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화 엉망진창 방어전 (7)
- 야! 막아 봐!
- 부활 장소까지 먹히면 진짜 끝난다.
- 어떻게든 밀어내!
- 제국 놈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도와주러 안 옴?
- 귀족 새끼들 아까 가르시아 궁으로 가던데?
- 와씨, 설마 유저들 버린 거냐?
- 알아서 막으라는 거겠지. 우리한테나 중요하지 여기가 지들한테 중요하겠냐.
- 그래도 지원 하나도 안 해 주는 건 좀 에바 아냐?
사실상 부활 장소가 먹히는 순간.
방어전이고 뭐고 게임 자체가 터진다.
접속하는 족족 죽어 나갈 테니.
이건 유저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하나도 없는.
BJ들이 찍어 올리는 전장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고대 드워프 왕.
이 녀석.
아무래도 다른 마음을 품은 것 같은데…….
재중이 형도 영상을 봤다가 나를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불멸> 처리해야겠다.
<주호> 네.
처리한다는 재중이 형 말에 짧게 응대했다.
<주호> 예정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네요.
<불멸> 믿을 놈을 믿었어야지. 처음부터 같이 가면 안 되는 놈이었어.
사실 재중이 형과 따로 나눈 이야기 중에 고대 드워프 왕을 최대한 끌고 가려는 시나리오가 있기는 했었다.
고대 드워프 왕과 미리 접촉을 해서 서로 짜고 치는 방어전을 만든다.
그래서 일부러 고대 드워프 왕에게 부활 스킬까지 주는 작업을 해 놨던 것이었다.
방어전에서 양측의 전력을 최대한 팽팽하게 만들어 유저들만 잔뜩 죽어 나가면서 그 와중에 우리는 이득을 챙기는.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고대 드워프 왕이 오러포를 가지고 와서 성벽을 한 번에 뭉개 버렸으니.
<주호> 너무 다 해 먹으려고 했나 봐요.
정말 고대 드워프 왕을 이용해 유저들 뼛속까지 싹 긁어모을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됐네.
지금의 고대 드워프 왕은 우리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불멸> 매번 잘 되면 그게 신이지.
<주호> 좀 아쉬워서요.
<불멸> 그 아쉬움. 녀석을 잡고 마무리 짓자.
<주호> 그런데 우리 손으로는 잡을 수 없잖아요.
분명히 GM 훈이 와서는 우리가 직접 잡지는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다른 영웅의 무기의 위치를 바꿔 버린다는 압박과 함께.
<불멸> 이 정도면 GM이 원하는 그림은 충분히 그려 준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건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르겠지.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갑자기 GM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부른다고 바로 나와 줄 GM이…….
그런데 그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의 주변으로 검은 암막이 쳐지더니 사방과 완전히 격리된 공간이 형성되면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어 있는 피곤한 눈빛에 더한 깊은 한숨과 함께.
“하아, 진짜 매번 왜 이러십니까.”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GM 훈.
설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부르자마자 나타나려면.
재중이 형이 그런 GM 훈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쪽이 원하는 그림은 우리가 다 만들어 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조건은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습니까?”
재중이 형의 말은 심플했다.
고대 드워프 왕이 날뛰어서 방어전 이벤트를 성사시켰으니까.
우리가 중간에 고대 드워프 왕을 잡아서 이벤트가 일어나지도 않게끔 만드는 경우의 수는 사라진 셈이었다.
설마 GM 훈도 우리가 이렇게 그림을 만들어 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저 녀석. 이제 잡아도 별문제는 없겠죠?”
재중이 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GM 훈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끄응,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 그냥 놔둘까요? 이대로 놔두면 상황이 꽤 재밌어질 것 같은데?”
이 말에는 오히려 GM 훈의 어깨가 움찔해 버렸다.
딱 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저거 분명히 당황한 거야.
연이어 재중이 형이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아마 이대로 놔두면 유저들이고 제국이고 싹 무너지지 않을까요. 제국이 망하면 새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럼 추가 근무에 철야에…….”
철야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GM 훈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스톱.”
재중이 형이 말한 시나리오는 생각하기도 싫은지 GM 훈이 바로 손을 들어서 재중이 형의 말을 멈추게 했다.
“하아, 진짜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서로 좋게좋게 가자는 거죠.”
