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00화 (690/1,404)

#700화 두 개의 나라 (1)

“봉인지를?”

내 말에 챠밍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챠밍의 그 제안에 재중이 형이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흐음, 나쁘지 않아. 거리를 생각해 봤을 때도 그렇고.”

봉인지라…….

기존의 히드라의 봉인이 있었던 장소를 거점으로 삼겠다는 건데.

“가능성은요?”

“히드라만 잡으면 오케이지.”

그 말에 지금 수호 형을 비롯해 여럿이서 겨우 히드라의 진격을 막아 내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저걸 지금 잡을 수 있을까?

이전에 베히모스를 잡을 때는 올렌드 추기경의 신성 제국 전투 NPC들도 다수 참여를 해서 부담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성벽 위의 포 역시 도움을 주었고.

반면 지금 그런 지원을 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온전히 우리들의 힘만으로 히드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이도 저도 되지 않아.

“형, 거점을 일단 세우죠.”

원래는 거점을 세우면 주변의 몬스터가 몰려들어서 개고생을 하겠지만.

이 봉인지 자체가 신성 제국의 결계 안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 몬스터들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오직 저 히드라뿐.

그렇다는 것은 거점을 세우더라도 몰려들 몬스터 역시 히드라 한 개체만 신경 쓰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히드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수였다.

“그래, 애들이 부활을 하려면 거점이 있어야 할 테니.”

재중이 형도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저 히드라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일단 추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우리 원정대가 쓸 수 있는 부활지는 존재해야 여기서 저 녀석과 비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점이 가까운 게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

“많이 죽더라도 어떻게든 잡기만 하자는 거네요.”

“뭐, 그렇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확실히 히드라만 잡으면 돼. 그 이후는 그때 가서 생각하고.”

“어차피 여기서 밀려나면 끝이죠.”

배수의 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거점은 누가?”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어보자 잠시 고민을 한 뒤 말을 꺼내놓았다.

“용의 지대에 있는 걸 포기해 버려.”

“형이 안 하고요?”

“거점을 지금 바로 써먹으려면 백작위로는 무리다.”

유저들이 더 높은 직위를 가지기 위해 저렇게 노력하는 게 괜히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재중이 형 말대로 백작위와 공작위는 거점의 규모 자체가 달랐으니까.

발전 속도나 초기에 나오는 거점의 규모, NPC들의 동원, 방어 장비의 수준.

그 모든 것들을 비교해 봤을 때 공작위가 백작위보다는 월등했다.

“어차피 이제 용의 지대는 단물 다 빨아 먹었잖아. 이제는 유저도 거의 안 지나다니는데.”

“뭐 그렇긴 하죠.”

초기에 용의 지대에 있던 거점이 정말 흥했다면 지금은 그냥 잠시 스쳐가는 정도의 거점밖에는 되지 않았다.

다른 유저들이 굳이 이제 와서 용의 지대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 사실에 기인했고.

우리야 이미 인프라를 다 구축해 놔서 건설비용이 아예 안 들어가고 유지만 하면 됐지만.

다른 유저들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에서는 들어오는 세금에 비해 굳이 공격해서 다시 거점을 세우고 남는 돈이 적자일 정도였으니.

힘들여서 공격해 봐야 남는 게 없으면 누가 하겠는가.

배보다 배꼽이 큰.

그리고 거점에 지나다니는 유저가 적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옆에 예전의 드워프 지하 왕국이 존재했다.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는 거점보다야 그쪽이 더 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어차피 들어오는 돈도 거의 말랐는데 포기하죠.”

수입 면에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만.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는 거점.

그렇다면 그냥 버리자는 재중이 형의 제안이 지금에서는 훨씬 나은 판단이 될 수 있었다.

결정이 나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 정말 용의 지대의 거점 『 신화 』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거점에 존재하던 모든 인프라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

거점을 없애려고 하자 바로 붉은 경고음이 떠올랐다.

뭐, 이런 건 감수할 일이니까.

