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화 엉망진창 방어전 (5)
“어?!”
“뭐, 뭐지?”
“싹 녹았어?”
“와, 이거 실화냐? 어떻게……?”
“야, 멍 때리지 마. 주호가 돌격하라잖아.”
“아, 그렇지!”
“에이, 오르겠다. 전부 달려!”
“지금 밀어야 쭉 밀 수 있어!”
“가즈아!”
가르시아 궁 주변으로 포위를 하던 드워프들의 압박이 순식간에 줄어들자 유저들도 한껏 고무되었다.
특히 흉흉하게 오러가 입혀진 무기들을 들고 압박해 오는 드워프들의 존재는 유저들에게 악몽 같았는데 그런 녀석들을 내가 한순간에 날려 버렸으니 속이 확 트일 수밖에.
비록 전방위로 오러포를 다 날리기는 힘들어서 아직 일부 포위망은 남아 있었지만 이미 한 번 포위가 풀린 이상 진영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드워프 측의 최대 무력인 오러를 쓰는 드워프 악령들이 녹아버렸으니 그 뒤로는 안 봐도 뻔했다.
그렇게 가르시아 궁까지 밀려났던 유저들이 일제히 밀고 나오자 드워프들도 역시 당황한 듯 제대로 라인조차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면서 라인을 계속 내주었고.
유저들이 그대로 라인을 밀자 점점 상황이 호전되어 갔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네.
사장님이 내 옆으로 오더니 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구나.”
“아, 고생하셨어요.”
“내가 뭘 고생을 했겠냐. 우리 애들이 고생했지.”
그리고 또 다른 길마인 스칼렛도 옆으로 와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놀라움의 한가운데는 우리가 타고 내린 황실 비공정이 있었고.
스칼렛이 부러움 반, 놀라움 반의 시선을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아까 가신다는 게?”
“네, 뭐 그렇죠.”
“정말 엄청나네요. 이런 함포라니. 대체 어디서 가져오신 거예요?”
“음, 그냥 오다가 주웠어요.”
“네……? 그게 무슨?”
스칼렛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자 그냥 웃어 주기만 했다.
정말 오다가 주운 거라.
길에 널린 오러 트레이저를 그냥 쓸어 담아 왔는데 이걸 그대로 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안다고 해도 따라 하지는 못하겠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라.
이런 것들은 말해 주기가 힘들었다.
“하아,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주워 왔다는데 정말 주워 왔겠죠.”
스칼렛도 이젠 거의 포기한 표정으로 납득을 해버렸다.
너무 쉽게 납득하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덕분에 일이 많이 쉬워졌어요. 포위도 완전히 풀어졌고. 조금 더 몰렸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확실히 가르시아 궁에는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있고, 테인 공작과 루젠 공작이 있기는 하나 포위가 된다면 문제가 될 터.
거기다 유저들은 여기서 죽으면 부활을 해야 하는데…….
“부활 장소는 어때요?”
그러자 스칼렛이 바로 한숨을 쉬었다.
“부활 장소도 여기와 상황이 비슷해요. 뚫고 나가려고 해도 이미 완전히 막혀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역시 그렇군요.”
일단 여기서 누군가 죽는다면 부활 장소에서 부활하게 되는데, 그럼 다시 가르시아 궁으로 돌아오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부활 장소에서부터 사방을 둘러치고 있는 드워프 병력들을 뚫고 와야 하니까.
어찌어찌 도착한다고 해도 이미 피해를 너무 많이 입은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기 힘들었고.
당장 그걸 감수하고 억지로 드워프 군대를 돌파하려는 유저들도 많지는 않았다.
어차피 포인트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부활지 근처에서 싸우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다.
그냥 계속 싸우면서 포인트를 쌓으면 되니까.
반대로 가르시아 궁은 유저가 한 번 죽으면 새로 병력이 유입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내 덕분에 숨통이 확 트였다.
스칼렛뿐만 아니라 이슬두잔도 옆으로 오더니 물었다.
“주호 님, 저 무기 더 쓸 수 있는 거예요?”
“음, 지금은 불가능해요. 충전을 해야 하거든요.”
“아, 저대로 죽여도 어차피 계속 살아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똑같아 져요.”
“아, 그랬죠.”
옆에 있던 나르샤 누나에게 물었다.
“나르샤 누나, 혹시 고대 드워프 왕 위치 알 수 있을까요?”
“응, 잠시만. 근처에 있으면 바로 알아낼 수 있어.”
바로 나르샤 누나가 근처에서 가장 높은 가르시아 궁의 벽을 타고 올라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때요?”
