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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19화 (709/1,404)

#719화 적과 적 사이에서 (9)

화염과 냉기를 동시에 쓰는 네임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완전한 반대 속성이기도 하고.

하나를 써서 다른 하나가 중화된다면 아예 안 쓰니만 못하니까.

하지만 이 가르가는 달랐다.

자유자재로 냉기와 화염을 네 장의 날개에서 동시에 뿜어냈다.

속성 간의 간섭이 전혀 없이.

이건 가르가의 고유 능력이라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냉기와 화염을 같이 쓰면.

당연히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냉기와 화염을 동시에 막아 주는 방어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거의 사기에 가까운 능력.

특히 일단 경직시켜 놓고 위력이 있는 다른 스킬로 죽이는 형식이 히드라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히드라는 석화를 하고 독으로 녹이거나 체력을 다하게 한다면.

가르가는 얼려 놓고 그 얼어 버린 몸을 통째로 태워 버리는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화염 공격을 받으면 얼음이 녹아 버리는 게 당연하겠지만, 가르가의 경우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았고.

반대되는 속성들이 간섭 없이 각기 따로 노는.

거의 최악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아마 다른 때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가르가를 공격하지는 없겠지만.

이미 베히모스와 얽혀 싸우면서 가르가의 체력은 충분히 떨어진 상태.

지금이라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가르가를 한 번 노려보기에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그래, 이 녀석을 홀라당 넘겨주기에는 아깝지.”

가만히 놔두면 베히모스의 밥이 되어 경험치가 되어 버릴 테니.

우리가 잡는 것이 베스트.

그리고 그걸 해낼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다.

가르가가 화염 오러를 줄기차게 뽑아내는 순간.

재중이 형이 가르가의 날개에 박아 놓은 베사노스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사방에 퍼지는 화염 오러를 급격하게 빨아들이면서.

“오우. 이거 제대로인데?”

재중이 형이 시뻘겋게 달궈지는 베사노스의 검신을 보고는 바로 감탄했다.

베사노스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의 진한 색으로 물드는 광경은 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르가의 화염 오러가 저런 식으로 흡수가 된다면……!

파괴력 면에서는 아마 사상 최강이 되지 않을까?

가르가가 우리를 죽이기 위해 화염을 내뿜었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우리가 전혀 등에서 떨어지지 않자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키에에엑!!

마음대로 안 되어서 한껏 당황한 그런 울음소리.

그런 가르가를 보고는 재중이 형이 진하게 웃음을 지었다.

“오, 이놈 봐라. 완전 당황했어.”

이 정도로 화염을 뿜어냈다면 당연히 뭔가 미동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예 베사노스를 박아 놓고 그대로 버티고 있으니.

가르가가 당황할 수밖에.

베사노스가 내 쪽의 화염까지 동시에 빨아들이다 보니 나 역시도 화염 오러에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타격이 전혀 없어요.”

냉기에 의한 체력 피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냥 피해가 전무했다.

이 정도까지 역상성일 줄은 몰랐는데.

냉기만 없다면 베사노스는 완전히 가르가를 잡는 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냉기는 내 쪽에서 제어가 가능했다.

르아 카르테를 가르가의 날개에 박아 놔서 지속적으로 르아 카르테의 옵션 중 하나인 치명타 확률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로케가 크리티컬을 터트릴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가지.

크리티컬이 터지면 석화 확률이 무려 50% 상승한다.

거기에.

타격 시마다 석화 확률 중첩.

타격 시마다 석화 시간 중첩.

이 두 가지 옵션이 확률과 시간을 늘려주고.

석화 부위 공격 시 석화 확률까지 더 추가되니까.

지금은 로케로 찍으면 찍는 대로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 석화 확률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르아 카르테가 올려 준 치명타를 발판 삼아 로케를 계속 녀석의 날개의 관절에 찍어 넣자 석화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석화가 더 넓은 부위로 퍼져 나가면서 날개 전체를 거의 석상처럼 만들어 버릴 정도.

쨍그랑!

다만 이런 공격도 계속하기 힘든 것은 로케의 내구도가 엉망이기 때문이었다.

몇 번 공격하기도 전에 로케의 검신이 깨져 버리면서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바로 인벤에서 다른 로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녀석의 날개에 로케를 찍어 대면서 미소지었다.

크.

내게는 아직 더 많은 로케가 남아 있다.

거기다.

이걸 전부 소모해 버린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르아 카르테를 아예 가르가의 날개에 박아 놓은 상태라 마력이 계속 해서 내게 흘러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있던 원천 마력에 더해 가르가에게서 뽑아내는 마력까지 더해지자 마력이 풀로 차서 아예 내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면.

당연히 써먹어야지.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남아도는 마력을 아예 웨폰 카피로 싹 돌리면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로케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그런 로케를 전부 가르가의 등짝과 날개에 찍어 넣기 시작했다.

푹!

푹!

푹!

캬아아악!!

마치 다트를 하듯 먼 곳은 던져서.

가까운 곳은 있는 힘껏 찍어 넣는 식으로 로케를 박아 넣는 작업을 하자 곧 가르가의 등짝과 날개에 로케가 잔뜩 박혀서 석화가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날개 정도만 공격했던 것을 넘어서 아예 가르가의 커다란 몸체 전체를 공략하자 냉기 역시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특히 석화 상대에게 대미지가 추가되는 옵션까지 적용되는지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결코 적지도 않았다.

로케의 전 옵션을 거의 다 끌어다 쓰고 있는 상황.

아마 이게 로케라는 마족의 검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활용법이 아닐까.

그동안은 근접전을 하지 못 해서 그렇지.

