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화 마왕성의 집사로 취직했습니다 (3)
아니나 다를까.
재중이 형에게서 바로 귓속말이 날아왔다.
<불멸> 오, 이거 돈 냄새가 나는데?
큭.
역시 이 형도 척하면 척이라니까.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곧장 고개를 돌려 제단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멸> 제단 위에 있는 저 고대의 무기가 얼마나 자원을 가져다 쓸 진 아무도 모르니까. 일단 돈이 될 만한 일은 해 두는 편이 좋겠지.
재중이 형 말대로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왕 발을 담근 것.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그러려면 당연히 저 마법진을 돌리는 재료인 타르를 원활히 수급해야 할 테고.
현재 타르를 구할 방법은…….
일단 마왕 벨라가 말해준 것처럼 그 암흑 상인이라는 놈에게서 사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에 거래를 한 거지?
그동안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해 왔는지 전혀 모르기에 이건 마왕 벨라에게 따로 물어봐야 했다.
흠.
그나저나 이 마왕성에 돈이 될 만한 게 있기는 한 건가?
얼핏 보면 폐허와도 같아 보이는 이 마왕성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성벽이라도 뜯어서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거기다 지금까지의 적자를 생각해 보면 마왕 벨라에게 남아 있는 재물 같은 것도 크게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보통 마왕이라고 하면 진귀한 아이템들과 보석, 보물들을 창고 가득 쌓아 놓고 사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마왕 벨라는 너무 가난했다.
밑에 가신들이 없는 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려나.
당장 챙겨 줄 돈이 없는데 말이지.
돈이 없더라도 투철한 정신으로 마왕을 섬기는 존재가 있다면 또 모를까.
아무래도 마족들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런 것까지 기대하긴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파고들 틈이 있었다.
다른 평범하고 부유한 마왕이라면 이런 식으로 모험자를 대놓고 쓰진 않을 테니.
재중이 형이 내 생각을 듣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크큭, 만약 그랬다면 아예 마왕성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컷 당했을지도?
<주호>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그 어떤 마왕이 인간인 모험자에게 보자마자 마왕성의 집사와 군단장 자리를 턱 맡긴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행운아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머지않은 시점에서 마계에 진출할 다른 유저들은 피를 토하면서 정착해야 할 테니까.
<불멸> 그리고 타르를 구할 다른 방법도 있지.
<주호> 네, 이건 가능할지 해 봐야겠네요.
사실 타르를 구할 다른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도 왠지 모르겠지만 암흑 상인에게 계속 타르를 사는 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마왕성 꼬라지를 보면…….
재중이 형 역시 마왕성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건 내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불멸> 이런 식으로 녀석에게 타르를 사다가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야. 암흑 상인에게 돈 냄새가 풀풀 나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그래. 물론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사면 편하기야 하겠지. 다만 그런 식으로 수입처를 한 곳에 의존하면 결국 끌려가기만 할 거야. 녀석이 비싼 값을 제시하더라도.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 이 마왕성의 적자의 원인은 그 암흑 상인에게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저 고대의 무기가 많이 처먹은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마왕 벨라에게 들어본 이야기에서는 타르 수입 자체를 전부 암흑 상인에게 의존하는 구조였으니.
녀석이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도 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샀던지.
아니면 정말 덤탱이를 쓴 건지는 암흑 상인과 만나봐야 해.
생각이 정리되자 마왕 벨라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휴, 일단 이 건은 제 쪽에서 처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 마왕 벨라와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꽤 좋아하네.
“흐음, 당장 이 마법진을 유지할 타르도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고개를 돌려 타르가 쌓여 있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재고가 바닥인데?
저 남은 양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마법진이 멈추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내 물음에 대답은 마왕 벨라가 아닌 아스티아에게서 들려왔다.
“흠, 아마 마법진이 폭주하면서…… 여기가 통째로 날아가지 않을까?”
“네?”
“마력 폭주로 날아간다고. 마왕성과 이 일대가 전부. 보아하니 그동안 꽤 많은 마력을 마법진에 구겨 넣은 것 같은데. 잘못하면 나도 위험하겠는걸?”
그 대답에 나와 재중이 형의 고개가 다시 마왕 벨라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마왕 벨라가 우리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참.
잘못 됐으면 다 같이 죽는 거였나?
