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5화 마왕성의 집사로 취직했습니다 (1)
아스티아에게 듣기로 마계 역사상 마왕성의 집사에 인간이 채택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흠.
이건 아니지.
마왕성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일조차 없을 정도로 마계라는 세계가 인간들에게는 미지의 장소였다.
아무튼 역사상 최초의 타이틀을 손에 쥔 내가 기뻐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실제 지금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시스템을 열어 보고는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운영 적자 -1200% 』
옆에서 나와 함께 마왕성의 시스템을 보던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뭐냐, 이 황당한 적자는?”
“저도 모르죠…….”
그냥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운영비 부분을 딱 열어 보니까 제일 위에 나온 상태창에 아주, 아주 시뻘건 색으로 적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제일 눈에 띄도록.
확실하게.
그다음에 액수를 바라보고는 이내 절망적인 말투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마왕성 그냥 포기할까요?”
“……나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어지간하면 포기한다는 말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남자가 의문을 택할 정도면 더 할 말이 없지.
그만큼 지금의 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최악의 재정 적자를 달리고 있었다.
당장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만약 이 마왕성의 소유주가 나 였으면 당장에 처분했을 것이다.
그만큼 엉망이야.
이대로 마왕성을 들고 있다가는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체 이 엄청난 적자는 어디서 오는 거야?
생각해 보면 벨라가 혼자 방어를 하는 마왕성에 이 정도의 적자가 난다는 게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내가 모르는 게 있어.
아니, 어차피 마왕 벨라 혼자서 쓰니까 망하는 건 아닌 거려나?
그냥 마왕성 자체가 공중 분해되는 걸로 끝날지도…….
그런데 이놈의 마왕성은 망한다고 해도 떼어먹을 게 남아 있으려나?
상황이 너무 엉망이니 당장 머릿속에는 마왕성이 망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마왕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는데?”
* * * * *
결국 나와 재중이 형이 마왕성으로 넘어와 마왕 벨라를 찾아갔다.
이제 신성 제국 제넨샤 성과 마왕성 베르테니아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넘어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아직 다른 연합 사람들에게는 따로 이야기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거기다 마룡의 둥지에서의 사냥이 제대로 되어 가는 상황인 것 같아서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
괜히 마계로 넘어가자고 해서 단체로 몰살이라도 당하면 이것도 문제지.
“형, 물약 체크 잘해요. 마계에 있는 것만으로 체력이 깎여요.”
마계의 환경이 유저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마왕 벨라와 접촉한 것도 바로 이 물약 소모가 큰 영향을 미쳤다.
《 지저 세계의 암흑 대기에 노출되어 체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됩니다. 》
《 +10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상의의 어둠속성 방어가 지저 세계 어둠에 부분 저항합니다. 》
《 +10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하의의 어둠속성 방어가 지저 세계 어둠에 부분 저항합니다. 》
.
.
나나 재중이 형은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가 있으니까 여기서 버틸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리야.
다른 연합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어차피 말해 봐야 여기서 버틸 수가 없을 테니.
적어도 마계의 암흑 대기에 버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놔야 자유롭게 유저들이 오갈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이 바로 깎이는 것을 확인한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내둘렀다.
“가만히 서 있어도 이 정도라……. 물약이 엄청 들어가겠는데?”
“네, 당장 이것부터가 문제죠.”
잠시 마왕성 주변을 둘러보던 재중이 형이 다시 말했다.
“흐음, 여기 장비 중에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이따가 한번 찾아보죠.”
사실 찾아보려고 해도.
마왕성 자체가 폐허 수준이라.
그 흔한 장비점 하나 없는 곳이 바로 이 마왕성이었다.
물약 파는 곳은 당연하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왕성 중앙에 귀환을 위한 포탈 정도는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것도 아니었으면 정말 때려치웠을지도.
뭔가를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마족의 심장으로 변신했다.
【 마족화! 】
그리고는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화를 하면 체력이 깎이진 않네.”
“그래요?”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곳 마계가 마족이 활동하는 곳이니까.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어요.”
마족화는 일단은 우리 팀 모두가 할 수 있으니.
다만 마족화가 계속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임시방편이지. 마왕 벨라는?”
“아마 거처에 있을 겁니다.”
곧장 마왕성의 중앙에 위치한 마왕 벨라의 거처로 들어섰는데 어디에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음, 또 사냥 갔는가 보네요.”
정확히는 세력권에 들어온 녀석들을 싹 쓸어버리러 간 거겠지만.
마왕 벨라에게는 주변 몬스터 정도는 잔몹 수준에 불과할 테니.
재중이 형의 귀환 포인트를 설정해 놓고 마왕성 전체를 둘러보며 기다리다 보니 중앙 거처 쪽으로 스컬 드래곤 특유의 착지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왔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마왕 벨라 혼자가 아닌 아스티아가 뒤에 타고 있었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같이 갔었던 건가?
아스티아까지 갔으면 뭐…….
마왕급 둘이 쓸고 다니는데 버틸 몬스터가 있기는 할까.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마왕 벨라가 반갑다는 표정을 한가득하고는 내게 말했다.
“집사 왔어?”
“네, 마왕님. 아! 그리고 이쪽은 일을 도와줄 제 동료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가장 강한…….”
내 소개에 잠시 재중이 형을 훑어보던 마왕 벨라가 이내 관심이 식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응? 얘도 너처럼 약하네. 일은 제대로 하겠어?”
“하하…….”
