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3화 성장형 네임드 (5)
유저들이 네임드 템 하나에 목숨 걸고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 역시도 혀를 찼다.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덕분에 히드라만 더 세졌어요.”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우리는 거점이라 NPC들처럼 따로 퀘스트를 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애초에 유저들에게 돌아가는 보상 자체가 네임드 아이템에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저들도 네임드 템을 얻지 못하면 그냥 손만 빌려주고 끝나는 셈이 되겠지.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만. 이젠 저렇게 덤벼들지는 못할 거다.”
재중이 형 말대로 괜히 성벽 아래로 뛰어나갔다가 브레스 한 번에 증발이 된 모습을 보고 다시 달려 나갈 용기가 있을까?
유저들도 지금쯤 저 거대한 네임드들의 전투 사이로 끼어드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게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도할 놈들은 계속 나오겠지. 아예 못을 박아 놔야겠어.”
“어떻게 하려고요?”
“네임드들에게서 나오는 템을 경매로 붙여야지. 수익금은 참가한 모두에게 나눠 주고.”
“괜찮네요.”
퀘스트로 일괄 지급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재중이 형이 제안한 방법이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아이템을 주워 보겠다고 일일이 달려들지도 않을 거고.
저들도 괜히 죽어서 아이템만 떨구느니 그게 낫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드는 유저가 있다면.
이쪽에서 손을 써야겠지만.
곧장 사장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주호> 사장님, 드랍되는 아이템은 경매로 한다고 전해 주세요. 계속 먹이로 뛰어드는 일이 없게요.
<카이저> 흠, 알았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이 문제였는데.
그 후 사장님이 전체 말로 상황을 전달하자 그제야 상황이 진정되어 갔다.
죽었다가 거점 내부에서 부활해 다시 달려오는 이들이 썩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일단 드랍템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
더 이상 문제가 안 생기길 바라야겠지.
그렇게 우리가 적당한 선에서 히드라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이어지는 성벽 위에서의 포격들에 네임드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히드라에게 한두 마리 정도를 뺏기긴 했지만 모든 네임드들을 히드라가 먹어 치우는 일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전투 외곽 부분에 숨어 있던 흑장로들의 감염 스킬이 우리나 히드라에게 날아오지 않는 모습을 보면 챠밍과 화련의 연합이 제대로 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쪽은 특별한 문제 없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깔끔하게 처리하네요.”
“서쪽은 이걸로 된 건가.”
히드라를 데려와 서로의 세력을 상쇄함으로 급한 불은 꺼놨다.
문제는…….
“동쪽하고 남쪽이 문제네요.”
“아아, 우리가 가기 전에 뚫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녹록하게 잘 흘러가지는 않았다.
- 남쪽 뚫릴 것 같음.
- 지원 더 없어?
- 아, 진짜 계속 몰려오는데 어쩌라는 거야.
- 죽일 수가 없네.
-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저 숫자를 무슨 수로 잡아.
거기다 더 문제는.
- 동쪽 성문 터졌음!
- 추가 지원 바람!
- 이대로 쟤들 들어오면 다 죽는다고!
전체 말로 들려오는 소식들에 이마를 찡그렸다.
“결국 문제가 생기네요.”
우리 쪽 연합 유저들이 커버를 하고 있기는 해도 한 번에 이 정도의 네임드를 막아 내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재중이 형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알기에 표정이 굳어졌다.
“동쪽이 터졌다는 건, 곧 남쪽도 터질 테고.”
“그럼 안에서부터 개판이 되겠죠.”
미리 준비해 둔 방어 시설이 갖춰진 성벽에 의지해 모든 유저들의 피해가 적은 상태에서 버티고 있으니 그나마 이 정도로 막아 내는 거지.
솔직히 거점이 이미 무너져도 한참 전에 무너졌어야 정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안쪽에 네임드가 들어오면?
성벽 바깥의 한쪽 방향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 아니라 이젠 전 방향을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지금처럼은 절대 불가능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장 시선이 히드라에게 돌아갔다.
이젠 다른 방법을 써야…….
당장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긴 한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일 것 같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내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계산이 섰는지 곧장 대답했다.
“확실히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겠네.”
“승산 있겠죠?”
“30?”
“그 정도면 생각보다는 높네요.”
솔직히 한 10% 정도 부를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아주 최악의 경우에 쓸 만한 작전이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서.
그런 날 보면서 재중이 형이 웃어 보였다.
“아예 못 막을 거라면…….”
“그냥 터지게 놔둬야죠.”
이미 동쪽은 터졌고 남쪽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상태로 아무리 틀어막는다고 해도 흘러내린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동쪽만 해도 우리가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니까.
결국 모두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지금 시간부로 성벽을 포기합니다!
<카이저> 음? 그게 무슨 소리냐?
<스칼렛> 성벽 없이 어떻게 막으라고요?
<이슬두잔> 겨우 버티고 있는데, 정말 포기해요?
<황룡>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것 맞습니까?
성벽을 포기하라는 말을 전달하자마자 각 길드장에게서 동시에 귓말들이 폭주했다.
애써 틀어막는 중인데 그걸 포기하라니.
그리고 성벽을 포기했을 경우 일어날 일은 어린아이라도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거점을 그냥 포기하겠다는 말과 동일하니.
<엔느> 혹시 거점을 옮길 생각인가요?
엔느 역시 마찬가지.
막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냥 거점을 포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뒤에 따라오는 문제가 산적해 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여기서 네임드들에게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 테니.
