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화 적과 적 사이에서 (8)
이전에도 여러 속성을 쓰는 네임드가 있기는 했다.
화염과 냉기를 같이 쓰는 놈도 있었고.
하지만 그건 스킬이나 마법에 한해서 돌아가면서 한 번씩 쓰는 정도였지 아예 몸 전체가 화염으로 뒤덮인 경우는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냉기 전체가 네 장의 날개에서 뻗어 나오면서 사방을 얼리자, 가까이 있던 베히모스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크허어엉!
베히모스가 냉기에 대항해 계속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점점 몸이 얼어 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역부족인 것 같았다.
베히모스도 분명히 화염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저렇게 얼려지는 건가?
이건 가르가의 냉기 속성이 베히모스의 저항을 압도한다는 뜻이었다.
“형, 저거……!”
“어, 페이즈가 넘어간 것 같다.”
체력이 일정 이상 떨어지면 나오는 패턴들.
가르가는 그것이 저 냉기 속성으로 보였다.
솔직히 다른 속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 이전의 화염 속성이 워낙 강해서였다.
당연히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화염의 속성이야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의 속성 저항으로 어떻게든 비비면서 달려들면 된다.
하지만 저 냉기 속성은 완전히 반대되는 속성이었다.
가까이 가면 그냥 얼어 버리는.
심지어 가용 범위도 엄청나게 넓었고.
이전에는 화염의 오러라고 했다면 지금은 냉기 오러라고 해야 하나?
“아예 패시브 수준인데? 끝나질 않잖아.”
“네, 정말 계속 나오네요.”
냉기가 어느 정도껏 나와야 접근을 하지.
주변 공기조차 하얗게 서릴 정도로 얼려 버리는데 답이 있을까.
그냥 몸과 하나인 것처럼 꾸준하게 쏟아져 나오는 냉기에 혀를 찼다.
단발성 스킬도 아니고 패시브형 스킬의 위력이 저렇다면…….
특히 날개를 펼쳐 낼 때마다 냉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주변을 계속 얼리는데, 저러면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히드라는 스킬 시간이라도 있었지. 저건 진짜 사기네.”
히드라도 석화를 하는 브레스부터 시작해 히드라 주변을 석화시키는 광역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건 일회성 스킬이라 어떻게든 그 상황만 잘 넘기면 그 뒤로 빈틈을 파고들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패시브형이라.
답이 없는 거지.
그렇게 베히모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느려지자 한 가지 걱정이 바로 떠올랐다.
“형! 녀석이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내 외침에 재중이 형도 표정이 확 굳어졌다.
베히모스가 몸으로 찍어 눌러서 그동안 움직이지 못 했는데 지금 같으면 그냥 베히모스를 무시하고 날아오르면 된다.
그리고 그런 예상처럼 가르가가 서서히 몸을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낌새를 보였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페가수스를 바로 녀석들을 향해 접근시켰다.
지금까지는 페가수스가 피해를 볼까 봐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젠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최대한 붙일 테니, 로케 전부 날려!”
베히모스의 도움이 아닌.
온전히 우리의 능력으로만 가르가를 지상에 잡아 둬야 하는 상황.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재중이 형이 페가수스를 접근시켰는데 어느 순간 페가수스의 몸도 서서히 얼려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먼 곳까지 냉기가 전해지는 건가.
베히모스가 얼려지는 게 무리는 아니었네.
“집중해, 한 번 놓치면 끝이다.”
“네!”
“오래는 못 버틴다.”
페가수스의 몸이 점점 얼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팔을 움직이는 것에도 점점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며 로케를 들어 올렸다.
딱 걸려라!
그대로 팔을 휘둘러 로케를 날렸다.
로케는 냉기가 가득한 오러 사이를 겨우 헤집으면서 가르가의 몸으로 날아가 녀석의 몸에 박혀 들었다.
퍼어억!!
됐나?
확실히 가까이 다가와서 그런지 명중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위력도 제법 올라간 상태였다.
하지만 중간에 냉기 오러를 뚫으면서 로케가 느리진 것도 영향이 있는 듯 바로 크리티컬이 터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 뒤 몇 번을 더 날렸지만 냉기에 의해 로케가 힘을 잃어버리고 멈추기까지 했다.
