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화 두 개의 나라 (8)
상대편에 마족의 무기가 두 개까지는 어떻게든 괜찮았다.
정면에서 붙으면 우리가 숫자적으로 더 유리하니까.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개수가 세 개가 되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같은 등급 무기의 숫자가 이쪽과 동률이면 매 전투마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터.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장비를 챙기면서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물었다.
“이게 함정일 확률은?”
“음,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좋겠죠. 굳이 바깥으로 우리를 끌어낼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저쪽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의 방어 시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승패를 장담할 순 없을 텐데 무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사 형의 단호한 대답.
가르가를 잡는 척하면서 우리를 끌어내는 생각을 하고 움직인 거라면 함정이지만.
전사 형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흐음, 속전속결로 마검만 빼돌리려는 건가.”
그 말을 끝으로 재중이 형이 잠시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일단 우리도 움직인다.”
재중이 형 역시 결국 움직이는 쪽을 택한 모양.
결정이 나자 접속해 있는 모든 길마들을 불러 모았다.
이런 일을 우리들만 움직이고 끝낼 수는 없으니까.
사장님이 각 길마들에게 설명을 하고 난 뒤.
스칼렛, 이슬두잔, 리더, 황룡, 엔느, 폭군이 목소리를 내면서 열띤 회의가 이어졌다.
화련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지금 바로 움직여야…….”
“성의 방어는? 비어 있는 거점을 칠 생각이라면…….”
“만약을 대비해 모든 병력이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노리고 들어오는 거면 한 곳은 뚫릴 수밖에 없어.”
“가르가의 봉인을 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이럴 바엔 우리가 지금 제넨샤를 치는 건 어떻습니까?”
.
.
서로 다른 생각들이 너무 많이 오가자 결국 재중이 형이 손을 들었다.
“다 좋은데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저쪽은 출발했으니까요. 그리고 서쪽은 우리보다 한참 전에 도착할 겁니다.”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들 말을 멈췄다.
이러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으니.
우리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야 하는데 저쪽은 중앙에서 출발하니 이미 거리상 우리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출발한다고 해도 한참 뒤에나 도착할 것이다.
그 말에 황룡이 손을 들어 물었다.
“이미 늦었다면 차라리 다른 방법을…….”
그런 황룡의 물음에 재중이 형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 우리는 가능합니다. 늦어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겠죠.”
“음, 그걸 쓰려는 건가요?”
내가 물어보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껴 둘 필요는 없잖아?”
“하긴 지금은 써야겠죠.”
그런 우리 둘의 대화에 다들 궁금해 하는 표정이라 내가 말해 주었다.
“황실 비공정. 이걸 쓰면 저들보다 한참 전에 도착할 수 있어요.”
오직 서버에 한 대만 있는 가르시아 제국 황실 비공정.
나중에 추가로 더 늘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오직 우리만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가르가의 봉인지에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어 황실 비공정으로 워프를 해 녀석들보다 빨리 도착이 가능하다.
워프는 거리에 딱히 제한이 없으니.
당장 가르시아 제국으로 돌아갈 수도…….
음.
이것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데?
그렇게 많은 인원은 아니겠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가르시아 제국에서 사람을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엔느가 물었다.
“그럼 베히모스를 우리가 먼저 상대해야 하겠네요.”
엔느의 말대로 먼저 도착하는 쪽이 베히모스를 상대로 싸움을 해야 한다.
베히모스가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니까.
봉인지로 들어오는 모든 유저들을 적대할 터.
가까이 가기만 해도 공격해 오니 베히모스를 어떻게 하지 않고는 봉인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 우리가 먼저 도착한다면 말이죠. 반대로 녀석들이 도착하고 난 뒤도 괜찮죠.”
그런 내 의견에 엔느의 눈이 반짝였다.
“연의 길드들이 베히모스를 상대하고 있을 때 뒤를 치자는 건가요?”
“네, 뭐 딱히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뒤치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미 상대는 선을 넘었고,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 반대하더라도 방법을 가릴 생각도 없고.
확실히 이기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패는 다 끌어다 써야 한다.
“나쁘지 않네요.”
엔느도 이쪽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긴 엔느도 이길 수 있다면 뭐든 하는 스타일이라.
그때 지켜보던 화련이 또 다른 물음을 꺼냈다.
“빠르게 갈 수 있으면 그냥 마검만 빼내고 돌아와도 되잖아. 우리 쪽에서는 그게 안 돼?”
우리 쪽에서 먼저 마검을?
생각해 보면 매번 저쪽에서 봉인을 풀었는데 그걸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있나?
이미 봉인의 두 개가 날아간 상황에서?
화련의 물음은 어쩌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누구나 해볼 수 있는.
“흠, 그것도 괜찮겠네요.”
그런데 이 부분은 조슈아 교황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봉인을 푸는 과정 자체에서 고위급 NPC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 같으니까.
먼저 가서 베히모스를 따돌리고 봉인을 푸느냐.
아니면 기다렸다가 뒤를 치느냐.
황실 비공정이 있음으로 해서 선택지가 두 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듣고 있던 리더가 물었다.
“그럼 이번 기회에 제넨샤를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하겠습니까?”
“흠, 거기까지는 모르겠어요.”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그걸 고려하는지 생각에 잠겼다.
이건 꽤 민감한 문제였다.
어떤 형식으로든 신성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겠지.
