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성장형 네임드 (11)
“확실히…….”
챠밍 말대로 한 마리로 돌파가 안 되면 여러 마리를 끌고 가면 된다.
오버된 히드라가 아무리 철벽을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급의 네임드를 써 한꺼번에 밀어 붙이면 막을 수 없을 터.
그리고 그런 생각에 이르자 곧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결국 부족한 건.”
“마력이에요.”
“그래, 마력.”
이미 듀라한 한 마리를 부활시키는데 챠밍의 마력량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그렇다면 다른 네임드들을 전부 일으키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많은 마력이 요구된다는 말인데.
“그냥 회복으로는 힘들지?”
“네, 거의 불가능이에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챠밍의 마력량은 서버 내 최고 수준이었다.
마력 총량만 따지고 보면 막내별하고 앞에서 1, 2등은 하지 않을까.
그런 마력을 짧은 시간 내에.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써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오빠 도움이 필요해요.”
챠밍이 날 보면서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오빠는 할 수 있잖아요.”
“음, 아마도.”
단지 부족한 게 마력 하나뿐이라면.
다른 유저는 몰라도 그나마 내게는 넘어야 할 문턱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내게는 르아 카르테가 있으니까.
“바쁘겠는데.”
지금 일으켜 세운 저 듀라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부활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마력이 들어간 만큼 꽤 버티기야 할 테지만.
“결국 시간문제네.”
“빨리 움직여야죠.”
목표가 하나로 정해지자 머릿속도 깔끔해졌다.
곧장 페가수스를 불러내 올라탄 뒤 챠밍도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렸다.
“가자.”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다행히 시체로 부활한 듀라한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없어지진 않네.”
“그럼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래, 힘들게 부활시켜 놨는데 사라지면 안 되지. 대기 가능하지?”
“네. 여기에 세워두고 가면 돼요.”
일단 이건 안심인가.
바로 연합 사람들 전체에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혹시 서쪽 성벽 주변에서 네임드 잡고 있는 분들 있나요?
위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에 물었는데 답변은 바로 돌아왔다.
<엔느> 현재 고르곤 한 마리와 싸우고 있어요.
<스칼렛> 저도 서쪽 성벽과 가까워요. 듀라한 하고 싸우고 있는데 정말 세네요.
<주호> 좌표 좀 불러 주세요.
“휴, 근처에 있어.”
“다행이에요. 혹시나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히드라에게 도망갔다가 여기까지 왔나 봐요.”
사방으로 퍼진 네임드들을 각자 하나씩 잡고 있을 텐데 그중 두 마리는 여기에 와 있었다.
다른 유저들도 있으니 확인하면 더 많이 나올 테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곧장 엔느가 불러 준 좌표로 날아가 보니 황룡의 미르 길드가 고르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황룡과 엔느였고.
전방에서 고르곤의 움직임을 잘 억제하면서 레이드를 침착하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저쪽도 굉장하네요.”
“응, 일단 실력이 있으니까.”
바로 고르곤 위로 날아간 뒤 챠밍에게 페가수스의 운전을 넘겼다.
“나 갔다 올게.”
“네, 다녀와요.”
곧장 페가수스에서 떨어져 내려 고르곤의 등으로 낙하를 했다.
르아 카르테를 빼들고서.
【 웨폰 카피! 】
일단 나머지 한쪽은 복사본의 르아 카르테를 꺼내 들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전투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내구도는 뭐 크게 상관없겠지.
전사 형에게서 내구도가 있는 녀석을 받아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하지만 그게 없으면 전사 형이 히드라를 잡아 둘 여력이 없을 테니 아쉬운 점은 접어 두었다.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뇌속성! 】
쿠웅!
푸아악!
고르곤의 등에 착지와 동시에 르아 카르테들로 등을 찍자 그대로 고르곤의 등짝이 터져 나가면서 두 개의 검이 끝까지 박혔다.
