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성장형 네임드 (1)
크어어엉!
네임드들을 차곡차곡 잘 먹어치웠는지 제대로 오버가 된 베히모스가 신성 제국의 성벽을 몸으로 한 번 들이받자, 모래알로 만든 것처럼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쁜소녀가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저게 저렇게 쉽게 무너지는 거였어요?”
“아니, 전에는 한참 동안이나 두들겨야 무너졌잖아.”
솔직히 나도 놀랐다.
오버가 됐다고 저렇게까지나 강해질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심지어 방어도 엄청나게 강해졌는지 성벽에 설치된 방어포들의 집중포화를 맞고도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밀리지 않고 꼿꼿하게 버텨냈다.
이건 전과 달리 저 강력한 하르포들이 전혀 힘을 못 쓴다는 말이었다.
이전에는 하르포에 맞으면 밀리기라도 했지.
지금은 아예 간지럽다는 듯 그걸 전부 맞아 주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피해가 없는 걸로 보이죠?”
내 말에 재중이 형도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좀 세졌네.”
“좀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많이.”
집중포화를 그대로 맞으면서 무너진 성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베히모스를 잠시 지켜본 재중이 형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일정 이하 대미지는 무시인가? 어지간해서는 흠집도 못 내겠는데?”
“그런 옵션도 있어요?”
“모르지. 그래도 유추는 해볼 수 있어. 아니라면 다른 하나밖에 없고.”
“다른 하나요?”
“어, 대미지를 입는 것보다 저 녀석의 신체 회복력이 더 높을 때.”
“……그건 그것대로 괴물이네요.”
“역시 그렇지?”
회복량이 그렇게 높다고?
지금 쏟아지는 저 하르포들의 대미지 총량을 보면 어마어마했다.
일반적인 유저는 몇 초만 서 있어도 그대로 녹아 버릴 만큼이나.
아니, 몇 초가 무슨 말인가.
포격을 당하자마자 순삭이지.
1초 컷.
딱 그 표현이 어울렸다.
그만큼 지금 저 모습은 일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한 상황이었다.
재중이 형 말대로 일정 대미지 이하 무시이거나 회복력이 너무 높거나.
둘 다 쉽지 않겠는데.
“차라리 일정 대미지 이하 무시가 나을 거다.”
“회복력보다는요?”
“어, 우린 관통이 꽤 높은 편이니까. 방어력이 높은 게 나아.”
너무 방어력이 높기에 일정 대미지 아래로는 대미지가 안 들어가더라도 우린 그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으니.
“뭐 관통 방어도 높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다만.”
“그것도 문제죠.”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놀라운 상황이 이어졌다.
하르포와 주변에 잔뜩 대기 중이던 유저들의 마법을 곧이곧대로 맞아주면서 브레스를 시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대놓고 맞고도 캔슬이 안 돼?
마치 유저나 NPC들을 지나가는 벌레 취급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준비하고는 그대로 제국 중앙을 향해 브레스를 날려 버렸다.
화염과 뇌전, 바람이 뒤섞인 현존하는 최강의 브레스.
발동한 엘레멘탈 브레스가 일자로 쭉 신성 제국을 가르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앙!
화르르륵!
쐐에에엑!
파지지직!
쓸고 지나가는 자리의 모든 것들이 녹아 버리고 불살라졌다.
힘들게 만들어 놓은 정성을 싸그리 무시한 채로.
그것도 저 커다란 제국 반대편까지 완전히 일자로 관통해 버리자 우리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국이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위력이 장난 없네요.”
전보다 훨씬 넓고 길게 갈라 버린 터라 이번엔 중앙 성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지켜보던 전사 형도 깜작 놀라 외쳤다.
“방금 시전 시간 봤냐? 몇 초였어?”
그 물음에는 나르샤 누나가 대답했다.
“대략 5초?”
“미쳤네. 그렇게 오래 걸리던 시전 시간이……. 전에는 거의 20초 아니었어?”
“맞아, 그때는 그랬지.”
“절반도 아니고 1/4이라니.”
시전 시간이 짧다는 건 그만큼 대비할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캔슬 시키기까지 여유가 거의 없는 편이었고.
저런 대단위 브레스는 안 맞으려면 피하거나 캔슬 시키거나.
