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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78화 (768/1,404)

#778화 마왕성의 집사로 취직했습니다 (4)

정체불명의 암흑상인.

예상하기에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면서 돈을 세는 상인의 모습을 예상했는데…….

지금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로브 외부로 보이는 체형만 보면 확실히 당장이라도 전투가 가능한 그런 모습이었다.

저 강력한 마왕 벨라를 앞에 두고도 쫄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거기다 앞에 있는 지금도 머리 위에 아무것도 뜨지 않는 것을 보면 특수한 장비를 하고 있거나 혹은 원래부터 보여주지 않는 형태인 것 같았다.

그런데 계속 눈앞에 있는 검은 로브를 들여다보다가 흠칫했다.

속이 비었어?

마치 로브만 공중에 둥실 떠있는 것처럼 로브 안이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녹색의 안광만 로브 사이로 얼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이 녀석.

고스트 같은 형태인 건가?

음.

뭐 모습이야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겉모습은 거래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게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거래만 완벽하게 해내면 그만.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제대로 장사를 해보자는 내 말에 암흑 상인의 녹색 안광이 순간 흔들거렸다.

동요하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갑자기 나온 제안에 이득을 따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암흑 상인이 내 제안을 듣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마왕 벨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왕님, 이 녀석 뭡니까?”

“흥, 말했잖아. 내 마왕성의 집사라고.”

“이렇게 약한 녀석이 말입니까?”

“그래서? 문제 있어?”

“……흠. 아닙니다. 그저 거래만 잘 되면 문제없습니다.”

암흑 상인, 이 녀석.

생각 외로 우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가 약하든 뭐든 돈만 되면 개의치 않는 태도.

소속 따지지 않고 거래만 되면 오케이라는 말은 거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뜻했다.

물론 이곳이 마왕성이 아니고 옆에 마왕 벨라가 없었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겠지만.

지금은 마왕 벨라라는 확신한 뒷배가 있으니까.

녀석도 나를 단순히 길거리에 지나가는 잡몹 정도로 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일단은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가 가능해지자 한 번 뜸을 들이면서 말을 걸었다.

“무엇이든 구해 주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 내 말에 진의 여부를 파악하는지 암흑 상인의 눈빛이 매섭게 날카로워졌다.

“흠. 그렇다면? 그게 제대로 된 장사와 무슨 상관이지?”

호오.

마왕 벨라가 말한 무엇이든 구해다 준다라는 말이 일단은 암흑 상인의 대답만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였다.

보통은 이런 물음을 하면 저렇게 장담하듯이 대답하진 못하니까.

정말 녀석이 모든 물건을 구해 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대답.

그리고 슬쩍 한 마디를 흘려보였다.

“그게 설령 마왕의 무기라고 하더라도?”

녀석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앞으로의 일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물음에 잠시 멈칫한 암흑 상인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하, 이런 질문은 또 처음이군. 마왕의 무기를 구해오라는 건가?”

“못 들었으면 다시 말해 드립니까?”

“아니, 제대로 들었다. 흠. 마왕의 무기라…….”

잠시 고민을 하는 암흑 상인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 녀석.

지금 이 순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주호> 형, 정말 가능한가 본데요?

<불멸> 어, 아니었으면 네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냈겠지. 능력 밖일 테니.

아예 못 가져올 것 같으면 벌쩍 뛰면서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날 속이기 위해서 된다고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뒤에는 마왕 벨라가 있단 말이지.

내가 정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못 봤겠지만 순간적이지만 마왕 벨라를 흘깃 쳐다보는 걸 분명히 봤다.

그것도 마왕 벨라가 들고 있는 저 마왕의 무기를 향해.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암흑 상인이 대답할 답을 확실히 정한 듯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군.”

“그렇습니까?”

아냐.

이 녀석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그럼 그 정도 능력은 된다는 말인데…….

혹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녀석이 안 되는 일이라면 굳이 목숨 내놓고 일을 하진 않을 테니.

딱 되는 데까지만 녀석을 써먹으면 된다.

우리가 충분히 준비가 될 때까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녀석이 혹할 만한 것들을 보여 줘야겠지.

“하하, 마왕의 무기는 너무 갔군요. 말이 안 되는 걸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드렸습니다.”

“흠, 아니다.”

떠보는 건 여기까지면 됐고.

이제는 본론으로.

“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들어오는 타르를 모두 공급하신다고 마왕님께 들었습니다.”

“그렇지.”

다소 의외의 질문이라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암흑 상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질문을 받았다.

확실히 상인은 상인이라는 건가.

“가격을 더 올리고 싶으시고요?”

“요즘 타르를 구해오는 게 쉽지 않아서 말이야. 주변에 있는 타르는 모두 씨가 말라서 멀리까지 가서 구해 와야 하거든. 거리가 멀어지면 당연히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겠나.”

채굴이라…….

방금의 말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일단 타르 역시 하르와 마찬가지로 광산에서 채굴되는 건가?

고개를 돌려 마왕 벨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맞나요?”

방금의 암흑 상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이 마왕성 일대를 스컬 드래곤을 타고 다니며 날아다니는 벨라보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

뭐 마왕이 광산 일을 세세히 모를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날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게 될 테니까.

내 물음에 마왕 벨라가 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정말 씨가 말랐나 본데.

아마도 주변 타르 광산에서 나오는 자원을 이미 다 가져다 쓴 것으로 보였다.

저 마왕성 지하의 고대의 무기에 쓴다고.

일단 협상할 카드 하나는 날아간 거려나.

만약 이 주변에 타르 광산이 남아 있다고 하면.

가격 상승에 동의를 해주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군요. 그럼 타르를 구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이건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에 암흑 상인에게 물어보는 말이었다.

