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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90화 (680/1,404)

#690화 버려진 나라 (5)

올랜드 추기경을?

의아한 눈빛으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팔짱을 끼고는 내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여기 처음 발을 들여놓는 거다. 아직까진 내부 사정은 전혀 모르지.”

내부 사정을 모른다라…….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꽤 있을 거라는 거죠?”

“그래, 솔직히 난 저 성녀라는 여자도 못 믿겠는데?”

“그런가요?”

“넌 어떻게 봤는데?”

“음, 생각보다 거짓말할 타입으로는 안 보였어요.”

성녀 조슈아가 내게 보여 주는 표정과 행동의 패턴들을 보면 딱히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못 믿는다는 건가요?”

“애초에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부분만 이야기해 준 거라면?”

“흠. 그건 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엔 조슈아가 설명을 대부분 하고, 난 듣는 쪽에 가까웠다.

날 미행하는 모습이 너무 쉬워 보였기에 방심한 부분이 분명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게 내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고.

“어리숙한 모습에 무조건 속지는 마.”

“확실히 좀 방심했네요.”

그런 날 보고 재중이 형이 이번에는 좀 심각한 표정을 해 보였다.

“만약 성녀의 말이 다 사살이라고 해도 문제야.”

“네? 그건 무슨 말이죠?”

“성녀, 교황. 이 둘 모두 봉인이 깨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나? 난 네 말만 들으면 그렇게 느껴지던데?”

재중이 형의 말에 순간 머릿속을 먼가가 망치로 후드려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 확실히. 올랜드 추기경이 봉인을 부숴서 올렌드 추기경을 죽여 달라는 제안을 제게 했었죠.”

내가 본 성녀 조수아는 봉인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게 본인의 의사인지 그 교황이라는 윗사람의 의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성녀의 입장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생각해 보면 둘 다의 의견일 수도 있었다.

“만약에 지금처럼 미리 봉인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않았다면요?”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분명 우리와도 갈등이 생겼을 거야.”

갈등이라…….

재중이 형을 말을 다 듣자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다.

“들어올 수는 있는데 나갈 수는 없다?”

“뭐, 그렇지. 너 여기서만 쭉 있으라고 하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나?”

재중이 형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래, 그럼 어차피 누가 되었든 봉인은 깨 버려야 했을 거야. 우리가 됐든, 다른 사람이 되었든. 결국 유저들의 손으로 언젠가는 봉인을 깼을 거라는 거지.”

그 말에 또 이어지는 질문들이 생각났다.

“음, 만약 우리가 다른 유저들보다 먼저 도착했다면요?”

“이제 좀 팽팽 돌아 가냐?”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씨익 웃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올렌드 추기경과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겠네요.”

“빙고.”

어차피 이 신성 제국 안에 갇혔다면 우리 스스로 봉인은 깨야 했다.

아마도 올렌드 추기경은 우리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면서 꼬득였을 터.

그리고 우리는 그걸 거절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가 봉인을 깼으면?”

“후발 주자들이 우리와 대립을 했겠지.”

신성 제국에 들어오는 순서로 인해 뒤바뀌어 버린 입장들.

“먼저 들어오는 쪽이 추기경과 붙는 거군요.”

“그래. 그렇게 설정되어 있을 거야. 다만 여기서 우린 다른 선택지가 생기게 돼.”

“다른 선택지라면?”

“추기경이 우리에게도 손을 뻗는 선택지.”

원래라면 우리에게 추기경이 손을 뻗을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이미 올렌드 추기경이 우리를 성벽 밖에서 못 들어오게 한 전적도 있었고.

애초에 우리와 추기경은 가는 길이 완전히 달랐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올렌드 추기경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그 와중에 챠밍과 이쁜소녀가 성벽을 박살내 버렸죠.”

“어, 거기다가 넌 베히모스를 박살내 버렸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마 올렌드 추기경 그 녀석은 베히모스를 잡는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을걸?”

“그건 추측인가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 보였다.

