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9화 마계 경매장 (5)
문전성시.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개방한 후 가장 많은 유저들이 몰린 그 장소는 바로 무기점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모인 곳은 방어구점.
야심차게 준비한 물건들이 품목별로 진열되어 있는 이 두 곳은 그야말로 유저들의 행렬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감탄을 터트렸다.
“오, 저 쭉 늘어진 줄 봐라.”
“네, 생각보다 더 인기가 좋네요.”
“크크, 저런 물건들을 가져다 놨는데 인기가 없으면 곤란하지.”
지금 무기점과 방어구점에 올려놓은 물건들은 다른 장소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이었다.
이것들 전부가 마계 상인들로부터 구한 물건들이니까.
비싼 만큼이나 품질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간 유저들이 보아오던 아이템들과는 아예 등급 자체가 달랐다.
일반 사냥터를 몇 개나 뛰어넘은 아이템들인데 등급이 비슷할 수가 있을까.
유저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기점과 방어구점에 줄을 섰던 것은 아니었다.
“아까는 휑했었지.”
“솔직히 그땐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안 팔리는가 싶어서.”
야심 차게 마계 연합의 물품들을 준비해 놓은 것까진 좋았다.
당연히 사겠지 싶었는데 말이야.
결과는 정반대.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넘어와서 유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귀환지를 찍고 정해진 순서처럼 무기점과 방어구점을 들리는 일이었다.
퀘스트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리고 다 같이 입을 모아서 한마디씩 했다.
“가격이 미쳤잖아?!”
“뭐 이딴 가격을……!”
“아, 그래도 물건은 좋은데…….”
“그러게, 좋긴 드럽게 좋네.”
“너무 비싸서 문제지.”
“이걸 질러, 말아?”
“에이, 원래 도시 무기점하고 방어구점은 기본 아이템인 거 몰라? 밖에 나가서 사냥 좀 하다 보면 금방 좋은 거 나옴.”
“하긴 그렇지.”
“기본 템 팔면서 바가지 씌우는 건 여기나 제국이나 다를 것 없구만.”
“으음, 나도 사지 말아야지. 괜히 돈 날릴 뻔했네.”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넘어온 유저들의 대부분의 반응이 이랬다.
도시 무기점과 방어구점은 원래 바가지다.
쓸데없이 비싸게 판다.
굳이 안 사도 상관없다.
밖에 나가서 사냥하면 더 좋은 아이템 나올 건데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사나.
이런 이미지 덕분에 무기점과 방어구점은 그야말로 찬바람만 쌩쌩 부는 장소가 되었다.
마왕성으로 처음 넘어오는 유저들의 발길이 계속 닿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돌아섰고.
그렇게 파리만 날리는가 싶던 무기점과 방어구점이 지금처럼 인산인해가 된 것은…….
호기 있게 밖으로 사냥을 나갔던 유저들이 피떡이 되어 돌아오면서부터다.
정확하게는 죽어서 부활지점에 나타나 욕부터 질러 댔다.
“와, 씨발. 미친. 여기 사냥터 진짜 미친 거 아냐?”
“젠장, 이빨도 안 들어가.”
“완전 돌았네. 이렇게나 차이 난다고?”
“하, 마법이 씨알도 안 먹혀.”
“여기서 사냥이 되긴 되는 거야?”
“아놔, 마계 미노타우르스한테 한 방에 죽었잖아.”
“진짜 개쎔. 뭔 수로 그놈을 잡아?”
“그것도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에이, 말은 바로 하자. 한 놈도 못 잡겠던데.”
“지들이 무슨 네임드야? 뭐가 이리 강해?”
“아놔, 체력하고 마력도 계속 깎이고…… 가만히 서 있다가 물약만 잔뜩 쓰고 왔네.”
“마력도 안 모여.”
“그러게, 모이는 거 보다 깎이는 게 더 빠르더만.”
“이래서 스킬이나 써 보겠나.”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가는 족족 죄다 죽거나 귀환을 해서 돌아오고는 곧장 한숨부터 쉬어 댔다.
애초에 상대가 될 리가 있나.
마계에서 사냥은 기존의 유저들이 장비들로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결국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아, 무기점! 새 장비 팔았잖아.”
“그러네. 근데 비싸잖아.”
“으음, 비싸도 그거 있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나?”
