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3화 마왕성의 집사로 취직했습니다 (9)
원래는 이렇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상황이 변하면 계획도 변하는 거 아니겠어.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아무 위협도 없는 상태라면 그냥 지금처럼 마왕성의 정체를 완전히 숨겨 놓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베르테니아 마왕성 주변에 아르곤이라는 마왕이 있는 이상 이쪽도 충분한 대비를 해야 했다.
최소한.
몰려오는 잡몹(?)들 정도는 유저들이 해결해 줘야겠지.
그 잡몹들이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잡몹 수준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긴 해도.
현재 유저들과 이 마계의 몬스터들과의 수준 차이는 꽤 많이 나는 편이었다.
아마 유저 입장에선 몬스터 하나하나가 네임드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일단은 그걸 최대한 줄여 줘야겠는데.
그게 가능하게 해 줄 녀석이…….
옆에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는 암흑 상인에게 씨익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 조금 빠르게 장사를 시작해야겠어요.”
* * * * *
암흑 상인이 우리를 안내하자 시스템 알람이 뜨면서 이곳이 어디인지 바로 알려 주었다.
《 타르 광산 지대에 입장합니다. 》
“여기입니다.”
약탈선인 케락들을 전부 회수하고 암흑 상인의 비공정으로 이동 후 도착한 곳은 주변이 온통 시커먼 삭막한 광산 지대.
겉보기에는 평범한 광산 지대인데.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암흑 상인에게 물었다.
“몬스터는 따로 출몰하지 않나요?”
“이미 주변의 괴수들은 저희 쪽에서 처리를 했습니다.”
“괜찮네요.”
혹여나 이곳에서 시간을 끌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식으로 흘러가진 않을 모양이었다.
암흑 상인을 따라 타르 광산 중 한 곳의 지하로 내려가자 곧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혹시 모르니까 경계는 풀지 말고.
<주호> 네, 계속 감각으로 주변을 훑고 있어요.
<불멸> 내 쪽에서는 일단 걸리는 게 없긴 한데. 그래도 조심하자.
재중이 형 역시 어느 정도 감지는 되기 때문에 곧 주변을 파악하면서도 겉으로는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암흑 상인은 완전히 아군이라 할 수 없으니까.
현재 호감도가 높아졌다 뿐이지.
판을 엎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 그러길 바랄 수밖에.
다시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보자, 그녀는 주변 상황에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지 마치 소풍 나온 사람 마냥 편하게 걸음을 옮겨 갔다.
흠.
괜찮으려나?
아스티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는 걸 보면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만약 문제가 생길 것 같았으면 먼저 엎어버릴지도 모르고.
마왕급인 아스티아에게는 그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다.
암흑 상인이 그걸 모르고 나대면 뭐…….
그냥 바로 지옥행이지.
“어때요?”
아스티아에게 물어보자 주변을 한 번 슥 훑어보고는 아스티아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여기 꽤 괜찮아. 암흑의 기운도 충만하고.”
“흐음, 그런가요?”
생각보다 더 만족한 것 같은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스티아에게는 이런 장소가 더 좋은 거려나.
그런 내 모습에 아스티아가 의외의 말을 해 주었다.
“중간계는 암흑혈이 없으면 아예 힘을 채우지 못하거든.”
“그래요?”
“응, 마계가 확실히 편해. 특히 이렇게 암흑혈의 기운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말이야.”
확실히 아스티아가 평소보다 더 컨디션이 좋아 보이기도 해.
“음, 혹시 마왕들이 중간계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런 건가요?”
“헤에, 똑똑하네. 응, 맞아. 암흑의 힘이 큰 만큼 더 많은 양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거든. 우리 정도가 되면 힘이 가만히 있어도 줄줄 센다니까?”
“힘을 유지하지 못해 돌아가야 하고요?”
“응, 잠시라면 나와 있을 순 있겠지만……. 너무 오래는 못 있어. 격에 맞는 신체라도 있으면 모를까.”
마왕은 일단 중간계로 못 올라온다는 말이었다.