한참을 둘러보던 나르샤 누나가 내게 말했다.
“아니, 주변에는 없어. 목표가 여기가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래요?”
당연히 마리아 가르시아가 있는 가르시아 궁을 먼저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그럼 이놈이 어디에 가 있는 거지?
일단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에게 말했다.
“부활을 시켜 주는 녀석이 지금은 주변에 없어요. 이대로 밀기만 하면 상황 종료입니다. 확실하게 밀려면 지금이에요.”
“흠, 그래. 그럼 그렇게 전하마.”
사장님이 길드 전체에 연락을 하고 스칼렛과 이슬두잔 역시 한 손 거들기 위해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다.
미르 길드와 퍼스트클래스는 이미 다른 유저들과 합쳐서 싸우는 중이었고.
재중이 형과 전사 형, 이쁜소녀, 챠밍, 막내별도 일단 최강 길드 쪽에 합류해서 같이 전투에 들어갔다.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이쁜소녀.
뇌전을 터트리는 황금빛의 진(眞) 토르를 휘두르면서 드워프들을 압살하자 유저들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와, 저 무기는 뭐야?”
“처음 보는데? 저것도 네임드 무기인가?”
“저 봐라, 뇌전이 빵빵 터지네!”
“이쁜소녀 근처에 있던 드워프들 죄다 감전돼서 뻗었어!”
“드워프들이 아예 접근도 못 하잖아.”
“어우, 힘들게 싸우는 곳만 돌아다니면서 죄다 경직시켜 놓는 거 봐.”
“센스 장난 아니다.”
진(眞) 토르가 원래 강함도 있지만 이쁜소녀가 전장을 잘 읽고 어렵게 싸우는 곳만 달려가 전부 뇌전으로 쓰러뜨려 놓았다.
덕분에 유저들이 한결 싸우기가 편해졌고.
거기다.
콰아아앙!!
헤븐즈 스트라이크인가?
진(眞) 토르에 내장된 헤븐즈 스트라이크가 터지면 아예 이쁜소녀 주변으로 크레이터가 생기면서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
지형을 바꿀 정도의 위력이다 보니 범위 안의 드워프들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거나 바닥에 쓰러진 채 뇌전에 몸이 불타올랐다.
거의 초필사기급이네.
확률만 좀 더 높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나의 아쉬움과는 달리 유저들은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으아, 미쳤다.”
“세상에.”
“드워프들 다 녹았어.”
“대박이네.”
“저 무기 정말 미쳤구만.”
“이쁜소녀 최고다!”
감탄.
또 감탄.
적에게는 위협이지만 아군에게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저러니 영웅의 무기에 들어가겠지.
오러 트레이저같이 오러를 채워서 싸워야 하는 무기와 달리 진(眞) 토르는 그냥 펑펑 터진다.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지면 격차가 더 생기고.
최전방에서 이쁜소녀가 뛰어다니며 압살을 하자 유저들도 더욱 신이 나서 드워프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이렇게 대단위 전투를 할 때 누구보다 강력한 유저는 따로 있었다.
바로 챠밍.
네임드인 타리안 스태프를 들고 드워프들 진형 한가운데에 광범위한 저주 스킬을 퍼트렸다.
【 인펙션! 】
현재 챠밍이 감염 스킬을 쓰면 마력 소모가 절반, 쿨타임 절반, 지속 시간 두 배, 대미지 역시 두 배, 최대 범위 두 배로 전혀 다른 스킬이 된다.
그런 감염 스킬이 계속해서 드워프들이 몰려 있는 진형 가운데 꽂히자 드워프들 전체로 감염이 퍼져 나갔다.
몰려 있는 적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저주 스킬.
드워프들 자체가 마법에 약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보다 효과적인 스킬은 없었다.
만약 드워프들에게 저런 저주 마법을 해주할 마법사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그 증거로 지금 수백의 드워프들이 동시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으니까.
저러면 굳이 힘들게 싸울 필요도 없어.
단순히 깎아내는 위력만으로 보자면 챠밍 혼자서 아군 수백 명이 함께 싸우는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일인 군단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지.
그런 챠밍 역시 유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대박이네, 저 스킬.”
“우와, 죄다 쓰러지잖아?”
“그렇게 잡는다고 고생했는데, 챠밍이 나서니까 그냥 볏짚 같네.”
“저 봐라. 아예 줄줄이 무너진다.”
“이러면 우리랑 딜이 맞먹는 것 아냐?”
“진짜 혼자서 다 쓸어.”
“잘한다! 챠밍!”
“와, 누님 사랑해요.”