만약 여기서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없다면.

이 녀석은 믿을 수 없어.

발품을 팔아 다른 암흑 상인을 구하더라도.

지금 눈앞에 녀석과는 거래를 하면 안 된다.

내 물음에 암흑 상인이 잠시 내 무구들을 바라보다가 녹색 안광을 빛냈다.

눈빛만 보면 꽤 흥미를 느낀 거려나?

“흠, 보통은 정보료를 받지만. 내 마왕님을 봐서 특별히 말해주지. 마왕님도 알고 있는 사실일 테니.”

계속 말하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암흑 상인이 말을 이어갔다.

“보통은 마계의 광산에서 나는 타르를 캐서 쓰지. 이게 제일 채산성이 좋아. 초기 자본이 많이 들기는 해도 한 번 캐내기 시작하면 효율이 좋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순도 면에서 보면 광산에서 들어오는 녀석들은 그렇게 좋진 않아. 보통은 B급, C급의 낮은 녀석들이 나오니까. 캐는 노력에 비해서 그렇게 돈이 되진 않는다니까? 어렵게 캐 와서 여기에 팔아도 말이야. 거기다 안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좀 더 좋아지기는 해도 너무 깊게 가면 캐내기가 힘들어.”

“그렇군요.”

“그래서 좀 더 다른 방법을 쓰기도 하지. 순도를 올리기 위해서 괴물의 핵을 쓴다던가…….”

괴물의 핵.

아마 저건 네임드를 뜻하는 말일 테지.

이전에 네임드가 왕국이 붕괴될 때 하르 기둥을 오염시켜서 타르로 만드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이쪽은 괴물을 직접 잡아야 하는데 귀찮은 것도 있고, 괴물이 타르를 흡수해 버리고 폭주하는 경우도 있어서 말이야.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지.”

폭주?

오버를 뜻하는 건가.

그럼 감당하기 힘든 녀석이 날뛸 테니 나 같아도 저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잠시 말을 멈춘 암흑 상인이 이내 눈빛을 밝히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중앙계에서 하르를 구해와 타르 광산에서 타르로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흠, 이건 아닐세. 어차피 불가능하니. 중앙계로 나가야 하는데 마계에서는 불가능…….”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품에서 하르가 나오자 깜짝 놀란 듯 암흑 상인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 집중되었다.

“너…… 그거 대체 어떻게 가져온 거야? 아니, 그보다 넌…… 인간이었나?”

큭.

그걸 이제야 눈치챈 거냐?

보통은 마계에 없어야 할 하르가 버젓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제 좀 이야기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캐내는 데 문제가 없다면.

거기다 이미 다 캐놓은 하르라면?

그걸 그냥 냅다 옮겨오기만 할 수 있다면 또 어떨까.

“하르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면요?”

내 선언에 암흑 상인의 녹색 안광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으로 뭔가를 생각하는지 우리가 앞에 있다는 걸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불멸> 크큭, 저것 봐라. 머리 굴린다고 정신없네.

<주호> 네, 미끼는 제대로 던진 것 같아요.

하르야 지상에서 끌어다가 계속 공급해주면 된다.

단가가 맞는 순간까지만.

그 이후에는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정말입니까? 집사님?”

크.

태도 돌변하는 것 보소.

좀 전까지만 해도 반말로 아랫사람 대하듯이 말하더니.

지금은 마치 내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바로 태도를 바꾸어버렸다.

“아아, 물론. 가능합니다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무슨?”

“푼돈이라고요. 타르를 팔아서 나오는 돈은요.”

타르는 이 마왕성의 지하에 있는 고대의 무구를 위한 먹이일 뿐이다.

그럼 당연히 그쪽으로는 어떤 식으로 하든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밑 빠진 독처럼 물이 계속 사라지는데 이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당연히 그보다 많은 물을 퍼붓는 방법을 써야 한다.

더 돈이 되는.

다른 방법으로.

“하르를 그냥 넘겨줄 테니. 타르를 이쪽에 계속 공급해 주시죠.”

“흠…… 그건 좀.”

“대신 제대로 돈이 되는 일을 합시다. 이를테면…….”

그 순간 암흑 상인이 입고 있는 로브를 바라보았다.

“지금 입고 있는 그 로브라던지요. 혹은 들고 있는 무기도 좋겠군요. 아니지, 주변에 몬스터들을 잡아서 나오는 부산물도 좋습니다.”

그냥 뭐가 되든 다 좋다.

이 마계에서 나오는 모든 물품들.

그 전부를 독점적으로 우리가 쥐고 휘두르면 되니까.

“구해만 주신다면, 몇 배는 불려서 다시 돌려드리도록 하죠.”

“그게 가능합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로 나와 마왕 벨라를 계속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믿지 못해도.

마왕 벨라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지금은 그런 마왕의 신용을 걸고 녀석에게 딜을 하고 있는 중이고.

넘어올 거냐.

말 거냐.

이 녀석이 여기서 넘어오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처리된다.

반면에 다른 녀석을 또 찾으려고 하면 일이 복잡해져.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사이에 마력이 부족하기라도 하면 더 문제지.

마왕 벨라 역시도 나와 암흑 상인을 바라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그녀 역시 처음 듣는 얘기니…….

“정말 할 수 있어?”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당황한 듯 하다가 잠시 아스티아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결심이 선 듯 마왕 벨라가 나를 보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봐.”

그리고는 암흑 상인을 보면서 마왕 벨라가 선언했다.

“내가 보증하지.”

“흠, 마왕님께서 원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런 암흑 상인에게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사 줄 녀석들은 넘치고 넘칠 테니.

암흑 상인.

넌 일단 가져오기만 해.

내가 무조건 팔아 준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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