올라오더라도 잠시 머물 수 있고.
그런데 마왕급인 아스티아는 어떻게?
“아스티아는 괜찮은 건가요? 중간계에서.”
“응, 난 용마족이니까.”
그리고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음.
어떻게 보면 완전 사기캐 아닌가?
마왕급의 힘을 가지고도 제약이 없다니.
아스티아가 만약 우리 편이 아니었다면…….
휴.
상상도 하기 싫은데?
정말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아.
그러다 이전에 내 신체를 노린 교황인 척하던 마왕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내 신체를 노린 거였나.
“전에 신체를 뺐겼다면 지금쯤 완전 헬 게이트가 열렸겠네요.”
내 농담이 섞인 말에 아스티아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그랬으면…… 천계에 있는 애들이 내려왔을걸?”
《 천계의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 관련 퀘스트를 열람할 조건이 열립니다. 》
응?
이런 게 시스템 메시지로 뜬다고?
“천계면…… 혹시 무슨 천사라도 내려오고 그러는 건가요?”
“비슷한데 천사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도둑놈에 사기꾼 새끼들이 칼 들고 쳐들어와.”
“도둑놈에다가 사기꾼…… 인가요.”
“응응, 앞에서는 착한 척 웃으면서 뒤에서는 칼 빼들고 찌르려고 하는 애들 있어.”
완전 적나라한 표현이네.
“사이가 꽤 안 좋은가 봐요.”
“하아, 좋을 리가. 네 전대 영웅만 아니었어도 진짜 싹 쓸어버리는…….”
그때 아스티아가 뭔가를 회상하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계속 쳐다보면 부담되는데?
“음, 전 일단 영웅이 아닙니다만…….”
“알고 있어. 같은 놈이 아니라는 걸.”
그러고는 김이 샜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뭔가 실수한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기에 일단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쭉 암흑 상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환한 공방이 나오면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지하에 도시를 만든 건가.
흡사 예전에 있던 드워프의 지하 도시와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 마계 상인 연합 주둔지에 입장합니다. 》
“상인 연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거래가 가능하죠.”
쭉 살펴보니 사방에 각종 아이템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각 상인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물건을 흥정하고 짐을 챙기는 모습들이 보였다.
종족도…… 꽤 다양하네.
지상과 다르게 마족이라는 게 다른 점이긴 한데.
흡사 지상의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나마 안심했다.
만약 폐쇄적인 분위기였다면 이곳에 적응하는데 꽤 애를 먹었을 테니.
“아, 그리고 이건 제가 드리는 통행증입니다. 자격이 되는 분들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 상인 연합 주둔지 통행증. 』
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명패를 보니 아무나에게 발급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게 오히려 좋지.
어중이떠중이 전부 들락날락하면 값어치가 떨어져.
잠시 주변을 눈으로 훑던 재중이 형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호오, 여기 물건들 괜찮은데?”
“그래요?”
“우리가 쓰는 아이템보다 좋은 것들도 꽤 많아.”
“그럼 당연히 쓸어 담아야죠.”
하지만 거래를 하려고 앞으로 다가가자 곧장 마족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에게는 안 팔아. 어디 인간 나부랭이가.”
“뭐?”
《 마계 연합 상인과의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
《 거래가 불가능합니다. 》
《 마계 상인과의 충돌 시 호감도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
순간 빡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시스테 메시지를 보고는 이내 숨을 골랐다.
여기서 난동이라도 부렸다가는 앞으로 출입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직접 거래가 안 된다면 우리에게는 좋은 패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암흑 상인을 보자 좀 난감한 듯 로브 속에 어둠이 일렁거렸다.
“제가 여기 데려다 드릴 수는 있지만 직접 거래는 불가능합니다.”
“그런가요?”
“흠, 여긴 인간들의 영역이 아니니까요. 전부 적대적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말을 건 상인도 내게 상당히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
당장 공격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이나.
주변에 있는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
암흑 상인이야 마왕 벨라와의 관계 덕분에 거래를 트고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게 힘들어 보였다.
