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버려진 나라 (9)
일단 드러누울 자리도 미리 파악을 해 놔야 조금이라도 쉬울 터.
곧장 장비들을 세팅하면서 조슈아 성녀에게 물었다.
“올렌드 추기경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고 있나요?”
두 개의 봉인지 중 올렌드 추기경이 먼저 간 곳을 알고자 조슈아 성녀에게 물었더니 모르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무능을 자책이라도 하듯 한숨을 쉬었고.
“죄송해요. 베히모스를 신경 쓴다고 미처 파악하지 못했어요.”
“흐음. 역시 그런가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대놓고 조슈아 성녀를 배신한 것으로 보였다.
이어지는 확실에 가까운 추측 하나.
“애초에 올렌드 추기경은 돌아올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정체를 모르는 가르가.
그리고 히드라.
이미 봉인이 풀린 베히모스까지 포함하면 무려 세 개의 봉인이 동시에 풀리게 된다.
그걸 한꺼번에 감당해 내려면 얼마만큼의 병력이 필요할까.
베히모스 하나만으로도 이 지경인데 말이지…….
만약 영웅의 장비와 마검 세 개를 손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신성 제국을 버렸다는 뜻인가요?”
“이미 알 텐데요?”
내 대답에 조슈아 성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조슈아 성녀도 말을 하지 않을 뿐.
이 상황을 보면 충분히 느끼고 있을 터.
그런 사실을 표면으로 일깨워 주자 결국 조슈아 성녀가 한숨을 깊게 쉬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조슈아 성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내게 자문을 구했다.
방법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결연의 의지가 이제야 느껴지네.
이러면 협조를 구하기가 더욱 수월해지겠지.
“당장 베히모스만 사라지면 신성 제국의 남은 병력을 운영할 수 있죠?”
“네? 그렇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 베히모스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장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벽은 내가 깨어 줄 수 있었다.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형, 드라이브 한번 가죠?”
“이미 준비 중이다.”
내가 말하기도 전부터 재중이 형은 옆에 페가수스를 꺼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서쪽? 동쪽?”
분명히 서쪽이 가르가.
동쪽이 히드라라고 했었지.
재중이 형의 제안에 고개를 돌려 조슈아 성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가르가에 대해서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아, 날개가 네 개 달린 괴수라고 문헌에…….”
“히드라는요?
“머리가 여럿 달린 지상…….”
“오케이, 거기까지.”
“네?”
내가 바로 조슈아 성녀의 말을 커트해 버리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더 안 들어도 되겠다고요. 동쪽을 공략하죠.”
그런 결정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크큭, 결단력 빠른 것 보소.”
“가르가는 날개가 있다잖아요.”
“그렇지.”
기동력.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양쪽의 선택지는 기울어져 버렸다.
이미 드래곤을 상대해 봤기에 날아다니는 네임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월드 네임드라면야…….
더 말해 뭐할까.
괜히 여기서 난이도를 더 올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베히모스는 저하고 여기 형이 따돌릴 겁니다.”
그 말에 조슈아 성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두 분이서요?”
음, 우리가 이전에 베히모스를 달고 날아다니던 걸 못 봤나?
하긴 그때는 올렌드 추기경만 있었으니.
“베히모스를 신성 제국에서 빼드릴 테니. 곧장 병력을 모아서 동쪽으로 진군하세요.”
노림수 중 하나.
저 베히모스만 신성 제국에서 빠져나가면 당연히 지금 베히모스를 상대하는 성녀의 주 병력들이 남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그 병력들이 움직여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베히모스가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런 조슈아 성녀의 걱정에 바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뇨, 베히모스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장담을 하는 나와 조슈아 성녀의 시선이 정면에서 부딪혔다.
고민하는 건가?
여기서 조슈아 성녀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곤란한데.
저기 남아있는 신성 제국의 병력들은 이번 일에 반드시 필요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조슈아 성녀가 내게 되물었다.
“어차피 이대로 흘러가도 신성 제국은 끝이 나겠죠?”
끝이라는 말을 너무 무겁게 하는 조슈아 성녀에게 다시 말을 해주었다.
“제가 해 달라는 대로만 하면 신성 제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이내 조슈아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 같으니 주호 공작님에게 맡겨 보겠습니다.”
오케이.
시원시원하네.
전에 봤던 어리숙한 모습과는 달리 위기 속에서 확실한 결정을 내려주었다.
<불멸> 성녀가 괜히 성녀는 아니군.
<주호> 네, 강단이 있어요.
<불멸> 덕분에 병력 문제는 해결했네.
올렌드 추기경과 유저들의 병력이 반으로 갈라졌는지 한쪽으로 몰려갔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러면 적어도 병력 숫자 면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결정이 나자 곧장 우리 팀과 길드 마스터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지금 조슈아 성녀와 했던 이야기들을 짧게 추려서 알려주었다.
“다 들으셨죠? 일단 우리 원정대는 모두 동쪽으로 갑니다.”
내 말에 다들 웅성거리면서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중 화련이 먼저 내게 물었다.
“어째서 동쪽만? 서쪽은 안 가? 그쪽도 월드 네임드와 마검이 있다면서?”
화련의 말은 간단했다.
왜 한쪽을 포기하는가.
하려고 하면 양쪽 다 공략할 수 있는데.
굳이 한쪽을 포기하는 전략을 꺼내들자 화련이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나서서 말을 해주었다.
“올렌드 추기경의 주 병력이 어디로 간지 확실히 몰라. 지금 그걸 따로 확인할 시간도 없고. 잘못하다가 반으로 쪼갠 병력으로 각개 격파를 당한다.”
최악의 경우.
