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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28화 (718/1,404)
  • #728화 새로운 준비 (8)

    베히모스는 빠르다.

    그것도 미친 듯이.

    지상에서 날아다니는 유닛도 쫓아가는 판에 베히모스를 따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뭔가의 먹이를 던져 주고 도망 나오면 그런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이 일의 핵심은 연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데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이전과는 다른 방법을 써야 했고.

    지금은 베히모스가 원하는 먹이를 잔뜩 신성 제국 근처로 배달해 놓은 상태였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바로.

    마누스 스태프.

    이 무기에 달려 있는 리셋 스킬을 사용하면 무한대로 워프가 가능했다.

    당연히 전투 중에 사용하기엔 체력과 마력이 십분의 일이 된다는 페널티가 너무 크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면 다시 워프를 반복할 수 있었다.

    꼭 전투에만 쓰라는 법은 없지.

    이걸 생각하게 된 건 화련이 내가 잘하는 것을 언급했을 때였다.

    기존처럼 네임드 수십 마리를 동시에.

    그것도 한참 동안 달고 다니는 일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반면 리셋 스킬로 워프를 반복하면 어글을 한 번에 떼어 놓고 다시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더 좋았다.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도 확연히 줄어들고.

    신성 제국에서 최대한 멀리 있는 곳에서 네임드들을 떼어 놓은 일 역시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저쪽에서 눈치를 챌 테니까.

    그렇게 서쪽, 동쪽, 남쪽 할 것 없이 한 덩어리씩 가져다 놓고 기다린 결과.

    결국 암흑 지대에서 먹이가 없어지자 베히모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성 제국 제넨샤를 향해.

    원래라면 좀 더 암흑 지대에서 네임드들을 잡아먹은 후 신성 제국이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을 테지만.

    지금은 녀석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내가 달고 다닌 네임드들이 없으면 더 성장할 수가 없으니까.

    그때 이쁜소녀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오빠, 베히모스가 유저들을 공격하면요?”

    이쁜소녀의 말은 네임드들을 공격하지 않고 암흑 지대를 들어온 유저들을 공격해서 오버를 할 수도 있다는 물음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옆에 있던 전사 형이 대신했다.

    “흠, 넌 고급 스테이크랑 과자 부스러기랑 두 개가 눈앞에 있으면 뭘 선택할 거냐?”

    “아하!”

    한 번에 이해가 되는 아주 심플한 전사 형의 물음에 이쁜소녀가 바로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아도 당연히 스테이크다.

    과자를 미친 듯이 좋아하지 않는 이상에야.

    역시 웃으면서 전사 형에게 말했다.

    “베히모스가 보기에는 그 정도의 격차는 있겠죠.”

    “물론이지. 둘의 경험치 총량 자체가 다를 텐데. 유저 수백 잡아먹는 것보다 네임드 하나가 나을 거다.”

    절대 유저를 사냥하지 않는다고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네임드를 우선적으로 사냥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리고 높은 쪽의 확률에 판을 거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지금은 그 판단이 잘 통했기에 일이 제대로 성사되었다.

    “신성 제국 쪽 반응은요?”

    “흐음, 아직. 베히모스가 움직였는지 확인 못 한 것 같다.”

    이미 우리 측에서 신성 제국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사람을 내보낸 상황이었다.

    일시적인 우군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한 번 부딪혀야 하는 상대.

    그리고 지금처럼 민감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테니까.

    “생각보다 정보가 늦네요.”

    “그 성당의 지하에 집중하는 모양이지.”

    상대도 정찰을 하기는 할 테지만.

    거의 모든 병력을 갈아 넣어서 다른 곳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분명 어딘가가 구멍이 나도 날 것이다.

    지금은 외부의 불필요한 전력을 모두 가져다 쓰는 딱 그런 상황으로 보였고.

    “그래도 금방 알아채겠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아닌 경우는…….”

    “흐흐흐, 그냥 털리는 거지.”

    전사 형의 웃음에 나 역시 따라 웃어 버렸다.