순간 집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나갈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가 꾹 참고는 다시 물어보았다.
“……마왕님. 혹시 제가 더 알아야 하는 상황이 또 있을까요?”
“아, 아니. 없어!”
저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왠지 있을 것 같다.
“그, 그래도 폭발하진 않을 거야. 내 마력을 쓰면 마법진을 며칠은 유지 가능해.”
당신, 방금 말 더듬었어.
하아.
대책 없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네.
옆에서 재중이 형이 마왕 벨라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어 버렸다.
<불멸> 돈이 없으면 다 같이 사이좋게 폭발하는 시나리오라……. 누가 짜놨는지 몰라도 참. 퀘스트 난이도로 치면 아마 극상이려나?
<주호> 그러게요.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목이 졸리는 기분이네요.
당장 수중에 있는 자금을 풀어서 어느 정도 시간 연장이야 가능하겠다만…….
그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이 적자 구조를 바꿔 놔야 해.
“그럼, 돈이 될만한 것들을 한번 연구해 보죠.”
《 마왕 벨라와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마왕 벨라와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
이거 이러다…….
돈만 가져다주면 호감도 맥스 찍는 거 아냐?
* * * * *
얼마 지니자 않아 마왕 벨라는 침입한 몬스터들을 처리하러 다시 스컬 드래곤을 타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아스티아는 주변 환경을 보러 다닌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우리보다야 강하니 어디 가서 몬스터들에게 당할 리는 없겠고.
그렇게 두 마왕급들이 사라지자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주호> 사장님. 바쁘신가요?
<카이저> 흠, 지금은 괜찮다. 마계 쪽은 어때?
현재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사장님은 우리가 마계로 넘어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주호> 하르 시세가 요즘 어떻게 돼요?
<카이저> 흐음,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내린 편이지. 유저들이 몬스터를 일일이 처리해 주니까 제국 NPC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대지도 넓어졌거든. 그러다보니 NPC들이 찾아낸 새 하르 광산이 많이 늘었고. 당연히 하르 생산량도 이전보다 올라간 상태다.
<주호> 그렇단 말이죠.
<카이저> 우리가 한참 써대던 예전에 비해 반에 반 가격도 채 안 될 거다.
잠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제국 전체의 하르 소모량보다 생산량이 많아서 그런지 가격이 많이 내려가 있었다.
곧장 옆에 있는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이대로 진행할까요?”
“음, 가격이 그 정도까지 떨어졌다면. 해볼 만하겠어. 솔직히 너무 비싸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뻔했는데 말이야.”
“그럼, 해보죠.”
<주호> 사장님, 시세에 크게 변동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시장에 있는 하르 물량을 쓸어 담을 수 있을까요?
<카이저> 음? 그렇게 많이 구매하면 쓸 곳도 없을 건데? 잘못하면 재고만 남아서 돈만 날리는…… 흠, 혹시 마계와 관련된 일인 거냐?
<주호> 네, 하르가 좀 필요해서요.
<카이저> 알았다. 그럼 다른 유저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진행해 보마.
<주호> 필요한 자금은 아이템 판매 대금에서 까시면 됩니다.
<카이저> 알았다.
그렇게 사장님과 연락을 끊고는 곧장 포탈을 타고 신성 제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신성 제국 제넨샤에 관련된 하르 광산을 찾아보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형, 여기 신성 제국 맞긴 해요?”
“그러게 말이다.”
이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신성 제국에 하르 광산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죠?”
나름 내가 교황이기 때문에 신성 제국의 필요한 자원을 어느 정도 가져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계속해서 교황이 바뀌는 것도 모자라 망하기까지 하다 보니 제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성녀 직위로 돌아가게 된 조슈아 성녀를 불러들였다.
“교황님을 뵙습니다.”
“음, 성녀님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네, 아는 한에서는 대답해드릴게요.”
“혹시 신성 제국에 하르 광산이 없는 건가요?”
“아, 그건…….”
조슈아 성녀가 뭔가 말하기 껄끄럽다는 듯 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사실 전대 교황께서 하르 광산을 전부 폐쇄시켰어요.”
“아니, 그걸 왜……?”
아니다.
전대 교황 자체가 마왕의 화신이니까.
하르 광산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문제가 됐을 터.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도 바로 혀를 찼다.
“아놔, 그놈 새끼 도움이 안 되네.”
“네?!”