곧장 YES를 선택하자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용의 지대 거점 『 신화 』 가 파기됩니다. 》

《 거점에 존재하던 모든 NPC들이 흩어집니다. 》

《 거점을 유지하던 방어 시설이 전부 폐기됩니다. 》

《 부활 포인트가 리셋됩니다. 》

《 크루아 대륙에서 거점 『 신화 』 가 사라집니다. 》

그런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누가 이제 와서 용의 지대에 새 거점을 세울까.

드래곤을 불러내기 위해서라면야 한 번쯤 해볼 만도 하겠지만.

어차피 드래곤은 용의 던전으로 들어가서 잡으면 되는 일이라.

“바로 가서 세울게요.”

잠시 전투 중인 수호 형의 파티와 히드라를 바라봤다가 곧장 페가수스를 타고 원래의 봉인지 쪽으로 날아갔다.

저렇게 버티는 것도 오래는 버티지 못할 터.

최대한 빨리.

봉인이 풀리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봉인지에 도착하자 곧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신성 제국에 발견된 유적지나 거점이 없습니다. 》

《 주변 일정 반경 안에 유적지나 거점이 없습니다. 》

《 귀족 작위를 가진 유저는 신성 제국에 거점을 세울 수 있습니다. 》

《 거점을 세워 세력을 넓히세요. 》

《 NPC들을 고용해 시설을 늘릴 수 있습니다. 》

《 이곳에 거점 설치하시겠습니까? 》

원래 하나의 거점을 가지고 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거점에 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곤 곧장 YES를 선택했다.

《 신성 제국에 가르시아 제국 공작 주호 님의 새 거점이 설치됩니다. 》

《 거점 명은 길드 명으로 대체됩니다. 》

《 거점 : 『 신화 』 가 설치되었습니다. 》

신화의 거점이 설치되자마자 어마어마한 속도로 건물들을 증축되면서 기본적인 성의 형태를 만들어 갔다.

그렇게 신성 제국의 권역 내에 온전한 거점이 설치되는 순간 바로 전체 시스템 메시지가 머리 위에 나타났다.

《 주호 님이 크루아 대륙에 새 거점 『 신화 』 를 세웠습니다. 》

- 거점? 주호가 또 세운 거야?

- 아마 그런 듯?

- 전에 용의 대지는?

- 방금 사라졌음. 완전 휑하다.

- 왜 멀쩡한 거점을 치워 버려?

- 에이, 새로 세우려면 전에 있던 걸 포기해야지.

- 그럼 이제 주호네 거점만 잘 찾아가면 되는 거네.

- 그러게, 적어도 가서 몬스터한테 쫓기진 않겠다. 쟤들 거점 방어 하나는 죽여주잖아.

신성 제국에 새로운 거점을 세웠다는 메시지는 유저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올렌드 추기경 측에도 이 사실이 그대로 알려졌을 것이다.

다른 말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고.

곧장 시스템 창을 모조리 불러내어 설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방어 시설을 돈으로 발라 버렸다.

《 거점의 성벽을 강화합니다. 》

《 거점의 보호막을 추가합니다. 》

《 성벽 방어 NPC들을 임명합니다. 》

《 성벽 방어 하르포를 설치합니다. 》

.

.

공작의 직위로 만들었기에 보다 강력한 수준까지 방어 시설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곧 히드라를 상대할 만한 보조 수단을 갖춘 셈이 되었다.

이미 몇 번 거점을 설치해 봤기에 손에 익어서 그런지 빠르게 시스템을 구축한 뒤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시스템에서 손이 멈칫했다.

이건……?

없던 시스템인데?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자 무심결에 손이 그쪽으로 향했다.

《 거점 『 신화 』 주변에 직위를 잃은 네임드 NPC가 존재합니다. 》

《 검색하시겠습니까? 》

네임드 NPC……?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조슈아 성녀?

물론 지금은 성녀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네임드 NPC라 칭할 만한 사람은 그 여자밖에 없었다.

검색을 누르자 곧장 조슈아 성녀의 프로필이 시스템에 등록이 되었다.

물론 자세한 사항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조슈아 성녀가 거점의 시스템에 등록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다.

《 네임드 NPC 조슈아가 현재 무직 상태입니다. 》

《 네임드 NPC 조슈아의 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

《 임명 제안을 보내시겠습니까? 》

음.

이건 안 된다고 해도 고다.

