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화 신의 손 (2)
“어…… 그러니까…….”
충격 후에 오는 침묵.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려서 그런지 은하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은하의 한쪽 다리로 시선이 내려갔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었던 이유는 부상으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해서였다.
“다리는 어때?”
“으음, 의사 선생님이 너무 격한 안무만 아니면 괜찮다고는 해요.”
은하 말대로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고.
부상 역시 완치가 된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 뒤 은하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전 오빠 생각이 궁금해요.”
다시 이어지는 정적.
은하 역시 말을 하지 않고 내 대답을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내게서는 예정되어 있던 그 말이 흘러나왔다.
“역시…… 돌아가야겠지?”
예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계속 눌러놓았던.
나중에 어느 시점이 되면 은하는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떠나게 되지 않을까.
나나 재중이 형과 달리.
은하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는.
휘말리듯이 이 세계로 들어온 나와 은하의 입장은 많이 달랐다.
현재 이 세계가 지금의 내겐 전부와 마찬가지지만.
은하는 달라.
“정말 돌아가요?”
“어?”
“제가 없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어오는 은하를 보며 오히려 내 쪽이 당황을 했다.
내 생각이라…….
마음 속 한구석에는 그냥 이렇게 쭉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는 건…….
그동안 함께했던 은하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다.
나 하나 좋자고 누군가의 미래에 대한 진로를 바꾸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생각이 정리가 되자 은하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내게는 꽤 어려운 이야기를.
“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 나와는 상관없이.”
“그 말은…… 활동을 하라는 말이겠네요.”
“그래. 꿈이잖아.”
잠시 숨을 깊게 들이시고 은하에게 말을 꺼내었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내 말에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솔직히 네가 부러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자신의 손으로 그 길을 걸어간 거잖아.”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은하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어.”
“아…….”
“어떻게 보면 너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은하는 다리가 다쳤기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돌 활동을 접었었다.
다친 신체가 주는 불리함.
이런 은하가 후천적인 문제였다면.
내 쪽은 선척적인 문제였다.
“과몰입 증후군…….”
“어, 너도 알다시피 이게 엄청 힘들게 만들었지. 지금이야 평범하게 생활이 가능하지만.”
유혜선 팀장이 도와준 덕분에 지금은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만 빼면.
“오빠나 저나 상황이 같았네요.”
“응, 그러니까 난 네가 이해가 될 것 같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신체 때문에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은하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할 수 있다면 해. 넌 재능이 있잖아.”
재능.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개 오디션에서 1등을 할 정도면.
누구보다 나은 재능이 아닐까.
그런 재능을 제때 쓰지 못한다는 건.
본인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모두 아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부끄럽네요.”
“으음, 그런가?”
둘 다 잠시 머쓱해졌다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은하 역시도 마주 보면서 웃었고.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화를 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것 아닐까.
“오빠, 그런데 제가 재능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왔다.
“찾아봤거든. 네 오디션 프로그램.”
내 대답에 은하의 얼굴이 더 없이 빨갛게 변해 버렸다.
“으아! 그걸 봤어요?!”
“응? TV에서 했었잖아. 난 나중에 찾아서 본 거지만.”
“그렇긴 한데……. 으, 부끄러워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잘하더라. 너밖에 안 보이던데?”
“으아…… 그만요.”
이제는 정말 익어 버린 홍시가 되어서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어딧더라? 같이 한번 볼까? 저장해 놨…….”
“아! 진짜……! 자꾸 그러면 돌아갈 거예요!”
얘도 은근 놀리는 재미가 있네.
은하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자 겨우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이쁘게 잘 나왔던데?”
솔직히 정말 이뻤다.
주변에 있는 다른 연습생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은하의 말은 전혀 달랐다.
“그때 살쪄서 얼굴이 엄청 부었단 말이에요. 진짜 못 생기게 나왔는데……. 저한테는 나름 흑역사라고요.”
그게 흑역사면.
거기 참가한 연습생들 전부 분발해야겠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을 전부 오징어로 만들어 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솔직한 감상이 나왔다.
“내 눈엔 그때도 예뻤어.”
“아! 진짜.”
“물론 지금도 이쁘고.”
“으으!!”
내 한마디 말에 이젠 더 어떻게 못할 정도로 빨갛게 변한 얼굴로 변하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저 부끄럽게 만들어서 암살할 생각이죠?!”
“하하…….”
곧 은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조금은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좀 편해졌어요.”
“다행이네.”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다고 굳어 있던 표정이 이제는 거의 다 풀어져 있었다.
원래의 환한 미소와 함께.
“후우, 사실 엄청 고민했거든요. 이야기할지 안 할지. 솔직히 이야기 꺼내는 것도 무서웠는데.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래, 도움이 되었나 보네.”
다만 말해 놓고도 조금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의 재능을 살리러 아이돌로 돌아간다는 건.
은하를 로스트 스카이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말과 동일하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은하가 옆에 없다.
지금 눈 앞에 있지만.
아무래도 이젠 자주 보지 못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둘이 동시에 고개가 돌아가 확인한 알람에는 재중이 형이 떠 있었고.
“형한테 왔네. 잠깐 받아도 되지?”
