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화 엉망진창 방어전 (3)
드워프들의 대공포가 닿지 않는 하늘에서 머물고 있다가 아퀼라스 주니어를 하강시키자 점점 양쪽의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시야가 가장 넓은 나르샤 누나가 진영을 먼저 살펴보고는 내게 상황을 전달했다.
“가르시아 성벽을 포위하고 있던 드워프들이 대다수 가르시아 성벽 너머로 들어갔어. 아직 꽤 많은 남아 있기는 해도. 뒤에 남겨진 건 무거운 장비들과 일부 드워프들뿐이야.”
나르샤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 보였다.
“병력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면 자연스럽게 무거운 무기들은 뒤에 남겨 놓을 수밖에 없지.”
“네, 정말 형 말대로네요.”
드워프들의 오러포로 성벽이 급격하게 무너지자 중간에 목표를 바꾸자고 한 건 재중이 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재중이 형이 예측한 그대로 상황이 이어졌다.
“차라리 성벽이 빨리 무너진 게 도움이 된다니까.”
가르시아 성벽을 쭉 둘러보자 아직 남아서 성벽에서 싸우는 유저들이 있기는 했지만 점점 버티지 못하고 안쪽으로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벽이란 존재는 한쪽이라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연쇄적으로 계속 뚫리게 되어 있었다.
그때 이쁜소녀가 나를 보고는 물어보았다.
“오빠, 유저들이 숫자는 더 많지 않아요?”
“응, 확실히 더 많지.”
이곳에 있는 유저들의 숫자가 드워프들보다 더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구경만 하는 유저가 있더라도 가르시아 제국의 병사 NPC들까지 치면 수성 쪽이 훨씬 많을 테고.
보통 수성하는 측의 숫자가 적어 성벽을 끼고 버티는 전쟁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꽤 이례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단 하나는…….
네임드급인 고대 드워프 왕.
공격 쪽에 압도적인 전력이 있으니까.
거기다 내가 건네준 리치의 부활 스킬을 아주 제대로 써먹는 중이었다.
아마 부활에 대한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양으로 밀어붙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만 딱 하나 걸리는 점.
스킬의 시전 거리.
한 번에 살려 낼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기에 고대 드워프 왕이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부활을 해 주지 않으면 이 우위는 성립되지 않았다.
재중이 형이 바쁘게 전장을 뛰어다니는 고대 드워프 왕을 발견하더니 그저 웃어 버렸다.
“고생이 많네, 고대 드워프 왕.”
보통은 보스는 후방에서 멋지게 폼을 잡다가 마지막에 등장해야 하는데…….
지금 고대 드워프 왕의 모습을 보면 좀 그런 상황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차라리 잘 됐죠. 중간에 마주치면 서로 피곤하잖아요.”
“그래. 아직은 마주치면 안 되지.”
사실 이 방어전은 우리와 고대 드워프 왕 사이에 암묵적인 하나의 룰이 존재했다.
재중이 형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지금은 실컷 날뛰게 놔두자고. 거기다 시선도 끌어주면 더 좋잖아? 우린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지.”
확실히 고대 드워프 왕이 전면에 나서자 유저들도 그쪽에 집중한다고 다른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전투의 종착역은 결국 고대 드워프 왕이니.
우리는 그런 상황을 일단 접어두고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성벽 바깥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엔 우리가 원하는 물건들이 덩그러니 이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르샤 누나, 근처에 오러를 쓰는 드워프들은 있어요?”
내 말에 잠시 주변을 살펴본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전투에 투입된 모양이야. 주변에는 보이지 않아.”
“딱 좋네요. 그럼 하강합니다.”
그대로 아퀼라스 주니어를 하강시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자 몇 안 되는 드워프들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녀석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드워프들의 어리둥절한 표정들에 바로 실소가 터졌다.
쿠웅!
아퀼라스 주니어가 지상에 착륙하고 난 뒤 전사 형이 먼저 뛰어내려 자리를 잡고 이어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도 거의 동시에 착지했다.
“오러포는 다치지 않게 조심하게 다루라고.”
재중이 형의 말에 이쁜소녀가 발랄하게 외쳤다.
