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화 베히모스 (4)
같이 싸워 달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주호> 생각하지도 않았던 진행이네요.
<불멸> 아아, 그렇네. 이건 생각을 못 했지.
현재 우리 원정대와 신성 제국 제넨샤는 적대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끼리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멸> 흠, 생각보다 여기 방어가 후달리나?
<주호> 저 녀석이 너무 강한 것일 수도 있죠.
그러면서 성벽 밖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베히모스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 번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성벽이 쿵쿵 울리는 걸 보면 제대로 방어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지도.
쫓아낼 여력이 있었다면 벌써 쫓아냈을 텐데 생각 이상으로 베히모스가 강한 모양이었다.
<주호> 할 건가요?
<불멸> 흐음, 나쁘지는 않네. 이 상태면 적대도 풀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가 여기 신성 제국에 정착하는 데 가장 걸림돌인 점 하나.
적대 상태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제대로 활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적대 상태를 풀기에 최적의 상황이 주어졌다.
문제는 정말 저 베히모스를 잡을 수 있느냐는 건데…….
재중이 형을 다시 바라보자 잠시 고민을 하던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여기 손을 들어줘 보자고. 주변의 도움이 있으면. 해볼 만하다.
<주호> 잡을 수 있다는 말이죠?
<불멸> 아니, 잡는 것까지는 무리겠지만 몰아낼 수는 있을 지도 몰라. 그리고 적대 상태가 풀려야 여기서 부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애들도 제대로 싸울 수 있어.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주변의 원정대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부활을 하기 애매한 상황이라 모두 몸을 사리는 상황.
하지만 신성 제국이 부활지가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저들이 전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까.
<주호> 그럼 해보죠.
어차피 저 제안을 거절해도 다른 방법이 없기도 하고.
따로 나가서 거점을 마련할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대략 결정이 나자 포박이 묶여 있는 두 손을 기사에게 내밀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일단 이것부터 풀어 주시죠?”
『 전부 풀어 줘라. 』
그러자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몇몇 병사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우리의 포박을 모두 풀어 주었다.
“아, 그리고 적대 관계 좀 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모험가들은 그게 있으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거든요.”
적대 관계를 풀어달라는 요구에 기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허락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신화 원정대와 신성 제국 제넨샤의 적대 관계가 해제됩니다. 》
《 신화 원정대의 길드원과 유저들은 다시 신성 제국 제넨샤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시스템 알람은 원정대 인원들 모두에게 전해졌다.
“오, 풀렸다.”
“적대 없어졌어.”
“아, 좀 살겠네.”
포박이 풀리고 적대가 없어지자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보다가 다시 성벽을 바라보고는 기사에게 물었다.
“우리 힘이 필요할 정도로 힘듭니까?”
내 물음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껏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 몇 백 년 만에 깨어난 악마입니다. 지금은 누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합니다. 』
“그 말은…… 저 녀석을 처음 본다는 건가요?”
『 그렇습니다. 문헌에서 본 적이 있지만. 대체 어떻게 봉인지에 봉인되어 있던 저 괴물이 깨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
봉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봉인이 왜 풀린지는 모른다?
이건 누군가 개입을 했다는 말인데…….
<주호> 혹시 그 전에 말한 프로들일까요?
<불멸> 음, 높은 확률로 가능성이 있지. 아니면 다른 힘이 있는 NPC들일 수도 있어. 이를테면, 가짜 황제라던가.
<주호>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훨씬 이전에 봉인을 풀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가짜 황제가 돌아다닌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으니까.
<불멸>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해. 좀 알아봐야겠는데.
그런 말을 주고받고는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 살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라.
지금은 할 수 있는 일부터.
“모두 부활지부터 찍고 오죠.”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자, 가자!”
“이제 좀 제대로 싸워 보겠구만.”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 신성 제국 중앙 제단 앞에서 각자 부활지 설정을 했다.
《 주호 님의 부활 장소가 신성 제국 제넨샤로 변경됩니다. 》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변경을 마치고 난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 드워프 족들이 100% 신성 제국 제넨샤로 도착했습니다. 》
《 퀘스트 완료 조건에 부합합니다. 》
《 서브 퀘스트 : 드워프 족 이주 (완료). 》
- 드워프 왕, 카르바할과 드워프 족의 이주에 협력하라.
- 신성제국 도착까지 드워프 왕, 카르바할의 생존.
- 드워프 족들의 80% 이상 생존.
- 퀘스트 보상.
『 아다만티움 / 특수 제작 재료.
- 운석의 파편. 』
역시.
여기까지 왔어야 하는 거였어.
드워프의 왕인 카르바할이 내게 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뭔가를 손에 들고서.
『 덕분에 무사히 신성 제국까지 올 수 있었어. 이건 약속한 운석의 파편이네. 』
“아, 감사합니다.”
이로써 아다만티움이 두 개.
앞으로 무슨 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최대한 비축해 두는 편이 좋았다.
일단 카르바할에게 한 마디를 해두었다.
“드워프들은 전투에 나서지 마세요.”
『 흠,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는가? 』
“지원만 해 주셔도 충분합니다.”
괜히 싸우겠다고 나서서 드워프들이 죽는 게 더 문제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 알았네. 』
이쪽은 이제 됐고.
