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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14화 (704/1,404)

#714화 적과 적 사이에서 (4)

명궁의 페가수스 쪽 연합이 모두 전멸한 뒤 남은 정적.

그 정적 사이에서 나와 연이 서로에게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그렇고 연도 그렇고.

수틀리면 언제든지 판을 엎을 수 있다는 딱 그 정도의 신뢰 관계가 만들어 낸 눈빛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죠. 약속이 있으니.”

약속의 내용은 심플했다.

가르가의 봉인을 연의 연합에 주고.

내가 연이 가지고 있는 마족의 무기 세 가지를 전부 손댈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내용.

물론 이러려면 서로 정말 믿을 수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에게는 딱히 그 수준의 믿음은 없는 상황이라.

그때 전사 형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나?”

“아, 전사 형. 수고하셨어요. 아뇨, 금방 끝날 겁니다.”

그러면서 연을 보자 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지금의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이제 명궁의 페가수스 연합도 싹 날려 버렸으니 가르가의 봉인을 풀고 약속한 보상만 받아내면 그만.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전사 형이 날 보는 눈빛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바로 물어보았다.

“혹시 무슨 문제 있어요?”

내 물음에 전사 형이 고개를 돌려 멀리 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 먼저 끝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면서 가리킨 것은 봉인지의 출구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아, 베히모스. 깜빡하고 있었네요.”

일단 봉인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베히모스를 묶어 두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너무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이미 저 녀석 때문에 많이 죽었어. 베히모스만 아니었어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전사 형이 그 말을 하면서 연을 흘깃 노려보자 연이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흠흠.”

서로 같이 죽자는 식으로 베히모스를 끌어들인 장본인이 여기 있으니 전사 형이 저렇게 볼 수밖에.

당장은 베히모스를 막고 있다는고는 하지만 곧 여기까지 베히모스가 쳐들어올 것이다.

레벨업이 가능한 베히모스가 이런 꿀(?)자리를 그냥 지나치진 않겠지.

이쪽에 먹잇감이 넘쳐나니까.

아예 귀환을 하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전에 한 번 따돌려 봤지만 결국 베히모스가 우리를 따라온 것을 보면 인지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 놓아 봐야 결국은 싸워야 한다는 뜻.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 연을 보고는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음, 글쎄요…….”

내 물음에 멀리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베히모스를 한참 바라보던 연이 내게 다시 물었다.

“잡을 수 있겠습니까?”

“흐음.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이전의 베히모스라면 어떻게든 잡아낼 수 있겠지만.

유저와 NPC들을 잔뜩 잡아먹고 레벨이 올라간 지금의 베히모스는 또 달랐다.

이쪽에서도 정말 무리를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남은 인원 중 절반 이상을 희생해야 녀석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죽을 수도 있고.

그러면 그 와중에 다시 레벨업을 하면서 베히모스의 체력이 원상복귀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었다.

“레벨업이 되는 네임드가 얼마나 잡기 힘든지는 잘 아시죠?”

“모를 수가 없죠.”

겨우 다 잡아 놓는다고 하더라도 레벨업 한 방에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난이도로 치면 거의 최악.

이래서 차라리 최초로 잡는 네임드가 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니면 정말 소수 정예로.

네임드가 성장하지 못하게 잡는다던가.

그런데 문제는 베히모스가 너무 빠른 네임드에 속했다.

여차하면 튀어 버릴 수도 있는 문제라.

다수가 바리게이트를 치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이때 또 문제가 발생한다.

가로막는 유저들을 잡아먹고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꼭 잡아야 하나요?”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여기서 베히모스를 그냥 두고 가도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연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사실 베히모스를 상대했던 유저들은 다 죽을 예정이었습니다.”

그 말에 나와 전사 형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물인가요?”

“으음, 딱히 제물이라기보다는 베히모스가 신성 제국으로 오지 못하게 하려면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연이 말한 내용은 이렇다.