    베히모스가 전진하는 것을 빠르게 눈치채지 못하면.

    아무리 연이 마족의 무기를 잔뜩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대한 늦게 알아채길 바랄 수밖에.

    “우리 쪽은 어떻게 됐어요?”

    “거점?”

    “네, 거점은 잘 돌아가고 있나요?”

    “음, 유저들이 계속 들어와서 활발해졌지. 길드 건물도 빌리면서 세금도 잔뜩 들어오고 있고.”

    “괜찮네요.”

    원래라면 우리가 아닌 신성 제국 제넨샤를 향해 갔어야 하는 유저들을 죄다 중간에서 가로챈 상태였다.

    당연히 유저들이 꺼려 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테지만.

    저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걸 떠올린 전사 형이 크게 미소 짓고는 물었다.

    “이거 때문에 소문을 내라고 한 거냐?”

    “네, 뭐 그런 셈이죠.”

    “성당 지하에 연의 연합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라.”

    전사 형의 말대로 일부러 이 소문을 크게 내달라고 했다.

    영웅의 무기가 있을지도 모르는 장소가 있는데.

    이곳은 연의 연합밖에 못 들어간다는 사실.

    이걸 까발리는 순간.

    유저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러면 연을 칠 수밖에 없지.”

    눈앞에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큰 먹이가 있는데 자신들은 손가락만 쪽쪽 빨고 기다리라고 하면 그걸 참을 수 있는 유저가 얼마나 있을까.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그냥 두고 보기는 힘들겠죠.”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확률이 0인 상태와 그래도 확률이 있는 상황은 아예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건드려 보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에 자리를 잡긴 힘들어.”

    연의 직위는 신성 제국의 추기경.

    상황이 유저라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성 제국과 척을 지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부활 포인트를 신성 제국에 둔다?

    이건 목을 내놓고 계속 죽여 달라는 말하고 똑같으니까.

    “영웅의 무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신성 제국으로 가겠지만…….”

    “반대로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우리 쪽이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유저들이 신성 제국 제넨샤가 아닌 우리 쪽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이건 곧.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연을 칠 거라는 뜻이기도 했고.

    “이 시점에 암흑 지대를 돌파하는 인간들이 욕심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지.”

    “네, 덕분에 우리도 일이 편해졌어요.”

    만약 베히모스를 신성 제국으로 보내 놨는데 같이 방어를 해 줄 유저들이 득실댄다면?

    신성 제국에 자리를 잡은 유저가 넘쳐서 어떻게든 방어를 해낸다면?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더 이상은 연을 건들 수 없게 되니까.

    그러니 그 상황만은 확실히 막아야 했다.

    해서 나온 생각이 우리 쪽으로 유저들을 전부 돌려놓는 작업이었다.

    지금처럼.

    일부러 길을 유도하면서.

    물론 이런 방식은 연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을 치기 위한 밑바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연결고리가 적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베히모스가 연을 치는 데 방해를 못 하도록 거점에 묶어 두는 거니까.

    만약에 여기까지 전부 예측이 가능하다면?

    모르긴 해도 아마 지금쯤 연이 서버를 전부 먹지 않았을까.

    전사 형이 두 손 들었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내게 웃었다.

    “너는 참. 대체 몇 번을 꼬아서 작전을 만드는지…….”

    “연처럼 머리가 좋은 놈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현재 연이 우리를 잘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비수를 숨겨서 녀석의 뒤를 친다.

    * * * * *

    연 측에서 베히모스가 나타난 것을 눈치챈 건 베히모스가 암흑 지대를 완전히 벗어난 때쯤이었다.

    처음부터 작정한 우리와 달리 연 쪽은 암흑 지대에 유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더 일찍 알아챈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BJ나 우리 쪽에 도착한 유저들의 방송을 확인해서 그럴 수도 있었고.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녀석들이 눈치채는 순간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신성 제국의 도개교가 올라가면서 정문을 닫는 모습이 우리 눈에 포착되었다.

    정확하게는 나르샤 누나의 시선에.

    “어때요?”