지금처럼 붙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미친 조합은 없었다.

재중이 형도 이걸 보고는 어이가 없는지 혀를 내둘렀다.

“하…… 미친 새끼.”

당연히 가르가의 움직임 역시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석화에 굳어 버린 날개를 펴지도 못하는데 더 말해 뭐할까.

이제 가르가는 날아오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두 다리로 어떻게든 도망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재중이 형도 녀석을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았다.

화력을 잔뜩 모은 베사노스로 가르가의 등짝을 찍어 넣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아앙!!

화르르륵!!

바로 가르가의 등짝이 터져 나가면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으니까.

이건 나도 재중이 형도 깜짝 놀라 버렸다.

평타가 저런 위력이라고?!

“형…… 대체 그거 얼마나 압축시킨 거예요?”

“나도 몰라. 그냥 최대치로 빨아들였지.”

베사노스는 화염을 빨아들여서 위력을 축적시킬 수 있었는데 이젠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나게 압축된 화염 오러에.

암흑과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가 적용되고.

특히 화염 상태에서는 공격력이 무조건 수 배로 상승한다.

이건 그냥 평타만 해도 미친 듯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말이지.

압도적인 화력과 공격력.

솔직히 저건 어지간한 스킬들은 명함도 못 내민다.

평타 한 방이 스킬을 가볍게 압살하는 위력을 보여 주자 가르가의 등짝이 순식간에 넝마가 되어 갔다.

쾅쾅!

콰콰쾅!

콰앙!!

재중이 형이 어설프게 공격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아예 약한 부위만 골라서 찍어 대다 보니 위력이 더욱 증폭되어 대미지가 폭발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위력 시위에 가르가의 머리가 축 처지더니 두 다리 또한 힘을 잃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네 장의 날개 역시 마찬가지.

전체적으로 다 경직이 일어났는지 모든 신체 부위가 힘을 잃고 바닥에 부딪혀 커다란 굉음을 일으켰다.

쿠웅!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내려앉은 소리도 컸고.

그리고 이 소리에 베히모스를 상대하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놀란 표정을 얼굴 가득 보여 준 채로.

“방금 다운된 거야?”

“하, 고작 둘이서 가르가를 눌렀다고?”

“뭘 어떻게 해야 저렇게……?”

“정말 괴물들이군.”

저들 말대로 월드 네임드에 고작 두 명이 올라타서 결국은 위력으로 다운을 시켜버렸다.

이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베히모스를 상대하는 유저들이 지금 몇 백 단위인데도 겨우 버티는 느낌이라면.

정말 이쪽은 단둘이서 똑같은 월드 네임드를 다운시킨 것이었다.

화염 오러든.

냉기 오러든.

이 녀석이 움직일 수 있어야 가능하지.

그렇게 녀석이 다운 되는 것을 보자마자 빠르게 로케를 집어넣고는 발루딘을 꺼내 들었다.

스탠딩 상태에서 낼 수 있는 위력의 최대치를 뽑아내려면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과의 조합이 단연 최상이었다.

【 용병왕의 분노! 】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화속성! 】

【 시간의 서! 】

【 오러 블레이드 - 뇌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풍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독속성! 】

아마 지금 이 정도는 해야 재중이 형의 저 베사노스의 위력에 비슷하게 근접하려나.

그리고 재중이 형 역시 옆에 서서 베사노스를 들어 올리면서 웃었다.

“누가 많이 깎나 한 번 해볼까?”

“밥 내기죠?”

“크큭, 당연하지. 오늘 비싼 거 얻어먹을 거다.”

둘 다 마수의 심장을 쓴 상태라 마력 부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간다!”

“갑니다!”

그렇게 둘 다 사정없이 가르가의 축 처진 몸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둘 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이미 스킬은 넘어선 지 오래.

내 쪽이 대미지를 더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면, 이미 재중이 형의 베사노스는 대미지가 완성형이라 처음부터 압도적인 폭발력을 보여 주었다.

쾅쾅쾅!

콰앙!

콰아아앙!

진짜 센데?

반대로 내 쪽은 두 개의 검에서 나오는 검속으로 좀 더 많은 타격 숫자를 가져가면서 서서히 대미지를 따라잡아 갔다.

둘의 공격이 이어질수록 가르가의 거대한 덩치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계속 들썩거렸다.

아마 수십 명이 동시에 치는 것보다 지금 우리 둘이 치는 대미지가 더 높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 질 수 없다는 듯 대미지를 쭉 터트리는 와중에 가르가가 드디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넝마가 된 몸을 겨우 일으키며 다시 냉기와 화염을 내뿜는 가르가를 보고는 둘 다 아쉬움을 토했다.

“조금 부족하네.”

“아깝네요.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느낌상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수준이라.

조금만 더 치면……!

“저거 마무리하는 걸로 오늘의 승자를 가리자!”

“좋아요.”

그런데 이때.

한 섬광이 가르가를 향해 날듯이 뛰어오더니 그대로 가르가의 머리를 후려쳤다.

【 광화! 】

【 헤븐즈 스트라이크! 】

동시에 폭발적인 섬광이 터져 나왔고.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런 공격에 머리가 확 돌아간 가르가가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지더니 죽음의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월드 네임드, 미지의 고대 마수 가르가가 죽었습니다! 》

“이런……. 소녀가 마무리해 버렸네.”

“뭐, 어때요. 그럼 형이 사는 걸로 하죠.”

“야! 그건 아니지!”

그렇게 승부가 날아가자 서로 허망한 눈으로 보다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달려오는 이쁜소녀를 보고는 그저 웃어 버렸다.

“저 잘했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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