“네! 그럼 먼저 가욧!”
자신감이 충만하네.
곧장 이쁜소녀가 진(眞) 토르를 들어 올려 제일 앞에 있던 드워프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달리던 속도를 그대로 담아 몸을 비틀더니 풀 스윙으로 토르를 휘둘렀다.
쒜에엥!
콰앙!
그러자 드워프 병사가 들고 있던 방패와 함께 통째로 구겨버리면서 멀리 튕겨내 버렸다.
“쿠엑!”
현재 타격력으로만 보면 이쁜소녀가 전 서버에서 최강이었다.
단단한 갑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드워프들에게는 이쁜소녀가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쁜소녀의 진(眞) 토르는 내게 없는 능력도 있으니.
“이얍!”
【 격뇌! 】
일선의 드워프를 바로 치워버리고 바로 점프해 그 뒤에 있던 드워프들을 내려치면서 격뇌를 쓰자 진(眞) 토르에서 격렬한 뇌전이 튀어나와 주변 일대를 뇌전 효과로 마비시켜 버렸다.
그런 격뇌에 드워프 병사들이 아예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풀썩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광역 스턴.
내가 가지지 못한 이쁜소녀의 최대 무기지.
솔직히 정면에서 붙으면 나도 저건 무섭다.
“챠밍 언니!”
“응, 준비 끝났어!”
그리고 격뇌로 드워프들이 쓰러진 장소에 챠밍이 미리 준비했던 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 데몬 익스플로전! 】
뇌전에 이어 검게 물든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자 드워프 병사들의 갑옷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크아악!”
“케엑!”
저렇게 무방비로 마법을 맞으면.
피해는 몇 배가 되지.
쉴드로 막고 있어도 버틸까 말까인데.
챠밍이 들고 있는 장비들도 죄다 서버 최강의 마법 무구들이었다.
그것도 강화가 아주 잘 된.
챠밍의 광역 공격을 받은 드워프들이 일제히 터져 나가는 모습을 본 전사 형이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난 나설 타이밍도 없겠는데?”
말은 그러면서도 뛰어나가서 본능적으로 남은 드워프들을 후려쳤다.
쉐엑!
쉐에엑!
뒤에서는 나르샤 누나가 현란한 활솜씨로 모든 드워프들에게 화살을 꽂아 넣어 완전히 목숨줄을 끊어놓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녀석들도 잘 맞추는데 저렇게 한 자리에 쓰러진 녀석들은 말해 뭐할까.
대부분 관통이 되어 크리티컬이 뜨면서 드워프들이 그대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싹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다른 드워프들은 없어.”
“네, 누나, 수고했어요.”
드워프들이 싹 죽자 남아 있는 것은 거대한 오러포뿐.
전격에 조금 그을리기는 했지만 상태는 매우 양호해 보였다.
온전한 형태의 거대 장비를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 가지기만 하면.
곧장 오러포에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오러포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
“어? 형, 이거 소유가 안 되는데요?”
“그래?”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빠르게 다가와 오러포에 손을 내밀었다.
“보자, 흐음. 허가되지 않은 접근이라……. 설마 유저들은 못 쓰게 만들어 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제까지 특별히 유저만 못 쓰게 되어 있는 장치는 없었는데 말이지. 주인 잃은 비공정까지 털어 오는 마당에 이게 안 될 리도 없고…….”
혹시나 싶어서 이쁜소녀를 불렀다.
“이거 한번 만져 볼래?”
“아! 네!”
그리고 이쁜소녀가 오러포에 손을 가져다 댔는데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히잉, 저도 안 돼요.”
“진(眞) 토르가 뭔가 열쇠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혹여나 고대 드워프 왕에게서 얻은 이 녀석이 반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예 이런 쪽과는 연관이 없었다.
내 쪽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일단 영웅의 무기는 아닌 것 같고.
재중이 형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드워프 왕의 증표 아직 가지고 있지?”
그 말에 머리가 번쩍 했다.
그래, 드워프 왕의 증표라면.
분명히 드워프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 경우에도 통하려나?
