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화 신성 제국 (5)
오러 블레이드.
유저들 중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유저는 나와 재중이 형 정도밖에 없었다.
제대로 쓸 수만 있으면.
근접전에서 오러 블레이드만큼 강한 기술도 없었다.
그런 상위 기술이 나왔으니 다들 눈이 뒤집힐 수밖에.
거기다 오러 블레이드가 떨어지는 몬스터까지 확인을 했다.
그때 나르샤 누나가 내게 신호를 주었다.
“주호, 잠깐만.”
“네? 무슨 일이라도?”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자 곧장 나르샤 누나의 옆으로 갔다.
“저기, 보여?”
나르샤 누나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주 멀리 후방의 산에서 뭔가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거의 확인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미행…… 인가요?”
“응, 숨는다고 숨은 것 같은데.”
그리고 나와 나르샤 누나의 옆으로 재중이 형이 다가왔다.
“꼬리가 붙었나.”
재중이 형의 말에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후방을 살펴보았다.
시야가 우리보다 넓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해 주었다.
“여섯 시 방향, 다섯 시 방향. 확인된 것만 네 개 길드 이상. 그보다 후방에는 더 많이 몰려 있어.”
“흐음, 몰래 나온다고 나왔는데 말이야……. 꽤 장난질을 쳐 주는군.”
우리가 그런 말을 하고 있자 전사 형 역시 다가와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꼬리가 붙었습니까?”
“어, 그것도 꽤 많이.”
“처리할까요?”
처리한다는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후방에 집중하는 동안 낌새가 이상했는지 화련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아, 꼬리가 붙었다네요.”
그리고 역시 후방을 확인한 화련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이것들이 미쳤나? 뒤질려고. 다 쓸어버려?”
역시 이 사람은 빠꾸가 없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어떨 때 보면 화끈하기까지 했다.
“잠시만요. 그저 따라왔다고 죽여 버리면 이쪽이 꽤 곤란하거든요.”
나름 길드 이미지에 신경 쓰는 편이라.
하지만 화련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쥐새끼마냥 따라붙는 것들 뭐가 이쁘다고 살려 둬?”
이건 화련의 말이 맞으려나?
“그래도 확인을 해 봐야겠네요. 전사 형.”
전사 형을 부르자 전사 형이 옆으로 다가왔다.
“따라붙은 길드들 어디 소속인지 아세요?”
길드 이름만 봐도 대략적인 소속이 나온다.
그런데 전사 형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잡다하게 섞여 있어서 말이지. 소속 연합을 특정할 수가 없어. 거기다 방송하는 애들까지 겹쳐 있는 모양인데.”
“개인이 따라붙은 거라는 거죠?”
“어, 아무래도 우리 뒤를 치려고 붙은 건 아닌 것 같다.”
전사 형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적이었으면 깔끔하게 쓸어버리는 건데.
오히려 이쪽이 더 피곤해.
“따라붙지 말라고 경고는 해 줄 수 있죠?”
“음, 저것들 파파라치 같은 녀석들이라……. 떼어 내도 금방 따라붙을걸?”
“어디서 정보가 샜을까요?”
“모르지. 일단 입조심을 하긴 했는데 말이야.”
우리 쪽 원정대를 한번 쓱 둘러봤는데 워낙 숫자가 많아서 누구라고 특정하기가 힘들었다.
솔직히 저 안에서 누군가 정보를 흘렸다고 해도 지금 확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 스칼렛이 다가오더니 역시 후방을 보고는 한숨을 쉬어보였다.
스칼렛은 뭔가 아는 건가?
“요즘 특정 유저들을 따라붙어 찍고 다니는 파리들이 많다고 해요. 아마, 주호 님을 따라왔을 확률이 높아요.”
“저를요?”
“네, 매번 화제의 중심에 있으니까. 따라다니기만 해도 돈 되는 영상이 나올걸요?”
“설마 저 유저들이 전부?”
“네, 아마도.”
