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화 신의 손 (9)
올렌드 전 교황이 들고 있던 하얀 라지 쉴드가 바닥에 힘없이 뒹구는 동시에 녀석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 역시도 그대로 사라졌다.
역시 이건 녀석의 스킬이 아니라 저 라지 쉴드의 스킬이었나?
아님 올렌드의 스킬이어서 녀석이 죽으면서 스킬이 해제되었을 수도 있었다.
흠.
아니길 바래야지.
저 정도의 방어 스킬이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건 아쉬운 일이라.
올렌드 전 교황이 쓰러진 자리에는 저 라지 쉴드 외에는 특별한 아이템이 떨어져 있지는 않았으니까.
만약 저 라지 쉴드가 그냥 보기만 멋져 보이는 그런 아이템이라면 정말 억울하지.
이 고생을 해 가면서 죽인 건데.
그리고 올렌드 전 교황을 죽였다는 건 녀석을 추종하는 세력들 역시도 적으로 돌린 셈이 된다.
뭐, 그건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어차피 이 자리에서 녀석을 잡지 않았다면 죽는 건 내 쪽이었다.
최악의 경우 르아 카르테를 날릴 수도 있는 노릇이라.
또 그것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 교황인 올렌드에게 죽었을 경우에 신성 제국의 소유권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이걸 알아보려고 죽는 건 더 말이 안 되고.
올렌드 전 교황이 죽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자 바로 우리 팀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방금 올렌드 잡은 거냐? 도와주고는 싶은데 우리는 못 들어가는 중이라.
<주호> 아, 전투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네요. 방금 잡았어요.
<불멸> 호오, 대단한데? 그 녀석을 혼자서 잡다니.
이전에 재중이 형이 올렌드 전 교황을 일대일로 상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주변에 유저와 NPC들이 많아서 끝을 내거나 하지는 못 했지만.
<주호> 형도 잡으려고 하면 그때 충분히 잡을 수 있었잖아요.
<불멸> 흐음, 마무리는 못 했지. 생각보다 방어가 단단해서 말이야. 너도 쉽진 않았을 건데?
<주호> 녀석이 방심해준 덕분에요.
솔직히 완전히 실력으로만 이겼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만약 녀석이 내가 블링크를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테니.
<불멸> 흠, 좋은 거 떨어뜨렸나?
<주호> 아쉽게도 하나밖에 안 떨어뜨렸어요.
<불멸> 방패?
<주호> 네, 방패요. 전사 형이 좋아하겠네요.
잠시 재중이 형과의 연락을 끊고 앞으로 걸어 나가 올렌드 전 교황이 떨어뜨린 라지 쉴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손에 쥐자마자 깜짝 놀라 바로 다시 바닥에 놓칠 뻔했다.
무슨 아이템이……?
설마 이 정도까지 좋을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얼떨떨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방패의 옵션을 바라보았다.
『 +0 가이아 / 방어력 50
힘+20 / 체력+20 / 신성력 +30
모든 공격 대미지 감소 30%
모든 속성 공격 대미지 감소 30%
악마형 피해 감소 추가 50%
암흑력으로 공격받을 시 일정 대미지를 흡수 후 체력으로 변환.
가이아의 보호
- 일정 시간 동안 신성력을 방어력으로 전환.
가이아의 분노
- 일정 시간 동안 신성력을 공격력으로 전환.
가이아의 축복
- 모든 상태 이상 회복.
가이아 쉴드
- 앱솔루트 쉴드 시전, 체력 회복 가속.
관통 불가 』
이건 좀.
미쳤는데?
어느 정도껏 좋아야지…….
방어력은 이제껏 나온 방패 중에 제일 높았다.
거기다 모든 공격들에 대한 대미지 감소.
이 대미지 감소까지 따지게 되면 이전에 있던 방패들은 그냥 종이 방패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악마형에 대한 피해 감소까지 치면 거의 80%에 달하는 피해가 감소되었다.
