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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11화 (701/1,404)

#711화 적과 적 사이에서 (1)

우리를 바라보며 낮게 내리 깔고 있는 날카로운 표정의 명궁을 노려보면서 다시 르아 카르테를 들어올렸다.

원래라면 지금쯤 연과 영혼 길드를 누르고 봉인을 차지했어야 했는데.

뜻하지 않은 방해로 지금까지의 노력이 다 엎어질 위기였다.

그렇게 아예 예상조차 없었던 녀석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 나나 챠밍, 이쁜소녀 모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우리가 포위를 당한 형국이라.

이건 쉽지 않겠어.

지금부터는 가르가의 봉인보다 오히려 살아 나가는 쪽에 더 중점을 둬야 할지도…….

가르가의 봉인도 중요하기는 한데.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생존 쪽에 더 무게를 실어야 했다.

그래서 바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주호> 형, 어떻게 해요?

이대로 싸울 것이냐.

아니면 빠질 것이냐.

조금만 판단이 늦어지면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양쪽의 포위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뭔가의 결정을 내리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아직 포위망이 확실하지 않은.

하지만 재중이 형에게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달리 의외의 말이었다.

<불멸> 잠시 대기해 봐. 분위기가 묘하네.

응?

대기하라고?

재중이 형은 의외로 베사노스를 살짝 내린 상태에서 전투를 이어 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건 뭔가를 기다리는……?

그때 주변을 둘러본 짙은 금발의 날카로운 인상의 명궁이 활을 잠시 내려놓고는 재중이 형을 보고 인사하듯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이렇게 다시 찾아뵐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아, 나도 이런 식으로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역시 아는 사이였나?

기억해 보니 이미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는 그냥 스쳐가듯 잠시 마주친 거라.

“전부터 생각했지만 넌 참 이런 기회를 잘 노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딱히 칭찬은 아냐.”

저 대화 속의 명궁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전에 이런 식으로 물을 먹인 전력이 제법 있어 보였다.

상대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노리는.

미리 이런 구도를 예상하지 않았다면 절대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준비한 듯 나타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가 재중이 형의 다소 느긋한 표정을 보고는 다시 생각이 뒤집어졌다.

지금 위기 상황 아니었나?

왜 저렇게 평온하지?

뭔가 이상한데……?

그리고 주변 상황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연이 우리를 함정으로 유도하려고 했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더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피해를 보면서까지 우리를 노렸다?

연의 영혼 길드가 박살 나는 지점까지 몰려서?

누구라도 속는 완벽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몰리는 상황을 연기하려고 했다면 이해가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커.

NPC들 역시 마찬가지.

한 번 잃고 나면 복구하기란 쉽지 않은데 전부 다 내던진다?

척 봐도 분석을 저렇게 좋아하는 연이라는 유저가?

정확한 성격은 모르겠지만 옆에서 그동안 지켜본 것만 보면 필요 없는 손해가 나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그런 타입 같아 보였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점 투성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연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연의 표정을 보자마자 몸을 움찔했다.

표정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연의 표정이 마치 못 먹을 것이라도 먹은 것처럼 확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저건 분명히 불쾌하다는 뜻을 그대로 피력한 모습.

설마 연이 저 명궁과 페가수스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었던 건가?

미리 대기시켜 둔 것이 아니라...

연에게조차 이 상황이 의외의 것이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돌발 변수였다면?

그런 판단은 곧 나오는 연의 말투에서 바로 드러났다.

“명궁, 지금 이 판단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을 텐데?”

날이 바짝 선 듯한 연의 거친 목소리에 명궁이 연을 활로 겨누면서 말했다.

“먼저 약속을 어긴 건 그쪽이지 않나?”

그리고 그렇게 두 유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완전히 확신이 섰다.

<주호> 형은 이미 알고 있었죠?

<불멸> 어, 명궁 저 녀석. 이런 쪽으로는 선수거든.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 상황은 명궁이라는 유저가 연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것이었다.

그것도 전력이 가장 약해지는 바로 이 순간에.

<주호> 그런데 저 약속은 뭐죠?

<불멸> 흐음, 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지켜보자.

명궁의 추궁에 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애초에 여긴 네 구역도 아니잖아.”

