    그렇게 네 개의 두루마리를 받자 집사들이 모두 운영자 가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일단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건가.

    바로 운영자 가른을 보면서 물었다.

    “여기서 열어 봐야 하나요?”

    “아닙니다. 별도로 준비한 룸에서 혼자 들어가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공정성을 위해 선택하는 순간에 저는 옆에 있지 않겠습니다.”

    마치 네 명의 집사들이 다 들으라는 듯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그 말을 듣자 눈짓으로 아스티아를 가리켰다.

    “한 명 정도는 동행해도 되겠죠?”

    “음,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크게 상관없겠군요. 어차피 네 개의 두루마리 중 하나를 골라야 하니까요. 조언자가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만약 마음에 드는 물품들이 각각 다른 두루마리에 있으면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딱 한 분의 두루마리에서 세 가지 물품을 선택해 주십시오. 『 피닉스의 알 』은 결국 하나이니까요.”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서로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의 절차.

    그리고 운영자 가른을 따라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따로 준비된 룸으로 나와 아스티아가 같이 들어갔다.

    손님 대접용으로 쓰이던 곳이라 그런지 꽤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는데 중앙에 높은 긴 테이블에 바로 네 개의 두루마리를 올려놓고는 운영자 가른이 바깥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내 옆을 지나더니 아주 작게 스치듯 말했다.

    “제일 왼쪽의 두루마리가 아르곤 마왕님의 목록입니다.”

    “이걸 열지 말라는 거죠?”

    나 역시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대답해 주었고.

    일단 저건 고르면 안 된다는 거겠지.

    아르곤 마왕을 적대하기로 마음먹은 운영자 가른도 그렇지만 우리 역시 전쟁 중이라 아르곤 마왕에게 힘을 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이건 옆으로 밀어 둘게요.”

    그리고는 아르곤 마왕의 목록을 옆으로 밀어 냈다.

    남은 건 마왕 바이카르, 데미안, 올펠의 두루마리인가.

    “그리고 왼쪽부터 순서대로 바이카르, 올펠, 데미안 마왕님들의 목록이니 헷갈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운영자 가른이 완전히 방을 빠져 나갔다.

    이건 뭐 대놓고 컨닝하라는 뜻인데?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뿐만 아니라 다른 두루마리 역시 주인을 그대로 알려줘 버렸다.

    밖에 있는 집사 녀석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알고 나면 꽤 허탈해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뭐부터 열어 볼까요?”

    “아무거나. 어차피 셋 다 봐야 하잖아?”

    “하긴, 그렇죠.”

    잠시 손을 멈췄다가 올펠의 두루마리를 먼저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바이카르가 가지고 있을 확률이 꽤 높으니까. 올펠 걸 먼저 보죠.”

    “왜?”

    “원래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다잖아요.”

    “그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맛있는 걸 먼저 먹어야 하는 거 아냐?”

    “하하…….”

    틀린 말은 아니네.

    “일단 한번 열어 볼게요.”

    올펠의 두루마리를 펼치자 위에서부터 아이템들이 주르륵 열거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 많네요.”

    마왕이라고 어느 정도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평소에 봐왔던 기본적인 아이템들은 일단 보이지도 않았다.

    『 광룡 커틀라스의 뿔 』

    『 메두사 쉴드 』

    『 블러드 시커 』

    .

    .

    이름만 봐도 이미 하나, 하나가 다 네임드 템으로 보였다.

    그것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아마 이 마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겠지.

    혹은 마계 경매장에서 얻었다던가.

    값어치만 치면 전부 다 한 가닥 할 물건들이었다.

    다만 아쉽게 아이템의 이름 목록만 있을 뿐.

    그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순전히 이름만 보고 선택하라는 뜻이겠지만.

    그냥 살펴봐도 이것들은 전부 다 네임드 템일 것이다.

    대체 『 피닉스의 알 』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렇게 귀한 아이템 목록까지 보여 주는 거지?

    왠지 경매로 지른 돈 값은 하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때요?”

    아스티아를 보면서 찾는 게 있느냐는 말을 돌려서 물어보았다.

    “보는 중이야.”

    “네, 천천히 살펴보세요.”

    워낙 목록에 아이템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번 다 살피는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 넘쳐나는 아이템 목록들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정도까지 상위 마왕과 격차가 날 줄은 몰랐는데.

    우리 벨라 마왕님은 창고가 텅텅 비었단 말이지.

    아군의 창고가 비어 있는데 좋아할 참모는 하나도 없었다.

    마왕 벨라가 쓰는 무구를 빼 버리면…….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야.

    강한 수하를 받아들이더라도 지원해 줄 무구조차 없는 현실이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스티아와 함께 아이템 목록을 쭉 살펴보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목록을 본 뒤 아스티아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올펠에게는 없어.”

    “확실해요?”

    “응, 일부러 적어놓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에는 없어.”

    전에 생각했던 최악의 가정.

