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화 버려진 나라 (6)
쿠아아앙!!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불기둥이 솟아오르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저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감탄이 나왔다.
멀리 있는 이곳까지 열기가 전해질 정도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는데.
“엄청나네.”
네임드가 경험치를 얻어 성장을 하게 되면 더 강해지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저런 위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옆에 있는 챠밍을 바라보니 챠밍은 이미 몇 번 상대를 해봤는지 그냥 질린다는 표정 정도만을 짓고서 저 폭발을 바라보았다.
“너무 강해졌어요.”
“확실히 그렇네. 솔직히 나도 장담을 못 하겠다.”
어느 수준 이상을 지나가면 그건 그냥 괴물이 된다.
지금의 저 성장한 베히모스처럼.
“얼마나 잡아먹었어?”
내 물음에 챠밍이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답을 했다.
“NPC 병력 중에 절반 정도 될 것 같아요.”
“절반이나?”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대처를 너무 못했어요. 그리고 베히모스가 나오자마자 브레스를 날렸거든요.”
그러면서 챠밍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서 챠밍이 가리킨 곳을 보니 일자로 쭉 밀려 있는 시가지가 보였다.
아이스크림 녹듯이 쭉 밀려 나가있는 건물들이란…….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브레스가 더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아무도 브레스를 캔슬하지 못했던 건가?
한 자리에서 저렇게 쏠 정도면 거의 손도 못 댔다는 소린데…….
“올렌드 추기경도 못 막았어? 영웅의 검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상한 건 올렌드 추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개판이 되었다는 거다.
최소한 브레스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그러자 챠밍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올렌드 추기경이 나오지 않았어요.”
“뭐? 안 나왔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당연히 올렌드 추기경이 나와서 막고 있었어야 하는데, 지금 챠밍의 말은 전혀 달랐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라 정보가 모아지질 않았다.
“그럼 지금 누가 막고 있는데?”
내 말에 챠밍이 무거운 표정으로 바로 고개를 저어 버렸다.
“아무도 없어요.”
그런 챠밍의 말에 순간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아무도? 원정대 사람들은?”
“먼저 접속한 분들이 몇 번 싸워 보다가 지금은 다 같이 빠졌어요. 자꾸 죽기만 하니까. 우리도 조금 지켜보다가 다들 빠졌고요. 불멸 오빠가 다 빠지라고 해서.”
“형이 그랬단 말이지…….”
재중이 형이 생각하기에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을 한 것 같았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를 하지 않는 성격을 생각해 보면.
정말 답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는 거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나와 같이 상황을 보려고 했을 수도 있었고.
“저나 불멸 오빠가 마족화를 썼으면 어떻게 저지는 했을 건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그래, 여기서는 마족화도 못 쓰지.”
써서 막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신성 제국과 싸워야 할 판이라…….
아니, 이대로라면 그 신성 제국 자체가 없어지는 건가?
어쩌면 마족화를 걱정 안 해도 될 정도의 상황일지도.
“다들 어디에 있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요.”
“가자.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일단 합류부터 하고.”
그렇게 챠밍과 같이 우리 팀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자, 다들 대기 상태로 멀리 있는 베히모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상황은요?”
“아, 왔냐? 보다시피.”
그러면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베히모스를 가리키는데 개판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베히모스가 움직이는 자리가 곧 길이니.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NPC들을 보면서 말했다.
“저건 안 되겠네요.”
“어, 무리다.”
“지금 우리가 끼어들면요?”
“흐음, 얼마 전까지는 어떻게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힘들어. 이제 너나 나나 스치면 사망이야.”
“전사 형도 힘들까요?”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보자 전사 형이 바로 한숨을 쉬었다.
“무리, 무리. 아마 열 합 안에서 내 쪽이 밀려 버릴 거다.”
“그래요?”
“음, 전에 녀석과 지금 녀석의 위력을 비교해 봤을 때 내린 판단이야. 새로운 장비가 준비됐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베히모스를 잡고 나온 제작 재료들이 있었다.
그걸로 만든 장비만 있으면 전사 형이 버티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다만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단순히 메인 재료만 있다고 바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당장 필요한 부재료들 구하고 다니고, 드워프들이 만들어 내는 시간까지 치면, 지금은 못 쓰지.”
“어쩔 수 없네요, 그건.”
베히모스를 상대로 메인 탱을 해 주어야 하는 전사 형이 버티지 못한다면 그건 해보나 마나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성녀는요?”
분명히 성녀나 교황이라면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진 않을 터.
하지만 들려온 말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었다.
“싸울 생각도 없어 보이던데?”
“그래요?”
“아마 성녀 혼자의 힘으로는 밀어낼 수 없겠지. 주위에서 버프를 걸어 주고는 있던데 말이야.”
“흠, 성녀의 가호…… 그걸 받고 우리가 싸우면요?”
분명히 성녀의 가호는 훌륭했었다.
예상 이상으로.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반반? 아마 네 말대로라면 버티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몰라. 다만 중간에 풀려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각오를 해야 할 거다.”
목숨을 걸고서 저 베히모스를 잡느냐 마느냐인가…….
그런 내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 녀석들도 최선을 안 하는 판에 우리가 일부러 나설 이유는 없어.”
“두고 보자는 거죠?”