딱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정면에서 같은 브레스나 위력 높은 마법으로 맞부딪히는 방법은 예외로 두고서라도.
혹은 오러를 중첩해서 쳐 날리던가.
“솔직히 저도 캔슬 시킬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어요.”
아예 목에 검을 박아 놓고 최종 비기를 날리면 도 모를까.
지금은 그것도 통할지는 잘 모르겠고.
재중이 형이 그런 베히모스를 보고는 말했다.
“완전 괴물이 돼서 돌아왔잖아?”
“네, 이제 좀 월드 네임드 같아 보이네요.”
전에는 어떻게든 잡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진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워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그때 챠밍이 놀란 눈빛으로 외쳤다.
“또 날려요!”
“음?”
아니나 다를까.
좀 전에 쐈던 브레스를 몇 초도 안 되어 다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는 넋이 나갔다.
그렇게 또 한 번 이어진 엘레멘탈 브레스가 또다시 긴 활주로 같은 자국을 남기며 제국을 갉아 버렸다.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 듯 그냥 웃고 말았다.
“저건 좀 반칙 아냐?”
“브레스 쏘고 얼마나 지난 거죠?”
“10초도 안 됐다.”
“시간의 서?”
“모르지. 그냥 재장전 시간 자체가 짧을 수도 있어.”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점.
막내별이 뭔가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에! 저거……!”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전사 형이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빌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저 새끼는? 방금 은신을 쓴 거야?”
은신.
모습을 감추는 기술인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점이었다.
고르곤의 고유 기술.
그런데 베히모스가 은신을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은신을 쓸 줄 알았다면 죽기 전에라도 썼을 텐데…….
그렇다는 건 애초에 은신이라는 스킬은 베히모스에게 없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란 듯이 은신으로 몸을 감추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곧장 나르샤 누나를 보면서 외쳤다.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어요?”
“모르겠어. 진실의 눈으로도 안 잡혀.”
고개를 저으면서 당황하는 나르샤 누나의 모습을 보고는 손을 꽉 쥐었다.
안 잡힌다고?
진실의 눈을 쓰고 있는데도?
『 진실의 눈 / 특수 제작 아이템.
-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다. 』
고르곤도 이거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무래도 고르곤보다 상위 스킬인가 봐요.”
그때 재중이 형이 뜻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설마…… 고르곤에게서 흡수한 건가?”
“네?”
“예?”
“어?”
다들 놀란 눈빛으로 재중이 형의 말을 들었다.
“은신을 못 쓰던 녀석이 갑자기 쓸 수 있다는 건, 중간에 얻었다는 말밖에는 안 되겠지.”
“스킬을 배운다고요?”
“정확하게는 흡수. 뭐 배운다도 틀린 말은 아니지. 어쨌든 지금 쓸 수 있으니까. 둘 다 똑같은 소리겠네.”
이건 좀 놀라운데.
기존의 네임드들은 가지고 있던 스킬 외에는 어떤 스킬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네임드고 뭐고.
그냥 몬스터가 스킬을 새로 추가한다는 것 자체가…….
오버되어서 다른 스킬을 쓰는 것까지는 봤으니까 그저 은신을 쓸 수 있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재중이 형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설마 유저들처럼 스킬을 추가하는?”
“가능성이 있지.”
그 말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기존의 베히모스만 해도 강한데 다른 스킬을 배운다고?
그리고 그걸 확인하게 되는 데는 얼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녀석이 절대 쓸 수 없었어야 할 스킬이 발동되었으니까.
“데스 버스트……!”
잿빛의 듀라한의 최종 스킬.
검게 물든 거대한 섬광이 허공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유저들과 NPC들을 동시에 녹여 버리면서 저 멀리 뻗어져 날아갔다.
거기다가 사방에 터지는 폭발들 사이로 잠시 녀석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앞발이 휘두르는 순간.
녀석의 커다란 발톱에 서린 뭔가가 유저들의 몸통을 통째로 썰어 버리고 지나갔다.
아주 깔끔하게.
“저건…… 오러죠?”
“아아, 확실히 오러 맞네.”
이전의 베히모스가 발톱으로 긁어 버린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저건 완벽하게 절단시켜 버렸다.
암흑 오러.
마법만을 날려 대던 녀석이 오러까지 쓰면?
