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화 마계 경매장 (11)
순간 마계 경매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네?!”
보통 사회자가 경매가를 다시 되묻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자가 너무 놀랐는지 넋을 놓으며 자신도 모르게 경매가를 다시 물어보고야 말았다.
“15000코인이라고 했습니다.”
완벽한 정적.
경매가를 부른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경매장에서 한마디 말도 꺼내놓지 못했다.
“어, 그러니까…….”
사회자가 바로 내 옆에 있는 안내자를 쳐다보면서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마 저 어마어마한 돈을 이 녀석이 정말 낼 수 있는지를 안내자에게 물어보는 거겠지.
그러자 안내자가 공중으로 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확인하고는 자신도 못 믿겠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안내자의 반응에 당연히 사회자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했고.
옆에 잇는 안내자를 보면서 물었다.
“혹시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워낙 큰 액수라. 사실 저희 경매장에서도 처음 나온 금액이라 다들 놀라서 그랬습니다.”
“아하, 그런가요.”
15000코인.
아마도 이 돈이면 마왕성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그런 돈이지 않을까.
그 정도의 고액을 단지 아이템 하나에 이렇게 쓴다는 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도 지금 손이 떨리고 있으니까.
너무 질럿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마왕 바이카르가 잔뜩 굳은 표정을 짓고 내 쪽을 노려보는 것을 보면.
일단 저 반응으로 봐서는 마왕 바이카르도 이 정도 금액을 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만약 가능했다면 한참 전에 손을 들었을 테니.
그래, 네가 마왕 중에 최고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렇다고 가진 돈도 네가 제일 많다고 할 순 없지.
옆에서는 암흑 상인 클레인이 입이 쩌억 벌어져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로브 속의 빛이 흔들거리는 걸 보면 놀라도 정말 놀란 모습인데?
“돈이 이렇게 많으셨습니까?”
“음, 뭐 좀 이리저리 하다 보니까 많아졌어요.”
사실 이 돈은 유저들에게 삥 뜯은 수준이라.
떳떳하게 말하기에는 양심상 좀 걸리는 부분이고.
그리고 그 삥 뜯는 일에 일조한 암흑 상인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암흑 상인은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물건만 전달해 주었지, 그 물건들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팔려 나가는지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유저들을 상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 역시 전혀 모르는 상황.
그러니 이렇게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터.
암흑 상인.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긁어모으진 못했을 거야.
거기다 지금 돈을 다 썼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여기서 다 써 버리긴 좀 그렇지.
재중이 형은 이런 내역을 잘 알고 있기에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좀 많이 쓴 것 아냐?”
“네, 뭐 그래도 마왕 바르카르의 표정을 보니 제대로 쓰긴 한 것 같아요.”
“음, 그럼 저 녀석이 쓸 수 있는 한도는 딱 이 정도까지군. 뭐 나중을 위해 그냥 아끼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뭔가 나중에 원하는 물건이 나온다면 지금 돈을 무리해서 쓸 수는 없었다.
무슨 물건이 나오는지 정확히 안다면 말이지.
순간 시선이 마계 상인 연합의 간부에게 돌아갔다.
마왕 올펠, 그리고 또 다른 정체 모를 마왕 하나에 마왕 아르곤까지.
고대 정령의 가호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왔단 말이야…….
다른 말로 녀석들은 미리 정보를 받았을 확률이 아주 높아 보였다.
어쩌면 마계 경매장에서 참가하는 마왕들에게만 주는 특전일 수도 있고.
우리야 마왕 벨라가 있긴 해도 그런 정보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 전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좀 알아봐야 하려나.
다시 고개를 돌려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계속 안 하십니까?”
“아! 해야죠. 하하하하. 기다리게 해드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경매 물품을 비싸게 받는 일은 경매 사회자에게 있어 최고의 덕목이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엄청난 가격에 입찰을 해서 그런지 사회자가 날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흡사 기존의 다른 마왕을 대하듯이 극진하고 깍듯한 모습.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나쁘지 않네.
그리고 내 옆의 안내자 역시 마찬가지.
“아이고, 이런 분인 줄 미리 알았다면 진작 더 좋은 자리로 모셨을 겁니다.”
“흠, 다음에 부탁하도록 하죠.”
“넵!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다음에도 저를 꼭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불멸> 이 녀석, 구매 수수료를 받는 모양인데?
<주호> 그래요?
<불멸> 네가 산 물품에서 얼마를 받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태도가 바뀌지.
<주호> 하하, 좋은 게 좋은 거죠.
이러면 다음에 해볼 수 있는 일이 많겠는데?
“자! 더 없으십니까? 15000코인입니다!”
더 있을 리가 있나.
사회자도 예의상 물어보는 정도였다.
이 이상의 금액은 바라지도 않을 테니.
“그럼 셋, 둘, 하나! 고객님께 『 고대 정령의 가호 』가 낙찰되었습니다!”
물론 경매에 참가한 녀석들에게서 박수가 나온다던가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왕들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기만 할 뿐.
특히 마왕 바이카르의 눈치를 많이 보는 모습이었다.
저 녀석이 확실히 무섭긴 한가 보네.
이 경매에서 유일하게 마왕 바이카르가 입찰한 물건을 내가 가져갔으니.
그런데 잠시 나를 바라보던 마왕 바이카르는 김이 빠졌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사회자에게 말했다.
“계속하지?”
그러자 사회자가 급히 몸을 숙이면서 외쳤다.
“그, 그럼! 다음 경매로 넘어가겠습니다!”
이후에는 경매가 계속 진행되었으나 『 고대 정령의 가호 』 같은 특이한 물건을 보이지 않았다.
옵션이 좋고 특이한 악세서리 같은 경우는 값어치가 좀 많이 나가겠지만…….