제대로 된 위력으로 박혀야 크리티컬이 터질 건데 날아가는 중간에 속도가 확 느려져 버리니 답이 없었다.
“큭. 형. 더 접근해야겠어요. 위력이 확 떨어져요.”
“칫, 이게 한계인데.”
재중이 형 말대로 이 이상 녀석에게 접근하면 오히려 페가수스가 지상으로 떨어질 판.
지상에서 이 녀석들을 상대하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될 터.
지금이야 재중이 형이 페가수스로 회피를 도맡아 해 주니까 이렇게 집중해서 한 방을 노리는 중이지.
그게 아니라면 바닥에 쏟아지는 광역기들을 피해 다니면서 정확한 지점에 맞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할 수 없네요. 형! 한 번만 바싹 붙여 주세요!”
“알았다!”
재중이 형이 굳은 표정으로 페가수스를 몰아서 완전히 냉기 오러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거리가 가까워졌다 생각한 순간.
바로 남은 로케 중 하나를 들어서 가르가 쪽으로 겨누었다.
정말 아껴 두려고 한 건데.
일단은 한 번이라도 녀석을 멈춰야 하니까.
로케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
이걸로!
【 스톤 슬래셔! 】
그리고 로케를 크게 휘두르자 회색빛의 스톤 슬래셔가 뻗어 나가며 가르가의 날개에 정확히 명중되었다.
동시에 진행되는 석화의 기운.
크드드득!
스톤 슬래셔가 날아가는 것을 보자마자 재중이 형이 페가수스를 돌려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과연……!
이게 통할까?
이것마저 안 통하면 답이 없는데.
그렇게 가르가의 날개 부분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겨우 안도를 했다.
캬아아악!
녀석의 한쪽 날개가 굳어져서 날지 못하게 됐으니까.
거기다 냉기도 한쪽 날개가 굳어서 약해지자 베히모스가 냉기에 풀려나면서 다시 가르가를 압박해 갔다.
“잘했다.”
“네,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에요.”
스톤 슬래셔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딱 한 번뿐인 요행일 뿐.
다음에는 이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르가의 날개에 걸린 석화가 풀려났고, 다시 아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가르가가 베히모스를 느리게 만들고 다시 날아오르려는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본 재중이 형이 눈빛을 굳히고는 내게 한 가지를 말했다.
“쓰자.”
“뭘요?”
“고대 마수의 심장.”
재중이 형이 품에서 고대 마수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히드라를 잡고 나온.
확실히 이거라면……!
“녀석을 제압하려면 이거밖엔 없어.”
“그럼, 제가……!”
“아니, 이건 내가 한다.”
그리고 고대 마수의 심장을 재중이 형이 바로 썼다.
【 고대 마수의 심장! 】
《 고대 마수 - 히드라의 심장이 장착되었습니다. 》
《 마수화를 진행합니다. 》
《 히드라의 특성을 일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히드라의 스킬 중 일부를 쓸 수 있습니다. 》
피부색이 회백색으로 변하면서 히드라와 비슷한 피부 형태가 되자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한마디 했다.
“머리가 여러 개가 되진 않아서 다행이군.”
“음, 그건 좀…….”
정작 쓰면서 걱정한 게 그거란 말인가?
하긴 머리가 여러 개면…….
재중이 형은 바로 가르가의 위로 페가수스를 옮겨놓고 녀석을 향해 뛰어내렸다.
한 번 작정하면 정말 빠르다니까.
그렇게 잠시도 고민할 틈도 없이 뛰어내려 가르가의 깃털을 한 손으로 잡아 겨우 몸 위에서 자세를 잡더니 베사노스를 꺼내들고 가르가의 날개에 암흑 오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기운을 씌운 베사노스를 박아 넣었다.
키아아아악!!
고통에 찬 가르가의 비명.
그리고 그와 함께 가르가의 날개 한쪽 전체가 석화가 되어 굳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히드라의 스킬을 쓴 거네.
고대 마수의 심장을 쓰면 일부 히드라의 스킬을 가져다 쓸 수 있으니까.
