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화 신의 손 (10)
다른 변수가 있을까 싶어 잠시 기다려봤는데 뒤쪽에서 벽이 밀려들어 온다던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이 아래로 꺼진다던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흐음.
딱히 시간제한은 없는 건가?
적어도 시간을 촉박하게 두어서 실수를 하게 유도하는 것 같지는 않고…….
함정의 형태 자체는 이미 드워프들의 함정으로 봐왔던 것이라 그런지 크게 감흥은 없었다.
단순히 체력 평가를 하자는 건 아닐 텐데.
솔직히 지금의 스펙으로 빠르게 움직이면 이런 돌다리 건너는 일은 꽤 쉬운 일에 속했다.
뭐 일단은 장단에 맞춰 줘볼까?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조용한데 무슨 일 있어?
<주호> 아, 함정이 나왔는데 큰 문제는 아니에요. 예전에 나온 드워프 함정하고 비슷하네요.
<불멸> 그래도 뭐가 있을 줄 몰라. 조심하고.
<주호> 네, 일단 돌파하고 말해드릴게요.
연락을 끊은 뒤 바로 복사된 가이아 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장 가이아 쉴드를 저 멀리 보이는 반대편을 향해 집어던졌다.
쐐액!
카앙!!
아니나 다를까.
가이아 쉴드가 날아가던 중 뭔가의 발사체에 맞고는 그대로 바닥의 용암으로 떨어져 내려 깊게 가라앉아 버렸다.
생각보다 강한데?
이쪽에서 던지던 힘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기관은 꽤 강한 편에 속했다.
쉽게는 못 지나간다 이거지?
그렇게 몇 번을 더 던져 본 결과.
매번 발동하는 기관의 위치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것도 아이템 노가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아마도 올렌드는 이 부분에서 막힌 모양이었다.
함정을 죄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판에 여길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없지.
파악이 끝나자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 바로 용암 가운데 있는 디딤돌들을 밟으면서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 대쉬! 】
그리고 빠르게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미리 파악해 두었던 장소로 가이아 쉴드를 하나씩 집어던졌다.
정확히 기관이 시작되는 그 장소로.
쐐액!
까아아앙!!
그러자 기관에서 발사체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이미 기관 앞까지 날아간 가이아 쉴드에 막혀서 서로 튕겨나가는 장면이 계속 되었다.
동시에 가이아 쉴드의 표면에 길게 균열이 생기며 그대로 깨져나갔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쓰고 버리는 패라.
마력으로 만들어진 가이아 쉴드가 그렇게 깨져 나가는 동안 계속 달려나가며 가이아 쉴드를 연속으로 집어 던지자 내 근처로 날아오는 발사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날아오기도 전에 기관의 입구에서부터 막혀 버리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반대편까지 도착해 편안하게 발을 디뎠다.
후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
추가로 다른 함정이 있을까 했지만 딱히 그런 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 함정은 아마도 함정을 회피하는 민첩이나 용암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실험하고자 꺼낸 것 같은데 내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함정이었다.
함정 자체가 시작부터 이미 다 파훼되어 있는데.
입구 반대편에 도착하자 바로 끝에 있는 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그그긍.
그리고 한쪽이 열리며 마치 문이라도 된 것처럼 옆으로 밀려나갔다.
들어오라 이건가?
잠시 기다렸다가 감각을 퍼트려 확인했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자 숨을 들이쉬고는 그대로 문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가 지나가자마자 바로 문이 닫히면서 또 다른 장소가 나를 맞이했다.
흐음.
여긴 또 다르네.
이전의 함정이 드워프의 함정에서 봤던 딱 그런 함정이라면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한 가운데 검은 기운이 뭉실뭉실 뭉쳐져 있는 통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뭐지?
마치 검은 안개로 가득한 길을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풍경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추었다.
이건 흡사 암흑 지대와 비슷한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점에서 완전히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주호> 형, 여기 이상한 함정이 있어요.
<불멸> 어떤 함정인데?
<주호> 보기에는 암흑 지대와 비슷한데요? 검은 안개가 잔뜩 껴 있어서 반대편이 전혀 안 보이네요. 아마도 여기도 돌파해야 하는 것 같은데.
<불멸> 흐음, 인지도를 보는 테스트인가? 너한테는 크게 의미가 없잖아?
<주호> 뭐 그렇긴 해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런 어둠 속은 내게 아무런 위협을 주지 못 했다.
곧장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리자 곧 어둠 속을 환하게 보는 것처럼 사물의 구조들이 감각 속에서 재구성되어 내게로 입력되어졌다.
일단 일반적인 통로인데…….
호오.
이것들 봐라?
중간에 낭떠러지도 만들어 놨네?
저긴 쇠창살에…….
거대한 돌이 떨어지는 함정도 느껴지고.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만약 이걸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걸어 들어가면 쥐포가 되거나 혹은 저 정체모를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오직 더듬으면서 지나갈 수 있는 외길 하나만이 있는, 아주 교묘한 코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도 지그재그로 계속 꺾어 놔서.
여차하면 옆으로 떨어지도록.
이건 아마 어둠을 볼 수 있는 특정 아이템이나 스킬이 없으면 절대 지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 둔 모양이었다.
뭐 이런 건 예전에 다 졸업했으니.
특별히 다른 함정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발을 내디디며 유유자적하게 검은 안개 속을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도 완전히 반대편까지 통과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런 함정을 만들어 놓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쉬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또 다른 문이 열리자 이젠 긴장감도 없어 그냥 그대로 걸어 들어갔다.