“네, 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곧 재중이 형에게서 온 연락을 받자 대뜸 재중이 형이 내게 물어보았다.
<재중> 혼자냐?
<승호> 어…… 네?
<재중> 하긴 너한테 뭘 물어보나.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 문 좀 열어 봐.
재중이 형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나와 은하의 표정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승호> 형, 설마 집 앞이에요?
<재중> 어, 점검 시간이 남아서 좀 할 말도 있고. 빨리 문이나 열어.
이런……!
당황 가득한 나와 은하의 눈빛이 순식간에 허공에서 마주쳤다.
“형이 집 앞에 있다는데…….”
“저도 들었어요…….”
지금 은하가 우리 집에 이 늦은 시간에 혼자 와 있다는 걸 알면…….
저 형, 성격에 안 놀릴 리가 없어.
모르긴 해도 한 십 년은 써먹지 않을까.
은하는 은하 나름대로 부끄러움이 많고.
하아.
진짜 타이밍 한번 죽여주네.
하필 와도 이런 때 오냐고.
이미 집 앞까지 와 있어서 돌아가라는 말도 못 한다.
순간 집에 없는 척 할까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 켜진 걸 뻔히 봤을 건데.
거기다 순수 집돌이인 걸 아는 형이 속아 넘어가줄 리도 없다.
“오빠, 어떻게 해요?”
“하아, 아니다. 그냥 열어야지 뭐.”
“으아…….”
은하의 표정이 어떻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시 빨개졌다.
지금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운가 보네.
나도 마찬가지지만.
잠깐 은하를 어디 숨겨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것도 포기했다.
그게 더 이상해 보일 테니.
거기다 은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어쩔 수 없네. 그냥 열자.”
“으, 최종 보스보다 무서워요.”
“하아, 나도 그래.”
한숨을 푹 쉬면서 현관 문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와 은하를 본 재중이 형의 입꼬리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올라갔다.
“호오, 이건 무슨 그림이냐?”
“…….”
“…….”
“아, 미안! 나 왠지 방해한 것 같네. 그럼 두 분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십쇼…….”
재중이 형이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닫으면서 나가려고 하자 내가 버선발로 달려 나가 현관문을 손으로 꽉 잡으면서 눈썹을 확 치켜세웠다.
은하 역시 깜짝 놀라서 소리 질렀고.
“아니라니까!”
“아니에요!!”
그런 우리 둘의 반응에 재중이 형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호오, 둘이 반응이 아주 찰진데? 둘이 나쁜 짓이라도...”
그 말에 순간 머릿속에서 필름이 팍 끊어지는 것 같은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좀 들어오죠?!”
은하는 아예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번갈아보기만 했다.
이미 쟤는 혼이 나갔네.
“아아, 미안. 너무 의외의 장면이라 나도 좀 놀라서. 이 늦은 시간에 둘이…….”
“하아, 한 마디 더 하면 그냥 창밖으로 던져 버릴 지도 몰라요.”
“오, 그건 안 되지. 난 소중하니까.”
그러고는 양손에 술을 잔뜩 가지고 들어왔다.
“무슨 술이에요?”
“아, 점검 연장 못 봤냐? 하루 더 한다는데?”
“……무슨 점검을 그렇게 오래해요?”
“듣기로 준비가 덜 된 상태라더라. 누가 교황을 너무 빨리 먹어 버려서.”
“아하하…….”
설마 내가 시나리오를 너무 빨리 부숴 놔서 그런 거려나.
준비하는 시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아무튼 부랴부랴 준비하고 있다니까. 우린 좀 놀자고. 마침 은하에게 할 이야기가 있고. 잘 됐네.”
그 말에 은하의 고개가 갸웃했다.
“네? 저한테요?”
“일단 들어가서. 손님 이렇게 세워 둘 거야?”
재중이 형이 놀리듯 말하면서 자기 집인 듯 안으로 들어와 술판을 벌였다.
한쪽에 재중이 형이 앉아 있고.
맞은편에 나와 은하가 앉아 있는 미묘한 그림.
“이거 둘 다 표정이 왜 이래? 누구 죄졌어?”
“아니라니까요!”
“아니요!”
이번에도 나와 은하가 똑같이 대답을 하자 재중이 형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아.
이 형.
완전 재미 붙였어.
아무래도 앞으로 꽤 고달파질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씨익 웃던 재중이 형이 이번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은하를 보면서 말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너 슬슬 활동할 때 되지 않았어?”
“네……? 그걸 어떻게?”
“내가 모르는 게 어딧겠냐.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내게는 꽤 어려웠던 이야기를 재중이 형은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은하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으음, 안 그래도 승호 오빠하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요.”
“호오, 그래? 그래서 결론은 나왔고?”
결론이라는 재중이 형의 말에 나와 은하의 시선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는 일이라.
이미 말이 나오기 전부터 결과는 명확했다.
난 막지 않을 거고.
은하는 해야 한다.
재중이 형이 이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은하가 활동을 재개할 거라는 걸 따로 알기까지 하는 형이?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재중이 형이 굳이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은하 역시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잠시 궁금해하는 나와 은하를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을 꺼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은하 너. 혹시 소속사 옮길 생각 없냐?”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