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성장형 네임드 (4)
성장을 위해 일부러 암흑 지대까지 달려갔던 베히모스 때를 생각해보면.
분명히 히드라도 레벨업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히드라의 저 행동을 보면 그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저와 거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사방에 있는 다른 네임드들을 공격하는 모습.
재중이 형이 히드라와 네임드들이 엉키는 것을 보고는 크게 미소 지었다.
“아주 제대론데? 우리를 무시하고 달려들다니.”
“네, 생각대로 되어 줘서 다행이네요.”
“그래, 히드라도 완전 몸이 달았네.”
재중이 형 말대로 히드라가 물불 가리지 않고 네임드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쪽이 우선순위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시스템적으로.
“거점을 파괴해 봐야 어차피 히드라가 얻을 수 있는 건 없겠죠.”
신성 제국이라면 또 몰라도 거점은 그냥 임시적인 거처일 뿐이다.
박살 나도 그저 다른 곳에 가서 지으면 그만.
옆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고 히드라가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까.
하지만 네임드들에 대해선 사정이 달랐다.
죽이면 죽이는 대로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을 테니.
거기다 지금 저렇게 밥상 차려 놓듯이 앞에 쫙 몰려들었는데 그걸 마다할 히드라도 아니었고.
“신났네, 저놈.”
재중이 형 말대로 정말 화려하게 스톤 브레스와 애시드 브래스를 남발하면서 주변의 네임드들을 굳히거나 녹여 내고 있었다.
물론 듀라한이나 고르곤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창과 대검을 든 가지각색의 듀라한들이 브레스를 쏘아대는 히드라의 머리들을 어떻게든 꺾어 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반항을 했다.
히드라의 거대한 몸체를 두들기는 듀라한의 공격들도 포함해.
카가가강!
키이이익!
하지만 히드라의 방어를 뚫기에는 듀라한의 공격이 그렇게까지 강력하진 않았다.
오러를 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동포탑처럼 스탠딩 자세를 고수하는 히드라여서 그런지 방어력 하나만큼은 베히모스도 게임이 안 된다.
그런 히드라의 껍질 자체가 워낙 단단해서 듀라한의 공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약해 보이기도 했고.
“안 먹히네요.”
“어, 방어력이 히드라가 압도적으로 위다. 거기다 표면에 있는 저 배리어들도 문제야.”
단순히 방어력만 강한 게 아니라 신체를 감싸고 있는 특유의 방어막.
예전에 내가 공격할 땐 신성력과 암흑력을 워낙 많이 세팅해 놔서 저 방어막을 그냥 찢고 들어갔지만.
지금의 듀라한은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고르곤 역시 마찬가지.
거대한 덩치로 돌진해 히드라의 몸을 대놓고 들이받았지만 히드라의 몸은 잠시 들썩거릴 뿐.
공격을 당하자마자 바로 히드라의 머리들이 달려든 고르곤을 향해 브레스를 쏘아대자, 고르곤도 그 자리에서 바로 몸이 굳거나 녹아내렸다.
그래도 이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날진 몰랐는데.
그동안 월드 네임드와 그냥 네임드가 붙는 장면을 제대로 볼 기회가 잘 없었다.
있어 봐야 베히모스가 다른 네임드 한 마리를 사냥하는 수준이었지.
이렇게 일 대 다수로 붙는 상황은 처음이니까.
그리고 막상 붙여 놓으니 오히려 히드라가 완전 압도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히드라 주변으로 석화 필드가 형성되어 다른 네임드들은 도망 자체를 못 가게 발이 붙들려 버렸다.
이미 이곳을 빠져나가기란 무리.
그러니 듀라한이나 고르곤이 히드라에게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이동 속도만 보면 듀라한이나 고르곤이 빠를 텐데 아예 도망도 못 가네요.”
“어, 거의 천적 수준인데?”
음.
이건 이것 나름대로 문제이려나.
어느 정도 둘 다 치고받는 그림을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오히려 학살에 가까운 그림이 그려졌다.
밸런스가 거의 폭망 수준.
그나마 통하는 것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듀라한이 쓰는 데스 버스트.
창에 잔뜩 모인 암흑 기운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아름다운 궤적을 내면서 히드라의 머리를 그대로 가격했다.
콰아아앙!!