잠시 고민을 하던 GM 훈이 결국 포기한 듯 정말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번 한 번만입니다.”
“그럼, 딜 성립이군요.”
“마음대로 하시죠. 하아, 진짜 다음에는 얼굴을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GM 훈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암막도 걷혔는데 주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돌아다녔다.
이렇게 표시가 안 난다면.
종종 불러내야겠는데?
누군 되게 싫어하겠지만.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너무 쉽게 허락한 것 아닌가요?”
“어쩔 수 없었을걸?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니니까. 지금 유저들이 상대하기에 드워프 쪽이 너무 강해.”
그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에 레릭 왕국을 폭파시킨 것 때문인가요?”
“그래, 그때 오러를 쓸 수 있는 기사단, 그리고 그에 맞먹는 마법사단이 싹 다 죽어 버렸잖아.”
“전력의 공백이 크죠.”
지금 가르시아 궁을 지키는 기사단과 마법사단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도 그에 기인했다.
평소라면 유저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나섰을 텐데.
지금은 가르시아 궁을 지키는 일만 하고 있으니.
테인 공작이 기사단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가르시아 궁을 지키는 것도 벅찬데, 외부로 기사단을 내어주는 일은 테인 공작 입장에서는 완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성벽에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만약 충분한 숫자만 있었다면 성벽이 뚫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
이런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특히 오러가 문제야. 현 유저들은 저걸 막을 능력이 안 되거든. 상대는 쇳덩어리 검을 휘두르는데 나무 막대기 들고 막으라고 하면 막을 수 있겠냐.”
음,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직격만 피하면…….
“너, 방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아하하…….”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그만큼 격차가 있다고. 적어도 오러를 구할 시간을 유저들에게 줬어야 했는데. 지금은 너무 이르지.”
“결국은 우리가 해결해야겠네요.”
그런 대화를 마칠 때쯤 황실 비공정이 유저들의 부활지점 근처까지 도착했다.
확실히.
드워프들이 압도적이야.
서로 맞부딪히는 최전선의 라인에 드워프들이 너무 강하다 보니 라인 유지가 전혀 되지 않았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유저들이 싹 밀려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려가죠. 상황을 뒤집으러.”
그렇게 부활 지점 한가운데 황실 비공정을 내리자 유저들이 고함을 쳤다.
“야! 누가 여기서 비공정을 내리는 거야!”
“미쳤어? 운전 똑바로 안 해?”
“어? 저거 주호네 비공정인데?”
“뭐? 진짜?”
“그래도 개념 없이 한복판에 내리려고 하냐.”
“아냐, 이 새끼들아. 저 비공정 함포 죽여 준다고. 빨리 자리 내어 줘!”
“나도 영상에서 봤어! 뭐하냐! 다들 자리 터!”
처음에는 불만을 터트리던 유저들도 있었는데, 가르시아 궁 쪽에서도 BJ들이 꽤 있었는지 우리 영상을 확인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유저들이 우르르 비켜서면서 황실 비공정이 내려설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수고를 덜었네.
여차하면 다 깔아뭉개고 내려야 할 판이라.
그렇게 황실 비공정이 바닥에 내려선 뒤 바로 외쳤다.
“전부 뒤로 빠져!”
내 외침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유저들이 곧 썰물처럼 쭉 빠져나가며 자리를 비워 줬다.
“다 빠져!”
“늦으면 우리도 뒤져!”
“여기 안 막아도 돼?!”
“그냥 좀 빠지라고!”
그렇게 유저들이 너무 쉽게 라인을 빼주면서 뒤로 나가 버리자 오히려 드워프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싶을 거다.
어느 정도 유저들이 빠지는 것을 확인한 후.
“함포! 전방을 향해 발사!”
【 오러 트레이저! 】
【 오러 트레이저! 】
【 오러 트레이저! 】
.
.
오러 트레이저가 크게 빛을 발하면서 전방을 향해 동시에 쏘아졌다.
콰아아아!
쿠아아!
쐐애액!
콰아앙!
콰앙!
한 발도 아닌 여러 발이 함께 쏘아지자 이번엔 피할 공간도 없이 일자로 쭉 드워프들 대군이 오러포의 범위에 휩싸여 버렸다.