보통 같으면 튕겨 냈겠지만 두 개의 르아 카르테를 든 내 쪽의 신성력과 암흑력 수치가 상상을 초월하기에 고르곤의 방어벽으로는 내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쿠오오오오!
갑작스러운 낙하 공격에 놀란 탓일까.
고르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엔느와 황룡도 이 의외의 사태에 깜짝 놀랐다.
이 와중에도 황룡은 끝까지 오더를 놓지 않았고.
“어? 주호 님?”
“고르곤이 날뛴다. 빨리 어글 잡아!”
그런 그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지금 좀 급해서. 주유 좀 하고 갈게요.”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엔느와 황룡.
“네?”
“음? 그게 무슨?”
“아, 마력 좀 뽑아 간다고요. 괜찮죠?”
등에 탄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난폭하게 날뛰는 고르곤의 등 위에서 곡예를 하듯이 바싹 붙어 있자 곧 르아 카르테로 마력이 계속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쓰는 양보다 아무래도 차는 양이 많으니까.
오러는 어차피 르아 카르테의 옵션으로 소모량이 완전히 상쇄되었다.
중요한 건 마력 흡수.
두 개의 르아 카르테의 마력 흡수량을 합치면 무려 30%.
단순히 마력만을 뽑아내기 위해 붙어 있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바로 마력이 풀로 차올랐다.
그럼 이건.
【 마력 전이! 】
풀로 차오른 마력을 곧장 페가수스에 타 있는 챠밍에게 전달해주니 챠밍에게 연락이 왔다.
<챠밍> 차고 있어요!
<주호> 많이 차?
<챠밍> 네, 그래도 몇 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주호> 오케이.
챠밍의 마력량이 워낙 높다보니 내 마력 최대치로는 바로 채워주기는 어려웠다.
뭐 어차피 바로 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지금 이 상태만 계속 유지해도 챠밍의 마력은 금방 채워 줄 수 있었다.
날뛰는 고르곤 위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이보다 확실한 마력 창고는 없었다.
일단 네임드의 마력 자체가 워낙 많으니 뽑아갈 수 있는 양도 엄청났다.
그렇게 등에 붙어 계속 버티자 고르곤의 뿔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킬인가?
그건 안 되지.
곧장 복사본 르아 카르테에 손을 떼고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불러내어 그대로 고르곤의 등을 타고 달려 뿔을 후려쳤다.
카앙!
콰직!
《 고르곤의 라이트닝 퓨리가 캔슬 되었습니다! 》
몸에 붙은 나를 떼어 내기 위해 사방으로 퍼지는 라이트닝 퓨리를 시전하려 했지만 사전에 드래곤 슬레이어의 마력 봉인으로 그걸 막아 버렸다.
【 웨폰 카피! 】
그리고는 다시 르아 카르테를 만들어 고르곤의 목덜미에 박아 넣자 저항이 더 거세어졌다.
“가만히 좀 있어라.”
이미 완전히 자리를 잡았기에 고르곤이 날 떨쳐내는 건 정말 힘들 것이다.
【 마력 전이! 】
【 마력 전이! 】
.
.
그렇게 원하는 만큼의 마력을 뽑아낸 다음.
고르곤의 등 뒤에서 뛰어내려 유유히 빠져나가자 엔느와 황룡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딱 눈빛이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하는 딱 이런 느낌?
<챠밍> 다녀올게요.
<주호> 어, 기다리고 있을게.
서쪽 성벽에서 죽은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이런 식의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챠밍이 또 하나의 네임드를 살려 낸 뒤.
다시 돌아오자 똑같은 방법으로 마력을 채워서 돌려보냈다.
잠시 엔느가 옆에 오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아, 음. 설명하긴 좀 그런데…… 레이드 방해된 건 아니죠?”
“아뇨, 방해는 아니에요. 덕분에 고르곤이 그쪽만 신경 써서요.”
확실히 내가 어글을 끄는 셈이 되어 황룡과 미르 길드원들이 그사이 꽤 많은 대미지를 줬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히드라가 꽤 강해서요. 이렇게까지 안 하면 못 잡겠더라고요.”
