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화 뒷거래 (8)
사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알려준 신성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음 행선지는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마족의 무기.
베사노스.
이런 녀석을 또 구할 수 있다면.
모험을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또 하나.
영웅의 무기.
이쪽은 그나마 위치가 명확한 편에 속했다.
전에 운영자와의 거래로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했었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이벤트가 끝나기 전까지.
우리가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순간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형, 우리가 떠나면 고대 드워프 왕이 나오겠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현재 고대 드워프 왕에게 걸리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정확하게는 아스티아지만……. 일단 우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바로 제국을 침공할 거다.”
“역시…….”
고대 드워프 왕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아스티아가 있으니 지금까지 고대 드워프 왕을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뒤야 뻔한 결말이다.
고대 드워프 왕이 드워프 부대를 이끌고 제국으로 들어가면?
과연 지금의 제국이 가진 전력으로 막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귀족들이 죽어 버려 어수선한 상태에서?
아마 병력 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잠시 고민을 해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힘들겠죠?”
“음, 테인 공작이 있으니 고대 드워프 왕에게 쉽게 밀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국은 쑥대밭이 될 거다. 지금 유저들로는 오러를 써 대는 상위 드워프들을 막긴 힘들어. 무엇보다 그 오러를 날려 대는 연사 무기들도 있고.”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데 반해 고대 드워프 왕은 총을 들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마법이 있으니 어느 정도 상쇄는 되겠지만.
그 결과는 귀족과 NPC, 유저 연합군이 레릭 왕국의 성벽을 공격하면서 잘 보여 주었다.
그대로 싸울 경우는 성벽을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 된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은 바로 고대 드워프 왕의 존재.
솔직히 이게 제일 크지.
“형, 고대 드워프 왕이 얼마나 강할까요?”
“모르지, 직접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
그 말대로 우리는 고대 드워프 왕의 정확한 전력을 모른다.
이건 승패를 예측하기에는 너무 큰 변수였다.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지는 못해도. 제국이 날아가는 것은 막아야겠지.”
마리아 가르시아가 황제로 있는 이상, 제국은 최고의 우방이나 마찬가지.
그런 제국을 날려 먹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이는 것은 안 돼요.”
“알아, 고대 드워프 왕을 우리 손으로 죽여 버리면 새 영웅의 무기의 위치가 날아가니까.”
“우리 손으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놔두고 갈 수도 없고. 골치 아프네요.”
그동안 써먹을 때는 좋았는데.
이렇게 발목을 잡나?
당장 고대 드워프 왕을 처리하지 못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형, 근데 고대 드워프 왕의 모습을 다른 유저가 본 적 있었어요?”
“흐음? 글쎄? 아마 없지 않나?”
지하 무덤의 최하층에서 그것도 대전사 칼룬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으니, 우리 말고는 고대 드워프 왕의 모습을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거.
괜찮지 않으려나?
써먹을 수 있는.
그런 그림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형,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잠시 내 의견을 들은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거 참. 뒤통수 제대론데?”
* * * * *
론도 후작을 통해 이루어진 경매는 꽤 많은 유저들을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장 상위 사냥터가 없어진 것은 큰 타격이었다.
- 아, 진짜. 어디로 가서 사냥하라는 거야?
- 레릭 왕국 날아간 걸로 끝이 아니었어?
- 주변에 몬스터도 하나도 없음.
- 와, 미치겠네. 낮은 곳으로 가서 사냥할 수도 없고.
- 레릭 왕국 안에 있던 지하 무덤은?
- 폭삭 주저앉음. 못 들어감.
- 하, 개판이네. 무슨 사냥터가 이따위로 되어 있어?
레릭 왕국 주변의 사냥터가 날아간 것은 유저들에게 뼈아픈 타격이었다.
우리 역시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는 경우는 처음 보았고.
다시 돌아온 레릭 왕국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무너지고 황량한 몇몇 건물들 정도인가.
화마로 뒤덮여 왕국 채로 무너진 잿더미를 보자 내가 꽤 미친 짓을 했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챠밍이 폐허 사이를 걸어가면서 놀란 눈빛을 했다.
“정말 다 타 버렸어요.”
“응, 아무것도 없지.”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레릭 왕국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방송을 하던 BJ들도 철수한 지 오래되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혹시나 해서 돌아다니는 일부 유저들이 있을 뿐.
정말 폐허 그 자체였다.
“잠시만.”
우리 팀을 뒤로하고 어느 한 건물의 잔해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하고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아직 있군.
뒤집어진 장식장.
폭발에 부서져 있었지만 내가 찾는 것은 이 장식장 자체가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한 가지 물건.
그리고 그걸 찾자마자 우리 팀에게 돌아갔다.
“찾았어요.”
장식장 안에 있는 증표.
거기에는 대전사 칼룬이 내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서로 연락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올 경우에 이런 방식을 하기로 했는데 정말 써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고.
“이동하죠.”
그렇게 증표에 표시된 장소로 이동했는데, 의외로 대전사 칼룬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설마 왕궁인가?
계속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무너진 왕궁 중 한 곳에 도착하자 대전사 칼룬이 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
대전사 칼룬은 당연히 내가 올 것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화끈하게 해주었던데? 다시 봤어?”
『 마침 딱 좋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성벽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까지 전부 없앴을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
정말 아쉬워하는 대전사 칼룬의 표정을 보고는 오히려 내가 놀라서 말렸다.
