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98화 (788/1,404)

#798화 마계 상인 연합 (2)

부자와 가난한 자라…….

운영자 가른이 한 말은 뼈가 있는 말이었다.

거기다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아마 원래대로라면 마왕 벨라가 마왕성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나와 우리 팀의 존재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른의 말대로 돈으로 전쟁을 이기게끔 돌아가는 중이려나?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밀려나지만 않는다면.

분명 할 만한 게임이 되겠지.

의미심장하게 나를 바라보는 마계 경매장 운영자인 가른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당당히 아르곤 마왕의 뒤통수를 친다는 말을 들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제까지 이런 캐릭터는 본 적이 없으니.

그리고 그 말은 지금껏 지켜져 왔던 균형을 깰 거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역시 수상한 기분을 떨쳐 내지 못했다.

곧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주호> 이 녀석 좀 뒤가 구리지 않아요?

<불멸> 흐음,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말이야. 문제는 녀석의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는 거지. 정말 아르곤 마왕에게 빚이 있는가는 확인해 봐야 알 테고.

<주호> 그런데 정말 단지 빚 때문에 이러는 걸까요?

<불멸> 녀석이 완전한 상인의 룰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라. 그것도 마계 상인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이라면 더 확실해지고.

역시 그런 거려나?

고민을 하는데 옆에서 재중이 형이 운영자 가른에게 뭔가를 물어보았다.

“혹시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재중이 형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운영자 가른이 대답을 내놓았다.

“음, 좀 민감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흐음.

곤란하다는 눈치를 보이면서도 거부는 안 하는데?

신용을 위해 줄 건 확실히 준다는 건가.

“사실 꽤 많습니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이쪽의 상인 연합이 그 빚을 못 받아서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겠지만, 새 탐사팀을 돌리기 위해 없으면 꽤 곤란한 돈이라…….”

새 탐사팀?

저건 무슨 말이지?

뭔가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경매 중에 녀석이 상인 연합을 갈아 넣어서 『 피닉스의 알 』을 구해 왔다고 했던가?

아마도 거기 연관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 녀석도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 피닉스의 알 』을 구했을 리는 없을 테니.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꽤 많은 자금을 투자해서 이런 종류의 아이템들을 구해 오는 시스템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돈에 민감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그건 그렇다 치고.

궁금하긴 하네.

빚이 얼마나 되길래.

이 녀석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마왕을 등지려고 하는지.

마왕을 친다는 건 분명히 이 녀석에게도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마계 상인 연합을 대표하는 자라도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을까.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여기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라.

“대략?”

그러자 운영자 가른이 날 보면서 말했다.

“흠, 이번에 집사 님이 쓰신 돈의 대략 열 배쯤 되겠군요. 정확한 수치는 정산을 해 봐야 알겠지만요. 너무 많은 상인들에게서 빌려가는 바람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미친…….”

마계 경매장에서 내가 쓴 돈만 해도 백억 대가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데 그것의 열 배가 넘는 돈이 빚으로 남아 있다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운영자 가른에게 물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겁니까? 그 많은 돈이 빚이라니.”

마계 상인 연합이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정도 돈을 빌려주고도 제대로 굴러갈 스케일은 아닌데?

그러자 운영자 가른도 본인 역시 힘이 빠지는지 웃픈 모습으로 말했다.

“하하하하……. 바로 뼈를 때리시는군요.”

“그렇게 빚이 많은데 여기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게 더 신기하네요.”

“어떻게든 굴러가기는 합니다. 힘들어서 그렇지.”

그리고 운영자 가른이 또 다른 이야기를 추가했다.

“음, 사실 따지고 보면 다른 마왕님들도 꽤 빚이 많습니다. 서열 1위이신 바이카르 마왕님도 알고 보면 빚이 제법 있습죠.”

“그건 의외네요.”

“그나마 아르곤 마왕님보다 적긴 하지요.”

그리고 나를 보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벨라 마왕님도 빚이 제법 됩니다만.”

“아, 그런가요.”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운영 적자 -1200% 』

아주 시뻘건 색으로 칠해져 있던.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집사로 처음 임명되어 봤던 아주, 아주 선명했던 기억이 지금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휴, 이게 그거였군.

빚 덩어리 마왕성.

어쩐지 빚이 많다고 했다.

단순히 타르를 구매하는 데 쓰이는 돈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기서 돈을 제법 가져다 쓴 모양이었다.

“혹시, 전에 벨라 마왕님께서 깽판 치셨다는 게?”

“아하하……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하시는 그게 맞습니다.”

“끙.”

<주호> 마왕 벨라가 여기서 빚을 갚지 않겠다고 깽판을 친게 분명하네요.

<불멸> 어, 나도 그렇게 들렸다.

<주호> 무슨 마계가 이렇게 막장이에요?

대다수 마왕들은 도저히 갚지도 못할 정도로 불어난 빚 덩어리에.

거기다 빚 안 갚겠다고 무력으로 깽판을 치고.

그래서 출입불가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어쩐지 마왕 벨라가 떠나기 전에 자꾸 내 시선을 피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가 있으니 마계 경매장에 간다는 날 계속 피해 다녔던 모양이다.

“깽판을 치면 돈을 못 받겠죠?”

그러자 운영자 가른이 내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것도 아주 땅이 떨어져 내리는 듯 깊은 한숨을.

“음, 보통 마왕님들은 돈을 잘 안 갚으십니다.”

“잘 안 갚는 게 아니라 아예 안 갚는 것 아닌가요?”

“……또 뼈를 때리시는군요.”