원하는 만큼 챠밍이 네임드를 일으켜 세운 뒤.
돌아온 챠밍이 날 불렀다.
“오빠! 근처에는 더 없어요!”
“오케이!”
고개를 돌려 엔느와 황룡에게 인사를 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가수스에 내가 올라타자 저 멀리서 네임드들의 부대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엔느와 황룡의 얼굴이 확 굳어져 버렸다.
고르곤의 레이드를 하고 있는데 꽤 다수의 네임드가 뛰어오고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둘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저거 우리 겁니다.”
“네?”
“음?”
또다시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에 그저 웃음만 지었다.
“정확히는 챠밍 거지만요.”
웅장한 덩치의 녀석들이 달려오더니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
개중에는 흑장로도 속해 있었다.
지하를 타고 다니는 몬스터도 마찬가지.
정말 종류별로 다 데리고 왔네.
그렇게 네임드 부대가 도착해 대기만 하고 있자 엔느가 넋 빠진 얼굴로 물었다.
“……이걸 위해서 그렇게 마력을 뽑아 가셨나요?”
“네, 뭐 그렇죠. 아, 시간이 좀 빠듯해서 먼저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중앙의 우리 팀이 있는 곳으로 향해 날아갔다.
대규모의 네임드를 데리고.
지나갈 때마다 다른 유저들이 놀라 외치는 모습도 보였고.
다행히 일일이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저런 규모의 네임드들에 달려드는 멍청이는 아예 없었다.
스쳐도 죽을 테니.
“오빠, 도착했어요.”
“아직까진 그대로네.”
히드라와 우리 팀의 대치 상황에 특별한 변동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뚫으려는 우리와 석상들의 격한 공방만 있을 뿐.
그렇게 다수의 네임드를 데리고 돌아온 우리를 본 나르샤 누나가 곧장 뛰어오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박이다.”
“그렇죠?”
“요근래 본 것 중엔 제일 놀랍네.”
막내별도 놀란 듯 입을 벌리고 웅장하게 서 있는 네임드들을 구경했다.
“하, 세상에……. 이거 찍어서 넘기면 난리 나겠어요.”
“확실히 한 작품이 나오긴 하겠네요.”
누가 상상이나 해보겠나.
이런 광경을.
그리고 이 녀석들은 이제부터 요긴하게 써먹어야 했다.
“챠밍, 돌격시키자!”
“네! 준비 끝났어요.”
챠밍이 손짓하자 시체 네임드들이 화답하듯 일제히 발을 굴려댔다.
“전부 진격!”
그러더니 곧장 오버된 히드라와 석상 네임드들이 있는 장소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쿠웅!
발 굴리는 소리도 예술이네.
압도적인 웅장한 소리와 진동이 땅을 타고 우리에게 전해졌다.
당연히 석상을 뚫기 위해 씨름하고 있던 전사 형,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동시에 우리를 돌아다 봤다.
“어이구! 저게 뭐야.”
“하, 진짜. 몰고 왔네.”
“우와아!”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이제야 발견하고는 환호를 하는 세 사람에게 외쳤다.
“다들 뒤로 빠져요! 이제 저 녀석들이 싸울 겁니다.”
고르곤이 먼저 거대한 덩치로 뛰어나가 석상 네임드들과 부딪히자 엄청난 파공음이 들려왔다.
쿠우우우웅!
콰아아앙!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듀라한들이 각자의 대검과 창을 들고 난폭하게 뛰어들어 석상 네임드들과 무기를 격돌했다.
촤아앙!
캬가각!
카아앙!
그 뒤를 이어 흑장로들 역시 스킬을 뿌 려대고 지하 몬스터들 역시 몸으로 석상 몬스터들을 들이치며 수많은 네임드들이 얽히고 부딪히는 대난장판이 벌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는 손을 불끈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잘한다! 전부 뚫어 버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