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8화 알 모으기 (7)
보통 네임드는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한꺼번에 받게 되었을 경우 다운이 되곤 했다.
다운이 되면 방어력도 약해지고 무방비 상태로 딜을 넣을 수 있기에 공략이 한층 수월하게 된다.
레이드 중 유저들이 마음 놓고 네임드를 팰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렇게 좀 더 쉬운 공략을 위해 모든 유저들이 어떻게든 몬스터를 다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지금도 니아가 마족의 무기에 내장된 엘레멘탈 브레스를 연속으로 발사해 가르가를 다운시키자 사람들이 전부 환호를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근접유저들이 달려들어 가르가의 신체에 달라붙어 자신들이 낼 수 있는 모든 공격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가르가가 다운되어 있는 지금이 회피에 신경 쓰지 않고 스킬을 풀 차징해 날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 유저들도 공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긴장감이 100이 최대치라면 지금은 거의 20~30 수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유저들이 마음을 놓고 있었다.
다운된 네임드는 공격을 하지 않으니까.
오러가 있는 유저들은 자신의 무기에 오러를 입혀 곧장 가르가의 날개와 허리, 다리 부분을 공격해 댔다.
수십이 넘는 휘황찬란한 오러의 잔상들이 가르가의 몸 위로 흔들거리는 모습은 다른 무엇보다 눈에 확 들어왔다.
거기다 무기도 드워프가 가공한 무기를 들고 있는 유저들도 꽤 많았다.
암흑 브랜디슈 계열의 무기라던가.
드워프 악령 스태프 같은.
이전 지역에서 드워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제작 무구로 도배를 한 유저들이라 그런지 공격력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의 국민 템 수준?
일단 구하기 힘든 네임드 무기만은 못하더라도.
현 일반 유저들 수준에서는 상위급 아이템이고 강화를 잘 한다면 충분히 높은 대미지를 뽑아 낼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라면 가르가의 약화된 방어력을 뚫어 낼 수도 있을 것이고.
근접 유저들의 스킬은 대부분 데스나이트의 기술들.
강격과 연격을 연이어 날린다던가.
더블 크래쉬를 쓰는 유저도 있었고.
그중 몇몇은 진(眞) 비월참까지 쓰는 유저도 보였다.
그렇게 근접 유저들이 수도 없이 가르가의 몸을 써는 동안 후방에서는 각종 마법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가르가의 신체에 쏟아져 내렸다.
화르륵!
파지직!
콰아앙!
대부분 위력이 강한 화염 계열이나 전격 계열의 마법들.
전에 특히 많이 잡힌 미치광이 리치가 썼던 암흑 계열의 스킬이 가장 많이 터져 나왔다.
커스 스피어, 커스 플레어 등.
언데드를 소환해서 밀어붙이는 유저라던가.
광역기 중에는 본 레인, 토네이도, 익스플로전 같은 리치의 기술이 제법 보였다.
이런 네임드 스킬들은 그동안 잡힌 만큼이나 유저들도 많이 습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체 폭발 같은 스킬은 근접 유저들이 같이 휘말릴 수 있으니 있어도 안 쓰는 모양이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고르곤, 흑장로의 스킬을 쓰는 마법 유저들이 간혹 가다 눈에 들어왔다.
【 기가 라이트닝! 】
【 라이트닝 퓨리! 】
【 데몬 플레어! 】
【 데몬 익스플로전! 】
심지어 듀라한의 최종 기술까지.
【 데스 버스트! 】
콰아아앙!
콰아앙!
각 길드에서 에이스급 유저들에게 스킬을 몰아준 건가.
이번 방어전에서 제법 많은 네임드들이 잡혔는데 그 녀석들을 통해서 스킬을 얻은 것 같았다.
그나마 드래곤이나 레비아탄, 썬더볼트의 스킬은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인 건가.
이런 네임드들이 지금도 잘 안 잡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상형인 다른 네임드들과는 달리 드래곤과 썬더볼트는 날아다녀서 비공정이나 탈것을 대거 투입하지 않으면 아예 못 잡는 수준이었다.
일부러 친절히 땅에 내려와 싸워주지 않는 이상에야…….