그런 응원을 받으면서 둘이 합쳐 드워프들의 진영을 아예 박살을 내놓았다.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는 혹여나 챠밍에게 피해가 갈까 든든히 옆을 지켜주었고.
막내별은 드워프들 사이로 이쁜소녀를 따라다니면서 바로 힐을 채워줘 이쁜소녀가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왔다.
재중이 형은 뭐…….
굳이 마족이 되어 베사노스를 꺼내지 않더라도.
이미 듀라한 스피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도 없었다.
듀라한 스피어 역시 오러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 오러 스피어의 마력 소모량이 30프로나 감소한다.
그런 재중이 형은 다른 녀석들은 상대하지 않고 오러를 쓰는 드워프 악령들만 따로 상대했다.
나 외에 서로 무기를 부딪쳐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
재중이 형이 완벽한 컨트롤로 몇몇 남아 있는 드워프 악령들을 제압해 주니 유저들도 더욱 숨통이 트였다.
오러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중이 형이 그 역할을 도맡아 주었기 때문에.
“캬, 역시 불멸!”
“우린 상대도 안 되는데 알아서 다 잡네.”
“진짜 오러 쓰는 거 부럽다.”
“에이, 오러 없어도 저 컨트롤 봐라. 한 대도 안 맞고 싸우잖아.”
“그러게, 드워프 악령이 얼마나 빠른데 정말 스치지도 않네.”
“스탭 보소. 간격 유지도 칼 같고.”
“저게 진짜 제대로 된 컨트롤이라는 거야.”
확실히 재중이 형이라면 컨트롤 하나만으로 드워프 악령을 잡아낼 능력이 있지.
정말 오랜 시간만 주면 혼자서도 여기 있는 드워프들을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체력이 버틴다는 가정하에.
그만큼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이었고.
그렇게 전장에 단 몇 명이 가세했을 뿐인데.
이미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나도 뛰어들어야겠네.
혹시나 고대 드워프 왕이 접근하면 나서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더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깨졌는데도 안 나타난다는 것은.
여기 올 생각이 없다는 말이니까.
바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 재중이 형에게 합류했다.
“여, 왔냐?”
“아마 고대 드워프 왕은 여기 안 나타날 것 같아요.”
【 오러 블레이드! 】
그리고 재중이 형과 거대한 드워프 악령의 양옆으로 돌면서 동시에 허리를 갈라내고 난 뒤 합공을 해 드워프 악령의 급소를 연속으로 베어 냈다.
그만큼 모자랐던 마력도 아주 빠르게 채워졌고.
확실히 발루딘이 15강이 되면서 연속공격으로 인한 대미지가 이전보다 월등하게 터졌다.
특히 관통 확률이 높아져 지금은 95프로에 육박하니까.
유저들은 이런 높은 방어력을 뚫으려면 정말 개고생하겠지만 내게는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카강!
캬각!
찌르면 찌르는 대로.
자르면 자르는 대로.
대미지가 계속 들어가니 얼마 있지 않아 드워프 악령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무리는 재중이 형이 녀석의 목을 날리면서 끝냈고.
“쉽네요.”
“그러게. 혼자 할 때는 방어 때문에 좀 곤란했는데 말이야.”
서로 한 번 웃어 주고는 바로 다음 타겟을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르시아 궁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이 결국 전부 도망가듯 흩어져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방향을 향해 도망을 갔다.
당연히 유저들이 환호를 질렀고.
지금의 이 승리를 만끽했다.
그 와중에 녀석들이 도망간 방향을 쭉 바라보았다.
“저쪽이 부활 지점이죠?”
“어, 아무래도 합류하려고 도망간 것 같은데.”
“여기서 버틸까요? 아님?”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은 바로 결론을 내려 주었다.
“고대 드워프 왕이 그쪽에 있으면 부활 지점이 먹힐 거다. 그럼 그 뒤는 이쪽이고.”
“그럼 아직 유저들이 버티고 있을 때, 싸워야겠네요.”
“여기만큼 쉽지는 않겠는데. 역시 저게 있어야겠어.”
“둘이 충전하려면 한참 걸려요.”
“그게 정말 아쉽다니까. 그 전에 밀릴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결국은 시간인가.
그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켜줄 만한.
뭔가가…….
없나?
그러다 문득 가르시아 성에 배치되어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우리끼리 안 되면, 좀 가져다 쓰죠.”
바로 녀석들을 향해 외쳤다.
“전부 튀어와!”
살아 있는 오러 충전기들.
쓰라고 준 거니까.
이럴 때 써야겠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