올렌드 추기경이 한쪽으로 병력을 다 몰아갔을 상황이 문제였다.
만약 병력을 반으로 나눠서 갔다면 큰 문제가 없이 비등하게 싸우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둘 중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그런 최악이.
“칫, 그러면 할 수 없네.”
화련도 병력 구성에 있어 이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런 화련을 보면서 말했다.
“프로 팀들과 붙으면 헤라 길드가 중앙에서 싸워 주셔야 해요.”
아마 다른 유저들이 붙으면 백이면 백, 그냥 깨질 것이다.
같은 프로들의 길드가 아니라면.
“뭐, 그건 알았어. 이쪽에서도 비밀병기가 있으니까. 확실하게 눌러 버릴 수 있을 거야. 대신 알지?”
비밀병기?
확실하게 누를 수 있다고?
의외의 말에 궁금한 표정을 지었으나 화련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릴게요.”
“역시 넌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서 좋아.”
척하면 척.
활약에 따라 보상을 주어야 했다.
그리고 화련이 저만큼 자신이 있다면…….
재중이 형도 궁금한 듯 쳐다보았으나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자자, 그럼 움직여 보자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그러자 다들 일사분란하게 장비를 챙기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중 챠밍을 따로 불러냈다.
“여차하면 마족화를 해서 화력으로 눌러 버려. 초반이 승부처가 될지도 몰라.”
상대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챠밍의 광역 마법을 맞고 시작하면 이쪽이 승산이 확 올라가게 된다.
내 말에 챠밍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성녀는요?”
“어차피 이제 한 배를 탔으니까. 딱히 문제는 없을 거야.”
만약 문제가 된다고 해도 아주 나중이 될 터.
그때가 되면 이미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다 얻어 낸 상태일 것이다.
굳이 여기 매달릴 필요도 없었고.
“네, 잘 해볼게요.”
“그래, 부탁해. 너무 늦지 않게 갈 테니까. 조심하고.”
“네, 오빠도 조심해요.”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벗어나자 재중이 형이 모는 페가수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바로 베히모스에게 날아가 공격을 시작했다.
어글을 확실히 끌어오려면……!
【 진(眞) 용격! 】
【 수룡탄! 】
곧장 마법기만 모아 놓은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용격과 수룡탄을 녀석의 머리 한가운데에 적중시켰다.
크어어어!!
베히모스는 감히 누가 자길 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새빨간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어글은 확실하네.”
애초에 녀석에게 제대로 타격을 입힌 녀석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공격했음에도 바로 우리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자, 그럼 간다! 꽉 잡아라!”
크어어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어지는 확연히 다른 압력감을 뒤로하고 쭉 서쪽을 향해 빠지자 베히모스가 그 무거운 덩치를 일으켜 우리를 따라 날듯이 지상을 박차고 달려나왔다.
“휘유, 빠르네.”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정말 집중한 상태로 계속 뒤에서 날아오는 광역기들을 피해 냈다.
역시 한다면 한다니까.
그중 위협이 될 만한 공격은 내가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바로 커트를 해 주었고.
둘이 동시에 최선을 다해 이동과 방어를 하자 베히모스도 계속해서 우리 뒤꽁무니를 따라 달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달렸을까.
조슈아 성녀가 알려 준 좌표에 거의 다 다다랐을 무렵.
저 멀리서 이전의 그 수용소와 비슷한 형식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형! 아직 봉인이 살아 있어요.”
만약 봉인이 풀렸다면 이곳도 벌써 폐허가 되고 말았을 텐데.
그런 조짐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건물 사이로 몇몇 NPC들이 우리를 발견했는지 발 빠르게 안쪽으로 숨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뭔가 신호를 받았는지 개떼처럼 봉인지 안에서 병력들이 뛰쳐나왔다.
“크, 올렌드 추기경 꽤 야심가잖아?”
“둘 다 동시에 해먹으려고 한 거죠?”
“그래, 덕분에 일이 좀 편해지겠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유저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추기경도 없는 건가?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때 챠밍에게서 급한 연락이 들어왔다.
<챠밍> 오빠! 함정이에요! 여기로 빨리 와요!
<주호> 뭐? 함정이라고?
<챠밍> 설명할 시간이……!
그리고는 바로 챠밍과의 연락이 끊어졌다.
일부러 끊은 것은 아니고 워낙 급하다 보니 연락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형! 함정이래요!”
“칫, 이 새끼들. 설마 우리 동선을 다 파악한 건가?”
재중이 형도 바로 인상을 쓰면서 페가수스를 빠르게 봉인지로 몰고 들어갔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베히모스는 여기에 반드시 떨어뜨리고 가야 해.”
그러더니 아예 적들의 병력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페가수스를 완전히 밀어넣었다.
너무 급하게 몰다보니 적들의 병력들이 쏘는 화살 공격과 마법 공격 그리고 베히모스의 광역기가 동시에 펼쳐져 계속 페가수스에 피해가 누적되었다.
아무리 재중이 형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최대한 르아 카르테를 휘둘러 공격을 차단했지만 우리 둘과 페가수스의 체력이 동시에 확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완전히 적진 한가운데까지 들어가고 나자 베히모스와 적들이 엉키면서 순간 상황이 개판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됐다! 간다!”
【 워프! 】
완전히 베히모스를 적들에게 떠넘겨 준 뒤, 우리는 워프로 빠져나와 다시 신성 제국으로 이동해 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어.”
거기다 페가수스의 체력도 한계까지 달해서 자칫 워프를 못 쓸 뻔했고.
그런데 워프를 해서 돌아온 그 장소에 이미 수많은 유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한 녀석.
올렌드 추기경 역시도.
“죽을 자리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주호 공작!”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