“일단 패스.”
“그럴까요?”
“확실히 여기 물건이 좋긴 해. 그런데 저거 다 사다가는 진짜 사고 싶은 거 못 산다.”
“아, 저거 다 사갈 수 있으면 최소 수십 배는 남겨 먹을 건데 말이죠.”
아쉬움.
탐이 나는 물건들이 계속 나왔다.
유저들이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물건들.
지금 유저들이 쓰는 보급품보다 상위의 무기, 방어구. 악세서리.
심지어 처음 보는 심장들도 있었고.
강력한 스킬북 혹은 마법서 등도 종종 경매로 올라왔는데 죄다 손가락만 빨면서 다른 마족들이나 상인들이 쓸어가는 것을 구경만 했다.
아마 다른 네임드들을 잡아야 얻을 수 있을지도.
그렇게 해도 못 얻는 아이템도 물론 있을 것이다.
상인들이 사간 아이템은 몇 배는 더 들여서 다시 사야 할 테고.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방금 전에도 봤지만 마왕들과 대형 상인들의 자금이 결코 적지 않았다.
정작 원하는 물건이 나왔을 때 손도 못 들어보면 너무 아쉽지.
옆에서 암흑 상인도 나름 몇 개의 물건을 건지면서 선전을 했다.
재중이 형은 좀 지켜보다가 별로 관심이 없는지 손을 놓았고.
“별로에요?”
“아니, 좋긴 한데. 딱히 끌리진 않네.”
“좀 바가지이긴 하죠?”
“글쎄다. 그보단 딱 감이 오는 게 없어. 마왕급 무기라면 또 모를까.”
재중이 형 역시도 나와 같이 유저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며 제법 많은 금을 비축해 둔 상태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입찰이 가능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마족의 무기가 워낙 좋다 보니…….
그 이상의 뭔가를 찾기가 쉽진 않겠지.
경매는 계속 흘러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 이번 물건은 정말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걸 구하기 위해서 상인 연합이 얼마나 갈려 나갔는지 모르겠군요. 마계 탐사팀이 수백 번을 갈려 나가고서야 마계 화산 지대의 지저 바닥에서도 가장 깊고, 깊은 곳에서 겨우 건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 값어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회자의 연설이 이어졌다.
대체 무슨 물건이길래 저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거야?
이전에 무기의 등급을 하나 올릴 수 있다는 물건을 언급할 때도 이렇게까지 오래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물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려……! 『 피닉스의 알 』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매장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인데?
“세상에……!”
“저게 실존하는 물건이었나?”
“설마 그 전설의 그……?”
“생명의 시조……!”
“불꽃의 왕!”
거기다 마왕들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흥분을 했다.
마치 이것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중이 형이 그런 마왕들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저 녀석들. 이것 때문에 참가한 거였나?”
“네, 그런 것 같아요.”
“반응을 보니 이미 뭐가 나오는지 다 알고 있었네.”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근데 저 알, 피닉스에게서 훔쳐온 거려나?”
“모르죠.”
“마왕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신들을 못 얻는 모양인데?”
저 마왕들도 이런 반응이라면 그만큼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겠지.
당연히 값어치는 엄청날 것이다.
슬쩍 아스티아를 바라보니 아스티아 역시도 다소 흥분한 표정이었다.
“좋은 거겠죠?”
“응, 피닉스에게서 나온 심장은 불사를 만들어 준다고 알려져 있거든.”
“불사라…….”
어차피 죽어도 다시 부활해서 살아나는 유저들이 보기에는 불사라는 건 별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뭐 실제로 불사가 되지는 않을 듯 하고.
마왕급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당장 게임이 망해 버릴 지도 모르니.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유저에게 값어치가 있을까요? 불사가?”
“흠, 오히려 그것보다는 피닉스라는 탈것이 새로 생긴다는 점이 오히려 유저들에게는 더 각광 받겠지.”
사야 하나?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마왕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일단 질러 보죠?”
“마음대로.”
단순히 피닉스의 알이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또 다른 나온다.
이걸 다른 마왕들이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저렇게 원하는 대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
그럼 당연히 앞으로의 적이 될 마왕들에게서 피닉스의 알을 뺏어올 필요가 있었다.
방어 목적의 경매라고 해야 하려나?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것 중에는 다른 방법도 존재했다.
“이걸로 협상을 해도 좋겠죠.”
“호오, 그건 꽤 끌리는데?”
“마왕들이 저렇게나 원하는 물건이라면. 꽤 쓸모가 있겠죠.”
써보고 좋으면 뭐.
그냥 쓰면 되는 일이고.
그렇게 『 피닉스의 알 』의 경매가 시작되고 난 뒤.
마왕까지 참여해 한참 동안 과열되던 경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낙찰이 되었다.
“『 피닉스의 알 』이 고객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번 역시 내 쪽에서 『 피닉스의 알 』을 가져와 버렸다.
중간에 욕설을 몇 번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마왕 올펠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중간에 쌍욕을 하는지 바로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었다.
앞으로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놈은 꼭 한 대 패고 시작해야겠는데?
마지막 경매 물품인 『 피닉스의 말 』이 낙찰되고 난 뒤 사회자의 인사말과 함께 경매가 완전히 끝이 났다.
“이제부터가 문제네요.”
“그래, 돌아가는 길이 꽤 빡세겠어.”
마왕들이 간절히 원하는 물건을 무려 두 개나 쓸어와 버렸다.
그들에게서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는 상황.
물론 좋지 않은 관심일 테고.
일단 이 안은 안전하다지만 언제까지 있을 순 없는 노릇.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늘이 졌다.
이건.
마왕 바이카르……?
설마 이 안에서 바로 다가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거기다 그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와 거래를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