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화 알 모으기 (2)
시작은 그냥 돌발적인 생각이었다.
르아 카르테와 아다만티움.
일단 아다만티움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려면.
르아 카르테의 옵션을 정해놓고 난 뒤.
마지막으로 아이템을 복사해서 아다만티움으로 내구도를 부여하면 된다.
그런데 계속 중간 과정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바로 아이템을 복사하는 이 장면.
지금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복사를 했었지만.
눈앞에서 히드라 주니어가 드랍된 아이템을 먹으려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두 가지 장면들이 연결되었다.
드랍된 아이템.
그리고 복사된 아이템.
이 두 개는 다른가?
둘 다 눈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하나의 아이템이다.
그럼 여기서 이어지는 가정 하나.
만약 다르지 않다면?
히드라 주니어는 이 둘을 다르게 인식할까?
아니면 똑같은 아이템으로 인식할까.
혹시나 똑같이 인식하면 그때는?
복사된 아이템을 줘도 히드라 주니어가 먹을 수 있는 건가?
히드라 주니어가 드랍템에 달려드는 아주 짧은 한순간.
이런 생각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도달한 결론.
아퀼라스 주니어에게 먹여 보자.
생각이 정리되자 곧장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 버렸다.
그리고 녀석에게 복사된 아이템을 던져 주자 아주 기다렸다는 듯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손을 불끈 쥐었다.
이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팀 모두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내가 저지른 일을 정말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먼저 챠밍의 감탄사.
“세상에…….”
챠밍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놀라는 모습은 요 근래 보기 힘들었는데 이런 모습에서 지금 얼마나 놀랐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이쁜소녀도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완전 사기……!”
응.
사기 맞아.
솔직히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사기였다.
복사된 아이템을 진짜 아이템인 양 먹어치우다니.
심지어 아퀼라스 주니어의 경험치도 올라갔다.
그냥 단순히 먹어 치우는 모션만 보여 준 게 아니라, 정확하게 적용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나르샤 누나 역시도 놀란 눈빛을 숨기지 못했고, 막내별은 그냥 넋을 놓아 버렸다.
한 말은 많은데 하지 못하는.
딱 그런 표정이려나?
전사 형은 날 어이없는 눈빛으로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체 평소에 뭘 생각하면 이런 걸 떠올리는 거냐?”
“음, 그냥 떠오르던데요?”
솔직히 말해 어떻게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냥 스치듯 생각나 버린 거라.
조금 난처한 듯이 대답하자 전사 형이 무슨 괴물 바라보듯이 날 보면서 웃어 버렸다.
“어후, 무서운 놈 같으니라고. 진짜 널 누가 말리겠냐. 근데 이거 정말 되는 것 맞지?”
“네, 방금 시스템 메시지로 경험치가 오르는 것까지 확인했어요.”
“……미쳤네.”
아퀼라스 주니어가 된다는 건.
히드라 주니어 역시도 될지 모른다.
그렇다는 말은 역시.
“한번 실험해 보실래요?”
“히드라 주니어로?”
“네, 아퀼라스는 잘 되니까 아마 마찬가지지 않을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히드라 주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전사 형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곧장 히드라 주니어를 불러내었다.
“그럼, 확인해 보자.”
“네, 잠시만.”
【 웨폰 카피! 】
르아 카르테를 한 자루 복사해서 소환된 히드라 주니어 앞에 던져 주는 순간.
히드라 주니어의 머리 중 하나가 애시드 브레스를 뿜어내서 아이템을 산성으로 녹여냈다.
그리고는 바로 녹여진 아이템을 입에 집어넣고 삼켜 버렸다.
아퀼라스 주니어하고는 형태는 다르기는 한데.
둘 다 아이템을 흡수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완전히 동일했다.
적용이 되는지는…….
《 히드라 주니어와 주호 님의 우호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허기가 소폭 사라집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역시인가?
내가 던져 준 아이템을 먹어서인지 시스템 메시지가 내게도 똑같이 떠올랐다.
전사 형도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원래라면 키우는 걸 거의 포기해야 하는 판이지만.
지금 이 한 수로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재중이 형도 지켜보다가 나와 전사 형을 보고는 물었다.
