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화 마계 경매장 (6)
이전에 암흑 상인에게 물어본 봐 마계 경매장에는 그냥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수 있는 경우는 딱 세 가지.
특정한 자격을 갖춘 자이거나.
혹은 상인 연합에서 정한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백화점에서 돈을 물 쓰듯이 써서 VVIP가 되는 거랄까.
남은 하나의 방법은 바로 추천.
이미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수 있는 자들이 추천해 대동하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마계에 넘어왔을 때.
우리는 이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자격이 없고.
상인 연합과의 관련도 없었으며.
누군가 추천을 해 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이것 때문에 한 번은 마왕 벨라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마왕 경매장에 대해 혹시 아세요?”
잠시 마왕 벨라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응?
왜 이런 반응이지?
“으응? 알긴 해.”
“그럼 마왕님은 마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있나요?”
마왕 벨라는 무려 마왕성을 가진 마왕이었다.
넓은 마계에서도 몇 명 되지 않은 마왕성의 주인.
이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고야 말았다.
“못 가.”
그 한마디를 하면서 마왕 벨라가 뭔가 불편한지 딴청을 피우며 손가락으로 볼을 긁어 보였다.
저건 내 시선을 피하는 거려나.
“마왕님 정도면 자격이 되는 것 아닌가요?”
“으음,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하다고?
내 집요한 시선에 흠칫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던 마왕 벨라가 결국 이실직고 말을 꺼냈다.
“아하하, 미안……. 사실 내가 전에 거기를 좀 박살 낸 적이 있어서…….”
“상인 연합을요?”
“응…….”
“혹시 깽판이라도 치셨어요?”
“으음,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아…….”
그동안 마왕 벨라를 쭉 지켜본 결과.
수틀리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들이대는 스타일이라.
막 나가는 걸로 치면 내가 아는 NPC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수틀리는 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마왕 벨라를 통해서는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수 없단 뜻이었다.
거기를 박살 내고 왔다는데.
경매장 관계자면 다시는 입장시켜 주지 않겠지.
첫 번째 방법은 애초에 아웃.
애초에 내 쪽에서는 특정한 자격을 갖추진 못했으니.
마왕성의 집사 정도의 자격으로는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세 번째 방법도 힘들었다.
만약 마왕 벨라가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자격이 되었다면.
나를 추천으로 대동해서 들어갈 수 있었을 테지만.
알다시피 이미 박살을 내고 오셔서 말이지.
“하아, 꽤 사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말이죠.”
“으응…… 미안.”
“미안하실 것까지는 없는데…….”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무려 마왕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다니.
마계에서 마왕이라는 이름값을 비추어보면 애초에 미안함이라는 말은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이니까.
이렇게 상황이 변한 것은 다름 아닌 호감도.
타르 광산을 통해 타르 석을 계속 공급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왕 벨라와의 호감도가 계속 올라갔다.
거기다 마왕성에 들어가는 돈도 죄다 내가 가져다 바치는 중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돈을 이렇게 퍼다 주는데 호감도가 안 올라가면 그건 사람도 아니지.
한마디로 돈으로 마왕 벨라의 호감을 계속 끌어올린 셈이었다.
너란 마왕, 돈에 약하구나 같은 말을 면전에서 했다가는 바로 통구이가 될 테지만.
실제로 먹히는데 어쩌냐.
마왕 벨라가 그동안 부족하게 생각한 부분을 죄다 긁어주고 있달까.
그리고 이런 상황은 마왕성을 유저들에게 공개하면서 더 좋아졌다.
개떼처럼 몰려든 유저들이 주변의 강력한 마계 몬스터들을 견제하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전부 사냥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괜히 가서 죽는 경우도 더 많았고.
아니지.
거의 대부분 죽어서 마왕성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런 유저들이 얼마 전부터는 완전히 판을 뒤집어 놓았다.
마계의 새로운 장비를 착용하고서.
그런 장비는 당연히 이곳 마왕성의 무기점에서만 팔고 있었다.
지금도 무기점 앞에는 유저들로 끊이지 않는 줄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새벽부터 새로 나온 신상을 찾아 백화점 앞에 줄을 선 사람들처럼.
상인 연합에서 파는 장비, 이건 필드에서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장비보다 상급의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단계를 그냥 건너뛰고 상인 연합에서 사온 아이템은 우리가 보기에도 흡족한 정도니 다른 유저들이 보기에는 어떨까.
지금 저렇게 불티나게 아이템이 팔려나가는 것도 모자라 앞에서 진을 치고 농성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심지어 어렵게 줄 서서 겨우 산 아이템을 되파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그걸 눈 딱 감고 사는 유저도 넘쳐났고.
아이템들의 등급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결과였다.
아마도 마왕성에서 바로 제작을 시작했다면 이보다 못한 아이템을 만들어 팔았겠지.
장사도 안 됐을 게 뻔하고.
우리가 밖에 나가서 일일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겨우 하나 제작하는 식으로 아이템을 만들어 팔았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번에 열리는 마계 경매장은 쳐다도 못 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사 덕에 마계 경매장에 입장할 두 번째 조건은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암흑 상인을 통해 마계 상인 연합에서 계속해 물건을 다량으로 사들이다 보니, 암흑 상인은 어느새 VVIP로 등급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하긴, 물건을 좀 많이 샀어야지.
마계 상인 연합에 도는 물건 중 1/5을 우리가 사들였으니.