“그건 맞아, 여기는 내 구역이 아니지. 하지만 영웅의 무기가 발견되면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기로 했었지. 지금처럼 네 녀석이 다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명궁의 시선이 연이 들고 있는 로케로 향했다.

니아가 들고 있는 스태프인 마누스까지.

구역?

권리?

좀체 알 수 없는 대화에 미간을 찌푸렸다.

“큭, 이건 마족의 무기지. 네 녀석이 원하는 영웅의 무기가 아니라.”

“지금 나와 말장난할 생각이냐?”

그 말에 연이 바로 혀를 찼다.

“말은 바로 해야지. 네 녀석이 광풍의 바르칼을 못 잡아서 쫓겨 온 주제에.”

뭐……?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몸이 움찔했다.

챠밍과 이쁜소녀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저 네임……!”

“알아.”

어떻게 저들이 광풍의 바르칼을 알고 있지?

이건 GM 훈에게서 따로 받은 자료인데?

설마…….

정보를 여기에도 넘겨준 거였나?

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니 재중이 형도 심각한 표정으로 연과 명궁을 바라보았다.

“흠, 정보라……. 그런 거였나?”

재중이 형은 뭔가가 생각난 듯 표정을 굳혀 보였다.

“알겠어요?”

“어, 대충은.”

그리고 나온 말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 저 녀석들. 지도 조각을 서로 공유했을 거야.”

“지도 조각들을?”

그 말에 바로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히 지도 조각을 네임드가 드랍하도록 되어 있었지.

하지만 그건 일부 네임드일 뿐일 텐데?

드래곤.

레비아탄.

악마형 케르베로스.

듀라한.

고르곤.

흑장로.

이 이상 급은 되어야 봉인 지도와 지도 조각을 드랍했다.

“뭐 고르곤이나 듀라한, 흑장로 같은 경우는 잡을 수도 있었겠네. 이 주변엔 흔하잖아.”

확실히…….

잡을 수만 있다면.

지도 조각이 나오기도 할 테니.

“그리고 꼭 네임드를 잡아야 나온다는 편견은 버려. 다른 방식으로도 얻을 방법은 많을 거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야 그쪽이 제일 쉬운 편에 속했으니까 네임드를 사냥해서 정보를 모은 거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방식을 썼을 지도 모른다.

엔느가 했던 것처럼.

결국 먼저 진출한 저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아서 다른 영웅의 무기들에 대한 위치를 공유했다면…….

시간은 절대 우리의 편이 될 수 없었다.

이미 어딘가에선 영웅의 무기나 마족의 무기를 얻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을 테니.

“행방이 묘연한 길드들이 전부 그렇겠죠?”

“뭐, 그렇겠지.”

“여기서 시간을 더 소비할 순 없겠어요.”

솔직히 영웅의 무기나 마족의 무기를 우리가 전부 다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알아 버린 이상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그전에 여기부터 정리를 해야겠지.”

연의 영혼 길드.

그리고 명궁의 페가수스 길드.

둘 다 일단은 우리의 적.

그중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명궁의 페가수스 쪽이려나.

재중이 형도 그걸 잘 아는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문득 명궁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생각이냐?”

그 말에 명궁이 더욱 표정을 차갑게 하면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잘 아시는군요.”

“역시 그렇군.”

“불멸, 당신의 그 베사노스. 그리고 이쁜소녀의 토르. 챠밍의 저 무기는 뭔지 모르겠지만. 저것도 같은 등급의 무기겠죠.”

명궁이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를 보고 난 뒤 곧장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주호, 저 소년의 르아 카르테까지. 모두 여기서 끝을 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끝은 아닌데? 너,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재중이 형이 여유 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자 오히려 명궁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꽤 위험한 말을 꺼냈다.

“흐음, 이거 왜 이러실까요. 그 무기들. 한 번 죽으면 다 드랍되거나 파괴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명궁이 고개를 돌려서 연을 바라보았다.

“연, 네 녀석이 가진 마족의 무기도 여기서 전부 뱉어내고 가라.”

“이 새끼가 진짜 해보자는 거냐!”

“크크큭, 그냥 넌 여기서 떨어져.”

그러면서 명궁이 다시 재중이 형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연의 세력을 한 번에 먹어치우긴 부담스러웠는데 덕분에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여기 온 건 계산 밖이었다는 거군.”

