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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65화 (755/1,404)

#765화 지저 세계 (1)

데스 버스트의 폭발력에 터진 교황은 다른 유저나 몬스터와는 달리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지지는 않았다.

곧 녀석의 발아래 처음 보는 검은 마법진이 생기더니 마치 물을 흡수하듯 신체를 전부 빨아들이고는 곧 흐릿해진 마법진과 함께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설마 이렇게 빨리 죽는다고?

녀석의 몸 안에서 터트린 데스 버스트가 어느 정도 타격을 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타격만 준다면 곧장 빠져나와 아스티아가 녀석을 요리할 테니 나 역시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걸었고.

하지만 그 한 방에 녀석이 죽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잠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사라져 가는 검은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마왕이라면서?

이 녀석, 정말 마왕이 맞긴 해?

의심스럽긴 한데 이미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와서 그런 의심은 별 의미가 없었다.

《 주호 님이 최초로 마왕을 살해했습니다! 》

《 마왕이 지하 세계로 강제 역소환됩니다! 》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

시스템 메시지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

거기다 레벨 제한이 풀어지면서 레벨이 바로 상승하게 되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었는데 레벨까지 이렇게 오르나?

솔직히 아스티아가 전투의 대부분을 맡았기에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상대한 것만으로 이 정도라…….

그럼 대체 녀석의 레벨이 어느 정도였다는 걸까.

레벨 차가 어지간히 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 번에 레벨이 오를 리는 없었다.

내 레벨도 150대.

그럼 최소 백 단위는 차이가 났을지도 모르겠어.

흐음.

아스티아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제대로 녀석과 붙었다면…….

결코 이런 식으로 쉽게 끝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최소 이쪽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겠지.

그런데 이 시스템 메시지는 단순히 나에게만 보여지고 끝나지 않았다.

마치 인챈트를 성공하듯 머리 위에 공지처럼 떠서 현란하게 그 내용을 서버의 모든 이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하.

미치겠네.

설마 이게 올라올 줄은…….

서버 전체에 내가 마왕을 죽였다는 소식이 나가자마자 바로 귓속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불멸> 오, 잡았냐?

<챠밍> 마왕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다행이에요.

<이쁜소녀> 역시 주호 오빠!

<나르샤> 이야, 역시 우리 주호네. 마왕도 때려잡고.

<막내별> 혼자 마왕을 잡다니. 그럼 이제 대마왕인가요?

<방패전사> 오우, 대마왕!! 아니지. 원래 꼼수 대마왕이었잖아.

그리고 우리 팀에게서만 연락이 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화련> 마왕을 정말 잡았어? 아니다. 내가 보러 갈게. 딴 놈들한테 팔기만 해봐!

화련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

아이템 욕심이 엄청나다는 것.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보러 온단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매번 물을 먹고도 저렇게 적극적인 걸 보면 아이템 욕심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주호> 팔 만한 게 없는데요?

<화련> 뭐? 무려 마왕이잖아. 좋은 템 안 떨어졌어? 무기는? 나 총알 많은 거 잘 알지?

<주호> 으음, 그게 좀…….

화련 뿐만 아니라 다른 길마들과 유저들에게서도 계속 연락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마족도 제대로 구경 못 한 판에 무려 마왕이었다.

관심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상황.

채팅창도 보니 엄청난 숫자의 글들이 화면을 채워지기 무섭게 다른 글이 밀어 버리며 계속해서 마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아.

난리도 아니네.

그렇게 전에 없는 엄청난 관심을 받다가 결국 귓속말을 차단해 버렸다.

너무 많이 와서 일일이 대답해주기도 힘든 것도 있었고.

하아.

그리고 정말 내 힘으로만 잡았으면 꽤 당당하게 말했겠지만.

사실 혼자 잡은 게 아니라서 말이지.

아스티아가 거의 다 패놓은 걸 내 쪽에서는 숟가락만 냅다 올려놓았다.

그런데 의외로 아스티아는 별다른 제스처는 보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면서 웃음만 지었다.

내가 막타를 친 걸 크게 개의치 않는 건가?

으음.

생각해 보면 유저가 아니라서 이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드랍되는 아이템이라던가.

경험치라던가.

아스티아에겐 생각보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서서 날 바라보고 있던 아스티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아스티아는 도움이 되는 존재다.

그동안은 어디서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딱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내 옆에 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스티아 역시 딱히 그걸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뭐, 때가 되면 알아서 말해 주려나?

일단 거기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고, 혹시나 해서 교황이 빨려 들어간 마법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뭔가가 하나 툭 하니 드랍되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중이었다.

흐음.

의외네.

솔직히 역소환되었다는 말에 녀석이 완전히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수한 공간에서 특수한 상황.

이걸 일종의 이벤트라 생각하기도 했고.

당연히 드랍템도 떨어지지 않겠거니 했는데.

뭐지?

바로 손을 뻗어 아이템에 손을 가져다 대자 정말 의외의 정보가 들어왔다.

이건…….

처음 보는 형식의 아이템인데?

『 마왕의 영혼 파편 』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템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설명도 없잖아?

어지간한 아이템들은 대략적인 설명이 나와 있는 편이었다.

특수한 아이템들 몇 가지는 제외하고는.

이거 참.

난감하네.

그리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바라봤다.