“아놔, 고민되네. 사기엔 너무 비싸고. 안 사자니…….”
그러고는 서로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그들의 발은 무기점과 방어구점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들이 곧 깨달을 사실 하나.
재중이 형이 길게 늘어진 줄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도시에서는 물건이 무한하지 않지.”
무기점, 방어구점, 잡화점 등등.
베르테니아 마왕성 뿐만 아니라 기존 제국의 도시들에서도 이건 똑같았다.
일정 시간 동안 한 번에 취급할 수 있는 아이템 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
눈치 빠른 녀석들은 거의 날아가다시피 달려가서 먼저 무기점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원하는 물건을 흥정도 없이 재빠르게 인벤으로 사들였다.
마치 그럴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이거! 저거! 빨리 주세요.”
“전 이거! 계산 먼저!”
“아놔, 내가 먼저 왔다고!”
“새치기하는 새끼 누구야?”
“야! 내가 먼저 산다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점에 올려두었던 아이템들이 순식간에 동나 버렸다.
뒤늦게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들어선 유저들이 무기점과 방어구점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빠르게 뒤에 서 봤지만 이미 매진이 되어 물건이 없는 상태였다.
무기점 간판에 매진이라는 글자가 올라오자 유저들이 대번에 화를 냈다.
뒤늦게 온 유저들도 뭔가 싶어서 궁금한 듯 물어봤지만 아이템을 산 자와 못 산 자는 이미 명확하게 갈려 버렸다.
채팅창에 난리가 난 건 당연했고.
“아! 왜 더 안 팔아?”
“뭐야? 벌써 끝이야?”
“아놔, 이러면 안 되지. 더 가져오라고!”
“뭐야? 여기 왜 줄 서는 건데?”
“좋은 거 팔았어?”
“아이고, 선착순이었나 보네.”
전사 형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귓속말로 내게 물었다.
<방패전사> 너 저거 몇 배 남겼다고 했지?
<주호> 으음, 대충 마계 상인에게서 사 온 가격에 다섯 배쯤 될걸요?
<방패전사> 와, 미친. 가격 너무 한 거 아냐?
<주호> 그래도 잘 사잖아요. 지금 없어서 못 파는데요?
<방패전사> 흠, 확실히 그렇긴 하네. 다섯 배면 돈을 아주 쓸어 담는구만.
이런 현상은 비단 무기점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방어구점 역시 곧 간판을 내리면서 매진이라는 글자가 올라왔고, 유저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아! 방어구 있어야 하는데!”
“진짜 탱커들한테 양보 좀 해라!”
“미쳤나? 뭔 놈의 양보야?”
“아놔, 또 못 샀네.”
“저기 풀 세트 산 놈도 있는데.”
“젠장, 진작 올걸.”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잡화점.
이곳은 그나마 무기점과 방어구점에 비해 늦게 알려지긴 했는데 아이템이 동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일명 사재기.
앞서 들어온 유저들이 미친 듯이 클릭을 해서 아이템을 쓸어가 버렸다.
무기나 방어구는 워낙 비싸기에 그렇게 사재기를 하진 못한 듯싶지만.
잡화템은 인벤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는 살 수 있을 테니.
물론 그 가격도 결코 싼 것이 아니었다.
하급 마력 완화제.
이 아이템은 마계 연합 상인들이 팔고 있던 가격보다 무려 10배나 높은 가겨을 책정해 놓고 팔았는데.
이쁜소녀도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와, 다 팔리는데 5분 걸렸다아.”
그 말대로 매진 글자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이 딱 저랬다.
무려 10배나 비싸게 팔았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에는 NPC들을 통해 판매를 하고 세금을 내가 먹는 식이었는데, 이곳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아무것도 없었던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내가 직접 개입해서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물론 가게에는 NPC들을 고용해서 쓰고 있긴 하지만.
수익 구조 자체가 기존과 완전히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마왕 본인이 나서서 관리를 했다면 좀 더 다른 방향이었겠지만.
정작 마왕 벨라는 지하에 들어가는 타르를 사는 돈까지 내게 위임한 상태가 아니던가.
타르를 구입하는 비용을 이쪽에서 다 떠맡는 대신.
수익 역시도 내가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제국과 다른 점은 굳이 다른 곳과의 세율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가격 상한선이 없다.
비싸고 꼬우면 다른 곳에 가서 사라.