“손에 들고 있는 통행증이 아니었다면 벌써 칼부림이 났겠죠.”
“이건 고맙네요.”
할 수 없다는 듯 암흑 상인에게 부탁했다.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대신 사 주실 수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만. 사실 저도 거래가 불가능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 같은 종류는 더 상위의 거래증이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거래 등급이 아직 낮습니다.”
“아무나 거래해 주진 않는다는 거군요.”
이게 암흑 상인이 그 약탈선들을 뚫어 가며 굳이 다 쓰러져 가는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거래를 하러 다닌 이유였나.
돈이 될 만한 건 다른 녀석들이 꽉 쥐고 있으니 암흑 상인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주호> 형, 암흑 상인을 좀 키워 줘야 할 것 같아요.
<불멸> 어, 우리에게는 이 녀석이 유일한 돌파구니까.
우리가 자신을 키워 줄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듯 암흑 상인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네, 그리고 상위의 거래증이 있으면 마계 상인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죠. 그곳에는 마계에서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정말 최상의 아이템들만 거래가 됩니다.”
《 마계 상인 연합 비밀 경매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
《 등급이 높은 거래증을 습득하면 경매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
경매라…….
<불멸> 이거 참, 돈 냄새가 풀풀 나는데?
<주호> 네, 그 경매를 들어가려면. 어떻게든 수를 써야겠네요.
아무리 봐도 우리 암흑 상인은 그게 불가능해 보이거든.
“하아, 그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죠.”
그리고 시스템으로 오면서 주워 온 약탈선들을 확인했다.
“이거 혹시 지금 수리가 가능한가요?”
“음, 여기 외곽에 도크가 있으니 가능합니다. 지금 해 드릴까요?”
암흑 상인의 대답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도크로 이동해 약탈선 케락을 6대 맡기고 사장님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사장님, 바쁘세요?
<카이저> 아니, 우리 주호가 부르는데 당연히 안 바빠야지. 그래, 마왕성은 어떠냐?
<주호> 음, 여기서 꽤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이 일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카이저> 어떤?
이미 내가 얻은 아이템을 처분하는 일들을 포함해 꽤 많은 일들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일을 맡기는 게 부담되겠지만 사장님이 이런 일은 제일 잘하시니까.
<주호> 비공정을 좀 팔아 주셨으면 해요. 최대한 비싸게요.
그리고 약탈선 케락의 정보를 띄워 주었다.
<카이저> 헉! 이거 왜 이렇게 좋냐?
<주호> 특히 속도가 죽여줘요. 엔진이 두 개 달렸거든요.
<카이저> 흠, 이런 거라면 미친 듯이 가격이 올라갈 거다.
비공정 스펙만 봐도 기존의 스펙을 훨씬 상회하니까.
침을 흘릴 유저들은 넘치고 넘친다.
<주호> 아, 그리고 제 아이템들 빠르게 처분 좀 해 주세요.
<카이저> 무슨 일 있냐?
<주호> 돈 좀 써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카이저> 흠, 알았다. 조금 손해는 보겠지만 네가 원하니까 최대한 구해 보마.
<주호> 현금으로 말고요.
<카이저> 안에서 쓸 일이구나. 알았다.
현금으로 바꿨다가 다시 여기 화폐로 바꾸려면 수수료만 나가니까.
내가 돈을 끌어모으자 옆에서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작정을 했네?”
“네, 할 거 제대로 해야죠.”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최소 백억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그걸 여기 마계에 다 풀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나.
즐거운 마음으로 암흑 상인과 함께 좀 전의 그 마계 상인을 다시 찾아갔다.
“아참, 안 판다니까. 그러네.”
그래, 계속 그래 나와 봐라.
고개를 슬쩍 돌려서 암흑 상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마계 상인이 꺼내 놓은 아이템들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다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말했다.
“여기 끝에서 끝까지. 전부 사 버려요.”
그래.
진짜 현질이 뭔지 제대로 한번 보여 줄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