그게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우리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당연히 암흑 상인은 마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 소식을 바로 알리기 위해 암흑 상인이 우리를 찾아왔다.
“마계 경매장 티켓! 드디어 구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흠, 제가 한 게 뭐 있습니까. 다 주호 집사님 덕분입니다.”
“얼마나 들었나요?”
그러자 암흑 상인인 손가락 몇 개를 들어 보였다.
저게 현금으로 환산하면…….
대략 3천 정도이려나.
단순히 입장권 하나를 구하는데 이런 돈이 들다니.
옆에서 재중이 형도 꽤 놀란 듯 말했다.
“생각보다 좀 비싸네.”
“좀 비싼 정도가 아니죠.”
VVIP가 되었다고 마계 경매장에 그냥 막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암흑 상인에게 듣기로 경매장의 인원수는 항상 고정이라고 하던가.
아마 이는 경매장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원을 더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면.
어느 한 곳에서 결원이 나거나, 혹은 기존 경매자에게 입장권을 사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 티켓이 비싸겠지.
암흑 상인이 다행이라는 듯 말을 꺼냈다.
“다른 마왕성 중에 한 곳에서 이번에 참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겨우 구했습니다.”
“음, 티켓이 있는데도요?”
나라면 무조건 참가할 텐데.
암흑 상인에게 듣기로는 매번 나오는 물건들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
아마도 몬스터만 잡아서는 얻을 수 없는 물품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아니라면 이렇게 경매를 할 리가 없으니.
“생각보다 자금이 빠듯한 마왕성도 있습니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처럼 돈이 없는…….”
그러면서 흘깃 마왕 벨라를 봤다가 그녀가 확 째려 보니 암흑 상인이 놀라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농담 한 번 잘못 했다가 모가지 날아가겠는데?
로브 속의 어둠이 일렁거려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 않을까.
“하하하하, 이제는 부자 마왕성 아닙니까.”
“흥!”
암흑 상인이 바로 마왕 벨라의 비위를 맞춰 주자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풀렸다.
참 표정만 보면 알기 쉽다니까.
“우리 집사가 일을 잘하긴 하지.”
“음, 감사합니다.”
마왕성에 유저들이 북적거리는 상황이라.
처음에야 마왕 벨라가 인간들이 너무 많다면서 싫어할 법도 했는데.
차곡차곡 변해 가는 마왕성을 지켜보더니 이제 불평은커녕 제법 신이 난 얼굴이었다.
흠.
저거 다 내 돈이랍니다.
마왕성을 보수하는 것도 그랬다.
성벽은 물론이고 각종 건물들과 여기 마왕이 거주하는 중앙성 역시도 전부 내가 지시해서 보수를 시작했다.
관리나 상인 NPC들을 고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
생각해 보면 마왕 벨라에게 무엇보다 좋은 건.
바로 본인이 정찰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마왕성에 넘어온 유저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밝혀주는데 굳이 마왕이 직접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알아서 방패막이가 되어 대신 싸워 주니.
만약 몬스터가 너무 많다고 한들 유저들이 시간만 끌어 줘도 나가서 처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맘에 들어.”
오죽하면 마왕 벨라가 이런 말을 할까.
덕분에 유저들도 마왕 벨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활동했다.
마왕이라고 하면 다들 경계만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의외로 마왕 벨라가 직접 나서서 터치를 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마왕이 있든 없든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 잠시 손을 잡은 딱 그런 상황이려나.
마왕성에 인간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광경은 아닐 테니.
일단 약속했던 것 중에 하나는 지켰네.
정찰해 줄 부하들을 잔뜩 세워둔 셈이다.
그것도 공짜로.
그리고 마왕 벨라가 자유로워지면서 좀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껏 수세였던 상황도 뒤집을 필요도 있고.
마왕 벨라가 수성만 하던 이전의 상황과 앞으로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시선을 돌려 암흑 상인에게 물었다.
“입장권으로 몇 명이나 갈 수 있는 건가요?”
“흠, 일단 저를 포함해서. 제가 지정하는 3인까지는 가능합니다.”
“세 명인가요. 생각보다 적네요.”
“일단은 명목상 호위라고 보시면 됩니다만. 필요하면 경매에 참가해도 상관은 없다고 합니다. 돈만 충분하다면 말이죠.”
“다행이네요. 혹시 들어가서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어쩌나 했습니다.”
이번에 경매장에서 쓰려고 돈을 얼마나 긁어모으는 중인데.
구경만 하는 건 안 되지.
옆에 있던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그럼 누가 갈까요?”
“일단 너는 가야 하니 한 자리 빼고.”
“형은요?”
“내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럼 제가 마음이 편해지겠죠.”
아무래도 이상한 물건을 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이럴 땐 무엇보다 경험이지.
“오케이. 그럼 두 자리. 남은 한 자리는…….”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곧 아스티아를 보면서 물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나? 그래, 알았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흔쾌히 허락했다.
귀찮은 건 별로 안 좋아하던데…….
바로 아스티아가 날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달라는 거 사줄 거지?”
사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게 얼마나 하냐의 문제이려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불멸> 아스티아면 숨겨진 아이템도 알아채지 않겠어?
이 형 역시 노리는 게 있었구나.
만약 경매장에 나온 물건들이 우리가 쉽게 파악할 만큼 좋게 포장되어 나오지 않는다면?
그럼 아스티아가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주 보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뭘 사려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내가 무조건 사 준다.
“얼마든지 고르시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