딱 이 정도 표현이 맞으려나?
무기와 방어구는 워낙 기본 가격이 높으니까 5배만.
체력 물약 같은 경우 두 배 정도.
물약이 너무 비싸면 전에 쓰던 물약을 쓸 수 있으니 이건 어쩔 수 없지.
대신 하급 마력 완화제는 10배 가격.
이 모든 아이템들이 싹 팔리자 비어 있던 텅장에 다시 돈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이젠 텅장이 아니군.
전사 형이 혀를 내두르면서 물었다.
“너 이 짧은 시간에 대체 얼마나 번 거야?”
“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많이 번 것 같긴 한데.”
나중에 다 정산을 해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썼던 돈의 다섯 배는 가볍게 넘지 않으려나.
잠시 재중이 형이 주변 상황을 살피더니 내게 말했다.
“당분간 물건 풀지 마.”
“네?”
물 들어왔을 때 좀 더 풀려고 했었는데.
그때 재중이 형이 슬쩍 고개로 한 장소를 가리켰다.
“저 봐. 웃돈 주고도 사가는 판이다.”
그곳엔 아예 무기점과 방어구점 앞에 좌판을 깔고 샀던 물건을 그대로 다시 파는 유저들이 보였다.
가격을 한참이나 높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기 무섭게 아이템들이 좌판에서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온 돈 많은 유저들이 싹 사갔으니까.
“저렇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잖아. 더 올려도 되도록.”
재중이 형 말은 물량을 조금씩 풀면서 가격을 더 높이라는 말이었다.
“제가 유저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봐요. 다섯 배밖에 안 올리다니.”
내 실수를 반성하면서 다음에는 화끈하게 올리겠다고 결심했다.
* * * * *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마계 상인 연합에 가서 물건을 싸게(?) 대량으로 떼어 온다.
중간에 나타나는 약탈선들은 바로 쓸어와 암흑 상인에게 수리를 맡기고.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무기점과 방어구점, 잡화점에 물건을 아주 훌륭한 가격에 올려놓으면 또 날개 돋친 듯 아이템이 팔려나갔다.
중간에 워낙 물량이 딸려 마계 상인들을 닦달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으니 얼마나 장사가 되는지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그렇게 마계 상인 연합에 풀린 물량 중 1/5 이상을 내가 가서 싹 쇼핑해 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나와 암흑 상인의 평판 역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상인들만큼 거래에 민감한 녀석들이 없으니까.
아주 재고를 싹 쓸어가는 수준을 넘어 추가 물량까지 계속 주문하자 이젠 우리가 마계 연합 상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단골이 되어 찾아가면 서비스를 해 주는 녀석들도 종종 생겼고.
그렇게 돈을 쓸어 담는 도중 그 비싼 무역선도 몇 대 더 사들여서 본격적으로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중 몇 대는 사장님에게 넘겨 타르 광산을 유지하는 데 썼다.
이 일들은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하에 있는 고대의 무기이기도 하니까.
사장님이 하르를 제국에서 싹 쓸어와 타르 광산에 우르르 쏟아 놓고, 수확하면 다시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도로 채워 넣는 일은 꽤 많은 돈을 소모했다.
만약 지금처럼 장사를 안 했다면 벌써 파산했을지도.
뭐 지금은 워낙 돈이 넘쳐나서 어지간히 꼬라박아도 될 정도라.
마왕 벨라는 이젠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믿어줄 만한 경지에 올랐다.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마왕성을 돌리고 타르를 잔뜩 가져다줬으니.
다 잘 되어 가네.
“요즘은 레벨업을 안 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에요.”
“덕분에 우리도 장사만 하고 있잖아. 뭐 이 특수가 영원한 건 아니니 지금 바싹 벌어 놔야지.”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나도 마주 보면서 웃었다.
그 말대로 어느 분기점이 오면 장비 템 장사를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저들도 꾸준히 사냥에 나서고 있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시간을 돈으로 사고 있으니 서로 나쁜 건 아니지.”
유저들은 장비와 시간을.
우리는 실탄을 준비할 충분한 돈을.
그렇게 유저들에게 돈을 갈퀴로 쓸어 담던 중.
드디어 암흑 상인에게 원하던 소식이 전해져왔다.
“마계 경매장 티켓! 드디어 구했습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