<주호> 아뇨, 거점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엔느> 그럼 대체……?
<주호> 일단 지켜보시죠. 그리고 유저들의 피해가 없게끔 잘 대피시켜 주세요.
지금 성벽을 방어하던 유저들이 죽어 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저들의 숫자에서 나오는 화력이 우리에게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엔느> 하아, 일단 해보죠.
잠시 후, 채팅창으로 분주하게 글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 뭐야? 성벽을 포기한다고?
- 아놔, 여기도 텄네.
- 캬, 밸런스 봐라. 거점은 아예 만들지도 말라는 거 아냐.
- 네임드가 이렇게 몰려오면 운영자 할애비가 와도 못 막는다.
- 우리 이제 떠돌이 되는 건가?
- 당장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예 제국까지 돌아가야 할걸? 부활 지점 다 털리면.
- 기껏 여기까지 왔더니……!
- 정말 포기해?
- 다시 거점 세우길 기다려 보자.
다들 포기한 듯한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잠시 기다렸다가 챠밍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주호> 챠밍, 흑장로 그만 잡고 빠져나가.
<챠밍> 네? 정말 포기하는 건가요?
<주호> 아니, 이제는 정말 도박이다. 화련에게도 전달하고.
<챠밍> 알았어요.
화련에게서는 별말이 없는 걸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네.
“반응이 예상했던 대로네요.”
“아아, 누구나 생각할 법한 진행이지.”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누구나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오더대로 모든 유저들이 일제히 성벽에서 물러나자 잠시 한산해지더니 곧 네임드들의 치고받는 소리만이 남아 버렸다.
“슬슬 시작하죠.”
내 신호와 함께 재중이 형이 마수의 심장을 발동시켰다.
【 고대 마수의 심장! (가르가) 】
곧장 화염과 냉기가 치솟으면서 그중 화염이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베사노스로 흡수되어 갔다.
현재 히드라와 네임드들이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라 그런지 우리가 뭘 하든 크게 관심이 없어 보여 화력을 모으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그럼, 우리에게 관심을 좀 가지게 해볼까?”
재중이 형은 곧장 베사노스를 크게 휘둘러 스킬을 히드라에게 날려 보냈다.
【 블레이즈 슬래셔! 】
지금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한 방.
화르륵!
콰아아아앙!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이 히드라에게 빠르게 날아가 적중하자 히드라에게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악!!
네임드들이 어지간히 두들겨 패도 버텨 내던 여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울부짖을 정도의 폭발.
당연히 이 폭발로 히드라의 몸 전체가 타오르며 방어막에도 큰 구멍을 내었다.
폭발로 생긴 화염은 계속 불타오르면서 히드라의 방어막과 몸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들을 녹여 내는 중이었고.
“히드라는 화염 속성에 약하니까.”
상성으로 따지고 보면 재중이 형과 히드라는 거의 상극인 셈이었다.
다른 베히모스나 가르가에겐 이 정도의 피해를 주기는 힘들겠지만 히드라에게는 효과가 너무 좋았다.
당연히 히드라가 순간 다운되면서 주변에 있던 모든 네임드들의 집중 공격에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드라가 죽어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로 끝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진작에 했을 테니.
공격을 받던 히드라가 곧 고개를 쳐들면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주변에 몰려 있는 네임드들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놈 봐라. 우리에게 어글이 끌렸는데도 주변 네임드를 포기하지 못해.”
특이한 케이스.
보통은 어글이 끌리면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그럼, 무조건 따라오게 만들어야죠. 형! 상승!”
그렇게 히드라의 위로 페가수스를 이동하자마자 재중이 형이 활활 불태워 놓은 히드라를 내려다보면서 복사판 가낙스들을 잔뜩 꺼내 들었다.
【 마족화! 】
부족한 마력은 원천 마력으로 해결하고.
동시에.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화속성! 】
【 시간의 서! 】
【 오러 블레이드 - 뇌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풍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수속성! 】
걸 수 있는 모든 오러 블레이드를 걸었다.
마력이 쥐어짜이듯 모조리 빠져나가는 순간.
활활 타오르는 히드라의 몸통을 향해 모든 가낙스를 히드라를 향해 집어던졌다.
다른 네임드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몸을 빼지 못하는 히드라는 그 가낙스들의 집중포화에 그대로 뚫려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화르르륵!
콰지지직!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가낙스가 동시에 박혀 들자 히드라에게서 엄청난 화염 폭풍이 몰아쳤다.
이미 재중이 형이 한 번 불살라 놓은 상태라 처음부터 크리티컬이 터지며 녀석의 몸 곳곳이 터져 나갔고, 이어서 가낙스들의 화염 증폭이 연쇄 작용해 서로 위력을 더 끌어올려서 아예 히드라의 몸 전체를 타오르게 했다.
그 화염이 너무 강해 다른 네임드들이 다가가지 못할 정도.
거기다 냉기로 녀석의 몸을 얼려대는 현상까지 일어나 도망조차 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더니 이내 모든 머리가 우리 쪽으로 향하면서 몸까지 따라왔다.
당장 눈앞에 있는 네임드들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계속 퍼부으면?
결국 히드라가 우리를 따라 성벽을 넘어 거점 내부로 들어오자 크게 미소 지었다.
거점 안에 히드라를 일부러 데리고 들어오는.
미친 짓을 하면서.
막을 수 없다면.
막게끔 만들어야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