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화 버려진 나라 (2)
이 NPC가 가진 검이 영웅의 검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확실히 강하긴 했어.
NPC 단독으로 저 베히모스와 치고받을 때부터 뭔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올렌드가 들고 있는 저 검이 영웅의 검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주호> 형, 저 기사, 아니지. 추기경이 들고 있던 검이 영웅의 검이라고 하네요.
<불멸> 흐음, 그래? 영웅의 검이라…….
재중이 형은 그다지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였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그런데 영웅의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임팩트가 없지 않았나? 베히모스와 싸울 수 있는 건 좀 다른 문제이긴 해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다.
베히모스와 싸우기 전에 올렌드의 주변으로 잔뜩 걸리던 버프들.
그게 단순히 신성 제국의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의 힘이 아닐 수도 있나?
영웅의 검이 가진 힘?
이건 확인해 봐야겠는데.
<주호> 혹시, 주인을 강하게 해 주는 그런 종류의 검일까요? 전에 버프가 막 걸리고 했던 것들요.
<불멸>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주호> 네, 한 번 물어볼게요.
재중이 형과 빠르게 귓속말을 나누고는 올렌드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그 버프들이 영웅의 검의 힘인가요?”
내 질문에 올렌드가 가만히 서서 미소만 지었다.
『 제가 주호 님의 영웅의 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능력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
질문에 대한 명백한 거절.
이거 참.
NPC라고 너무 쉽게 봤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신성 제국 제넨샤의 추기경, 올렌드와의 친밀도가 부족합니다. 》
방금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적어도 녀석과 더 친해지지 않는 이상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머릿속에 하고 있던 하나의 생각도 그대로 접어 두었다.
<주호> 안 가르쳐 주네요.
<불멸>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우리도 그건 마찬가지라.
<주호> 네, 그런데 탐이 나긴 하네요. 솔직히 한 번 손에 쥐어보면 안 되냐고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지금 반응을 보면 그랬다가는 바로 칼부림이 날 수도 있겠어요.
<불멸> 지금은 참아야지.
잠시 재중이 형이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흠, 그럼 이제 저걸 어떻게 손에 넣는다? 역시 녀석을 죽여야 하나?
죽인다라…….
보통은 생각하기에 제일 좋은 방법 중에 하나였다.
우리와는 다르게 올렌드를 죽이면 저 영웅의 검이 떨어질 테니까.
그런데 그때 르아 카르테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 왔다.
올렌드가 옆으로 좀 움직이는데 부르르 떨리는 방향이 약간씩 시야와 다르게 느껴졌다.
으음.
이건?
저 방패 방향인가?
그걸 느끼는 순간 머릿속에서 다른 조각들이 맞추어졌다.
설마, 영웅의 무기라는 게 단순히 검의 모양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도?
아까는 거리가 있어서 당연히 올렌드가 들고 있는 검이 영웅의 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르아 카르테의 반응에 왠지 그 가정이 다 틀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르아 카르테의 탐식 반응이 아니었다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니 다른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주호> 형, 아무래도 저 검, 영웅의 검이 아닌 것 같아요.
<불멸> 응? 아니라고?
<주호> 네, 묘하게 르아 카르테의 방향이 옆으로 움직여서 확인해 보니 올렌드의 저 방패 쪽으로 계속 기울었어요.
<불멸> 흐음, 방패라……. 그럼 여러 가지가 설명이 되겠네. 올렌드란 녀석이 뭔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지 않았던 것도 말이야.
올렌드가 베히모스를 상대로 정면에서 버틴 일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과도할 정도의 능력을 보여 준 것은 맞았다.
다만 이쁜소녀의 진(眞) 토르처럼 압도적인 공격력을 뿜어낸다라고 보기에는 저 검은 너무 약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올렌드가 가진 아이템이 영웅의 무기가 아닌 영웅의 방패라면 모든 것들이 설명 된다.
저 올렌드의 반응조차도.
애초에 영웅의 검이 아니니까.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해 줄 수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게는 왜 영웅의 검이라고 한 거지?
<주호> 형, 아무래도 저 올렌드라는 녀석. 뭔가 수상해요.
시작부터 거짓말을 해오는 NPC가 달갑게 보일 리는 없었다.
숨기는 게 분명히 더 있어.
어쩌면 지금 저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조차도.
의심해 봐야 했다.
<불멸> 흐음, 이 동네 NPC들은 바로 믿으면 안 되겠지. 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잖아.
<주호> 하긴 그렇네요.
가르시아 제국에서도 귀족들이 하나같이 거짓말을 하곤 했었으니까.
여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저 올렌드라는 녀석의 주변을 좀 더 살필 필요가 있었다.
당장은 다른 NPC들과 친분이 없지만.
그건 이 녀석이 알아서 자리를 마련해 주겠지.
뭔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이렇게 접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또 존재했다.
베히모스를 공격하기 위해 페가수스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던 광경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묘하게 거슬리던.
가르시아 제국과는 다른 광경들.
이 신성 제국.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올렌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뜻밖의 제안을 하면서.
『 신성 제국에 도움을 주신 주호 님을 만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
“저를 말인가요?”
『 신성 제국을 지켜주셨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이시니까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알아?
지금은 가르시아 제국의 휘장 같은 것들은 다 숨겨 놓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다.