결과를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녀석이 만약 베히모스를 자력으로 잡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방치해 두었을까? 놈이 신성 제국 주변을 무방비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하긴 그렇네요.”

지금 생각해 봐도 확실히 이상해.

어째서 감당도 되지 않는 녀석의 봉인을 풀어 버린 걸까.

아마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다.

완전히 다 망해 버리길 바라지 않는…….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죠?”

“아마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걸?”

하.

어이가 없네.

올렌드 추기경 이 녀석.

완전 미친놈이었잖아?

“아니면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베히모스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던가.”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밀리던데요?”

애초에 베히모스를 신성 제국으로 끌고 들어온 건 우리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상대가 안 됐다.

아마 나와 우리쪽 원정대 사람들이 없었으면 그냥 밀려 버렸을 것이다.

누가 봐도 봉인을 푸는 건 미친 짓인데…….

“이건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네,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만약에 정말 신성 제국이 망하기를 원해서 봉인을 푼 거라면...”

“아아, 그런 미친놈이라면 이쪽에서 사양이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진 놈하고는 같이 갈 수 없어.”

내가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거다.

신성 제국을 통째로 망하게 만드는 것.

정말 그걸 원해서 봉인을 푼 거라면 같이 갈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성녀 조슈아의 제안대로 우리가 제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쳐 있다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도저히 예상이 안 되니까.

“자, 그럼 자리를 마련해 보자고.”

그렇게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점검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신성 제국 제넨샤의 결계가 풀려 대륙 지형과 시스템이 변경됨에 따라 5분 뒤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거 참. 베히모스를 잡은 게 이렇게 되는 건가?”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있다 보자.”

“네, 뭐 어쩔 수 없죠.”

당장 올렌드 추기경을 보려 했으나 이건 아쉽게 되어 버렸다.

일단 우리 팀과 연락을 다 한 뒤 바로 VRS를 빠져 나왔다.

당연하게도 신성 제국의 등장으로 인해 게시판은 폭발 직전이었다.

- 신성 제국?

- 결계는 또 뭐야? 본 적도 없는데 풀렸다고?

- 주호 얼마 전에 경계 넘어가지 않았음?

- 맞네, 영상에서 봤음. 따라가는 놈들 따돌리고 넘어간 거.

- 하, 무슨 손만 댔다 하면 다 찾아내네.

- 우리도 빨리 넘어가야겠다.

- 무슨 수로?

- 점검 끝나면 갈 수 있는 방법 알려 주지 않을까?

- 아놔, 그럼 또 기다려야 하나.

- 빨리 가야지 선점할 건데.

우리가 넘어갔던 걸 다 봤나 본데.

영상 때문에 행선지를 속이기는 어려워 이미 대부분의 유저들이 알고 있었다.

조만간 다른 유저들도 넘어오게 되려나.

그전에 다 준비를 해 두어야 할 텐데.

사실상 우리를 뱅뱅 돌게 만들었던 그 결계만 아니라면 다른 유저들도 신성 제국의 위치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중간에 있는 네임드들이야 어떻게든 떨쳐 내고.

굳이 잡지 않더라도 중간에서 누군가 희생을 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시간이 나서 다른 서버의 상황을 봤는데 우리만큼 진행이 되어 있는 서버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알아낸 건지는 몰라도 영웅의 검이나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 무기를 얻은 자들이 점점 하나둘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서버도 뭐 놀고 있지만은 않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꽤 많이 지났기도 하고.

르아 카르테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풀려 각 서버마다 주인이 한 명씩은 다 존재했다.

다만 르아 카르테를 내 수준까지 끌어올린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있다가 금방 죽어서 드랍하는 유저들이 속출했으니까.

나처럼 한 번도 안 죽은 유저들은 없네.

조금만 성장시키고 나면 죽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니 이제는 애물단지처럼 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지고 있어 봐야.

별 쓸모가 없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르아 카르테라니.