접근전에서도 정말 미친 위력이 나오게 된다.
원래 신체 능력이 뛰어났으니까.
거기다 그걸로 끝나지도 않았다.
녀석이 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서 검은 파장이 옆으로 일렁거리더니 사방으로 돔 같은 형식의 마법이 터져 나왔다.
챠밍이 그게 어떤 스킬인지 바로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아마겟돈!!”
사방을 검은 파장으로 터트리는 최악의 스킬.
이건 흑장로의 그 최종 방어 스킬이었다.
특히 이건 위력이 셀 수밖에 없는 게 본인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터트리는 기술이라 방출형 마법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았다.
무엇보다 거리가 짦을수록 위력이 올라갔다.
흑장로야 당연히 신체가 약하니 이런 스킬이 필요했겠지만.
특히 베히모스 같은 몸이 튼튼한 녀석이 접근해서 쓰면.
정말 최악의 스킬이 될 수도…….
그걸 본 전사 형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표정이 시커멓게 굳더니 말을 꺼냈다.
마치 아니길 바라는 듯.
“흑장로의 스킬을 썼다는 건…… 저놈이 감염도 쓴다는 말이잖아?”
!!!
이 스킬의 위력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챠밍 역시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껏 상대한 스킬 중 제일 까다로운.
정말 최악의 스킬.
“설마…… 아니겠죠?”
“하아, 아니길 바라야지.”
하지만 그런 우리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한 듯 남아 있는 유저들과 NPC들이 시퍼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인펙션……!”
감염 스킬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저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우악! 이거……!”
“감염이다!”
“은신도 쓰더니 미쳤나 저 새끼!”
“저걸 대체 무슨 수로 잡아?!”
정도껏 해야 잡을 엄두라도 나지.
지금은 그야말로 괴물 중에 괴물이었다.
그때 급하게 연락이 들어왔다.
<연> 아직입니까?
<주호> 지금 가는 중이긴 한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연> 하, 이런 젠장.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깊은 빡침의 한숨.
우리도 여기서 지켜보는 내내 놀랐는데 지금 연의 심정은 어떨까.
<연> 일단 최대한 빨리 오시죠.
그러고는 연락이 끊겼다.
“저 녀석, 초조한 모양인데?”
“네, 예전하고 달리 꽤 당황한 모습이었어요.”
언제라도 여유가 있던 모습과는 달리 많이 버거워하는 느낌이라…….
“근데 솔직히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 잘못하다가 우리도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재중이 형이 저렇게 말할 정도로 현재의 베히모스는 위협적이었다.
점점 파괴되어 가는 신성 제국을 본 전사 형이 넋을 놓고는 나르샤 누나에게 말했다.
“대체 운영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괴물을 만들어 놓은 거야? 다른 네임드들의 스킬을 먹는 놈이라니.”
“그러게. 해도 정도껏 해야지.”
게임 경력이 많은 나르샤 누나와 전사 형조차 이런 녀석은 본적이 없던 모양이다.
하긴.
상식을 어긋나는 놈이니까.
그러다 재중이 형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한숨을 쉬었다.
“잘못하다가 히드라나 가르가를 먹기라도 하면…….”
그 중얼거리는 말에 우리 모두 화들짝 놀라 재중이 형에게 일제히 시선이 모였다.
“아아, 아직은 안 먹었으니까 너무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지는 말라고.”
“은신에 빙결에 석화에 뇌전에 감염까지 쓰는 놈을 상상하게 만들고요?”
“으음, 역시 좀 그렇지?”
“좀이 아닌데요?”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라…….
이건 그냥 도망가는 것밖에는 답이 없겠는데.
“그래도 그나마 다른 월드 네임드는 잡아먹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괴물이긴 하지만.
그사이 막내별이 흔들리는 눈으로 저 멀리 난동을 피우는 베히모스와 불타오르는 신성 제국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러다 진짜 망하는 거 아니에요?”
막내별 말대로 잘못하다가 그냥 이 지역 전체가 망해 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 그냥 저놈이 돌아다니는 모든 곳이 다.
그리고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어지럽히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 신성 제국 제넨샤의 하르 기둥이 파괴됩니다. 》
《 신성 제국 제넨샤를 보호하던 기운이 사라집니다. 》
《 신성 제국 제넨샤가 멸망했습니다.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