이거 악마형한테는 아예 안 죽는 거 아냐?
이전에 올렌드 전 교황이 베히모스를 상대로 그렇게 잘 버티던 게 이제 이해가 되었다.
베히모스가 일단은 악마형이라 들어오는 대미지를 80% 깎고 시작하는데 쉽게 죽을 리가 있나.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무려 신성력을 공격력이나 방어력으로 전환하는 게 가능했다.
그동안은 신성력이 힐을 증폭시켜 주거나 악마형의 방어막을 찢는 데 쓰는 걸로 한정되었다면 지금 이건 신체 능력 자체를 그대로 전환시켜 올려 주었다.
패치 이전의 오우거 심장이 마력을 힘으로 바꿔주었던 것과 유사하게.
그냥 다른 옵션들 다 빼더라도 저 옵션 하나만으로 이 쉴드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모든 상태 이상 회복은 덤인가?
이거라면 어지간한 상태 이상은 걸지도 못해.
아예 경직시켜서 눕히는 게 아니라면.
좀 전에 전투에서는 녀석을 경직시켰기에 이 가이아의 축복을 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오히려 당한 건 내 쪽이 되었을 수도 있겠어.
녀석이 석화에 걸린 척하면서 갑자기 풀어 버리고 공격에 들어왔으면 분명히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쉴드 자체가 낮은 상태 이상은 그냥 풀어 버리는 모습도 보이긴 했으니까.
하…….
전사 형이 이걸 들면 내가 전사 형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옵션들이 좋았다.
범용성으로 치면 최상.
어지간한 레이드나 PK 상황에서도 전부 다 대응이 가능한 미친 방패.
거기다 악마형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미지 감소 뿐만 아니라 암흑력으로 공격당하면 일정 대미지를 흡수해서 체력으로 바꿔준다니.
레이드에서 이 이상 좋은 옵션이 또 있긴 해?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너 왜 갑자기 말이 없냐? 다른 녀석이라도 나타났냐?
<주호> 아뇨. 그냥 좀 기가 막혀서요.
<불멸> 응? 왜? 문제 생겼어?
<주호> 문제라면 문제죠.
그리고는 바로 가이아의 옵션을 링크로 걸어 우리 팀이 볼 수 있도록 올려놓았다.
그 순간 바로 우리 팀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방패전사> 허업!!!
<나르샤> 세상에……!
<막내별> 와, 미쳤다……. 지금 보여 준 거 합성 아니죠?
<이쁜소녀> 으음?! 옵션 되게 많다아.
<챠밍> 꽤 좋아 보이네요.
<방패전사> 챠밍, 이건 좋아 보인다 정도가 아니라니까? 이거 완전 지존 방패야. 역대 최강이라고.
<챠밍> 그렇게 좋은 거예요?
<방패전사> 어, 이것만 있으면 나 혼자 월드 네임드하고 맞짱 뜰 수 있음.
<챠밍> 농담처럼 안 들리네요.
<방패전사> 진짜 가능하다니까 그러네.
전사 형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으니.
<불멸> 와, 어쩐지 올렌드 그 자식 잘 안 뚫린다 하더라니. 이건 괴물이네. 넌 진짜 이놈을 어떻게 잡았냐?
<주호> 운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놀랍네.
전사 형에게 바로 다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아이고, 주호 님,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불멸> 크큭, 쟤 아부하는 거 봐라.
전사 형의 그 모습에 잠시 웃었다가 다시 답을 주었다.
저렇게 달아있는데 장난치기는 좀 그렇지.
<주호> 네네, 이따가 가서 드릴게요.
<방패전사> 허업, 형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호> 에이, 너무 놀리지 말고요. 그럼 좀 있다가 봐요. 전 신의 손인가 그거 찾아보러 갈게요.