“제대로 되는 거냐?”
그 말에 나와 전사 형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엄청난 걸 발견해 버렸는데?”
재중이 형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잠시 나와 펫들을 번갈아 보던 재중이 형이 결론까지 도달했다.
“펫들 전부 끝까지 키울 수 있겠네.”
“네, 시간만 허락해 준다면요.”
“그리고 마력도 엄청나게 필요하겠지.”
웨폰 카피에 들어가는 마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전투 중에는 자주 쓰는 게 부담될 정도라.
그만큼 소모가 많기에 당연히 시간도 꽤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래?”
재중이 형이 물어보는 건 다른 것이 없었다.
지금 할 것인가.
다른 일을 처리하고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지 말고 안 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빨리 할수록 좋겠죠.”
“오케이, 그럼 작업 시작하자.”
주어진 시간이 많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아퀼라스 주니어와 히드라 주니어를 최대한 빨리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그냥 마력이 무지막지하게 많기만 하면 된다.
양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이번엔 부탁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흠, 사장님에게 부탁해 봐.”
나와 재중이 형, 챠밍 등이 원천마력으로 회복을 한다고 한들 딱 몇 명분의 마력이 추가될 뿐이었다.
이쁜소녀, 전사 형, 나르샤 누나, 막내별이 포함된다고 해도 마찬가지.
“네, 우리들끼리 해서는 마력이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을 거예요.”
웨폰 카피 자체가 마력 소모가 크다.
그리고 쿨타임도 없고.
연달아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에 우리 팀의 마력 정도는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은…….
우리 외에 유저들을 대거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때 챠밍이 내게 의견을 말했다.
“네임드에게 마력을 뽑는 방법도 있어요.”
이미 챠밍과 둘이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마력을 뽑아 본 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마력을 모아서 챠밍에게 몰아주기도 했고.
“그래, 다들 네임드 잡는다고 정신없을 건데 우리끼리 해 보자.”
각 길드마다 현재 도망간 네임드들을 잡는다고 눈에 불을 켜고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당장 우리를 도우라고 하면 이것도 좀 그림이 이상하긴 하지.
놀고 있다면 또 모를까.
“나르샤 누나, 네임드 좀 찾아주세요. 가급적이면 주변이 비어 있는 녀석으로요.”
“그래, 알았어. 페가수스 좀 빌릴게.”
바로 페가수스를 넘겨주자 나르샤 누나가 하늘로 떠올라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재중이 형이 남은 드랍템을 모두 수거한 뒤 그대로 땅에 드러누우면서 남은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다들 잠시라도 쉬어.”
그 말에 누구 하나 반대 없이 그 자리에 모두 쓰러졌다.
후, 피곤하네.
녀석을 잡고 난 뒤에야 몰려오는 피곤함.
확실히 오버된 네임드까지 동시에 상대하는 건 꽤 지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다니던 나르샤 누나에게 연락이 오자 아예 황실 비공정을 띄워서 올라탔다.
“가죠.”
나르샤 누나가 찾아낸 녀석은 외곽에 홀로 있는 흑장로 한 마리였다.
이쪽으로는 유저들이 오지 않았는지 아무도 건들지 않은 녀석이었다.
혹은 잡다가 죽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지.
우리가 내려서자 기다리던 나르샤 누나가 말했다.
“어때? 저 녀석이면 되겠지?”
“네, 충분하죠. 오히려 더 좋아요.”
흑장로는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해서 크리티컬을 먹이기 좋은 데다가, 마법형 네임드다 보니 마력이 다른 네임드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빨아들일 수 있는 양 역시도 많을 터.
“그럼 작업 시작하죠.”
일단 첫 단계.
우리의 작업이 다른 유저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흑장로를 끌고 가야 한다.
전사 형이 곧장 달려 나가 흑장로의 어글을 끈 뒤 그대로 거점의 외곽을 벗어나 아예 멀리 있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흑장로 역시 전사 형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잘 왔다. 흐흐.”
전사 형의 몸 전체에서 화려한 기운이 올라왔다.