다시 성벽으로 돌아오자 여전히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한 포대들이 끊임없이 베히모스를 향해 포화를 퍼붓고 있는 중이고.
아마 화력 면에서 가르시아 제국보다 더 나을 수도 있으려나?
주변을 지키던 병력들까지 모두 몰려왔는지 성벽 근처가 NPC들로 가득 찼다.
당장 오러를 쓰는 기사들이 바깥으로 나가서 싸우지는 않는 모양인데…….
성벽이 무너지면 나서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도 성벽에 올라가서 싸우죠.”
대놓고 성벽 바깥으로 나가 베히모스와 치고받으라고 우리를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상식이 없을 수는 없…….
그런데 그 순간 그런 것들은 신경 쓸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 성벽이 무너진다! 』
갑자기 베히모스의 돌격에 충격을 받은 한쪽 성벽이 무너지면서 땅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콰르릉!
성벽이 무너지면서 그 사이로 거대한 머리를 들이미는 베히모스.
그 모습을 본 전사 형이 인상을 확 구기더니 곧장 듀라한 쉴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큭, 저놈 완전 무대포잖아.”
“할 수 있겠어요?”
지금껏 지켜본 베히모스는 전사 형의 방어구로는 절대 막지 못 한다.
“못 해도 해야지.”
그런데 그때 또 다시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까지 우리와 말을 했던 그 기사단의 대장으로 보이는 NPC에게서 갑자기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건…….
오러?
들고 있는 검과 거대한 하얀 쉴드.
그리고 하얀 갑옷 전체에서 동시에 오러가 쏟아져 나오자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압감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몸에 여러 가지 스펠을 한꺼번에 두르면서 점점 몸을 강화시키는 모습까지.
『 와랏! 』
그렇게 스펠들로 강화가 다 끝난 빛의 기사가 베히모스에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는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체격 차이만 해도 수십 배인데…….”
“미친놈 아냐?”
“저거 죽으려고 발악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빛의 기사는 베히모스의 내려치는 거대한 앞발을 라지 쉴드로 완벽하게 방어해 내었다.
쿠웅!
순간적으로 무릎이 굽혀지긴 했지만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그런 것일 뿐.
그것도 모자라 빛의 검으로 강하게 앞발을 후려치자, 베히모스의 방어막이 중화되면서 베히모스의 발이 크게 베여졌다.
크허엉!
공격이 통해?
3중 오러를 써서 겨우 피해를 준 녀석에게 저 기사 역시 비슷한 수준의 피해를 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는 아예 정면에서 베히모스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치고받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전혀 밀리지 않고.
전사 형도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런 거 본 적 없죠?”
“처음이지. 저놈 단순한 NPC가 아니었어.”
어쩌면.
전사 형이 조만간 도달해야 하는 상태가 저런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 해답은 저 NPC에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빛의 기사가 확실히 어글을 잡아 주자 주변에서 다른 NPC들이 안정감을 찾고 베히모스에게 딜을 넣기 시작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마법사들인 데다가 하얀빛 계열의 마법들과 뇌전 같은 종류의 스킬들이 즐비했다.
동시에 또 다른 기사들이 몸에 오러를 걸고 베히모스에게 달려들어 근접전을 걸었다.
성벽 위에서는 하얀빛으로 무장한 궁수들이 연신 화살을 쏘아내 베히모스의 등에 화살을 박아 넣었고.
거기다 아직 건재한 성벽에서 포를 돌려세워 베히모스에게 겨냥해 계속 포화를 퍼부어 댔다.
콰아앙!!
쐐에엑!!
콰앙!
콰지직!!
크허어엉!
이런 빛 계열의 공격들이 베히모스에게는 꽤 타격이 있는지 계속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눈앞에 있던 빛의 기사를 강하게 쳐내었다.
쿠웅!
그러자 체격이 작은 빛의 기사의 몸이 붕 뜨면서 저 멀리 밀려나가 버렸다.
그 순간.
갑자기 베히모스 주변으로 번개와 폭풍이 동시에 몰아치면서 달라붙은 모든 NPC들을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동시에 날아오는 모든 공격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했고.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칫, 광역 방어잖아. 가득이나 몸빵 강한 놈이 저런 스킬까지 써 대냐.”
그런데 단순히 방어만으로 그치지만도 않았다.
시야를 가진 번개 폭풍 속에서 뭔가의 스펠이 계속 중첩되는 모습이 눈에 포착되었다.
“형! 저거!”
“알아! 브레스다!”
주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보다 훨씬 강하리라고 예상되는 브레스가 광역 방어기 안에서 온전히 시전이 되더니 이내 베히모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동시에 주변 대기가 부르르 떨리며 녀석의 입에서 광포한 브레스가 전면으로 뻗어나갔다.
쿠구구궁!!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뇌전과 폭풍, 화염이 모두 중첩된 브레스.
그 브레스에 놓인 전면의 모든 건물들과 땅들이 죄다 증발하듯 타올라 쓸려나가 버렸다.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거기다 넓은 신성 제국을 쭉 가로지로는 브레스에 저 멀리 시야에 잘 보이지 않는 건물들까지 모두 증발하면서 우리의 눈을 놀라게 만들었다.
전사 형이 그 광경을 보고는 그만 턱을 벌리고 말았다.
“이건 완전 괴물이잖아?!”
그리고 그런 풍경을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베히모스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
이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