그러자 냉기가 바로 반토막이 나면서 주변의 냉기 역시 급감하기 시작했다.
가르가와 붙어서 얼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재중이 형도 버틸 수 있게끔 되었고.
하지만 반대편의 날개는 그대로였기에 아직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잠시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자연스럽게 페가수스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곧장 나 역시 르아 카르테와 로케를 들고는 가르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올려다 본 재중이 형이 깜짝 놀라서 외쳤고.
“야! 너……!”
“혼자 하면 무리죠!”
그리고 재중이 형이 떨어져 내린 반대편에 뛰어내려서는 곧장 로케를 가르가의 다른 날갯죽지에 박아 넣었다.
캬아아악!!
이건 백 프로 크리티컬이지.
반대편의 날개 역시 석화에 굳어 가면서 냉기가 확 줄어들어 버렸다.
당연히 몸이 얼어가던 재중이 형 역시도 냉기에서 풀려났다.
히드라의 심장이 저항을 해 준다고 하지만.
오래 버티고 있었다면 아마도 재중이 형도 쉽진 않았을 터.
재중이 형이 날 보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아, 진짜. 이놈은 누굴 닮아서는.”
“형이죠. 뭐.”
둘이 동시에 가르가의 한쪽 날개씩을 맡고 석화를 시키자 더이상 냉기가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르가의 날개가 네 장이다 보니 완전히 냉기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아까에 비해서는 충분히 버틸 만해.
날개 네 장에서 전부 냉기가 나올 때는 베히모스조차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인데 반해, 지금은 나와 재중이 형의 심장들이 냉기에 저항하고 있었다.
《 베히모스의 심장이 가르가의 냉기에 일부 저항합니다. 》
완전히 버티는 건 아니더라도.
몸이 움직일 수 있다면 할 만하지.
그렇게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만큼.
베히모스 역시 저항이 가능했는지 가르가에게 공격을 해왔다.
쾅!!
쾅!!
쿠앙!!
이제껏 당한 걸 갚기라도 하겠다는 듯.
아주 격하게.
그것도 거대한 앞발로 가르가의 싸대기를 후려치는데 덕분에 우리의 몸 역시도 그 충격에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가 저 충격 때문에 가르가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놔, 이 새끼를 붙들고 있으니 이제 저게 지랄이네.”
그냥 가르가에 붙어만 있어도 힘든데 베히모스까지 날뛰니 더 난이도가 올라갔다.
재중이 형이나 나나 인상을 쓰고 베히모스를 노려봤고.
기껏 풀어줬더니 하는 짓이 아주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중이었다.
“형! 어떻게 하죠?!”
“일단 버텨 봐! 생각 중이야!”
그런데 그때.
콰아아앙!
쿠아아앙!
갑자기 베히모스의 등짝으로 수없이 많은 충격이 가해지면서 베히모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응?
이게 대체?
나와 재중이 형이 놀란 눈으로 베히모스 쪽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부터 우리 쪽 원정대와 연의 연합군이 전부 몰려와서 베히모스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형이 연락했어요?”
“아니, 그래도 나이스 타이밍이네.”
그때 전사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방패전사> 상황이 너무 밀려서 들어왔다. 혹시 방해된 거냐?
<주호> 아뇨, 딱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덕분에 베히모스의 시선이 분산되어 가르가에 가하는 공격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으니까.
아무리 베히모스가 방어가 좋다고 해도 저 많은 유저들의 공격을 무한정 두들겨 맞고 있을 순 없지.
그것도 가르가에 붙어 있으면 가만히 있는 표적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순간.
갑자기 가르가에게서 화염의 오러가 다시 퍼져 나왔다.
아마 냉기의 오러로는 답이 안 나오니까 쓴 모양인데.
그런데 속성이 완전 반대인 두 개의 오러가 동시에 퍼져 나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설마 두 가지를 같이 쓸 수도 있는 거였나?
하지만 오히려 이건 우리에게는 기회였다.
이렇게 화염을 뿜어낸다면.
그 누구보다 강한 유저가 가르가에 올라타 있으니.
그리고는 재중이 형과 시선을 맞췄다.
“형! 가르가 먼저 끝장내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