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51화 (641/1,404)

#651화 뒷거래 (7)

<카이저> 흐흐흐흐, 알았다. 방금 팔린 놈 다시 올리마.

짜고 치는 고스톱.

내가 물건을 아무리 비싸게 사도.

그건 그냥 허위 매물일 뿐이었다.

아니.

실제 물건은 있지만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뿐.

론도 후작이 내게 물건을 주지 않고 난 돈을 주지 않아도.

둘 다 입을 다물어 버리면 그만.

나와 론도 후작 간에는 그 어떤 거래도 없는 셈이지.

그렇게 물건은 그대로 있는 채로 가격만 계속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이템 숫자도 엄청나게 뻥튀기 되었고.

우리가 노리는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젠 누가 봐도 사라진 물건보다 경매로 올라온 물건이 더 많아졌다.

나중에 10강 아이템 숫자를 아무리 맞춰 봐도 론도 후작이 훨씬 아이템을 많이 푼 것으로 나오겠지.

이러면 의심을 할 수조차 없었다.

옆에서 경매를 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한마디 했다.

<불멸> 크큭, 경매 잘 돌아간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는 경매.

그 말도 안 되는 경매가 지금 내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장 더!”

* * * * *

경매는 허무할 정도로 원사이드하게 흘러갔다.

내가 가격을 무작정 올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따라오고.

그럼 적당한 선에서 커트.

어차피 가격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으니까.

가격을 한참 올리다가 이겨 버리면 그 물건은 허위 매물로 다시 복귀해서 없던 일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뻥튀기한 가격으로 사 버리면?

이건 땡큐지.

나와 론도 후작, 그리고 경매자 셋이서 이 말도 안 되는 작업을 경매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올라 낙찰되어 버렸고.

마지막엔 죄다 썩은 표정을 한 상태로 경매장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불멸> 참 얄밉게도 잘 올린다.

<주호> 제가 좀 하죠.

분명히 원하는 아이템을 얻긴 얻었는데…….

실제로 알고 보면 막 바가지로 눈탱이를 맞은 상태였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있나.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커트라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겠지.

경매 대리인이 아이템을 낙찰자에게 주는 동안 화련이 내게 다가오더니 내 옆구리를 확 꼬집었다.

“악! 갑자기 왜 그래요?”

“너, 일부러 그랬지?”

뭔가 눈치챈 건가?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내가 전혀 아니라는 식으로 웃어 보이자 화련의 표정이 활활 타올랐다.

“아! 약 올라. 진짜 뭔가 있긴 한데! 너 이렇게 돈 막 쓰는 캐릭터 아니잖아!”

옆에서 항상 내게 돈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건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무려 이번에 쓴 돈이 삼십억이 넘었다.

당연히 겉으로 보기에만.

실제로 내가 쓴 돈은 제로.

이렇게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이 화련의 눈에는 완전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저도 쓸 때는 씁니다만?”

“너한테는 해당 안 되는 말이야.”

와, 이 여자.

날 너무 잘 아네.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직관력에 감탄을 하면서 화련에게 말했다.

“아직 동맹은 유효하죠?”

“왜? 깨게?”

화련이 눈썹을 확 모으면서 노려보자 어깨를 으쓱했다.

“저쪽을 이겨야 한다면서요. 아직 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멀리 서 있는 전신을 가리켰다.

“그래, 저 속을 알 수 없는 능구렁이 같은 놈보단 그래도 네가 약간은 나아.”

“……그거 아마도 칭찬이죠?”

“너도 비슷한데 그나마 낫다고.”

“뭐…… 욕만 아니면 됐죠.”

여전히 친해지기엔 힘든 사람이야.

“아, 그리고 이번에 작위가 잔뜩 풀릴 겁니다.”

“그래?”

“알다시피 공석이 있잖아요.”

“레릭 왕국에서 터진 거?”

화련은 내가 말하자마자 바로 알아들었다.

“네, 귀족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곧 귀족들을 새로 뽑을 거예요. 제국 규모로요.”

“그런데 그건 황제가 알아서 하는 것 아냐?”

“흐음, 사실 제가 이쪽으로 일을 좀 하게 됐거든요.”

“네가?”

“황제가 남작 작위의 임명 권한을 제게 주었습니다.”

“하?”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화련이 이번에는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차리고서 말했다.

“대체 황제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누구는 얼굴도 보기 힘든데.”

화련도 나름 백작이기는 한데.

황제와 독대를 하기에는 급수가 많이 밀렸다.

사실 내 수준이 아니면 황제와 독대를 할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때.

화련에게서 귓속말이 들어왔다.

<화련> 혹시 아까 적당히 사라고 했던 게 이거 때문이야?

경매 도중에 화련에게 잠시 귓속말을 했었다.

적당히 경매를 하는 척만 하라고.

당장 필요하면 사도 되는데.

그 이상 오버페이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화련이 의아함을 가지고도 일단은 내 말을 따라주었다.

화련에게 많이 뽑아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길마들의 돈을 뽑아 먹는 편이 훨씬 나았다.

현재 동맹인 상태에서 굳이 화련을 등쳐 먹을 필요는 없었으니.

<주호> 네, 방금 사람들이 산 아이템들. 조만간 거의 다 쓸모가 없어질 거예요.

그러자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물었다.

<화련>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많이 산 거지?

화련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사지 말라는 물건들을 나는 웃돈까지 줘가면서 경매에 임했으니까.

내가 쓴 돈은 하나도 없지만 화련이 보기에는 일단 그랬다.

여기서 화련이 품은 작은 의심을 풀어 줄 필요가 있어.