르아 카르테는 원래도 강한 다른 영웅의 무기와는 다르게 옵션이 잘 받쳐 줘야 동급의 성능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제대로 조합을 하지 못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무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 다른 서버에서는 네임드 무기가 주가 되어 다들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전투를 하고 있었다.

하긴 르아 카르테가 좀 괴랄한 무기이기는 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키우기 힘든.

그나마 2서버는 좀 낫네.

어느 순간부터 주인이 거의 바뀌지 않은 케이스라 제법 높은 수준까지 성장을 시켜 놓았다.

흠, 제일 세력이 강한 길드인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길드가 하나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한번 붙어 보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서버가 내려간 지 반나절쯤 지나자 다시 서버가 열려 있었다.

아, 잠시 잠들었나?

게시판을 보다가 깜박 잠들어 버린 것 같은데.

한참 뒤에나 열릴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마음 편히 누워 있다가 서버가 열리는 시간을 놓친 것 같았다.

얼마나 푹 잤는지 폰에 전화가 잔뜩 와 있는 것도 몰랐고.

애초에 소리를 꺼놔서 그런지 전화가 온지도 몰랐다.

잠시 폰을 확인하는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중> 긴급. 보면 바로 접속하도록.

긴급이라고?

왜 이런 문자가?

전화도 많이 온 걸 봐서는 정말 급했던 것 같은데.

이미 다들 접속해 있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VRS에 누웠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50.

> 로딩 중…….

다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변한 것은 없어보였다.

아마 이제 다른 유저들도 넘어올 수 있으려나…….

예상했던 대로 결계가 사라지면 신성 제국이 완전 공개가 되어 있었다.

길만 알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었고.

접속하자마자 바로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들어왔냐?

<주호> 네, 들어왔어요. 전화 봤는데 무슨 일이에요?

<불멸> 하, 설마 했는데 베히모스 이거 다시 나왔다.

<주호> 네? 그게 왜?

<불멸> 지금 정문 쪽이 난리야. 이미 걷잡을 수도 없이 무너졌다.

베히모스가 지금……?

보통은 점검이 끝나면 네임드 보스들이 다 리젠이 된다.

그래서 다들 점검 이후를 노려서 네임드를 다시 잡으러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베히모스는 이벤트 형식의 네임드라 생각해서 바로 나올 것이라 생각조차 안 했는데…….

월드 네임드라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공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성벽을 향해 바로 달려 나갔다.

재중이 형 말대로 베히모스의 무지막지한 공격력이라면 지금쯤 개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달려서 도착한 성벽은 이미 무너져 있었고 수많은 NPC들이 성벽에 깔려서 즉사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성벽이고 건물이고 브레스에 녹아 제대로 된 형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저 멀리 브레스에 녹아 만들어진 길 아닌 길이 여러 개가 쭉 형성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완전히 개판이 된 모습.

칫.

너무 늦었나.

자고 있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거기다 지금은 베히모스가 어디로 갔는지 파악도 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엄청난 불기둥이 피어올랐다.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의 화력에 눈이 찌푸려졌다.

뭐지?

전에 상대했던 녀석과는 위력이 완전 다르잖아……?

분명 강하기는 했는데.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불기둥이라니.

다시 달려가려는데 옆에 마법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챠밍?”

모습을 드러낸 것은 챠밍.

한참을 싸웠는지 여기저기 잔뜩 그을려진 채 엉망이 된 모습이었다.

“오빠, 기다렸어요!”

“아, 미안. 상황은?”

그러면서 멀리 바라봤는데, 챠밍의 말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NPC들을 죽이고 지금 레벨이 한참 올라갔어요. 도저히 상대가 안 돼요. 그 추기경이라는 NPC도.”

“이런…….”

“어떻게 해요?”

챠밍의 질문에 순간 내 입에서는 답이 나왔다.

“그냥 둬.”

“네?”

“도와주지 말라고.”

“그게 무슨?”

의문이 가득한 챠밍과 멀리 있는 베히모스를 번갈아 본 뒤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 녀석들, 대체 뭘 숨기고 있나 한번 봐야겠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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