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97화 (787/1,404)

#797화 마계 상인 연합 (1)

경매가 완전히 파한 뒤.

상인 연합과 마족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마계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몇몇 마족과 상인들이 접근하려고 했는데 막상 마왕들의 눈치를 보는지 접근하지는 못 했다.

더 높으신 분들이 이미 침을 발라놔서 접근을 못 하는 거려나?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 모든 이들이 떠나자 곧 우리와 마왕들만 자리에 남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조만간 사람을 보내지.”

“기다리지 않는다면요?”

“괜히 쓸데없이 일을 키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믿겠다.”

흐음.

이건 경고인가.

『 피닉스의 알 』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튀지 말라는.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이겠다는 뜻을 에둘러 순화해서 말한 느낌이라.

그렇게 마왕 바이카르를 비롯해 다른 마왕들도 전부 마계 경매장을 떠나갔다.

그중 마왕 올펠이 잔뜩 인상을 구기면서 떠난 것 빼고는 뭐.

나름 괜찮네.

처음부터 아스티아의 무기를 되찾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경매에서 『 피닉스의 알 』이라는 아이템에 서열이 높은 마왕들이 엮이고 난 뒤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전부 다 어떻게든 이걸 가지고 싶어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것보다 좋은 미끼가 다시 있을까?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자금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다음 경매에서 이 수준의 경매금을 다시 쓰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에게 돈을 뽑아내야 할 텐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계와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처음 접한 상태에서 유저들이 어쩔 수 없이 비싸게 물건을 사고 있는데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유저들도 마계에 적응을 할 테고.

그럼 단순히 마계 상인 연합에서 가져오는 기본템으로는 한계가 보일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는 지금처럼 바가지로 물건을 사 주지도 않을 테니까.

결국 지금 이 순간에 『 피닉스의 알 』을 경매로 얻게 된 건 내게는 최선의 운이 작용한 셈이었다.

그럼 이걸 최대한 이용해야지.

다행히 마왕들도 거부감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내가 그들에겐 갑이었다.

“아마 지금이 아니면 그들에게 아이템을 얻을 기회가 없을 지도 몰라요.”

“흐응, 확실히 그렇겠네.”

“아니라면 그들과 싸워 이겨서 얻어야 할 테니까요.”

아스티아의 무기는 최소 마왕급의 무기일 것이다.

만약 저 마왕들 중 누군가 그걸 가지고 있다고 치면.

그럼 당연히 내어놓지 않고 어딘가 잘 보관만 해뒀을 터.

그리고 지금 그 아이템 목록을 보기에는 최선의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그들과 싸워야 할 텐데…….

이 경우에는 엄청난 리스크를 지고 싸워야 한다.

우리 쪽에 마왕 벨라가 있다고는 하지만.

들어 보니 당장 1:1로 붙어서는 승리를 장담할 정도는 아닌 듯 해보이고.

무엇보다 아스티아는 지금 본인의 무기가 없으니까.

서열이 높을수록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마도 꽤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

유저들은 솔직히 도움이 안 되고.

그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아직은 마왕에게 한 번에 눌러죽는 수준밖에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랭킹이 높은 유저들은 어느 정도 버티기야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겨우 마계에 입성한 상태의 유저들에게는 역시 버거운 일이다.

전면전으로 가면 필패.

반대로 지금 이 상황에서 아스티아의 무기만 가져올 수 있으면.

당장 이쪽에 마왕 랭킹 4위 정도 되는 마왕급의 존재가 생기는 거니까.

마왕성 중 다른 어디와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터.

“아스티아의 무기를 되찾는 게 제일 중요해요. 여기서 살아 남으려면요.”

아스티아 역시 내 말에 긍정을 표하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낙관은 할 수 없어요. 저들에게 물건이 없을 경우…….”

“그럼 더 다행인 걸? 마왕성 외부에서 찾으면 되잖아.”

“하긴 그렇죠.”

차라리 다른 마왕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이것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내게 물었다.

“일단은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마왕급의 무기를 쉽게 내어주려고 할까?”

“저들에게 진짜 『 피닉스의 알 』이 필요하다면 내어주겠죠.”

“흠, 최악의 경우 만약 넘겨주지 않더라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만 알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네, 그땐 피 터지게 싸워야겠지만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누군가 우리에게 접근했다.

응?

아직 남아 있는 녀석이…….

“하하, 경계 안 하셔도 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이 마계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아, 사회자……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일단은 가른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다른 이름도 많지만요.”

경매 사회자와 운영자가 동일한 건가?

어쩌면 일부러 이번에만 나선 것 같기도 하고.

“운영하는 분이 굳이…….”

“아, 경매 말이십니까. 아무래도 물건들이 물건들이다 보니. 이번에는 제가 나섰습니다.”

마계 경매장의 운영자라…….

이자가 단순히 경매만 하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혹시 마계 상인 연합의 대표이십니까?”

“하하, 눈치가 빠르시군요. 겸직입니다.”

“능력이 좋으시군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상대에 대해 가볍게 살피면서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는데 딱히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운영자 가른이 웃으면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바로 꺼내놓았다.

“솔직히 굉장히 놀랐습니다. 『 피닉스의 알 』은 마왕들 중 한 분이 들고 갈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만…….”

“이상한 놈이 나타났다?”

“하하하, 재밌는 분이시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고객님을 마계 경매장의 VVIP로 등급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음?

