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화 지저 세계 (10)
물약, 장비 수리, 귀환지.
마계로 넘어온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이었고.
이 마왕성만 있으면 당장 급한 불은 거의 다 끌 수 있게 될 테니까.
하지만 단순하게 이것만을 바라보고 이렇게 모험을 건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포탈 연결 시스템.
베르테니아 마왕성과 신성 제국 제넨샤 성을 연결해 줄 이 시스템이 내가 가장 원하는 포인트였다.
사실 이게 존재할지 안 할지는 마왕성에 직접 들어와 봐야 아는 일이라…….
거기다 마왕 벨라가 주인으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그래서 아스티아만 믿었다.
아스티아의 인맥이 제대로 먹히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되었다.
무려 신성 제국 교황이 마왕성의 집사가 되는 초유의 사태.
사실 이렇게까지 잘 풀릴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은 그저 아스티아의 입김으로 마왕성의 시스템을 조금 이용하게 되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마왕 벨라는 그 이상을 보여 주었다.
아예 마왕성의 시스템 전부를 통째로 던져 주는, 내 기대 이상의 행동을 보여 줘 나를 놀라게 했다.
옆에서는 아스티아가 날 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요?”
내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스티아가 전에 배운 시스템을 이용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아스티아> 교황이 마왕성에서 집사를 한다니까 재밌네.
<주호> 하하…… 저기 마왕 벨라는 몰랐으면 합니다만…….
<아스티아>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이젠 귓속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어떻게 이렇게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덕분에 마왕 벨라가 우리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으니.
흐음.
이건 꽤 좋은데?
만약 마왕 벨라가 내가 교황이라는 걸 알면 어떻게 나오려나.
최소한 죽음?
아니다.
이건 아스티아가 어느 정도는 막아 주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튀어야지.
마왕급은 솔직히 아직 무리니.
그것만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은 내게 꽤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두 성의 포탈 시스템 연결.
이전에는 제국 성은 먹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신성 제국을 차지함으로써 일단은 기억만 해 둔 상태였다.
내가 제국 성을 두 개나 차지하게 될 일은 없을 테니.
뭐 이건 가르시아 제국 황제인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말을 하면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시스템을 떠올리게 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아스티아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마왕성으로 달려오면서 그냥 던지듯 물어보았던 질문 하나.
혹시 마계로 바로 넘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에 대해 무심결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마계의 사냥 필드가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 것 자체가 곧 이곳을 오픈할 생각이 운영진들에게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일반적인 방법으로 넘어올 방법이 있을 터.
일단 내가 넘어온 방법은 너무 특수한 상황이라 표본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교황이어야지만 아이템을 이용해서 넘어오는 건 너무 편의를 봐주는 셈이니까.
물론 교황 자리를 차지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들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가 밸런스가 맞긴 한데…….
그렇다고 이 정도 필드를 혼자 쓰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건 솔직히 좀 낭비지.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이어져 물어본 물음에 아스티아는 의외로 꽤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다.
마계와 우리가 있던 중간계로 넘어가는 방법은 의외로 많다고 했던가.
대표적으로 『결계의 소용돌이』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냥 휘말리듯이 결계가 무너져 있는 곳을 지나오면 된다고.
흐음.
이건 너무 도박에 가까우려나.
지금까지 이것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업데이트 이전에는 없었을지도.
그럼 이제 슬슬 이것을 통해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물론 난 저걸 통해서 넘어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니까.
어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결계의 소용돌이를 통해서 넘어오려고 그것만 찾아다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뭐 마계로 넘어오는 게 급한 사람들이야 계속 찾아다닐지도 모르겠다만.
그다음 방법은 바로 마계로 통하는 던전을 통과하는 것.
사실 이건 꽤 의미가 있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결국에는 확실히 통과할 방법을 찾는 셈이다.
그리고 추측되는 장소가 몇 곳 있기도 했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서 오픈한 다수의 던전들.