베히모스에게 제물을 잔뜩 던져 주고 그사이에 가르가의 봉인을 풀고 도망간다.

그러면 최소한 신성 제국은 당분간 안전할 수 있을 테니.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그냥 딱 최소한의 노력을 최대한의 이득을 얻는 그림이 될 테니까.

하지만 연이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가르가와 베히모스가 마주치면 어떻게 될 거라는 건 생각해 봤나요?”

“음, 그건 생각은 해 봤습니다만. 신성 제국까지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런 연의 말에 전사 형이 끼어들었다.

“베히모스가 가르가를 잡고 더 강해질 겁니다. 도저히 손대지도 못할 정도로.”

거의 확신에 가까운 발언에 연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확신합니까?”

“백 중에 구십 이상이라고 예상되는군요.”

“베히모스가 저기서 더 강해진다라…….”

아직 한계점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베히모스가 훨씬 부담스러웠다.

“반대로 가르가가 베히모스를 이긴다면?”

“그럴 확률이 적다는 건 잘 아실 텐데요?”

이미 성장을 한 베히모스와 막 봉인을 풀고 제로 상태인 가르가.

누가 봐도 승부는 뻔해 보였다.

그런 전사 형과 연을 보면서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혹은 둘 다 살아남은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겠죠. 편을 먹고 싸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상황은 연에게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될 터.

지상에서는 월드 네임드인 베히모스.

공중에서는 아직 정체를 모르는 또 다른 월드 네임드인 가르가가 동시에 신성 제국으로 쳐들어온다?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둘이 손잡고 나란히 들어오면?

이건 누가 와도 신성 제국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최악은 신성 제국이 날아가는 거겠군요.”

지금껏 파악한 연이 신성 제국에 들인 노력은 절대 적지 않았다.

당시 추기경이었던 올렌드 교황을 구워삶기 위해 얼마만큼의 자원을 들였을까.

그냥 표면으로 봐도 엄청난 지원을 하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투자했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올렌드 교황이 들고일어났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 이 경우에는 자금적인 부분일 거라고 예상했다.

당시 올렌드 추기경에게는 없으나 연에게는 꽤 넘치는 자원일 테니.

물론 유저들의 군사 지원도 있겠지만.

올렌드 추기경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했을지도.

그리고 저 마족의 무기들에 대한 약속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저 정도까지의 세력과 지위를 얻어내지 않았을까.

연의 입장에서도 신성 제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그런 위치일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 마족의 무기만 빼돌리고는 연이 신성 제국을 손절했을 테니까.

지금 그러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 가정은 확실했다.

연은 절대로 신성 제국을 버리지 못한다.

자의가 되었든 다른 어떤 문제가 생기든.

그런데 그런 연에게 또 하나의 문제를 전사 형이 끄집어내었다.

“아, 그리고 잊으셨나 본데. 세 번째 가르가의 봉인을 풀면 그때부터는 주변에 잔뜩 깔린 네임드들이 신성 제국을 쳐들어올 겁니다. 아마도 결계가 완전히 없어질 테니까요.”

엎친 데 덮친 격.

안 그래도 문제가 있는데 거기에다가 추가로 더한 문제를 올려 주었다.

“음, 이 경우에는 베히모스가 그런 네임드를 잡아먹고 더 클 수도 있겠군요. 꼭 가르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쪽이든 연에게는 절대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따로 쳐들어와도 문제고.

같이 쳐들어와도 문제.

아니면 한쪽이 한쪽을 잡아먹고 커져도 문제.

마족의 무기 하나 얻자고 일을 벌이기에는 이미 너무 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골치가 아픈지 연이 손을 이마에 짚고 난 뒤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하아, 뒤처리가 항상 문제라니까.”

솔직히 말해서 연이 여기까지 예상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연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

만약.

연의 세력만 있었다면.

연은 지금이라도 마족의 무기만 빼돌리고 바로 신성 제국 안으로 튀었을 것이다.