맞군.

그냥 마왕들은 돈을 갚을 생각 따윈 아예 없는 거다.

“빌려 가도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음, 무력이 깡패라서라고 하면 답이 되겠습니까? 사실 이 곳 경매장을 나가면 결계의 보호를 못 받습니다. 바깥에서는 아시다시피 마왕님들이 힘을 고스란히 쓰시지요.”

경매장 안에서야 저 가른이 당당하게 밀어붙여도, 바깥에는 마왕들의 세상이었다.

무법지대에서 칼 든 놈이 원래 깡패니까.

“너무 이해가 잘 되어서 위로라도 해 드리고 싶네요.”

슬플 때 위로를 받으면 울고 싶어진다더니.

지금 운영자 가른의 표정이 딱 그랬다.

《 마계 상인 연합 운영자 가른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이거 참.

너무 적나라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네.

“흠흠, 이런. 못 볼 꼴을 보여 드렸군요.”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빚을 안 갚아도 상관없는 건가요? 아까 보니까 경매는 잘만 참여하던데요?”

“빚은 빚이고, 자신들의 돈은 자신들의 돈이라 생각하는 분들이라…….”

말은 분들이라고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쌍놈들이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나마 경매에 와서는 돈을 풀어 주고 가니까 상인 연합이 돌아가는 겁니다.”

“빚 대신?”

“그런 셈이지요. 마왕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채무 관계가 엉망진창이네요.”

이건 뭐.

네가 홍길동이냐.

빚을 빚이라 부르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개입할 문제는 또 아니었다.

당장 우리 앞길 처리하기도 바쁜데.

“하하, 그래서 제가 집사님은 마음에 드는 겁니다.”

“네?”

갑자기 저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말과 함께 운영자 가른이 눈빛이 환하게 변했다.

“저와 채무관계가 엉망이 아니신 분들 중에 집사님이 가장 부자시거든요.”

“흠…….”

“빚이 아닌 온전한 자금. 이걸 집사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다 구제하지 못할 시궁창인데 나만 뭐 맑은 물이고 그렇다는 뜻이려나?

대충 들어보니 그런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

“그런데 전 베르테니아 마왕성 소속입니다만……?”

“그렇다고 벨라 마왕님 본인은 아니시지요.”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그럼 갚을 이유가 없으시겠죠.”

어차피 베르테니아 마왕성 앞으로 빚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걸 안 갚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난 고용되어 있는 관계일 뿐.

그 빚을 내가 처리할 이유는 하등 없으니까.

마왕성에 돈이 없으면 좀 불편한 정도?

“그래서 제가 마계 경매장의 VVIP를 바로 드린 겁니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벨라 마왕님과는 별개로, 집사님에게 따로.”

“그건 감사합니다.”

흠.

단순히 물건 좀 많이 사라고 VVIP를 준 건 아닐 텐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운영자 가른이 말을 꺼냈다.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들어가는 물자들. 모두 상인 연합에서 가져가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사실 여기 말고는 구할 곳도 없고.

다른 마왕성까지 가서 사기에는 길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어차피 거기 가봐야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전박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저들 입장에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집사라는 명함은 거의 길가에 떨어진 낙엽만도 못할 테니.

그때 운영자 가른이 내게 제안을 했다.

“마계 상인 연합에서 기존에 사실 수 있는 물품들보다 좀 더 상위의 물품을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재중이 형이 휘파람을 불었다.

<불멸> 휘유, 이놈 봐라? 아주 작정하고 우리를 밀어줄 모양인데?

<주호> 네, 그럼 유저들의 수준이 몇 단계 이상 높아질 거예요.

알다시피 로스트 스카이는 장비에 레벨 제한이 없었다.

직업 같은 착용 제한도 없고.

그냥 무구를 어떻게든 사거나 구해서 입으면 그만.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곳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없던 녀석이 한순간에 괴물이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스탯이 딸려서 운용이 힘들겠지만.

힘이 모자라서 휘두르질 못한다던가.

민첩만큼 컨트롤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점을 제외하면.

장비가 좋으면 대체로 능력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가득이나 마계에 와서 힘든 유저들에게 상위 장비라는 건.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

그런데 지금.

운영자 가른이 대놓고 상위 물품을 풀어 준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아르곤 마왕을 밀어내고 싶으신가 봅니다.”

“어차피 못 받는 돈이라면. 마왕성이라도 받아내야겠죠.”

흐음?

마왕성을?

의외인데?

확실한 건.

이 녀석 지금.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건 맞아.

그것도 아르곤 마왕을 시작으로.

그래서 바로 운영자 가른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마왕이라도 되고 싶으신 겁니까?”

마왕성을 소유한다는 것은.

넓은 마계에서 몇 없는 마왕 중에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아니라면 굳이 마왕성을 가질 이유가 없지.

주변 사냥터는 어차피 이들에게 큰 의미도 없을 테고.

레벨을 올려야 하는 유저들이야 신나서 환영하겠지만.

마왕 자리가 아니라면 굳이 상인 연합에서 마왕성을 탐낼 이유가 없었다.

아니.

마왕 역시 마찬가지이려나?

굳이 마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내 물음에 운영자 가른이 곧장 고개를 저어보였다.

“흠, 그건 아닙니다. 사실 제가 마왕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무력에서는 아예 다른 마왕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마왕성을 소유해도 금방 다른 마왕급 마족에게 뺏기겠죠.”

“그럼?”

그러자 갑자기 운영자 가른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혹시 집사님께서는 마왕성 지하에 존재하는 비밀 시설을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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