특히 악마의 탑과 마룡의 둥지 같은 상위의 사냥터.
아스티아가 말한 대로라면.
이곳의 깊은 곳을 통과하면 마계로 넘어오는 포탈이나 결계가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럼 이 사실을 안 순간부터 진짜 박 터지겠지.
혹은 저 던전을 통제하려는 길드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이건 거의 십중팔구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계속 그래왔으니까.
연합을 맺든 뭘 하든.
이득이 나오는 곳은 그냥 두지 않을 테니.
그리고 또 다른 방법 중 하나.
지금처럼 마왕성과 내가 가진 성의 포탈을 연결하는 방법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실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지금 이 방법은 신성 제국의 교황과 마왕성의 마왕이 손을 잡지 않으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그림이었다.
둘이 얼굴만 봐도 치고받아도 부족할 판에 손을 잡는다?
불가능이지.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가 완전 달랐다.
교황과 마왕성 집사 겸직인 나로 인해.
《 신성 제국 제넨샤 성과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포탈을 연결하시겠습니까? 》
바로 YES에 손을 올리자 마왕성의 포탈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 반대편의 신성 제국 포탈 역시도 울리고 있지 않을까.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 신성 제국 제넨샤 성과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포탈을 연결되었습니다. 》
《 두 개의 포탈을 통해 중간계와 마계를 오갈 수 있게 변경됩니다. 》
큭.
진짜 됐네.
나한테 마왕성의 소유를 제외한 나머지 관리 권한을 넘겨준 마왕 벨라 역시 이 상황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이 마왕은 이곳과 다른 곳의 포탈을 한 곳도 연결해 두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혼자서 이곳 마왕성을 지키고 있는 것만 봐도.
꽤 폐쇄적으로 운영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포탈의 연결 목록에는 딱 하나.
신성 제국 제넨샤 성만이 새로 갱신되어 목록에 보여졌다.
흠.
생각해 보니 마왕 벨라가 신성 제국에 가도 괜찮은 걸까?
아니지.
괜찮을지도.
어차피 교황인 척하던 그놈도 실제로는 마왕이었는데 잘만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아마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반대로 신성 제국의 NPC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문제는…….
이건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
아무리 내가 교황이라고는 하지만.
신성 제국의 NPC들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훨씬 높을 테니까.
마왕 벨라를 보고는 토벌한다고 깝치는 녀석들이 나올지도 모르고.
완전 미친 짓이지만.
꼭 한두 놈은 나올 것이다.
“그럼 전 약속을 지키러 잠시 넘어갔다 올게요. 아스티아 여기 잠시 있어줄 수 있어요?”
“흐음? 그랭.”
혹시나 몰라 아스티아에게 부탁을 했는데 의외로 흔쾌하게 들어주었다.
마왕 벨라만 그냥 두었다가 그사이 마음이 바뀌어서 포탈을 부셔버리기라도 하면 난감하지.
곧장 포탈에 발을 올렸다.
《 신성 제국 제넨샤 성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
잘 되네.
물론 어마어마할 정도의 요금이 달라붙긴 했다.
한 번 오가는 데 부담이 될 정도의 꽤 큰 금액.
마왕성 집사 시스템을 열어서 확인해 봤더니 이 금액 역시 조정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호오.
이걸로 장사를 해도 되겠는데?
터무니없이 가격을 올려두어도 갈 놈은 무조건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야무진 생각을 하면서 포탈을 넘어 신성 제국으로 넘어갔다.
《 신성 제국 제넨샤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곳은 제넨샤 성의 지하에 있는 전용 포탈이었다.
일반 포탈과는 달리 이 포탈은 딱 다른 성과 연결만 되는 용도였고.
아직은 유저들이 잘 모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적한 포탈 주변을 둘러보면서 확실히 넘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미소 지었다.
“나쁘지 않네.”
그렇게 확인이 끝나자 일단 우리 팀부터 불렀다.
<주호> 형, 지금 어디 있어요?