이 정도 난이도라면야…….
그런데 이번 방은 조금 달랐다.
흐음?
마법인가?
방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그러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마법진만 보고 마법을 판단하는 건 어려우니까.
그것도 처음 보는 마법진인 경우에야…….
방을 지나가려고 살펴봐도 어떻게든 이 마법진 위를 지나야 통과할 수 있었다.
할 수 없나?
잘 모를 때는 이게 최고지.
곧장 가이아 쉴드를 마법진 위에 집어던지자 바닥의 마법진에서 검붉은 기운이 올라와 가이아 쉴드와 계속 부딪히기 시작했다.
으음…….
저건 암흑력?
마치 대항이라도 하듯 유독 가이아 쉴드에서 밝고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저 검붉은 마법진과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아 쉴드가 밝은 빛을 잃어버리고는 그대로 검붉은 기운에 삼켜져 형체를 잃고는 그대로 구겨져 버렸다.
분명히 신성력과 암흑력이었는데.
혹시 이 마법진…… 신성력의 강함을 확인하는 거려나?
그리고 이걸 확인해보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곧장 르아 카르테를 하나 복사해 내었다.
옵션에 신성력과 암흑력이 60씩 들어간 특제품으로.
【 웨폰 카피! 】
그리고 그런 복사본 르아 카르테를 마법진 위에 집어던지자 이번에는 가이아 쉴드보다 훨씬 강력한 반발력을 내면서 마법진과 부딪혀갔다.
파지지직!
르아 카르테의 암흑력은 바닥에 있는 마법진의 힘을 그대로 상쇄시켜가는 동시에 신성력이 반발을 하면서 마법진을 찍어누르는.
그렇게 한참이나 암흑력과 신성력의 싸움을 유심히 지켜보다보니 이내 복사판 르아 카르테가 힘을 다해서 공중에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법진이 상당히 흐려진 것이 보였다.
호오.
무한한 마법진은 아니라 이거네.
그런 판단이 들자마자 바로 르아 카르테의 복사 작업에 들어갔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
그리고 신성력과 암흑력이 르아 카르테를 잔뜩 만들고는 마법진 위에 죄다 집어던져버렸다.
그러자 엄청난 신성력과 암흑력의 반발이 일어나면서 마치 폭풍과도 같은 기운들이 마법진 위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얼마나 그 기운들이 강한지 방 전체가 우르르 떨리면서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느낌이 바닥으로 전해졌다.
파지지직!
우르르릉!
얼마나 기다렸을까.
바닥에 있는 마법진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더니 끝부분부터 시작해서 계속 균열이 일어났다.
그런 균열이 점점 마법진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곧 마법진 역시 힘을 완전히 잃고 그대로 침묵해 버렸다.
큭.
설마 이런 식으로 마법진을 파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혹시나 싶어 르아 카르테를 하나 더 던져 봤으나 그냥 바닥에 튕기는 소리만 들릴 뿐.
마법진이 완전히 깨져서 더 이상 작동하지도 않았다.
원래 저 마법진이 여기 들어선 시험자의 신성력이나 마력, 혹은 마법진 위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 등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런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없었다.
그냥 돌파할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진 위를 걸어 반대편으로 넘어가자 이번에도 또 다른 입구가 열리면서 나를 반겼다.
흐음.
이렇게 계속 시험만 계속 되는 건가?
신성 제국에 남겨진 마지막 아이템이라고 생각해보면.
이런 시험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만.
너무 쉽게 돌파하고 있으니...
신의 손이라는 게 의외로 약한 건 아닐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잠시 여유가 나자 재중이 형과 연락을 했다.
<불멸> 잘 하고 있냐?
<주호> 세 번째까지 통과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불멸> 벌써 세 개나 통과했어?
<주호> 의외로 너무 쉽더라고요.
<불멸> 그렇게 쉬웠으면 올렌드가 벌써 돌파했겠지.
<주호> 그런가요? 어쨌든 그다지 힘이 안 드네요.
<불멸> 음, 뭐 쉽다면 됐고. 위험하면 언제든지 빠져나와.
그렇게 하나의 방을 더 들어갔을 때.
멀리 보이는 제단 같은 실루엣 위에 누군가가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동시에 꺼내들고 정면을 주시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
나 말고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나?
또 다른 교황?
교황이 셋이나 될 리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제단에서부터 무거운 목소리가 내게로 전해졌다.
“그 관문을 벌써 다 통과한 건가.”
마치 바닥을 긁는 듯한 무거운 목소리.
그리고 위엄이 가득한 굵은 톤의 목소리 파장이 제단을 감싸듯 퍼져나갔다.
순간 느껴지는 위압감에 몸이 저절로 눌려졌다.
이건…….
진짜다.
중간에 교황 자리를 억지로 꿰찬 올렌드 전 교황 같은 가짜도 아니었다.
나같이 신성 제국을 차지한 유저는 더욱 아니었고.
신성 제국 제넨샤에 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니.
올렌드에 의해 죽었다고 시스템이 떴던 바로 그…….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분명히 시스템으로 죽었다고 뜨지 않았나?
지금 떠오르는 유일한 인물.
원래의 이 자리에 있었어야 했던…….
나도 모르게 제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인물을 향해 외쳤다.
“당신이 교황입니까?”
“흐음,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군. 그렇다 내가 신성 제국의 교황이다. 그대 새 교황이여.”
칫.
저게 진짜 교황이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순간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녀석을 죽일 수 있나?
그런 내게 교황이 내려다보면서 낮게 말을 이었다.
“자네, 신마대전 이전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