급 피곤해지네.
“방금 챠밍의 화력쇼도 다 지켜봤겠네요. 오러 블레이드가 떨어지는 것도.”
“계속 따라왔다면요.”
“그럼 지금 신성 제국으로 가는 길을 뚫는 것까지 전부 눈치챘을까요?”
“음, 신성 제국까지는 모를 테지만. 우리가 여길 확실히 뚫는 것을 봤으니 곧 다른 유저들이 잔뜩 꼬일 수도 있겠죠.”
“죽여도 다시 따라붙고요?”
내 말에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인가.
서버에서 너무 유명하니 오히려 우리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유저들까지 생겨 버렸다.
귀찮아졌네.
“죽여도 따라붙는다면 뭐, 소원대로 계속 죽여 줘야죠.”
“직접 손을 쓰시려고요?”
“아뇨, 굳이 피곤하게 그럴 필요 있나요.”
어차피 소문이 났으니 계속해서 몰려드는 유저들을 막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일일이 상대해 주시는 이쪽이 손해고.
옆에서 기다리던 재중이 형에게 물건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이건?”
내가 건네준 물건은 다름 아닌 마리아 가르시아가 준 증표.
신성 제국으로 가는 방향을 보여 주는 반지였다.
“몬스터가 안 붙으면 암흑 지대 빠르게 돌파할 수 있죠?”
“너 설마?”
“네, 장난질을 치면 똑같이 갚아줘야죠.”
내가 하려는 것을 이미 눈치챈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
“제가 주력이 더 빠르잖아요. 저보다 빠른 사람이 없기도 하고.”
비슷한 사람을 꼽자면 나르샤 누나 정도가 있는데 이건 꽤 위험한 일이라 나르샤 누나를 보내긴 힘들었다.
“그러다 죽으면?”
“안 죽을 정도만 할게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예요. 저들에겐.”
“같이 갈까?”
“아뇨, 형은 만약 일이 잘못됐을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시간 절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저들을 이용해서?”
“뭐, 그렇죠.”
“흐음, 알았다. 조심해. 여차하면 그냥 손 떼 버리고.”
재중이 형의 허락이 떨어지고 재중이 형은 길마들을 모아서 바로 작전을 전달했다.
“우리는 이대로 쭉 암흑 지대를 달려갈 겁니다.”
“네?”
“무슨?”
“뭐라고요?”
재중이 형의 오더에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달려서 간다고 하니까 황당해할 수밖에.
이슬두잔이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그냥 지금처럼 조금씩 전진하면 안 되나요?”
“네, 그래도 됩니다만 조만간 파리들이 잔뜩 꼬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 우리가 뚫어놓은 길을 무임승차하는 걸 다들 두고 볼 생각은 없으시겠죠?”
“아, 설마. 이대로 우리를 따라 유저들이?”
“뭐 그런 셈이죠. 지금은 우리밖에 없지만 방송에 나가면 개 떼처럼 달려올 겁니다.”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길마들이 다 수긍을 했다.
아무래도 무임승차는 좀 억울한 일이지.
정리가 된 듯하자 곧 재중이 형에게 알렸다.
“그럼 먼저 갑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챠밍에게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조심해요. 불멸 오빠 말대로 위험하면 그냥 빠져요.”
“응, 잘 알지. 그럼 간다.”
바로 르아 카르테를 두 개 꺼내서 암흑 지대 안으로 달려 나갔다.
시야는 이제는 진실의 눈으로 잘 보이니까 별문제가 되지 않았고.
암흑 지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가 반응했다.
《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상의가 어둠 속성에 저항해 피해를 감소시킵니다. 》
《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하의가 어둠 속성에 저항해 피해를 감소시킵니다. 》
《 암흑 드래곤 헬름이 어둠 속 경직에 저항합니다. 》
《 암흑 드래곤 건틀렛이 어둠 속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
《 암흑 드래곤 부츠가 어둠 속 이동 속도를 증가시킵니다. 》
역시.