거기다 바다에 들어가 있는 레비아탄은 함선을 얼마나 갈아 넣어야 잡을 수 있는지 감도 안 서는 녀석이고.
마찬가지로 가르가 역시 날아다니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유저들로선 잡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녀석에 속했다.
그래서 더욱 지금의 공격에 집중을 하는 모양새였다.
한번 날아오르면 다시 끌어내리는 데 얼마의 노력이 들지는 말 안 해도 뻔하니까.
유저들 입장에서는 알아서 내려와 줬을 때 잡는 게 최선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좀 급하게 서두른 감이 있었다.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달려든 유저들의 스킬이 난사되면서 생겨난 폭발적인 이펙트 효과로 시야가 잠시 교란된 순간.
화려한 이펙트 사이로 가르가가 실루엣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
“뭐야?”
“방금 움직인 건?!”
집중해서 공격을 한다고 가르가가 눈을 뜬 것도 몰랐던 유저들이 가르가의 몸이 움직이자 바로 당황한 듯 손을 멈추었다.
원래의 예상대로라면 벌써 움직일 수가 없는데.
지금 가르가가 움직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미친, 전부 튀어!”
“빠져나가!”
“바로 뛰라고!”
그동안 근접 유저들이 왜 달려들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가르가의 스킬 특성 때문이었다.
접근하기만 하면 가르가 주변으로 냉기 오러가 퍼지면서 유저들을 싹 얼려 버리는 탓에 제대로 된 근접전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가르가의 사방으로 엄청난 숫자의 근접 유저들이 죄다 포진해 있었다.
키에에엑!!
그리고 가르가가 날개를 활짝 펼쳐 올리며 피어를 터트리자 순간 유저들의 몸이 단체로 경직에 걸린 것처럼 굳어 버렸다.
“큭! 당했다.”
“이런, 미친……!”
“몸이 완전히 굳었어!!”
“젠장! 움직여 좀!”
워낙 가르가에게 붙어 있다 보니 피어에 죄다 걸려들어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당연히 안색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니까.
피어에 걸려서 몸이 멈춘 수도 없이 많은 유저들을 내려다본 가르가의 부리가 마치 웃는 것처럼 올라갔다.
그 순간.
펼쳐진 날개들에서 새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 유저들을 가까운 녀석들부터 차례대로 얼려 나가기 시작했다.
“안 돼! 얼어붙는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누가 좀 살려 줘!”
놈에게 가까운 유저들이 그런 말을 남기며 새하얗게 하나둘 얼어붙더니, 점차 냉기가 넓게 퍼지면서 근접했던 유저들을 전부 얼려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새빨갛고 강렬한 화염의 오러가 퍼져 나가며 그런 유저들을 싹쓸이 하듯 녹여냈다.
반항도 하지 못하는 유저들을 상대로.
이건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려나.
그렇게 유저들이 죽어 나가며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지는 매 순간.
가르가의 몸에선 계속해서 레벌업의 빛이 피어오르며 그동안 입은 피해를 모두 없애 버렸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점점 커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완전한 가르가의 압승.
단 한 번의 실수로 레이드의 판세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이걸 지켜보던 전사 형이 놀라움을 표했다.
“설마 저거, 노린 거였어?”
“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히야, 무슨 네임드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냐.”
“그러게요. 저도 이번엔 꽤 놀랐어요.”
“근접 유저들이 다가오지 않으니 일부러 함정을 판다라……. 미쳤네, 정말. 저러면 유저보다 더 똑똑한 거 아닌가?”
그런 전사 형의 말에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가가 한 행동은 심플하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았다.
일부러 다운되는 척하고는.
긴장을 풀고 근접한 유저들을 싹 녹여 버리는 방법.
이건 흡사 유저들이나 생각해볼 법한 작전이었다.
네임드가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건 처음 봤으니까.
유저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예상 자체를 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게 되었다.
네임드가 이런 식으로도 함정을 팔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아주 레벌업을 미친 듯이 했구만. 저 녀석 대체 이번에 얼마나 많이 죽인 거야?”
“아마 안 되도 수백은 그냥 넘어가지 싶은데요?”
얼핏 눈으로 계산해 봐도 이미 수십 개 분량의 길드가 녹아내렸다.