나중에 신성 제국의 성벽을 끼고 어떻게든 막아 내기만 하면 될 테니까.

아주 폭삭 망하는 것만 아니라면.

전부를 다 투자해서 어떻게든 네임드만 밀어내면 되는 문제였다.

다만 여기서는 우리가 있었다.

연 자신들의 세력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

동쪽 끝에 우리가 거점을 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자력을 다 쏟아부어 버틴다?

그 뒤는?

안 봐도 뻔하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진 연의 신성 제국을 우리가 그대로 홀라당 해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중간에 월드 네임드도 몇몇 해먹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연에게는 그야말로 뺨 맞고 걷어차이는 최악의 그림.

이것도 다 우리가 거점을 확실히 만들어 냈기에 나오는 그림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연이 결국 나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베히모스. 여기서 끝내 주시죠.”

그리고는 연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전혀 거리낄 것 없는 표정으로.

이미 한 번 손을 잡은 것.

두 번은 어렵지 않다는 건가.

“으음, 글쎄요.”

우리야 딱히 급할 게 없으니.

어차피 베히모스는 이곳 서쪽 봉인지에서 가까운 신성 제국으로 먼저 가지 동쪽 끝인 우리 거점으로 오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서 바로 속으로는 저울질에 들어갔다.

이번에 연의 신성 제국을 살려 주는 게 맞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이득까지.

연의 거점이 무너지면 물론 우리까지 위험해질 수는 있었다.

이런 것까지 고려해 보면.

연이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어떻게 하든 지금 우리에게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걸 잘 아는 연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원하시는 게 뭡니까?”

“흐음, 원하는 거라……. 그보단 잡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네.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난감한 제안에 고개를 돌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재중이 형에게 시선을 보내자 재중이 형이 팔짱을 풀고는 말을 꺼냈다.

“이쪽에서도 꽤 피해를 많이 볼 건데 그걸 무마할 정도의 보상을 내어줄 수 있나?”

재중이 형은 우리가 손해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확실히 어필했다.

어설픈 보상은 필요 없다.

딱 이런 느낌으로.

그런데 이번엔 완전 뜻밖의 제안을 연이 찔러왔다.

“하아, 그럼 다른 영웅의 무기들의 위치 정도라면 어떻습니까?”

“흐음? 그건 꽤 솔깃한데?”

하나도 아닌 무기들이라…….

단순히 광풍의 바르칼 말고도 다른 네임드들과 무기들의 위치까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좀 약해. 어차피 그 정도는 우리도 얻을 수 있어.”

어차피 지도 조각이야 계속 네임드를 잡으면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연의 말은 또 달랐다.

“그 시간이 아까울 텐데요? 이미 다른 팀들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하, 이놈 봐라. 아픈 곳을 찔러오네.”

재중이 형도 이건 인정하는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임드야 수십 번 잡을 수 있다고 해도 영웅의 무기나 마족의 무기는 먼저 얻는 놈이 장땡.

뒤에 늦게 가면 그냥 개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우리에게 주는 이유는?”

“어차피 저쪽에서 먼저 손을 썼으니까. 굳이 더 이상 정보를 지킬 필요는 없겠죠.”

이건 상대방이 아주 엿 먹으라는 식으로 정보를 푼다는 건데…….

거기다 우리를 앞장 세워서 상대를 견제하겠다는 뜻도 얼핏 느껴졌고.

하지만 우리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 될 터.

으음.

그럼 저걸 어떻게 잡아야 하나.

피해가 되도록 없으면 좋고.

머리를 팽팽하게 굴리다가 결국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면…….

해볼 수 있겠는데?

잠시 재중이 형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귓속말을 넣었다.

<주호> 형,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멸> 그래? 그럼 알았다.

“오케이. 딜.”

재중이 형이 그렇게 연의 제안을 허락하는 순간.

연에게 한마디 말을 전했다.

완전히 의외의 말을.

“가르가의 봉인. 지금 풀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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