그냥 협력 상태인 상황과 온전히 임명을 하는 형태는 완전히 개념부터가 달랐다.

임명만 가능하다면…….

만약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제국에 소속이 되어 있는 조슈아 성녀를 임의로 빼오는 건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도 않을 터.

<주호> 형, 조슈아 성녀. 임명할 수 있다는데요?

<불멸> 호오? 그게 가능해?

<주호> 거점 시스템에 뜨네요.

<불멸> 그럼, 무조건이지.

<주호> 네, 바로 포섭해 볼게요.

<불멸> 아, 그리고 지금 히드라가 거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호> 방어 시설 다 올려놨으니까 짐시는 버틸 거예요.

<불멸> 오케이, 일단 전부 부활지부터 설정하고 다시 붙어 보자.

확실히 거점이 생기자 안정성부터 달라졌다.

거기다 조슈아 성녀만 우리 쪽으로 끌어오면 돼.

그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올렌드 추기경이 있을 때보다 더.

히드라가 거점을 향해 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우리 원정대 사람들도 하나둘 거점으로 넘어와 부활지부터 설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팀 역시 거점 내로 들어왔고.

함께 움직이던 조슈아 성녀 역시도 거점에 오더니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과연 그녀를 우리 진영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은 나와 그녀 사이에 호감도가 너무 낮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호감도를 쌓을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전에 부탁을 거절하면서 내려간 호감도도 적지 않았다.

그 이후 어느 정도 복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아마 내가 아는 한 네임드 NPC들 중 가장 호감도가 낮은 케이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보다 조슈아 성녀의 나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나쁘진 않았다.

“저를 찾으셨나요?”

방법은 모르겠지만 시스템적으로 제안이 들어간 모양인지 바로 본론으로 물어오자 나 역시 그에 맞는 대답을 해 주었다.

“성녀직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네, 교황님께서 돌아가셨고, 올렌드 추기경이 신성 제국을 차지한 이상 제 직위는 해제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 안타까운 표정 가득한 얼굴에 서린 한 가지 감정을 캐치해 냈다.

저건 분명 바라는 게 있어.

포기해 버린 그런 사람의 표정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신성 제국과 직위를 되찾고 싶지 않으신가요?”

내 제안에 어두웠던 조슈아 성녀의 두 눈이 타오르는 눈빛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합류해 달라는 제안만 넣으면 바로 허락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의 다른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이건 좀 미친 짓 같기는 한데…….

혹시나 해서 조슈아 성녀에게 질러 보았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고 하면 그냥 한마디를 날린 셈이고.

만약 존재한다면…….

“혹시 교황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에? 방금 뭐라고?”

내 말에 조슈아 성녀가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교황요. 이미 돌아가셨으니 누군가는 그 뒤를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올렌드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교황이 죽었다.

그리고 그런 신성 제국의 새 교황에 올렌드 추기경이 올라섰다.

과연 이걸 조슈아 성녀가 인정할까?

절대.

아니지.

내 물음에 조슈아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자는 정식으로 인정받는 교황이 될 수 없어요.”

“그럼 됐군요. 조슈아 성녀님이 지금부터 교황이 되면 됩니다.”

“교황……!”

그 말이 끝난 뒤 조슈아 성녀가 뭔가가 걸린 것처럼 멈춰 버렸다.

되려나?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를 포섭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 주호 공작의 임명 제안을 조슈아가 받아들였습니다. 》

《 조슈아 성녀가 조슈아 교황으로 변경됩니다. 》

《 거점 『 신화 』 과 신성 제국 『 신화 』 로 변경됩니다. 》

하…….

올렌드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보고는 성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제안했는데 정말 될 줄은.

그리고 그런 교황을 포섭한 덕분인지 거점에 신성 제국의 이름을 달아 버렸다.

이걸 본 우리 팀 모두가 크게 놀라워하는 가운데, 내 눈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지금이라면.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교황으로 변한 조슈아에게 몇 가지를 물어본 뒤 바로 챠밍을 부르자 챠밍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 챠밍에게 한마디 말을 속삭이는 순간, 챠밍의 두 눈이 더없이 크게 커지면서 내게 되물었다.

“네……? 정말요?”

“응, 오늘부터 네가 성녀 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