이 공격에는 히드라도 피해가 있는지 머리 하나가 고개를 떨구면서 순간적으로 다운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다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듀라한을 공격하면서 시간을 벌어 주자 곧 다운된 머리도 회복이 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나 같으면 듀라한 여섯 놈이서 동시에 쐈을 거야.”
“네, 그러면…….”
“여섯 개의 머리가 한꺼번에 다운이 되지.”
하나만 잠시 다운되고 마는 상황이 아니라 히드라가 머리 전부가 퍼지게 된다.
그럼 주변에 있는 석화 필드가 해제될 테고.
“네임드들이 오합지졸이네.”
“아니라고는 못 하겠어요.”
원래 네임드 자체가 나홀로 강한 존재다.
평소에는 같이 움직일 일 자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협동, 협력 이런 쪽으로는 거의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네임드들이 각기 따로 노는.
딱 그런 상황.
고르곤 역시 뿔에서 전력을 잔뜩 모아 기가 라이트닝을 날렸는데 이조차도 잠시 히드라를 멈추게 했을 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 했다.
심지어 흑장로는 더 문제였다.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어 버릴 정도로.
“아놔, 저 새끼. 완전 고문관이네.”
흑장로들이 히드라에게 감염 스킬인 인펙션을 걸었는데 그 여파로 주변에 있는 듀라한과 고르곤이 동시에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거기에다가 흑장로가 기름을 부어 버린 셈이랄까.
듀라한과 고르곤들은 히드라에게 걷어차이고 흑장로에게 뺨까지 맞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저 같으면 흑장로들 다 죽여 버렸을 거예요.”
이런 말을 할 정도로 흑장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저들 다수가 적인 상황에서는 흑장로가 정말 극강의 네임드였다.
체력이 약한 유저들을 감염시켜 아주 샤르르 녹여 버릴 수 있으니까.
반대로 히드라같이 홀로 오롯이 강한 존재를 상대론 이야기가 완전 달랐다.
저 상태로 가만두면 히드라가 죽기 전에 주변에 있는 네임드들이 모조리 죽어 버리겠지.
상성상 거의 최악.
1:1에서는 더하고.
히드라의 브레스를 맞은 흑장로가 그 자리에서 허수아비처럼 쓰러져 버리는 걸 보고는 그만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흑장로의 방어가 상대적으로 워낙 약해서 그런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땅을 파고 다니는 알 수 없는 몬스터.
그들이 동시에 히드라 아래에서 땅을 파고 올라와서 히드라의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히드라를 땅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히드라의 덩치가 너무 커.”
“네…… 저건 무리죠.”
그냥저냥 몸집이 작은 유저라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겠지만.
히드라는 커도 너무 컸다.
체급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저 덩치를 끌고 들어갈 만큼 넓게 땅을 팔 능력이 지하 몬스터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숨어 다니더니 겨우 모습을 보네요.”
잡고 싶어도 쉽게 잡을 수 없는 이상한 지하 몬스터.
우리가 저놈들을 무시하고 다닌 이유는 잡아도 아무런 득이 없었다.
가끔 녀석들이 먹은 유저들이 가졌을 거라 예상되는 아이템이 툭 튀어나오는 정도?
잡는 데 들이는 노력에 비하면 정말 얻을 것이 없는 몬스터였다.
귀찮게 따라다니지만 않으면.
무시해도 좋은.
그렇게 땅 밖으로 나온 지하 몬스터들은 히드라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네임드만큼은 아니겠지만 경험치를 잔뜩 쥐어 줄.
다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부식이 되어 죽어 버린 지하 몬스터들 덕분에 히드라의 몸 전체에 빛이 퍼져 나왔다.
“저런, 레벨 오르네.”
“대미지도 전부 복구되었죠.”
그간 네임드들에게 입었던 피해가 모두 복구가 된 상태.
거기다 이전보다 레벨이 올라서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저대로 가만히 놔두면 아마도 또 하나의 오버된 월드 네임드를 만들 확률이 아주 컸다.
하나도 부담인데 두 마리?
이건 좀 어렵지.
재중이 형도 지켜보다가 결단을 했는지 내게 말했다.
“네임드들은 유저들이 잡아야 해.”
“바로 연락할게요.”
상황이 너무 히드라에게 기울어져 버리면 우리가 곤란하다.
<주호> 사장님, 서쪽 성벽에 유저들 집중시켜 주세요. 북쪽은 내버려 둬도 됩니다.