물론 근접 유저들만 한정해서겠지만.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으니.
워낙 많은 근접 유저들이 녹아 버리니 남은 유저들의 진영이 휑하게 보일 정도였다.
거기다 밸런스.
팀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근접 유저들 없이 원거리만 남아 있는 구조가 절대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니까.
무엇보다 근접 유저들이 방어를 해 줘야 원거리들도 마음놓고 공격을 할 텐데…….
지금은 그게 아예 불가능했다.
가르가와 원거리 유저들 사이에서 바리게이트 역할을 하던 근접 유저들이 다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키에에엑!
바로 가르가가 거대한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면서 단단한 두 다리를 박차고 지상을 스치듯 몸을 날렸다.
그것도 남아 있는 원거리 유저들을 향해.
당장 육탄전으로만 가도 원거리 유저들은…….
“비상! 전부 흩어져!”
“젠장, 병력 다 빼내!”
“일단 철수한다!”
“알아서 살아남아!”
아무도 가르가의 돌격을 막아 줄 수가 없으니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서 바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몸이 그나마 빠른 궁수들이 먼저 빠져나갔고.
그 뒤를 이어 마법사들이 달렸는데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이 너무 느렸다.
거기다 방어력도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고.
화염을 몸에 두른 가르가가 한 번 몸으로 치고 지나가는 순간.
수많은 마법사 유저들이 녹아 버리면서 그 자리에서 순삭되어 버렸다.
반항할 틈도 없이.
“저건 거의 학살 수준인데?”
“네, 이제 너무 기울어졌어요.”
밸런스가 깨져 버린 레이드는 더 이상 레이드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가르가의 사냥터일 뿐.
게다가 발이 빠른 궁수라고 살아나갈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가르가가 냉기 브레스를 사방으로 써서 도망가는 유저들의 발을 죄다 묶어 버렸다.
발이 느린 마법사들은 화염으로 태워 버리고.
멀리 도망가는 궁수들은 냉기로 잡고.
그야말로 올그라운드 딜러 수준이려나.
근접, 원거리 어디 하나 빠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가르가에게 달려드는 유저들도 있었다.
싸우려는 건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전사 형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와, 드랍템 먹으려고 뛰어다니는 거 봐라.”
“정말 그렇네요.”
유저가 몬스터에게 죽으면 템이 좀 더 잘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워낙 많은 유저들이 죽어 나가다 보니 사방에 드랍템이 수도 없이 떨어져 산을 이루고 있었다.
확실히 이걸 그냥 두고 갈 유저들이 아니지.
이왕 죽을 거 아이템이라도 싹 먹고 죽으면 남는 장사이려나?
“야이, 새끼야. 그거 내 꺼야!”
“떨어졌는데 니 꺼 내 꺼가 어딧어?!”
“일단 주으면 끝이지!”
“이런 상도덕도 없는 새끼!”
살아남은 유저들도 서로 욕하다가 화염에 쓸려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는 기도 차지 않아 웃어버렸다.
대단하네.
이 와중에도 아이템을 주우러 다니다니.
흠. 어쩌면 저게 현명할 수도 있으려나?
그렇다고 저걸 주우러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런 해프닝 속에 남아 있던 유저들도 모두 도망조차 가지 못하고 녹아 버리자 가르가의 레벨이 점점 더 올라가 버렸다.
전사 형이 그 모습을 보다가 챠밍을 돌아보며 놀란 듯 말했다.
“가르가 녀석. 네 말대로 진짜 오버가 되겠는데?”
“저도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챠밍이 의견을 내긴 했는데 본인도 이렇게 빠르게 해결이 된다고는 생각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네임드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만은.
그렇게 학살을 지켜보며 조금 더 기다리니 전사 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봐라. 이제 더 레벨이 안 올라.”
전사 형의 말대로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가르가에게서 레벨업의 빛이 생겨 나지 않았다.
유저들을 계속 죽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순식간에 오버가 됐네요.”
몰려든 유저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만큼.
가르가 역시 필요한 경험치를 여기서 모두 채울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 베히모스와 가르가가 동급이 됐다는 말이 된다.
저렇게 둘 다 오버가 된 상황이라면?
과연 어떻게 되는 거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