<방패전사> 그래, 조심하고. 그리고 혹시나 떨어뜨리면 안 된다?
<주호> 형은 제가 걱정되는 거예요, 방패가 걱정되는 거예요?
<방패전사> 당연히 방패지!
<주호> 흐음, 확 갖다 버릴까나.
<방패전사> 흐흐, 농담인 거 알지? 잘 다녀와라.
그렇게 전사 형의 놀란 가슴을 내려놓고는 연락을 끊었다.
가이아 방패 이 녀석 하나만으로 이미 본전은 뽑았네.
그리고 만약 이 옵션이 알려지면 다른 서버에서는 월드 네임드가 아닌 올렌드를 잡기 위한 팀이 결성될지도 모른다.
표면상으로 보면 올렌드가 더 잡기 쉬워 보일 테니까.
실상은 좀 다르긴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유저들은 올렌드를 절대 못 잡을 것이다.
언제 한 번 슬쩍 흘려 볼까?
아주 피바람이 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죽어버린 올렌드의 흔적을 넘어 어둑어둑한 통로를 쭉 따라 들어가니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흐음.
생각보다 함정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
좌우로 트랩이 발동되어 튀어나올 줄 알고 꽤 긴장한 상태로 접근했지만 의외로 아무런 제지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혹시 올렌드가 이미 다 제거를 한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흔적이 너무 없어.
올렌드가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전투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으니까.
이거 계속 들어가도 정말 괜찮은 건가?
그리고 한 손에 든 가이아의 방패를 내려다보았다.
흐음.
이거 복사가 되는 거려나?
혹시나 싶어 가이아의 방패에 복사 스킬을 시전해 보았다.
【 웨폰 카피! 】
그러자 환한 빛과 함께 가이아와 똑같은 방패가 하나 툭, 앞으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복사가 완료되었다.
오호라.
이게 복사가 된다 이거지?
방패는 이제껏 한 번도 복사해본 적이 없어서 혹시나 했는데.
웨폰 카피라 당연히 무기만 될 것이라 생각했던 생각을 확 뒤집어 놓았다.
나중에 다른 것도 한 번 해봐야 하나?
그리고 이렇게 되면 르아 카르테가 과연 이걸 흡수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만약 된다면 이 엄청난 옵션들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하니까.
아마도 좀 더 색다른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테면.
좀 더 극강으로 방어적인 르아 카르테라던가…….
완전히 방패의 방어력을 가져오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옵션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꽤 좋은 조합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대로 서서 가이아의 방패를 계속 복사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그렇게 한참을 가이아의 방패를 복사한 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겠는데?
정면의 바닥 전체가 용암과 같은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용혈은 아닌 것 같네.
만약 용혈이었으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반응을 했겠지만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저건 좀 다른 형태의 함정으로 보였다.
그리고 중간에 징검다리와 같은 아주 작은 발판 정도만 틈틈이 놓여 있는데 누가 봐도 저곳으로만 지나오라는 것 같았다.
흐음.
디딤돌을 밟으면 함정일 게 분명한데.
혹시 몰라 살짝 용혈과 비슷한 장소에 살짝 발을 담궜는데 바로 효과가 나왔다.
《 체력의 10% 가 하락합니다. 》
미친.
1초도 담구지 않았는데?
체력의 10%가 날아간다고?
바로 발을 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곧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리니 양쪽 벽과 위아래 모두 뭔가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기관?
혹은 몬스터?
여기 몬스터가 있을리는 없고…….
역시 기관이려나.
올렌드가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 나온 걸 보면…….
쉽게 지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런 함정들을 보고 씨익 웃어보였다.
올렌드는 불가능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가지가 있었다.
원래라면 나 역시 개고생을 하면서 지나갔겠지.
하지만 나는 올렌드와 달라.
지금 내 손에는 수십 개의 가이아의 방패가 있으니까.
함정이고 뭐고 그냥 씹어 먹고 지나가 주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