오러포가 지나가면서 강력한 폭발과 함께 땅도 전부 뒤집히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결과는 뭐…….
안 봐도 뻔하지.
잠시 강렬한 후폭풍으로 시야가 뿌옇게 변했는데, 먼지가 가라앉자 곧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워프들의 증발.
오러포가 동시에 휩쓸고 지나간 라인 그대로 딱 그만큼 드워프들이 녹아서 사려져 있었다.
그와 함께 유저들 측에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우와! 대박!”
“이야! 다 녹았어!”
“와, 답답한 걸 한 방에 뚫어 주네.”
“진짜 멋지다!”
“저 함포 개쎄네!”
“비키라고 한 이유가 있구만.”
“역시 주호!”
원래는 녀석들의 무기지만.
지금은 우리의 최고의 무기였다.
반대로 저쪽에서 똑같이 응수하려고 해도.
오러 트레이저를 우리가 싹 쓸어 온 상황이라.
장전된 함포가 쏘아지고 난 뒤.
시스템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 지금 오러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 오러 충전율 - 0 / 100%. 》
《 오러포를 사용하시려면 오러를 충전해 주세요. 》
“기사들 다시 충전!”
내 명령이 떨어지자 일사불란하게 기사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써서 다시 오러 트레이저를 충전시켜 갔다.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1 / 100% 》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5 / 100% 》
.
.
급속 충전기로 충전을 하듯 오러가 쭉쭉 차오르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일꾼들은 제대로 구했다니까.
고대 드워프 왕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네.
자기들 무기를 더 잘 써먹고 있으니.
물론 완전 연속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다들 잠시만 막아 주시죠. 충전하는데 좀 시간이 걸려서.”
내가 주변으로 말하자 곧 이 말이 유저들에게 쫙 전달이 되었다.
“주호가 잠시만 막으란다.”
“오오, 또 쏠 수 있는 거냐?”
“그럼 무조건 막아 줘야지.”
“다시 블록 형성해!”
이미 오러 트레이저의 위력을 본 후라 유저들의 선택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잠시만 막아 주면.
또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유저들이 막아 주는 사이 함포가 충전되자 다시 한 번 오러포를 쏘았다.
콰아아!
쿠아앙!
콰아아앙!
함포가 쏘아지는 방향은 무조건 삭제.
이건 고대 드워프 왕이 부활로 살려내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지금 엄청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몇 번을 쏘아 대자 이제는 함포 방향을 틀기만 해도 드워프들이 알아서 도망가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아마.
이대로 방어전이 끝나더라도.
퀘스트의 최고 수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이걸로는 만족 못 하지.
드워프들을 계속 녹여 대자 어느 순간부터 유저들이 다시 밀고 나가며 상황이 역전되었다.
드워프들의 부활과 유저들의 부활 싸움.
오러포 덕분에 두 좀비들의 싸움에서 유저들이 점점 밀기 시작한 것이다.
곧장 나르샤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고대 드워프 왕 찾을 수 있어요?”
“계속 찾고 있어.”
얼마 후.
나르샤 누나가 한 장소를 가리켰다.
“도망치려고 하는데?”
“그럼 안 되죠.”
바로 함포의 방향을 일제히 조정했다.
현재 고대 드워프 왕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과연 네임드급의 NPC도 이걸 맞으면 버틸 수 있을까?
“함포 발사!”
명령과 동시에 쏘아져 나간 오러포들이 고대 드워프 왕이 숨어 있던 장소를 그대로 덮쳤다.
주변에 있는 드워프들을 싹 녹여 내며.
『 크아아악!! 』
그리고 고대 드워프 왕의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전장 가득 울려 퍼졌다.
소리 좋고.
반응 좋고.
“가죠.”
곧장 황실 비공정에서 뛰어내려 오러포가 만들어 낸 공터를 쭉 달려 나갔다.
그리고 온몸이 그을린 채 타격을 받은 듯 멈춰 있는 고대 드워프 왕의 가슴에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동시에 꽂아 넣었다.
퍼억!
푸욱!
『 크아악! 너! 주호 공자악! 』
그대로 고대 드워프 왕의 품으로 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녀석에게 속삭였다.
근처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러게, 하란 대로 했으면 서로 얼마나 좋냐. 너 때문에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알아?!”
말을 안 듣는다면…….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푹 쉬어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