다만 여기까지 가는 데는 거쳐야 할 관문이 꽤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어려울 겁니다. 시간상. 그리고 우리가 제넨샤를 공격하던 중에 녀석들이 제넨샤로 귀환을 하면 오히려 뒤를 잡힐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요.”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미션.
거기다 재중이 형이 또 다른 문제를 꺼내놓았다.
“베히모스를 빼내려면 저와 주호가 동시에 붙어야 하는데 영웅의 검과 마검이 빠진 상태로 녀석들과 붙었다가는 대패를 할 수도 있어요.”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와 재중이 형이 전력에서 빠져야 하는 상황.
그럼 우리 쪽 전력의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고스펙 둘이 빠지는 셈이니까.
“이쪽은 좀 더 생각을 해보죠. 일단 조슈아 교황부터 만나보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사람들을 대기시켜놓고 조슈아 교황을 만나기 위해 중앙의 성으로 이동했다.
* * * * *
재중이 형과 함께 도착해 들어가자 조슈아 교황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반겨 주었다.
“어서 오세요, 주호 추기경.”
시간이 없으니 일단 본론부터.
“교황님,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올렌드 측에서 가르가의 봉인을 풀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조슈아 교황이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말인가요?”
“네, 우리 쪽 정보원이 확인을 했습니다.”
신성 제국의 외성 안으로 들어가지만 못할 뿐이지 주위를 돌면서 정찰을 하는 우리측 유저들이 있었다.
바깥으로 빠져서 서쪽으로 가는 것까지 모두 확인했고.
“하아, 결국 세 번째 봉인도 무너지겠군요.”
“문제가 있습니까?”
“네, 마지막 봉인이 풀리면 이제 결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예요. 그럼 주변에 있던 마물들 역시 모두 이곳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고르곤이나 듀라한 같은 네임드가 여길 쳐들어올 수도 있다 이건가?
유저가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네임드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존재했지만…….
생각해 보면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가르시아 제국으로 가는 길을 위해 녀석들을 정리해야 하기도 하고.
숫자가 좀 많은 게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방어벽을 세워 놓고 상대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차피 결계는 깨질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휴, 역시 그렇겠죠.”
조슈아 교황 역시 이 점은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라는 말에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조슈아 교황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마족의 무기인가요?”
<불멸> 호오, 조슈아도 꽤 하잖아?
<주호> 네, 이미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요.
“적들에게 주느니 우리가 가지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올렌드 추기경이 가지게 되면 마족의 무기를 모두 저쪽에서 가져가게 됩니다.”
전직 빛을 대표하는 성녀와 추기경들이 마족의 무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참 어색하고 어이없긴 하겠지만.
결국 가지지 못하는 쪽이 도태되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싸움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재중이 형이나 챠밍이 마족화를 써서 싸우는 건 보고도 모른 척하는 눈치였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악인지.
서로의 이익 앞에서는 다 무너져 버린 상황.
조슈아 교황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답을 늦추자 재중이 형이 나섰다.
“여기서 발을 빼면 우리가 질 겁니다. 그러길 원하십니까?”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조슈아 교황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다시 하나의 신성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기서 지면 안 되겠죠. 좋아요. 도와드리겠어요.”
<불멸> 할 때는 역시 잘하잖아?
혹여나 조슈아 교황이 끝까지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조슈아 교황이 도와주면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봉인을 풀 수 있을 터.
“함께 가시죠.”
“네, 잘 부탁해요.”
* * * * *
조슈아 교황이 합류하자 나머지 일처리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원정대의 모든 인원이 이동할 수는 없어서 황실 비공정에는 최정예들만 탑승했다.
각 길드 내에서도 가장 잘 싸우는 인원들로만.
여차하면 진짜 제대로 붙어야 하니까.
“그럼 갑니다.”
가르가의 봉인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
바로 봉인지로 했다가는 가자마자 베히모스와 싸워야 하니 거리를 상당히 벌려 놓았다.
어글이 안 끌릴 만큼 좌표를 설정한 뒤.
『 워프! 』
순간 황실 비공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자 저 멀리 가르가의 봉인지와 베히모스의 거대한 덩치가 아주 작게 보였다.
“됐네요.”
조슈아 교황 역시 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나요?”
“네, 신성 제국은 이런 비공정을 못 쓴 지 오래됐으니까요.”
이건 폐쇄된 환경에서 발전을 못 한 거려나.
쭉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 올렌드 추기경이나 연의 길드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접속 종료해 주세요.”
그리고 약속한 대로 일제히 접속을 종료했다.
어차피 우리가 노리는 건.
가르가의 봉인.
VRS 옆에 등을 기대고 연락 오기 기다리기를 한참.
왜 연락이 안 오지?
정찰을 위해 남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시계를 쳐다보다가 초조한 마음에 연락을 해 보려는 순간.
<불멸> 안에서 연락 들어왔다! 바로 접속해!
바로 VRS로 뛰어 들어가 접속을 하자 베히모스가 주변을 포위하는 수많은 유저들과 NPC들에 둘러싸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속속들이 접속한 아군들을 확인하고는 재중이 형이 외쳤다.
“다들 베히모스 무시하고 바로 봉인지로 달린다!”
그렇게 각자 최대 속도로 봉인지로 달려가는 도중 녀석들과 그대로 길이 마주쳤다.
올렌드 추기경과 연과 그의 길드들이.
상당히 당황한 눈빛과 함께.
“어떻게 너희들이 여기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연의 흔들리는 눈빛에 바로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고는 바로 오러를 불러내면서 외쳤다.
“됐고, 전부 쳐!”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