<카이저>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저들이 성벽에 계속 추가가 되었다.
<주호> 목표는 네임드예요. 히드라에게 당해서 많이 약해져 있으니까. 극딜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카이저> 좋아.
“사장님께 전달했어요.”
“그럼 우린 히드라를 좀 건드려 볼까?”
네임드들을 죽이는 건 유저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린 히드라를 조금 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우리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곧 성벽에서 집중포화가 시작되었다.
콰아아앙!
쿠웅!
쐐애애액!
퍼엉!
성벽에서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듀라한과 고르곤을 포함한 네임드들을 포격했다.
<주호> 화련은 흑장로 좀 잡아주세요. 후방에 떨어져 있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화련> 뒤처리만 하라는 거야?
<주호> 흑장로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화련> 나쁘진 않지.
<주호> 인펙션 큐어 가진 챠밍 보내드릴게요.
<화련> 그럼 좋고.
화련의 헤라 길드는 개개인이 강하다.
그러니 약해진 흑장로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펙션 큐어로 감염까지 막으면 더 쉽겠지.
<주호> 잠시 헤라 길드 좀 도와줘.
<챠밍> 감염 풀어 주라는 거죠?
<주호> 응, 좀 부탁해.
챠밍의 화력이 좀 아깝긴 한데.
일단 유저들에게 위협적인 흑장로부터 제거를 해야 하니.
괜히 감염 스킬에 성벽의 진형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그렇게 헤라 길드와 챠밍은 성벽에서 내려와 네임드들의 외곽을 돌면서 흑장로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보호해 주는 몬스터가 없고, 감염 스킬이 먹히지 않게 된 흑장로는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쪽은 된 것 같아요.”
“오케이.”
그리고 우린 공중에서 날아다니며 히드라가 네임드들에게 결정적인 한 타를 날리지 못하게 계속 견제했다.
레비아탄 롱 보우에 가낙스를 걸어서 날리는 식으로.
쐐애애액!
퍼어억!
히드라의 머리가 확 젖혀질 정도의 위력으로 날리면서 중간에 한 번씩 얼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억지력을 발휘했다.
캬아아악!!
그런 내 공격이 히드라를 화나게 했음은 당연했지만, 다른 네임드들이 달라붙어서 히드라를 공격하자마자 어글의 상대가 바뀌면서 다시 프리 상태로 변했다.
“절대 히드라가 네임드들을 죽이게 두면 안 돼.”
“네, 잘 알고 있어요.”
우리의 역할은 이번 싸움을 최대한 5:5로 가져가는 일이다.
서로의 균형을 맞추는.
그 와중에 성벽에서 함성이 울렸다.
“와! 드디어 듀라한 하나 잡았어!!”
히드라에게 얻어맞고 유저들에게 포격 당하자 버티지 못한 듀라한 중에 하나가 곧장 쓰러져 죽음의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 정도면 히드라가 탱킹을 대신해 주는 거네요.”
“어, 유저들을 바라보지도 않잖아.”
히드라의 한 방이 유저들보다는 확실히 더 강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듀라한이 하나 죽고 난 뒤 생겨 버렸다.
“어? 드랍 템이다!”
“저거 창 아냐?”
“듀라한 스피어!”
“음……!”
그 순간 서로 눈치를 보던 수많은 유저들이 성벽에서 동시에 뛰어내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서로 비등비등하게 딜을 하면.
소유권이 누구에게 넘어갈까.
몬스터인 히드라를 빼 버리면 이번엔 모든 유저들에게 드랍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먼저 먹는 놈이 임자지!”
“야! 미쳤어?! 그거 내 꺼야!
“장난쳐?! 건들지 마라!”
젠장!
네임드 템에 완전 눈이 멀었어.
그리고 그때.
달려들던 유저들에게 고개를 돌린 히드라에게서 생성되는 애시드 브레스를 발견하고는 크게 외쳤다.
“전부 피해!!”
하지만 성벽의 보호 없이 무턱대고 튀어나온 유저들에게 이걸 피할 방법은 없었다.
곧장 히드라가 쏜 브레스가 쓸고 지나가자 히드라의 레벨이 그대로 올라 버렸다.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싹 녹아 사라졌고.
그렇게 히드라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진 유저들의 러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미치겠네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