귀족 NPC들이 나를 기본적으로 알아보는 것도 가르시아 제국이니까 가능했던 일이고.
심지어 초기에는 가르시아 제국의 귀족들도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었다.
무작정 NPC들이 유저들의 정보를 넘겨받아서 바로 아는 시스템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신성 제국의 추기경이라는 작자가 나를 알아본다고?
정확하게 직위까지?
아니 그보다…….
내가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성 제국의 성문을 걸어 잠근 거였나?
심지어 우리를 포박까지 해 가며?
내 정체를 아는데도?
방금 올렌드가 내뱉은 한마디 말 때문에 지금껏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뒤집어졌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
아님 그냥 무시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제가 공작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넘어가 줄 수도 있었지만.
녀석의 의중을 파악하려면 이건 알아봐야 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 선택해야 할 길이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내 질문에 올렌드라는 녀석이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바로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 신성 제국에도 가르시아 제국과의 정보망이 있습니다. 황제 님과도 가끔 연락을 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가르시아 제국에서 유명하신 주호 공작님을 몰라볼 리가 없습니다만. 』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올렌드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렇군요. 전 또 오해를 할 뻔했지 뭡니까. 하지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아직 이곳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군요.”
바로 제안을 수락하지는 않고 일단은 뜸을 들였다.
이제 어떻게 나오는가 볼까?
내 대답에 잠시 생각을 하던 올렌드는 흔쾌히 답을 내주었다.
『 흠,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얼마 뒤 다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
그러고는 곧장 휘하의 부하들을 이끌고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렇게 올렌드가 사라지자 바로 우리 팀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어때?”
“예상대로에요.”
재중이 형과 우리 팀에게 나와 올렌드가 했던 대화를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더니 다들 표정이 굳어 버렸다.
“올렌드가 가르시아 제국 황제와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하더군요.”
이 부분.
내가 올랜드에 대한 판단을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그놈, 네가 마리아 가르시아와 절친 수준이라는 걸 아예 모르나 본데?”
“네, 그러니까 그런 대답을 했겠죠.”
애초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신성 제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면 내게 이런 임무를 주지도 않았다.
신성 제국을 찾아갈 수 있는 증표까지 줘 가면서.
연락 자체가 안 되니까.
거기다 신성 제국에서 누군가 가르시아 제국으로 왔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었다.
두 제국이 연락이 끊긴 지는 한참이 되었다는 말이었고.
결국 방금 저 올렌드라는 작자가 한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들의 뒤에는 한 가지 가정만이 남게 된다.
듣고 있던 챠밍이 내게 물어왔다.
“올렌드 추기경이 오빠의 정체까지 확실히 안다는 건 누군가가 와서 먼저 가르쳐줬다는 뜻이겠죠?”
“그래, 우리보다 먼저 올 만한 녀석들이 있잖아.”
우리야 특수 상황이라 올렌드라는 고위 귀족과 마주친 거지만…….
이 경우는 좀 많이 달랐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접촉을 한 거지?
듣고 있던 전사 형이 내게 말했다.
“굳이 녀석들을 숨겨 준다라. 그럼 함정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그런가요?”
“생각해 봐. 이미 신성 제국에 와 있었을 텐데. 네가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이라는 것을 알면 먼저 온 다른 귀족들에 대해서도 말을 해 줬어야 할 텐데. 지금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전사 형 말대로 방금 올렌드 추기경이 녀석들을 숨겨 준 것이 맞았다.
아니,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쪽에 가까우려나?
내가 그 부분을 물어보질 않았으니.
올렌드 추기경 입장에서는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꿍꿍이가 있네요.”
거기다 수상한 것은 또 있었다.
베히모스.
어째서 베히모스가 봉인이 풀리게 된 거지?
뭔가 시기가 되어서 풀렸다고 보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최소한 누군가가 손을 썼으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그리고 그 의심의 과정에서 계속 추기경이 걸렸다.
확실히 뭔가 있어.
우리가 전혀 모르는 뭔가가.
잠시 생각을 하던 챠밍이 뭔가에 놀랐는지 말을 꺼냈다.
“그럼 벌써 추기경과 손이 닿은 거네요.”
“아마 십중팔구는?”
“설마 한편이 되었을까요?”
“그쪽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분명히 먼저 온 프로 팀들이 뭔가 수를 냈던 것 같았다.
거기다 올렌드 추기경과 이미 커넥션을 만들어 낸 모양이고.
설마 이렇게 빨리 뭔가를 해 놓았을 줄은.
상상 이상의 추진력인데…….
그때 재중이 형이 팔짱을 풀고 말을 꺼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부터 올렌드 추기경을 적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네.”
“네, 그게 맞겠죠.”
다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흐음, 그럼 우린 반대편을 좀 찾아봐야겠는데?”
“반대편요?”
“분명히 여기도 갈라지는 세력들이 있지 않을까. 한쪽이 너무 의심스러운데, 정보가 너무 없잖아. 이럴 때는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지.”
“확실히 그렇네요.”
다른 쪽이라…….
추기경과 반대되는 세력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이것도 우리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이 신성 제국을 들쑤시고 다니면 분명히 추기경의 귀에 들어가게 될 터.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려면…….”
그런데 그때 챠밍이 내 팔을 잡고는 살짝 잡아당겼다.
“응? 왜?”
“오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골목 중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손님이 먼저 찾아온 것 같거든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