“아, 성녀님께 말한 건 아닙니다. 그냥 그런 놈이 있어요.”
화들짝 놀란 조슈아 성녀에게 재중이 형이 미소로 답하자 성녀가 곧 표정을 풀었다.
그런 성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폐쇄된 하르 광산을 다시 쓸 수 있을까요?”
“으음, 아마 다시 광산에서 채굴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꽤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어서…….”
“휴, 할 수 없네요.”
가지고는 있는데 쓸 수는 없다 이건가.
“혹시 모르니까 일단 하르 광산을 다시 열어 보라고 하세요.”
“네, 전달하도록 할게요.”
당장 믿을 만한 NPC가 조슈아 성녀밖에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신성 제국의 모든 일을 그녀에게 위임했다.
“여기는 텃나?”
“네, 뭐. 어쩔 수 없죠.”
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꾸준히 하르를 공급받을 뭔가가 필요한데.
하르 광산 정도는 되어야…….
그때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너 그러고 보니 영지 하나 더 받을 수 있지 않았냐?”
그 말에 바로 떠올랐다.
이전에 보상으로 받을 영지가 하나 더 있다는 걸.
그때는 쓸데가 없어 나중에 받는다고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너무 필요하지.
“바로 가 보죠.”
* * * * *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가르시아 제국성.
오랜만에 들리는 제국은 새로운 유저들이 들어와서 가장 먼저 들리는 최초의 제국이라 그런지 꽤나 북적거렸다.
그런 유저들을 지나 제국 중앙성의 마리아 가르시아를 찾아가자 얼마 뒤 바로 알현할 수 있었다.
“주호 공작. 요즘 많이 바쁜가 봅니다.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흠.
다소 날이 선 듯한 날카로운 마리아 가르시아의 눈치에 절로 땀이 났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약속한 거죠?”
그제야 화가 풀린 듯 표정이 밝아진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전에 받기로 한 영지를 지금 받을 수 있을까요?”
“어디가 필요하죠? 당장 준비해줄게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내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다른 까칠한 NPC들만 상대하다가 마리아 가르시아를 보니 마치 화창한 봄 날씨 한가운데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넘겨받은 곳은.
무려 하르 광산이 두 개나 포함되어 있는 한 백작령이었다.
백작가가 망해 지금은 황가에 귀속되어 있는.
이걸로 하르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셈인가.
《 러번 백작령이 주호 공작의 소유가 됩니다. 》
그렇게 하르 광산을 두 개나 접수하고는 다시 재중이 형과 함께 베르테니아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정체 모를 누군가가 마왕 벨라 앞에 서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흐음.
저게 그 암흑 상인인가?
의외로 마왕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제 할 말을 다 하는 걸 보니까 저쪽 역시도 한가닥 하는 녀석이려나?
마왕 벨라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니 역시나 타르 때문에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격 때문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암흑 상인은 더 가격을 올리고 싶은 모양이었고, 마왕 벨라는 짜증을 잔뜩 내는 중이었다.
아마 죽이려고 들면 금방 죽였을지도 모르겠는데.
억지로 성격을 죽이는 모습으로 보였다.
<불멸> 이거 돈 앞에서는 마왕도 힘들구만.
<주호> 하하…… 그럼 우리 마왕님 기 살려 드리러 가 보죠.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내가 불쑥 끼어들어서 암흑 상인을 보며 미소 지었다.
“돈 이야기는 저랑 하시죠?”
“넌 뭐냐?”
“새로 들어온 집사입니다만.”
다소 불쾌한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녀석이 내 뒤에 있는 마왕 벨라의 눈치를 한 번 본 다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어쩌자고?”
“흐음, 보아하니 이곳 처지를 이용해서 돈 좀 만져보려고 하시는데 말이죠.”
내 말에 바로 암흑 상인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어이없음.
화남.
“그게 어쨌다는 거지? 상황에 맞게 돈을 버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뭐 그런 잡다한 감정이 섞인 그런 표정을 보고는 영업용 미소를 가득한 채 웃어 주었다.
이봐.
지금 미래의 최대 고객에게 실례하는 거라니까?
그리고 마치 녀석을 비웃듯이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내 들었다.
“큭, 그런 푼돈 말고. 저와 제대로 된 장사 한번 해 보시는 건 어떤가요, 암흑상인 씨?”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