    일부러 아스티아의 무기를 적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그럴 것이, 아스티아의 무구는 마왕급의 무구였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다른 아이템들과 함께 목록에 넣어 둔다?

    이건 꽤…… 힘든 일이지.

    혹시라도 우리가 실수로라도 골라 버리면 곤란할 테니.

    그나마 다행인 건.

    아스티아의 존재를 저들이 모른다는 점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어지간한 아이템들을 알아볼 수 있는 아스티아가 옆에 있다는 걸 알면.

    이렇게 허술하게 아이템 목록을 내놓았을 리는 없겠지.

    “올펠이 아니면 이제 데미안 걸 보죠.”

    그리고 이번엔 마왕 데미안의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 발록의 날개 』

    『 서큐버스의 심안 』

    『 바포메트의 도끼 』

    .

    .

    이쪽도 하나같이 화려하네.

    거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네임드들의 무기나 방어구, 혹은 악세서리 종류가 잔뜩 올려져 있었다.

    물론 둘 다 완전히 목록이 다르진 않았다.

    중간에 겹치는 무구들도 제법 보였으니까.

    아마 이쪽은 좀 더 구하기 쉬운 아이템이려나?

    세세한 아이템의 정보를 알 수가 없으니 오직 아스티아의 정보에만 의존해야 한다.

    한참을 찾아보던 아스티아가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덮어 버렸다.

    뭐 물어볼 것도 없겠는데.

    “여기도 없네.”

    “혹시 무기가 되게 눈에 띄고 그래요?”

    “예전에 봤던 놈들은 한 번에 알아볼 거야.”

    “그럼 지금은요?”

    “나도 몰라. 다 바뀌어서.”

    흠.

    일단 운에 맡겨야 하는 건가.

    “이번에는 좀 기대를 해보죠.”

    마왕 서열 1위인 바이카르라면...

    그리고 곧장 바이카르의 두루마리에 손을 올렸다.

    후.

    여기에는 있어야 할 텐데.

    최상은 여기 있고, 그래서 거래하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왕 바이카르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 정령왕 이프리트의 혼 』

    『 디아블로의 심장 』

    『 티아메트의 목걸이 』

    .

    .

    응?

    뭐지?

    이 녀석은 아이템 목록이 전에 두 마왕과는 다소 달랐다.

    무엇보다 눈에 가는 건 정령왕의 혼이라는 아이템.

    거기다 디아블로의 심장도 있고.

    보통 혼이나 심장 같은 아이템은 정말 소수에 잘 나오지도 않는 종류였다.

    그걸 종류별로 이렇게 가지고 있을 정도면…….

    확실히 다른 두 마왕에 비해 아이템의 질이 달라.

    뒤에 따라오는 무기들 목록 역시도 전부 처음 보는 네임드 아이템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역시 마왕 서열 1위인가?

    이번에는 정말 있을지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아스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스티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대했던 그 마음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없……어요?”

    “응, 없네.”

    다소 실망한 표정의 아스티아를 보며 나 역시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없는 거지?

    설마 정말로 명단에서 숨긴 건가?

    그럼 아무리 알아내려고 해도 저쪽에서 직접 들고 나오지 않는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혹시 다른 녀석들이 쓰고 있다면요?”

    내 물음에 아스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고유 무기라 다른 존재는 쓸 수 없어.”

    “그래요? 그럼 녀석들이 보기에 그냥 평범함 무기로 보일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됐거나 없다는 것이 문젠데.

    <주호> 형, 어쩌죠?

    <불멸> 왜? 없어?

    <주호> 네, 아스티아가 전부 살펴봤는데 없다네요.

    <불멸> 그러면 한 번 다 퇴짜를 놓아 볼까? 숨겨 둔 무구들도 다 가지고 나오게.

    <주호> 한번 해볼 만은 하겠네요.

    <불멸> 마왕 서열 1위부터 4위까지 다 털었는데도 안 나오면 어디서 찾으려나……. 좀 더 낮은 녀석들은 확률이 낮고. 이젠 가른한테 물어봐야 하나?

    그런데 재중이 형의 말이 끝나는 그때.

    머릿속에 뭔가가 확 스치고 지나갔다.

    1위부터 4위라…….

    지금 눈앞에는 세 개의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 열어 보지 못한 두루마리도 하나 그대로 올려져 있고.

    내가 계속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쳐다보자 아스티아 역시 그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이건 아직 안 열어 봤죠.”

    운영자 가른은 아예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배제하라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만 빼놓았는데.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 있으면 정말 웃기겠네요.”

    현재 우리와 전쟁 중인 녀석의 마왕성에 있다면.

    그 말과 함께 마왕 아르곤의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잡고 확 펼쳤다.

    뭐 어차피 나는 목록을 봐도 모르니까.

    아스티아에게 시선을 돌려 그녀의 표정을 계속 관찰했다.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나으려나.

    그런데 그 순간.

    목록을 훑어보던 아스티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쳐가는 게 보였다.

    설마?

    “있어요?!”

    내 물음에 아스티아가 더없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응!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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