곧장 드워프 왕의 증표를 인벤에서 꺼내 오러포에 가져다 대었다.
우리 팀도 모두 기대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
“하, 이게 안 되네요.”
그렇게 실망을 하려는 찰나.
주변을 둘러보던 나르샤 누나가 우리에게 크게 외쳤다.
“시간이 없어! 드워프 전사들이 오는 중이야.”
“폭발 소리를 듣고 온 건가요?”
“응, 그런가 봐. 수도 엄청 많아.”
진입하던 병력들이 급하게 돌아온 건가?
단순히 병사가 아닌 전사급이 오는 거라면…….
“시간을 벌 수 있어요?”
내 말에 주변을 지키던 전사 형이 표정을 굳혔다.
“좋진 않아. 포위되면 곤란해져.”
하긴, 오러포를 빨리 회수하기 위해 소수로 움직인 건데 기동력이 막히면 정말 피곤해진다.
우리가 일당백으로 싸울 수는 있지만.
포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
이런 곳에서 발이 묶이는 건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지켜보던 막내별이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황실 비공정에 싣고 빠져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 의견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다만 한 번밖에는 못 해.”
“네,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죠.”
황실 비공정을 이용해 워프로 빠지면 다음에는 또 써먹기는 힘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거 하나 들고 가자고 쓰기에는 좀 아깝지.
혹시나 싶어 인벤을 살펴보는데 인벤 안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이 있었다.
이게 도움이 되려나?
어차피 안 되도 이젠 방법이 없어 바로 인벤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 오러 생성기 마법 파편. 』
이전에 지하 무덤의 함정에서 오러를 쏘는 기관을 부수고 얻은 아이템.
그리고 인벤에서 꺼내들자 오러 생성기 마법 파편이 급격하게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오러 생성기를 매개로 오러 트레이저에 접속합니다. 》
.
.
《 주변에 오러 트레이저의 소유자가 없습니다. 》
《 오러 트레이저가 새 소유자를 검색합니다. 》
.
.
《 오러 생성기 소유자 유저 『 주호 』 발견. 》
《 오러 트레이저를 소유하시겠습니까? 》
큭.
설마 이게 매개체였나.
지하 무덤에서 얻고는 그대로 인벤에 넣어두기만 했는데.
이런 데 쓰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바로 소유를 선택하자 이번에는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 오러 트레이저가 유저 『 주호 』 님 소유가 되었습니다. 》
《 지금 오러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 오러 충전율 - 78 / 100%. 》
《 오러 포를 사용하시려면 오러를 충전해 주세요. 》
부족하다고?
충전?
“형, 이거 소유는 했는데 오러가 부족하다고 하네요. 충전해야 한데요.”
“그래? 어떻게 충전하래?”
“잠깐만요.”
설명을 보자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오러를 일으켜서 전원부에 가져다 대면 끝.
이게 오러를 얼마나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 오러 블레이드! 】
곧장 르아 카르테에 오러를 일으켜 오러 트레이저에 가져다 대자 오러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80 / 100% 》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82 / 100% 》
.
.
그러는 동안에도 가르시아 성쪽 방향에서 드워프들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대략 수백인가?
“오빠, 몰려와요!”
“알고 있어. 잠시만!”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93 / 100% 》
.
.
오러가 나가는 만큼 마력도 엄청나게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충전하는 사이 드워프들이 시야에 완전히 들어왔다.
전사 형이 라지 쉴드를 들고 나서면서 외쳤다.
“아직이야?”
“아뇨! 이제 됩니다!”
《 오러가 충전되고 있습니다. 100 / 100% 》
《 오러가 완전히 충전되었습니다. 》
시스템을 듣자마자 급하게 오러 트레이저를 드워프들에게로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 오러 트레이저 발사! 】
그 순간 오러 트레이저의 포대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며 지상을 일자로 쭉 밀고 나갔다.
콰아아아!
그렇게 오러포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한 발의 오러포가 눈앞에 보이던 모든 드워프들을 말 그대로 녹여 버렸다.
전사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 턱이 빠진 표정으로 한마디를 꺼냈다.
“이거 완전 미쳤잖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