단순히 암흑 지대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바로 이동속도가 증가했다.
나쁘지 않네.
아마 지금부터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이런 버프를 달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달리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사방으로 감각을 퍼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들어가자 아주 멀리서부터 뭔가가 나를 찾아냈는지 내 방향을 향해 점점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체가.
이건 꼭 예전에 포탈을 통해 암흑 지대를 들어갔던 딱 그런 느낌이네.
고르곤이 날 따라다니던.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개체가 날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듀라한이겠고.
반대 방향은 고르곤인가?
어디, 얼마나 갈 수 있나 한번 해볼까?
【 헤이스트! 】
굳이 공격을 안 해도 녀석들이 먼저 나를 포착하고는 따라붙었다.
전사 형도 더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아서 바로 빠져나왔을 테고.
하지만 난 계속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내가 달리는 만큼 주변의 개체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주변 땅을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도합 열네 마리.
이전에 네임드를 그렇게 잡아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숫자라.
생각 이상으로 네임드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네임드를 풀어놓은 거지?
유저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네임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딱 한 마리만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지금 주변에 너무 많은 녀석들이 있었으니까.
더 달려나가자 곧 변화가 감지되었다.
땅속에서도 뭔가가 꿈틀거리면서 내게 따라붙는 녀석들이 느껴졌기에.
이건 전에 말한 그 녀석들인가.
갑자기 땅속에서 나와서 끌고 들어간다는.
네임드인지 혹은 그 아랫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녀석들까지 싹 몰아야겠어.
우리가 전진하는데 분명히 방해가 될 테니까.
이동속도는 내가 빠른지 다행히 녀석들이 나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거기다 미리 어디에서 나오는지 감지가 되니까 적당한 지점으로 피해 가면서 몰이가 가능했다.
모든 몬스터들의 위치를 느끼면서 달리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아마 다른 유저들이었으면 뭔지 판단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당했을 수도 있었다.
저렇게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그나저나 생각보다 할 만한데?
만약 혼자였으면 이대로 끝까지 달려 나가서 암흑 지대를 돌파해 버리는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하기는 힘들겠지만.
네임드들이 계속 따라붙는 상황에서 결국 한 번은 싸워 줘야 하는데 한 번에 이 정도 숫자는 나도 감당하긴 힘들었다.
체력은 문제없고.
마력도 괜찮고.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와 원천마력 덕분에 암흑 지대에서도 헤이스트를 무한으로 써서 계속 달려 결국 감각에 걸리는 모든 몬스터들을 끌어모았다.
솔직히 이 녀석들만 없으면 그냥 일자로 달려 나가기만 해도 된다.
자, 그럼.
다시 돌아가 볼까?
곧장 방향을 틀어서 이번에는 원래 있던 장소를 향해 달려나갔다.
<주호> 옆으로 비켜 있어요. 지금 몰아갑니다.
<불멸> 알았다.
그리고 한참을 네임드들을 끌고 나가 결국 원래의 지점까지 도달했다.
<주호> 이대로 암흑 지대로 쭉 달려요.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불멸> 그래, 조심해라. 먼저 출발한다.
그렇게 원정대가 암흑 지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우리를 따라왔던 유저들이 숨어 있던 산으로 뛰어들었다.
쿵쿵쿵.
쿵쿵!
개 떼처럼 뒤에 네임드들을 달고서.
그러자 화들짝 놀란 유저들이 벌떡벌떡 급하게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원.
한둘이 아니었네.
엄청 숨어 있었잖아?
하지만 이미 늦었어.
워낙 고속으로 달려들었기에 녀석들도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한 채 나와 네임드들을 기쁘게(?) 맞이했다.
우왕좌왕.
유저들이 급하게 움직이기는 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사이 벌써 네임드들의 포착 범위 안에 녀석들이 모두 들어갔다.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은 타이밍.
그런 유저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날 이용하고 싶다면 이 정도는 감수하라고. 이것들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