“이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내가 교황을 죽이고 나온 마왕의 영혼 파편을 들어 올리자 순간 아스티아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헤에, 그게 있었어?”

아스티아가 꽤 놀란 눈빛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자 더욱 궁금증이 더해졌다.

저렇게 놀랄 정도면 이것의 값어치가 결코 적지는 않을 터.

“아는 건가요?”

“응, 모를 수가 없지.”

그 말을 끝으로 아스티아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다물자 결국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원하는 게 있죠?”

“응, 눈치 빠르네?”

시간을 들여 스스로 알아봐도 되겠지만 앞에 확실한 정답이 있는데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아스티아가 원하는 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어지간한 건 다 들어주면 되는…….

하지만 그 뒤에 아스티아에게서 나온 말을 듣고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 * * * *

얼마 뒤 아스티아는 왔던 그대로의 방식으로 공간을 타고 사라졌다.

“이따가 봐.”

마치 옆집에 놀러 왔다 간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아마 이곳에서의 위협이 더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사라졌겠지.

솔직히 마왕급의 괴물이 나오지만 않는다면야.

어지간해서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교황이었던 마왕 녀석이 왜 그렇게 이곳의 결계를 없애려고 했던 것인지 제단을 살펴본 뒤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명 신의 손.

너무 조슈아 성녀가 말했던 것과 똑같아서 어이가 없는 물품이 이곳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름이 신의 손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육각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녹색을 띤 보석이었다.

딱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론 그 속은 일반 보석처럼 평범하진 않았다.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건가…….

이 신의 손은 일종의 포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예전에 비슷한 아이템을 찾으라면.

미치광이 리치의 전이문 정도가 될까?

같다고 하면 같을 수야 있겠지만 이 신의 손은 스케일이 완전히 달랐다.

무려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그것도 천족이 있는 천계와 마족이 있는 마계까지 오갈 수 있는 미친 아이템이었다.

『 갓 핸드 / 유일 아이템.

- 신의 부름을 받아 천계와 마계를 오갈 수 있다. 』

내용은 심플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직 공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천계와 마계.

그곳들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정말 갈 수 있기는 한 건가?

당장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생각으로만 멈춰 두었다.

잘못해서 넘어갔다가 못 돌아오게 되면?

그때는 상황이 굉장히 복잡해질 테니.

일단 의논을 해 봐야겠어.

교황이 만들어 둔 결계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귀환도 가능해져 지상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생각지도 못한 옵션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연락을 받은 우리 팀이 길드 건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하나같이 전부 표정이 지쳐 보였다.

으음?

밖에서 전투라도 벌인 건가?

“다들 왜 그렇게…….”

내 물음에 전사 형이 한숨을 푹 쉬더니 대답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아주 개떼처럼 몰려와서 너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네?”

“방송사 애들부터 해서 길마들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말이야. 특종 하나 잡겠다고 어휴. 얼마나 들들 볶았는데.”

“으음, 고생하셨군요.”

“아냐, 무려 마왕이잖아.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대체 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전사 형의 물음에 챠밍과 이쁜소녀를 포함한 우리 팀 모두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래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알려주자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음, 아무튼 지금까지 있던 일들은 이렇죠. 형, 어떻게 생각해요?”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천계와 마계란 말이지……. 갑자기 스케일이 확 커졌는데? 이쪽은 아직 기어 나온 마족 한 마리도 벅찬데 말이야.”

그런 다음 조금 의외의 말을 꺼내놓았다.

“네가 시험을 너무 쉽게 뚫어 버린 것도 있겠지.”

“음, 솔직히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데…….”

“바로 그게 문제야.”

뜻밖의 말에 우리 팀 모두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아마 원래라면 한참 뒤에야 누군가가 들어갔을 텐데 말이야. 이 녀석이 너무 빨리 들어가 버렸잖아. 거기다 아스티아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이 녀석이 들어가는 순간 마왕은 죽은 목숨이지.”

“그게 문제인가요?”

“어, 만약 네가 아니라 다른 유저가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 꼭 유저가 아니라 또 다른 NPC였다면?”

“……마왕이 NPC의 몸을 차지했을 수도 있겠네요. 이를 테면 올렌드 추기경의 몸이라던가.”

“순서대로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스티아가 나와서 마왕을 두들겨 패는 일도 없었을 거고.”

현 상태에서 교황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아스티아가 그곳으로 가는 바람에 퀘스트가 완전히 꼬여 버린 케이스였다.

만약 이것만 아니었다면…….

“마왕이 신체를 가지고 여기서 날뛰거나 천계로 쳐들어갈 수도 있었겠네요.”

“아니면 마계로 가서 왕 노릇을 했겠지. 아무튼 결계가 사라졌으니까. 나가는 건 문제가 없었을 거다.”

“왠지 흘러가야 할 역사 하나를 통째로 뜯어고친 기분이네요.”

“그래, 지금쯤 이걸 수정한다고 머리 빠개지고 있을 거다. 누군가는.”

정상적인 진행에서 한참을 벗어나 버린 상황이라…….

그 말과 함께 재중이 형이 웃어 버리자 우리 팀 역시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이거 참.

원치 않게 또 고생시키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는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재중이 형을 바라보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아무래도 마계로 가야 할 것 같아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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