<불멸> 응? 아, 마룡의 둥지에. 이 녀석들 생각보다 강하네. 다른 녀석들이 오면 애먹겠어.
<주호> 사람들 많아요?
<불멸> 흐음. 상위 길드 애들 조금? 어차피 칼도 안 들어가서 아래애들은 사냥도 못할걸?
흐음.
그렇단 말이지.
역시 내가 없다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니까 곧장 마룡의 둥지로 이동해서 사냥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재중이 형 역시 저 마룡의 둥지가 마계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 역시 아스티아에게 들어서 아는 거라 알 길이 없긴 하지.
이건 어지간한 수준의 NPC들에게는 얻을 수가 없는 정보일 테니.
<불멸> 아 그리고 이놈들 테이밍도 되겠는데? 지금 견적 보고 있는 중이야.
<주호> 괜찮네요.
안 그래도 주력 탈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테이밍이 된다는 건 꽤 좋은 소식이었다.
물론 더 좋은 소식은 이제부터고.
잠시 재중이 형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혼자 웃음 지었다.
이걸 들으면 과연 뭐라고 하려나?
<주호> 형, 저 마왕성 먹었어요.
<불멸> ……뭐?
<주호> 마왕성요.
<불멸>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요즘 귓속말 감이 안 좋나?
잠시 기다리자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하, 너 거기 넘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마왕성을 먹어? 마왕성이 어디 막 널려있는 건 아니겠지? 성이 비었다던가.
<주호> 하하, 아뇨. 마왕도 멀쩡히 있어요. 아주 무시무시한 마왕이요.
<불멸> 그런데 어떻게 마왕성을 먹어? 혹시 아스티아가 잡아준 거냐?
<주호> 아뇨, 아스티아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했는데요.
전투가 한 번 있긴 했지만.
슬쩍 넘어갔으니 뭐.
그리고 재중이 형이 놀랄만한 말을 이어서 해버렸다.
<주호> 사실 저 마왕성에 집사로 취직했거든요.
* * * * *
얼마 뒤.
일제히 우리 팀이 제넨샤 지하 포탈이 있는 방으로 뛰쳐 들어왔다.
재중이 형을 시작으로 전사 형과 모두가 함께.
흐음.
얼마나 놀랐으면 저렇게 뛰어오는 건지.
전사 형이 들어오자마자 놀란 눈으로 물었다.
“마왕성에 집사가 됐어? 그게 말이 돼? 너 교황이잖아!”
이쁜소녀는 반대로 감탄을 했다.
“와! 마왕성 집사라니! 멋지다아! 오빠! 마왕은 어떻게 생겼어요?! 막 무섭게 생겼으려나? 아님 막 미소년?!”
흐음.
사실 교황이 더 좋은 건데…….
이쁜소녀는 뭔가 이상한 상상을 하는 듯 이미 상상에 빠져버린 모습이었다.
확실히 마왕이 무섭게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미모가 아름답다고 하면 그쪽이겠지.
“으음. 생각보다 꽤 미소녀일지도…….”
그런데 무심결에 나온 말에 이번에는 챠밍의 눈썹이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다.
“미소녀어……?!”
“아, 아니. 그냥 무섭지는 않다고.”
“흐으음!!”
챠밍이 양볼에 잔뜩 바람이 들어간 듯한 뚱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자 나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났다.
하하…….
이것 참.
나름 저 모습도 귀엽고 좋은데?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 나르샤 누나와 막내별도 뭔가를 막 물어보기 시작하자 포탈이 어느 사이에 시끌벅적한 장소로 변해 버렸다.
저쪽에 넘어갔다가 돌아와서 그런가.
이런 북적함에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마왕에 대해 떠들다가 다들 어느 정도 궁금증이 가라앉자 기다리던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음. 아무래도 모두의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한껏 미소 지으며 말을 꺼냈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마계에서 제일가는 성으로 부흥시킬 겁니다! 다른 마왕을 다 때려잡아서.”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