    “지금 성문들 다 올라갔어. 방어포들도 성벽에 쭉 배치되었고.”

    우리가 녀석들을 눈으로 확인하려면 그만큼 성에 접근해야 하는데 이러면 반대로 녀석들 역시 우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까이 가기 부담스런 상황에서 우리가 녀석들보다 월등한 점 하나.

    나르샤 누나가 있으니까.

    멀리서 상대의 동태를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연은 보여요?”

    “아니. 아직.”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안 나온다는 건…….”

    “네 말대로 안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럼 저렇게 연이 방어에 나서지 않으면 정말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으려나?”

    나르샤 누나의 웃음에 옆에 있던 전사 형 역시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주면 우리야 땡큐고.”

    이 경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신성 제국이 무너지는 일을 구경만 해도 된다.

    “베히모스는요?”

    전사 형에게 물으니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서쪽에서 네임드 사냥을 하고 있어.”

    “조금 시간은 걸리겠네요.”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서 녀석을 이리로 끌고 오는 일은 안 된다.

    지금은 수확하기 위해 지켜보기만 할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연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귓속말에 빨간 불이 계속 들어오는 걸 보면 연도 이미 눈치를 챈 듯했다.

    음, 이거 곤란한 타이밍인데.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연의 연락을 받았다.

    <연> 어디십니까?

    <주호> 지금 암흑 지대 안인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연> 시간이 없으니 바로 말씀드리죠. 지금 신성 제국으로 좀 와 주셔야겠습니다.

    <주호> 음, 지금 빠지기는 좀 힘듭니다. 베히모스을 잡기 위해 주변 정리를 하는 중이었거든요. 동시에 상대하기는 힘드니까.

    <연> 그 베히모스가 신성 제국으로 오는 중인데 모르셨나요?

    핵심을 확 찔러 오네.

    <주호> 아, 그런가요? 안 그래도 종적을 놓쳐서 곤란했습니다만.

    <연> 알았으면 바로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계약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주호> 음, 그게 생각해 보니 우리가 좀 밑지는 장사 같아서 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유저들을 받아 보니 생각보다 많이 들어오던데요?

    <연> ……이제 와서 계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주호>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헐값에 들어가는 느낌이라…….

    <연> 그럼 얼마를 원하십니까?

    <주호> 350으로 하죠. 괜찮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한순간에 100이나 올려 버리자 연이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잠시 멈춘 순간.

    바로 연락을 끊어 버렸다.

    옆에서 듣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고.

    “크큭, 시간 잘 끄는데?”

    “이렇게라도 끌어봐야죠.”

    어쨌든 계약 관계이니 도와주긴 해야 하는데 그게 꼭 지금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사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래, 바로 연락이 오면…….”

    “뻔하죠?”

    아니나 다를까.

    연에게서 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연> 350.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 바로 처리해주셔야 합니다.

    <주호> 일단 여기 정리되는 대로 가도록 하죠. 당장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라.

    <연> 알겠습니다. 늦으면 계약은 없다는 걸 잊지 마시길.

    연도 한창 바쁜지 너무 끌지 않고 연락을 종료했다.

    그리고 그걸 듣는 순간 재중이 형이 미소 지었다.

    “역시, 화련 말대로 이놈 우리를 가지고 놀 생각이었네.”

    “네, 100이나 올렸는데도 받는 걸 보면요.”

    방금 딜을 올린 건 바로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해서 돈을 올려 녀석의 속셈을 찔러본 셈인데 바로 걸려들었다.

    어차피.

    돈이 얼마가 걸리든.

    녀석은 우리에게 그 돈을 줄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마구잡이로 베팅을 해도 되는 거겠지.

    “나중에 화련한테 밥이라도 사야겠네요.”

    “아아, 이번엔 찬성.”

    화련의 조언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베히모스와 붙었을지도 모르니.

    얼마 뒤.

    시간이 흘러 완전히 오버가 된 베히모스가 신성 제국의 성벽을 화려하게 날려 버리는 것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럼 어디.

    고생 좀 해 보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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