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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26화 (716/1,404)
  • #726화 새로운 준비 (6)

    화련의 그런 감탄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연이 가장 불편할 만한 사실을 대놓고 긁는 거죠.”

    저렇게까지 연이 숨겨 가면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제넨샤의 성당 지하를 공략하기 위해서.

    아니, 애초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를 꺼려 하겠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 마냥.

    조금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올 물건인데.

    이게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그곳은 바로 전쟁터가 될 것이다.

    “형, 어때요?”

    바로 전사 형에게 물어보자 상황을 살피고 있던 전사 형이 몇 가지 영상을 띄워주었다.

    “다들 아주 신났어.”

    “그럼?”

    “어, 제대로 러쉬가 시작됐다.”

    그리고 몇몇 BJ들이 보여 주는 영상 속에서는 대규모의 병력을 구성해 암흑 지대를 넘어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지금까지 꽤 소극적이었던 중소 길드들까지도 이번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 듯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안 그래도 베히모스에 의해 암흑 지대의 길이 열린 상태라 불이 붙었던 유저들에게 신성 제국에 있는 영웅의 무기라는 떡밥은 완전히 기름을 부어 버린 격이었다.

    이런 활활 타오르는 유저들의 관심은 연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 상황을 본 전사 형이 한껏 짓궂은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

    “크크크, 내가 못 먹는 감, 남도 못 먹게 하려는 거냐?”

    “네, 뭐. 좀 그런 셈이죠.”

    성당 지하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당장 우리가 먹지는 못한다.

    성당 지하로 들어가려면 제넨샤를 소유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연과 정면에서 맞부딪히기에는 우리도 아주 큰 부담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거기다 사람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힘까지도.

    그래서 정확하지도 않는 추측을 전사 형의 인맥을 통해서 퍼트렸다.

    그리고 그런 추측성 기사들을 눈덩이 굴러가듯 아주 크게 부풀려져서 지금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도저히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적당한 진실이 온갖 거짓들과 뒤섞인 상황.

    그 상태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마지막 딱 하나 남은.

    신성 제국에 존재할지 아닐지 확인도 안 된 영웅의 무기에 집중되어 버렸다.

    실소유를 했으면 또 모를까.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영웅의 무기라는 건 모두에게 열린 기회다.

    “연이 안팎으로 고생하겠어.”

    “네, 내부에서는 정보가 새어 나갔고, 바깥에서는 이제 엄청 거친 압박이 들어올 테니까요.”

    그때 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쳐다보니 그냥 받아보라는 듯 피식 웃기만 했다.

    “받아봐. 급하게 찾네.”

    “흐음, 눈치챘을까요?”

    지금의 이 작업들.

    연이라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뭐, 어때. 발뺌하면 그만이지. 정확한 건 하나도 없잖아.”

    “하긴 그런가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연에게 온 연락을 받았다.

    <주호>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연> 혹시 이쪽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아주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는 걸 보니 확신까지는 아닌 것 같고.

    <주호> 글쎄요?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연> ……영웅의 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호> 아, 저도 방금 커뮤니티에서 보긴 했어요. 솔직히 좀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그게 있는 건가요?

    <연> 하아…… 아닙니다. 없는 이야기가 좀 많이 부풀려진 것 같군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역으로 물어보자 연이 한숨을 쉬었다.

    입이 근질근질할 텐데.

    이쪽에서 누군가를 심어 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연의 입장에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이라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정보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시인하는 거니까.

    그런데 연에게서는 전혀 다른 말이 전해졌다.

    <주호> 흐음, 바로 연락까지 주신 걸 보면 좀 급해 보이는군요?

    <연>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베히모스를 좀 빨리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우리에게 유저들이 신성 제국으로 넘어올 수 있는 사다리를 빠르게 치워 달라는 말이었다.

    배히모스가 암흑 지대에서 날뛰는 중이라 암흑 지대 곳곳에서 빈틈이 생겨 버려서.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유저들이 넘어오면.

    연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시작될 테니.

    <주호> 흐음, 일단 우리도 서두르고 있기는 합니다만. 녀석이 암흑 지대로 들어가 버려서 레이드가 쉽게는 되지 않을 것 같네요. 녀석 하나만 해도 벅찬데 주변에 다른 네임드들이 더 있어서 조금만 어긋나도 둘러싸일 테니까요.

    <연>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50짜리 거래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전에 우리 거점을 250에 산다고 연이 말했었다.

    베히모스를 잡아 주는 건 그 거래 조건 속에 포함되어 있었고.

    <주호> 만약 우리가 베히모스를 잡지 못한다면요?

    <연> 그럼, 거래는 없던 걸로 하죠. 그리고 제안을 좀 변경하겠습니다. 오늘부터 하루씩 늦어질 때마다 10씩 거래 대금을 깎겠습니다.

    이건 통보인가?

    연 말대로 하면 당장 3일만 늦게 잡아도 30이라는 거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셈이었다.

    <주호> 흐음, 마음대로 거래 조건을 바꾸시는 건 이쪽에서도 불편한 일입니다만?

    <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대신 오늘 바로 잡아 주시면 30을 추가로 드리도록 하죠.

    <주호> 오늘 당장 말인가요?

    <연>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주호> 흐음…… 우리 쪽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겠네요.

    <연> 좋은 소식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연락이 끊겼다.

    아주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끊어 버리네.

    옆에서 대화를 모두 지켜본 재중이 형이 말했다.

    “호오, 이렇게 나오시겠다?”

    “생각보다 우리를 추궁하지는 않네요?”