최강의 프로게이머가 어딜 가서 약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나중에 재중이 형의 레벨이 올라가고도 그런 말을 과연 또 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오히려 재중이 형이 허리를 숙이면서 겸양의 말을 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마왕님.”
“패기는 마음에 드네. 좋아.”
재중이 형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를 하는 것 보니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연기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런데 그 뒤에 나온 시스템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 마왕 벨라가 유저 『 불멸 』 에게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군단장 자리를 제안합니다. 》
재중이 형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곧장 그런 제안을 받아들였고.
《 유저 『 불멸 』 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군단장직을 선택했습니다. 》
처음 보는 재중이 형에게 군단장직을 주다니.
이건 나만큼이나 파격적인 인사였다.
곧 이어지는 마왕 벨라의 한 마디에 나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할 녀석들이 없잖아? 그리고 쟤가 제일 강하다면서?”
“흐음, 그렇긴 하죠.”
남들이 봤으면 이런 마왕 벨라의 날림 행정이 어이없겠지만.
당장 마왕성에 일할 사람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군단장이라고는 하나.
휘하에 부릴 수 있는 병력이 없으니 뭐.
사람 역시도 없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적자를 해결해야 해.
그 전에는 군단장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마왕성을 팔아 버려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 마왕 벨라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말할 게 있어?”
“흠흠, 혹시 이 마왕성 무슨 돈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그게 왜 궁금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어보는 마왕 벨라를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왜 궁금하냐니.
당신 마왕성이 쫄딱 망해 가니까 그러지.
아니.
혹시 이 상황을 혹시 모르고 있는 건가?
그럼 그게 더 문제인데.
“이 마왕성이 적자인건 알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마왕 벨라가 마치 모니터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아, 제가 집사잖아요.”
당신이 일하라고 시킨 집사.
마왕성 재정이야 굳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알아보지 않아도 시스템을 열어 보면 바로 나온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마왕 벨라가 내게 다시 물었다.
그 화려하고 강렬했던 폭뢰를 쏘아대던 마왕이라고는 상상도 가지 않을 주저하는 목소리로.
“……혹시 우리 빚이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후우.
잘 참았어.
“네…… 아주 많이요.”
“그렇구나.”
그게 끝?
속으로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마왕 벨라에게 말했다.
“당장 이 마왕성을 팔아도 갚을 수 없을 정도에요.”
“……정말?”
이제 상황의 심각성을 안 걸까.
안색이 확 죽어 버린 마왕 벨라가 도움을 청하듯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스티아 역시 땀을 흘리며 마왕 벨라의 시선을 피했다.
흐음.
저 아스티아가 당황하고 있잖아?
“왜, 왜 그래? 나 돈 없어.”
몇 백 년 동안 봉인당해 있었던 아스티아에게 돈이 있을 리가 있나.
미리 숨겨 둔 자금이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그런 건 없다고 봐야 했다.
“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돈이 나간 겁니까?”
솔직히 이 마왕성에서 돈이 나갈 구석이 있나?
애초에 마왕성 자체가 멈춘 것과 마찬가진데.
굳이 생각해 보자면 저 거대한 스컬 드래곤의 유지비 정도.
그런데 스컬 드래곤이 뭘 먹는 것 같지는 않고 말이지.
아니면 이 마왕이 사치벽이 있다던가 해야 하는데 또 그건 아니었다.
입고 있는 갑옷과 아티팩트로 보이는 장신구들을 제외하면 그렇게 치장하는 스타일도 아니니까.
돈 나갈 구석이 없는 곳에서 돈은 줄줄 새어 나간다라…….
“으음, 그건 마왕성 지하에 가보면 알아.”
지하?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거려나?
그대로 마왕 벨라의 뒤를 따라서 이곳 마왕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자 점점 몸이 압박을 받는 기분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경고! 강력한 암흑의 기운에 체력과 마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자리를 이탈하세요. 》
경고까지 뜬다고?
이제껏 시스템 메시지에서 경고가 뜨는 건 처음 봤는데.
어지간한 네임드가 나와도 한 번도 뜬 적이 없던 경고까지 뜨자 바로 멈췄다.
그리고 일단 마족으로 변했다.
재중이 형 역시도 마찬가지.
【 마족화! 】
그렇게 마족으로 변하자 겨우 떨어지던 체력이 멈춰들었다.
“음? 변할 수 있어?”
“잠시 동안이지만요.”
《 마족화가 암흑의 짙은 어둠에 부분 저항합니다. 》
《 체력과 마력의 감소 폭이 줄어듭니다. 》
어?
부분 저항이라고?
순간 당황한 눈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호> 형, 이거……!
<불멸> 알아. 뭔가 생각 이상의 것이 밑에 있어.
분명히 밖에서는 마족화로도 충분히 저항을 했는데, 여기 이 장소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말은…….
마족도 저항하지 못할 뭔가가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일단 물약으로 버티면서 마왕 벨라를 따라 내려가자 곧 웅장한 공동이 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드러난 거대한 지하 제단에는 뜻밖의 물건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제단의 검붉은 마법진들 위로 떠 있는 하나의 물건.
칠흑으로 물들어 길게 뻗어 있는 날카로운 무기를 보자마자 바로 시스템부터 확인했다.
『 ??? 』
뭐지?
아예 정보조차 나오지 않아?
“저건……?”
내 말에 마왕 벨라가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마신의 무기야.”
“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오직 이 마왕성에서만 제조할 수 있는 무기.”
마신이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