【 고대 마수의 심장 (히드라)! 】
바로 히드라의 속성과 함께 히드라가 할 수 있는 스킬 역시 준비가 되었다.
【 스톤 브레스! 】
파아악!
전사 형이 스톤 브레스를 쓰며 복사본 르아 카르테를 휘두르자 꼼짝없이 흑장로의 발이 묶이면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소녀! 바로 들어와!”
“네, 가욧!”
그리고 이어지는 뇌전이 엄청나게 모인 토르를 이쁜소녀가 휘둘러 흑장로의 뒤통수를 그대로 갈겼다.
【 격뇌! 】
파지지직!
그러자 흑장로의 머리가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꺾어졌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고.
“이것들이 네임드를 아주 가지고 노네.”
“저도 들어갑니다.”
원래라면 흑장로가 다운되어 있을 때 최대한 대미지를 줘서 잡는 게 목적이지만.
지금은 목적 자체가 달랐다.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화속성! 】
곧장 흑장로의 뒤로 가 흑장로의 목덜미에 오러가 넘치는 르아 카르테를 그대로 박아 넣었다.
케엑!
그리고 빨려 들어오는 마력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나쁘지 않아.
충분할 정도로 마력이 흡수되는 걸 본 순간.
【 웨폰 카피! 】
“전사 형! 히드라 불러내요!”
“알았다!”
【 히드라 주니어 소환! 】
전사 형이 히드라 주니어를 소환하자 복사한 르아 카르테를 바로 던져 주었다.
캬악!
나름 위압적인 소리를 내려던 히드라 주니어가 날아오는 아이템에 눈이 돌아가더니 덥석 주워 먹고는 내게 신호를 보냈다.
더 먹고 싶다는 아주 강력한 신호를.
그런 히드라 주니어를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 배 터지게 먹여 주마.
한번 제대로 커 보라고.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마력이 들어오는 족족 르아 카르테를 복사해서 히드라 주니어에게 던져주자 여섯 개의 머리가 신난다는 듯 돌아가면서 떨어진 아이템들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 히드라 주니어와 주호 님의 우호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허기가 소폭 사라집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
끝없이 올라오는 시스템 메시지들.
먹는 족족 성장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녀석의 변화도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본 챠밍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뿔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덩치도 점점 커지면서 처음의 아주 작던 강아지 같은 모습에게 조금 큰 수준의 강아지 크기까지 변모했다.
몸 전체적으로 비늘 역시 선명해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거 잘하면…….
당장 쓸 만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으려나?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히드라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장.
그리고 중간에 흑장로가 정신을 차리면 재중이 형이 베사노스의 위력으로 잠시 흑장로를 눌러 버렸다.
【 블레이즈 슬래셔! 】
월드 네임드인 오버된 히드라조차 누를 수 있는 위력인데 흑장로 정도야…….
거기다 흑장로는 방어가 약해서 더 타격을 쉽게 입었다.
다운되는 횟수도 많았고.
고르곤이나 듀라한을 골랐으면 이렇게 편하게 마력을 뽑진 못했을 것이다.
“나르샤 누나, 흑장로를 고른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나르샤 누나에게 엄지를 척 올리자 나르샤 누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중이 형, 전사 형, 이쁜소녀의 매서운 한 방에 매번 흑장로의 몸이 묶이면서 도저히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스킬을 쓰려고 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로 녀석을 그대로 침묵시켜 버렸다.
마력 봉인이 이럴 땐 정말 좋단 말이지.
이 기술이 통하는 마법사 상대로는 최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참을 커 나가던 히드라 주니어가 갑자기 번쩍이더니 1차 성장까지 한 번에 이루어냈다.
이거.
너무 빠르게 크는 거 아냐?
한 번에 몸이 제법 커지고 히드라의 외형을 거의 닮은 녀석이 빛 사이로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여섯 개의 머리에서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건……!
챠밍이 그걸 보고는 외쳤다.
“오빠, 쟤 벌써 브레스 써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히드라 주니어는 다소 약해 보이긴 하지만 확실한 스톤 브레스를 날려서 흑장로의 몸을 그대로 굳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 이 녀석!
벌써 밥값 하는 거냐?!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