    “아마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샜다고 판단했겠지. 우리가 당장 전쟁을 걸지 않는 것도 한몫했을 테고. 거기다 250이 적은 돈도 아니니까.”

    “의심은 가지만, 건들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다는 거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쪽에서도 입질이 왔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쪽요?”

    “경쟁자들.”

    다른 나라로 향한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네.

    그들도 소식을 접했을 테니.

    불확실한 것보단 확실한 이쪽을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연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복잡할 거야. 우리까지 적으로 두기에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는 않겠다는 거군요.”

    “그래, 저건 제발 싸움 좀 걸지 말라는 부탁이기도 해.”

    덕분에 우리가 움직이기는 더 쉬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만히 있는 거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럼, 우리 이제 손님 맞을 준비를 하죠?”

    * * * * *

    “자자, 어서 옵셔!”

    “오신다고들 수고하셨습니다!”

    “저쪽 방향으로 가시면 신화의 거점이 있습니다.”

    “장비와 부족한 물약 모두 채울 수 있어요.”

    “가시면 부활 장소부터 지정하세요!”

    힘겹게 네임드를 피하거나 겨우 따돌리고 암흑 지대를 넘어온 유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가 준비한 임시 보호소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설마 여기에 이런 게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그리고 유저들이 등 떠밀리다시피 우리의 거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런 모습은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곳곳에 임시 거처를 두고 유저들을 맞이하는 우리 쪽 원정대 사람들을 보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재중이 형 역시 마찬가지.

    “장사 잘 되네.”

    “돈은 안 받잖아요.”

    “저 사람들이 다 돈이야.”

    맞다.

    앞으로 세금으로 들어올.

    우리 거점으로 가서 돈을 써 줄 잠재적인 고객들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왜 이런 일을 하나 궁금해하던 원정대 사람들도 지금은 웃으면서 고객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때 원정대 사람들에게서 뭔가 연락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B 36 지점. 좌표는 231.947입니다. 듀라한 접근 중.

    - 라저. 전투조. 금방 도착합니다.

    “형, 가요. 듀라한이 유저들 따라왔나 봐요.”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우리 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따라 달렸다.

    얼마 뒤.

    “으악! 살려줘!”

    “아씨! 여기까지 와서 죽을 순 없다구!”

    “좀만 더 달려! 조금 더 가면!”

    그때 달려가던 챠밍이 마법을 시전했다.

    복사본 마누스를 꺼내들고.

    【 엘레멘탈 브레스! 】

    화르르륵!

    파지직!

    쎄에엑!

    그러자 화염과 뇌전, 바람의 브레스가 동시에 엮이면서 달려오던 유저들의 뒤에 바싹 따라붙은 듀라한의 몸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콰콰쾅!!

    크아아악!

    엘레멘탈 브레스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불태우면서 뇌전으로 한꺼번에 몸을 지져대자 그 강해 보이던 듀라한이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꺾더니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쿠우우우웅!

    워낙 달려오던 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사방으로 먼지구름을 피워 올리면서 바닥에 길게 엎어지는 광경이란.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마법.

    【 엘레멘탈 브레스! 】

    이번에는 리셋 스킬로 엘레멘탈 브레스의 쿨을 되살려서 한 번 더 듀라한의 몸체를 태우고 지져대자, 도망가던 유저들이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그 폭격의 현장을 지켜봤다.

    “하, 무슨 마법이 연속으로……!”

    “듀라한이 저렇게 쓰러진다고?!”

    “말도 안 돼.”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거야?”

    암흑 지대에서의 패자나 다름없던 듀라한이 눈앞에서 지나가는 잡몹인 양 쓰러지는 광경을 믿기 힘들었는지 유저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거기다 갑자기 또 하나의 마법을 준비했다.

    【 시간의 서! 】

    그다음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마법.

    【 엘레멘탈 브레스! 】

    화르르륵!

    파지직!

    쎄에엑!

    크아아악!!

    여지껏 다운되어 있는 듀라한에게 또 엘레멘탈 브레스가 떨어지자 듀라한이 완전히 침묵해 버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마무리해.”

    챠밍이 손짓을 하자 이번에는 이쁜소녀가 단독으로 달려 나갔다.

    정확히 듀라한이 쓰러져 있는 장소로.

    【 광화! 】

    “죽어엇!”

    그리고는 거대한 토르를 그대로 들어 올리더니 있는 힘껏 내려치면서 듀라한의 갑옷을 사정없이 땅바닥 속으로 구겨 넣었다.

    【 헤븐즈 스트라이크! 】

    콰아아앙!!

    【 헤븐즈 스트라이크! 】

    【 헤븐즈 스트라이크! 】

    .

    .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연속된 헤븐즈 스트라이크에 도저히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방으로 폭발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폭발이 잦아드는 순간.

    듀라한은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졌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여기 끝났어요.”

    네임드를 날려 버렸는데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이쁜소녀의 말투.

    그 속에는 이미 몇 번은 이렇게 해본 것 같은 담담함이 묻어나 있었다.

    “좋아,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잔뜩 밀려 있다고.”

    앞선 전사 형의 신호와 함께 다들 이동하려고 하자 여기까지 오면서 갑옷이 넝마가 된 채 겨우 버티던 어리둥절한 표정의 유저 중 한 명이 물었다.

    “어…… 이게 대체 뭡니까?”

    듀라한을 순식간에 녹여 버린 우리를 보고 너무 놀랐는지 입을 쩍 벌리고 물어보는 유저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신성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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