이건 무슨 뜻이지?

“VVIP 라고 하면……?”

“저희 경매장에서 상위 마왕들에게만 드리는 특권입니다.”

“그걸 왜?”

마왕에게만 주는 특권을 내게 준다?

그건 나를 마왕과 같은 급으로 생각한다는 걸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단지 돈을 좀 많이 썼다고?

이건 좀 이상한데?

“아! 너무 수상하게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미리 양해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말이죠?”

“음, 사실 고객님의 뒷조사를 조금 했었습니다.”

그 말에 신경이 확 곤두섰다.

뒷조사?

어디까지 한 거지?

설마 내가 마왕 벨라와 연관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나?

아니면 다른 쪽으로?

알려진 게 많지 않을 텐데?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은 생각보다 신경을 안 쓰는지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불멸> 암흑 상인에게 마계 경매장의 입장권을 줬으니까. 그 정도는 했겠지. 요 근래 갑자기 우리가 돈을 많이 푼 것도 있고. 암흑 상인의 뒤를 캐면 바로 우리가 나오잖아.

<주호> 흐음, 그렇겠네요. 그런데 어디까지 알아냈을까요?

<불멸> 네가 마왕성 집사라는 것까지? 나머지는 마왕 벨라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더 알 수 없는 거니까. 이 녀석들과 사이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그 이상을 말해주었을 리 만무하고.

<주호> 그럼 다행이네요. 제국 쪽과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면 꽤 피곤해져요.

<불멸> 아마 나중에는 눈치챌 수도 있겠지. 네게서 나오는 자금을 파고들다 보면.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마계 경매장에 아무나 들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요. 혹시 기분이 상하셨습니까?”

“아뇨,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만. 이후에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베르테니아 마왕성 집사님.”

역시나 이미 정체를 다 아는군.

그리고 운영자 가른이 궁금하다는 모습을 가득한 채 웃어 보였다.

“요즘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활발하다고 하더니 다 집사님 덕분이겠군요.”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우리 마왕님이 이쪽으로는 통 관심이 없으셔서요.”

내 대답에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운영자 가른이 흘리듯 슬쩍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건 집사님이 VVIP가 된 기념으로 이야기해 드리는 겁니다. 사실 이전에 아르곤 마왕님께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가는 물자를 모두 막으셨습니다.”

흐음.

이것 봐라?

비밀스러운 뒷이야기를 선물로 던져 주듯 이야기하다니.

너무 수상하잖아?

“그 이야기를 해 주시는 연유가?”

“흠, 상인은 원래 돈에 움직이는 이들입니다. 돈 냄새가 났다고 하면 괜찮겠습니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만?”

“흐음, 그럼 이길 것 같은 쪽에 베팅한다고 하면 어떨지요?”

그 말과 함께 운영자 가른이 미소를 띄우며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 뭘 보고 그러시는 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우리가 이긴다고 보시는군요.”

그때 운영자 가른이 뜬금없이 말을 꺼내들었다.

“흐음, 집사 님은 전쟁을 이기는데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뭐지?

이걸 물어보는 이유가?

가른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문자답을 했다.

“압도적인 무력? 혹은 강력한 무기? 휘하의 병력의 숫자? 견고한 마왕성? 희귀한 아티팩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아, 이제야 이 녀석이 하려는 말을 알겠네.

“돈 말입니까?”

“네, 자고로 전쟁은 돈이 하는 것이죠. 전쟁 물자가 그냥 땅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전쟁 물자라는 말과 함께 운영자가 환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그 물자를 요 근래 어마어마하게 사들이신 쪽은 베르테니아 마왕성입니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이긴다고 보시는 겁니까?”

“아,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지금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흘러들어가는 물자만으로 이미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죠. 병력, 물약, 장비 모든 면에서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이던 운영자 가른이 확신을 가지고 말을 꺼냈다.

“역전될 겁니다. 아르곤 마왕님의 마왕성과의 판세가.”

“정말 확신하시는군요.”

“이래 보여도 그간 벌어진 전쟁만 수백 년째 지켜봐왔습니다. 그곳에 물자를 대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누가 이길지 뻔히 감이 온다 이거인가?

그래서 이길 것 같은 우리에게 베팅을 하겠다는 거고.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만약 우리가 질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런 정보를 주지도 않았을 거다. VVIP도 그렇고.

<주호> 네, 정말 눈썰미가 좋네요. 이 녀석.

솔직히 아스티아의 일만 처리되면.

마왕 아르곤의 마왕성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역전되겠지.

“흠, 그리고 다른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뭔가요?”

“『 피닉스의 알 』이 아르곤 마왕님께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겠습니다.”

“……아르곤 마왕의 아이템 목록만을 따로 보여 주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네, 그럼 그쪽은 고르시지 않을 테니까요.”

아주 우리가 이겨 달라고 밀어주는구만.

그리고 『 피닉스의 알 』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아르곤 마왕에게 들어가면 반대의 경우도 나올 수 있을 텐데요?”

“흠, 이건 비밀은 아닙니다만…… 사실 아르곤 마왕님이 좀 빚이 많습니다.”

“설마…… 돈을 안 갚아서 이러는 겁니까?”

내 물음에 씨익 웃는 운영자 가른이 확답을 해 주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지. 뻔한 이야기 아닙니까, 집사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