“사실 그런긴 합니다만, 상황은 이쪽이 훨씬 좋군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와 연까지 한꺼번에 정리하려고 그렇게 개떼처럼 몰고 온 거냐?”

재중이 형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명궁의 뒤로 이제껏 숨어 있던 정체 모를 길드들이 잔뜩 모습을 드러냈다.

아예 도망갈 코스를 전부 틀어막으면서.

대략 숫자로 500이 넘는 건가?

연의 경우만 봐도 영혼 길드 아래로 몇 개의 길드는 더 데리고 다녔으니까 무리한 숫자도 아니었다.

이건 봉인지에서 아예 나갈 수 없게 됐는데.

퇴로 자체를 막아 버린 상황이라…….

물론 억지로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누군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연 역시 우리와는 적대 상태.

최악의 경우 개싸움이 될 테니.

상황이 복잡해지자 곧장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여기 문제가 생겼어요.

<방패전사> 뭐? 왜? 가르가의 봉인은 늦은 거냐?

전사 형은 우리에게 생긴 문제가 가르가의 봉인을 놓친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들이 누군가에게 행적을 알리면서 움직인 것 같진 않으니까.

저쪽은 이쪽의 상황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중이었다.

<주호> 그걸로 끝나면 이런 소리 안 하죠. 지금 포위당했어요.

<방패전사> 포위? 우리가 여기서 녀석들을 다 막아 냈는데? 무슨 포위가…….

<주호> 또 다른 프로 팀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아주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방패전사> 뭐?! 숫자는?!

<주호> 대충 봐도 500은 넘어 보이네요. 지금 퇴로가 완전히 막혔어요.

<방패전사> 500이라고?! 이런! 여기서 영혼 쪽 애들하고 대치 중이라 병력을 뺄 수가 없는데……. 베히모스도 날뛰는 중이고.

저쪽 역시 상황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연의 영혼 길드와 그쪽의 연합들을 틀어막는 것만 해도 벅찬 상황.

거기다 베히모스까지 있으니.

여기를 도와주러 올 여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일단 전사 형과 연락을 끊고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아무래도 지원은 무리일 것 같아요.”

“아아, 나도 들었다. 흠, 이건 좀 문제가 되겠는데…….”

시간이 있으면 뭔가 수를 내보겠지만.

지금도 명궁의 페가수스 쪽 연합들이 우리를 바싹 조이면서 다가오는 중이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챠밍에게 물었다.

“네 화력으로 누를 수 있을까?”

“저 지금 광역 스킬들이 거의 다 쿨타임에 걸려 있어요.”

“할 수 없나…….”

“미안해요.”

“아냐, 어차피 썼어야 했으니까.”

이쪽은 무린가.

숫자로 밀어붙이면 챠밍이 최적의 선택인데.

아마 저 명궁이라는 녀석은 챠밍이 마법을 상당수 쓰기를 일부러 기다린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니아라는 여성 역시 당황하는 게 비슷한 상황으로 보였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문제인가.

그런데 그때 니아를 보고는 뭔가가 떠올랐다.

저쪽도 당황한다라.

그렇다는 건.

<주호> 형, 혹시 연이라는 사람하고는 좀 친한 편이에요?

<불멸> 응? 이런 상황만 아니면 아주 담 쌓고 사는 사이는 아니…… 큭. 무슨 말 하는지 알았다.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재중이 형이 눈치를 채고는 연에게 뭔가 귓속말을 보냈다.

그리고 곧장 연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연> 일시적 동맹이라…….

<주호> 형이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했네요. 서로 죽지 않게 이번만 잘 넘겨 보죠.

<연> 대가는 가르가의 봉인입니까? 이건 넘겨드리기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연을 보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주호> 그건 그쪽이 가지시죠.

<연> 네?!

그냥 쿨하게 가지라는 말에 오히려 연이 당황해 버렸다.

<주호> 대신. 조건 하나만 달겠습니다.

<연> 흠, 신성 제국을 다 달라는 것만 아니라면……. 되도록 들어드리도록 하죠.

<주호> 아마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승부수.

<주호> 그쪽이 얻은 무기들. 제가 한 번씩만 만져 볼 수 있게 해 주시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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