“아아, 사실 녀석들이 숨기고 있는 것도 꺼림칙하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 나타나지 않는 올렌드 그놈도 그렇고 말이야.”
역시.
재중이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숨겨 둔 패가 있겠죠?”
“없으면 저들이 망하는 거지.”
올렌드 추기경.
아무래도 그자가 너무 수상해.
추기경을 죽여 달라는 성녀도 그렇고.
옆에서 챠밍도 이상한지 내게 물었다.
“그럼 지금 그 올렌드 추기경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응?”
“주변에서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간 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챠밍의 말에 재중이 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확실히 이상하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전사 형에게 물었다.
“전사, 아까 죽어 나가던 NPC들 추기경의 부하들 맞지?”
“아마 맞을 겁니다. 그때 봤던 녀석들 중에 몇 놈이 있었으니까요.”
“부하들은 놔두고 혼자 움직인다라……. 세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는데. 아무리 베히모스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장수를 따를 녀석들은 없어. 그렇다면…….”
뭔가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재중이 형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확신이 들었는지 눈을 떴다.
“추기경 이 녀석,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게 무슨?”
“시간요?”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과 챠밍이 궁금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나나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역시 마찬가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신성 제국이 무너질 위기에서?
대체 무엇을 위한 시간이지?
그런 의문을 재중이 형은 바로 답해 주지 않고 내게 다시 물었다.
“너 전에 조슈아 성녀한테서 결계를 위한 세 가지 물건이 있다고 들었지?”
“음, 그랬던 것 같네요. 베히모스를 봉인하는 마검이 그중 하나라고…… 아, 설마?!”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머릿속에 퍼즐들이 맞춰졌다.
올렌드 추기경 이 자식.
이 상황에서 부하들을 먹이로 주고 본인의 욕심을 채우겠다는 건가?
내 눈빛을 본 재중이 형이 고개를 그덕였다.
“결계를 유지하던 세 개의 축을 담당하던 봉인 중 하나가 깨졌다. 그래서 결계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 상황이라면 넌 뭘 할 거냐?”
“어차피 하나가 깨져서 다른 두 개가 쓸모가 없는 결계 유지용 봉인이라면……. 다른 것들도 챙기겠죠.”
“그래, 그것도 이렇게 어수선한 틈을 타서 말이지.”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려서 베히모스 쪽을 바라봤다.
성녀가 여기 나와 있다라…….
남은 봉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쪽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녀는 그 봉인을 지키러 가지 못한다.
지금 이곳에서 베히모스를 막아야 하니까.
“아마 높은 확률로 그 봉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성녀 쪽 사람이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래, 성녀가 억지로 발이 묶여 있는 지금이 아니라면.”
이 돌발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건가?
“어쩌면 이전부터 세웠던 계획일 수도 있다. 베히모스를 일부러 풀어 둔 것도.”
챠밍이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물었다.
“베히모스의 봉인은 애초에 올렌드 추기경이 지키던 봉인이었겠네요?”
챠밍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을 거야. 성녀 쪽의 봉인이라면 평소에 손을 댈 수가 없었을 테니. 먼저 확실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부터 건드렸을 거다.”
“이게 다 맞다면 정말 무서운 NPC네요.”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놈이기도 하겠지.”
이 정도까지 막나가는 NPC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제국 하나 말아먹을 스케일이라면 이전에 가짜 황제 부럽지 않을 정도의 미친놈이었다.
챠밍이 다시 뭔가를 생각하고는 말을 꺼냈다.
“아! 오빠. 봉인을 풀려면 유저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사 형 역시 마찬가지.
“확실히 전에 봉인은 유저들이 풀 수 있다고 했었어. 그럼, 지금 그 유저들이 올렌드 추기경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하나?”
확실히 챠밍과 전사 형 말이 맞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전에도 가능했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죠.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재중이 형이 우리 말을 다 듣고는 어이없는 듯 웃어 버렸다.
“아놔, 이거 녀석들한테 완전히 한 방 먹었잖아?”
“그리고 어쩌면…… 이 사태를 일으킨 게 올렌드 추기경이 아닐 수도 있겠죠.”
사실 지금 봉인이 깨어지면서 그들이 이미 마검 하나를 손에 넣은 상태였다.
그것을 쓸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이지.
만약 이게 프로 팀들이 작정하고 계획해서 만들어 낸 그림이라면…….
챠밍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곧 나머지 두 개의 물건들도 그들 손에 넘어갈 거예요.”
조슈아 성녀의 말에 따르면 결계를 지탱하는 건 세 개의 축이라고 했으니, 봉인마다 뭔가의 물건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마검에 버금가거나 혹은 더 나은 무언가 일수도 있고.
그 물건들을 얻기 위해서 올렌드 추기경과 프로 유저들이 손을 잡았다고 보는 게 지금은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세 개의 물건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둘째 치더라도.
아마 올렌드 추기경에게 하나나 두 개 정도를 약속받지 않았을까.
봉인만 깨 주는 댓가로 하나만 건진다고 해도 남는 장사겠지.
아직 제대로 된 영웅의 무기가 없는 그들에게는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계획이었다.
모든 상황을 들은 전사 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베히모스를 막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군요.”
전사 형 말대로 지금은 베히모스를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곧장 우리 팀을 둘러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얻어 냈는데 이렇게 쉽게 가져가게는 못 하지.
“이렇게 된 것. 다들 깽판 치러 가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