“아니, 아니. 그걸로 충분히 됐어.”
이 녀석.
대체 폭발을 얼마나 크게 하려고 했던 거지?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막 나가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대전사 칼룬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정말 고대 드워프 왕을 만나야겠어.”
『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
오케이.
바로 재중이 형과 눈을 마주치자 재중이 형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사 칼룬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어느 곳. 거기서 대전사 칼룬이 커다란 바위 몇 개를 들어 올리자 그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이동진이 존재했다.
이러니 유저들이 찾을 수가 없지.
원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이 장소를 찾지 못할 것이다.
관련 퀘스트라도 있지 않는 한.
그렇게 대전사 칼룬을 따라 이동진으로 이동한 곳은 아니나 다를까.
이전에 우리가 왔었던 바로 그 최하층 지하였다.
주변으로 드워프들이 잔뜩 보이는 것을 봐서는 여기가 임시 피난처쯤 되는 모양이었고.
바로 이동해서 전과 같이 고대 드워프 왕의 석상을 만지자 용광로가 가득한 장소로 올 수 있었다.
『 기다리고 있었다. 』
고대 드워프 왕이 이전과는 달리 꽤 기꺼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 했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자신의 한을 반쯤 풀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좋아하는 표정이 저렇게 드러나는 걸 보니 표정관리는 영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결과는 마음에 드시나요?”
『 그럭저럭 괜찮군. 』
돌려서 말하기는 했으나 확실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한 뒤 바로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 하지만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지? 제국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지금 밀어붙이면……. 』
“아, 그것 때문에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왔던 말을 했다.
“제국을 공격하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 뭐라? 』
내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역시 여기서 힘을 키우고 있었군.
전보다 훨씬 이펙트가 진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야지
“이대로 제국을 공격하면 고대 드워프 왕. 당신은 소멸하게 될 겁니다.”
소멸이라는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몸이 움찔했다.
거참.
화난 표정과는 다르게 소멸은 확실히 싫은 모양이었다.
『 아스티아가 그렇게 하라고 하는가? 』
막상 아스티아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주제에.
없는 곳에서는 막 부르는군.
“아뇨, 그것과는 별개로. 당신, 이번에 공격을 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만약 고대 드워프 왕이 나서게 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마리아 가르시아와 고대 드워프 왕.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마리아 가르시아지.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굳이 우리 손으로 죽이지 않더라도.
고대 드워프 왕을 죽일 방법은 차고 넘친다.
『 이번 일로 제국은 피해를 입어서 날 이기지 못할 텐데? 』
“아뇨, 그건 당신 생각일 뿐입니다. 제국에는 당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힘이 숨어 있습니다.”
『 그런 거짓말을! 』
“거짓말 같으면 직접 나서서 싸워 보시던가요. 말리진 않겠습니다. 아예 길을 열어 드려요?”
사실 싸우러 들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냥 퀘스트나 완료하면 그만이니까.
겸사겸사 녀석을 죽여서 아이템도 좀 얻고.
하지만 중간에 생각을 바꿨다.
아직.
이 녀석은 충분히 이용 가치가 있어.
론도 후작과는 또 다른.
옵션을 내게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워낙 당당하게 나서자 고대 드워프 왕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고민하는 중이군.
그래, 계속 고민해라.
<불멸> 정말 이 녀석을 쓸 생각이냐?
<주호> 모르겠어요. 주사위는 던져 놨으니 기다려 보죠.
<불멸> 론도 후작과는 달라. 어디로 튈지 몰라. 아스티아가 없는 지금은 더.
<주호> 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바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말을 안 듣는다면 이쪽도 방법이 없다.
『 네 말을 어떻게 믿지? 평범한 인간 따위는 내게 피해를 줄 수가 없다. 』
그사이 계산을 때린 건가.
그러면 그에 맞게 답을 해주면 되겠지.
“가르시아 제국에 신성 제국의 무기가 있더군요.”
『 신성 제국?! 』
이번에는 고대 드워프 왕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이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러면서 품에서 신성 제국의 물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내게 주었던 바로 그 증표를.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고대 드워프 왕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고대 드워프 왕이니까 이걸 알아볼 것이다.
그만큼 안목이 있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고대 드워프 왕의 얼굴이 어둡게 확 죽어 버렸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해.
“굳이 아스티아가 당신을 소멸시키지 않아도. 신성 제국의 힘이라면 이제 마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당신을 없애 버리긴 충분합니다만?”
『 으음, 젠장……! 』
고대 드워프 왕이 저러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이 물건의 값어치가 생각보다 높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소멸을 택하겠다면 딱히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방법이 있죠.”
내가 검지를 척 들어 보였다.
『 무슨……? 』
“당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제국만이 당신의 적은 아니지 않나요? 우리는 앞으로 잡아야 할 적들이 많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한.”
내 말에 고대 드워프 왕의 몸이 다시 움찔했다.
그리고 이를 바득 갈아 보였다.
『 드래곤……! 』
“네, 지금 이 정도에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를 따라 좀 더 큰물에서 놀아 보겠습니까?”
이건 제안이다.
고대 드워프 왕에게 주는.
잡을지 안 잡을지는 이제 녀석의 선택이었고.
한참을 고민하던 고대 드워프 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나는……!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