돈을 잘 풀지 않는 내가 이 정도까지 쓴 이유를.

<주호> 일단은 그런 계약입니다. 비싸게 사 주는 거죠. 아이템들을.

<화련> 흐음? 설마 론도 후작과?

<주호> 정확하게는 황제와의 거래입니다. 제가 작위 임명권을 공짜로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화련> 흐음? 무기 공급을 대가로?

<주호> 네, 저도 돈을 아무렇게나 막 쓰진 않는다고요. 이것도 일종의 비밀 퀘스트입니다. 무기 공급에 들어간 돈은 작위를 팔면서 나오는 돈으로 얼마든지 충당되니까요.

화련에게는 비밀 퀘스트라는 말로 대신했다.

사실 유저들은 퀘스트라고 하면 어느 정도 다 수긍을 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황제와의 거래라고 한다면 이 수준의 돈이 오가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제로 난 무기 공급을 대가로 삼은 것이 아니라 론도 후작의 목숨값을 대가로 삼은 거니까.

화련에게 말한 사실과는 극과 극의 차이가 존재했다.

<화련> 칫, 그런 퀘스트가 있으면 나한테 넘기라고. 난 그냥 해 버릴 수도 있었는데.

확실히.

화련이라면 돈으로 다 발라 버릴지도.

당장 필요하면 제국을 통째로 사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주호> 다음에 기회가 되면 황제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보죠.

내게도 충분한 자금이 있다고는 하나.

화련처럼 즉시 퍼부을 수 있는 자금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여지를 만들어 두는 편이 좋았다.

일단 화련의 의심은 다 풀어냈으니.

이쪽은 당분간 문제가 없겠지.

그렇게 경매가 파하고 난 뒤.

비밀 장소에서 론도 후작과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중간에서 중계를 한 사장님도 참여를 했고.

재중이 형은 내 쪽의 안전을 위해 따라 들어왔다.

“아무래도 돈이 돈이니까. 론도 후작도 이 정도 돈이면 눈이 돌아갈 수도 있어.”

“흐음, 그럴까요?”

“NPC들은 항상 경계해. 네가 작위가 높으니까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뒤통수를 쳤을 수도 있어.”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하고 들어가죠.”

어차피 통수를 쳐 봐야 론도 후작도 제 살 깎아 먹는 거라 그러지는 않겠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혹시라는 것이 있으니.

<불멸> 혹시 몰라서 주변에 길드원들 싹 배치해 놨다.

<주호> 확실하네요.

론도 후작이 마음이 변했을 시에는 바로 치겠다는 소리였다.

경매를 담당했던 경매 대리인 NPC와 론도 후작이 차례대로 들어오자 몇몇 NPC들이 금화가 가득한 자루를 들고 비밀 장소로 들어왔다.

『 주호 공작, 이건 경매 대금입니다. 』

<주호> 떼어먹진 않네요.

<불멸> 확인해 보자.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동시에 다가가 금화 자루를 확인해 보는데 너무 많아서 재기도 힘들 정도였다.

사장님이 얼추 눈대중으로 계산해 본 뒤.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내게 말했다.

“허허, 살다 살다 이런 돈을 보게 될 줄이야.”

“얼만데 그래요?”

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사장님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이셨다.

50억?

음. 너무 적은데?

5억은 당연히 아닐 테고…….

그 순간 나 역시 화들짝 놀라서 굳어 버렸다.

“설마 오백…… 인가요?”

“그래, 나도 차마 떨려서 다 못 세겠구나.”

이건 레릭 왕국을 팔았을 때의 거의 세 배에 가까운 금액.

거점이나 요새에서 들어오는 돈은 푼돈으로 보일 정도로 큰돈이었다.

하…….

대체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긁어모은 거지?

시체들 만세네.

일당이라도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은 없으니 마음만 주기로 하고.

이건 너무 액수가 커서 실감이 안 날 정도였다.

서버를 통째로 털어 버려야 이 정도를 해먹을 수 있는 건가.

놀란 가슴을 잠시 내리누르고 사장님에게 말했다.

“사장님, 한 가지 더 해 주셔야겠어요.”

“세탁 말이지?”

“네, 좀 부탁드려요. 수수료는 2프로.”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들어오긴 했는데, 문제가 유저들과 직거래를 한 것이 아니다 보니 전부 로스트 스카이의 화폐로 모여 있었다.

이걸 다시 되팔고 정산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터.

결국 또 사장님에게 부탁을 했다.

“허, 우리 와이프가 좋아하겠군. 그리고 언제 한번 찾아오라고 하더구나. 제대로 한 상 차린다고.”

“네, 하하. 그럼 좋죠.”

“일단 전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만큼 내게 넘겨주면 거래처를 찾아서 바꿔 주마. 한꺼번에 바꿨다가는 시세가 급락할 테니.”

“그럼 부탁드려요.”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지.”

이런 쪽으로는 사장님만 한 분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론도 후작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요.”

『 약속을 지켜 주셨으니 이쪽도 약속을 지켜드려야죠. 』

주고받는 게 확실하네.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다시 볼 일이 있을 겁니다.”

론도 후작이 왠지 내 말에 그렇게 기뻐하는 것 같진 않은데?

조금 꺼림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론도 후작에게는 그렇게 좋은 결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꽤 야망이 있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론도 후작을 내보내고 난 뒤 다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사장님에게.

“아, 그리고 슬슬 작위 판매도 부탁해요.”

“어떻게 하려고?”

남작 작위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사장님도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물어보자 미리 재중이 형과 이야기해 두었던 것을 말해 주었다.

“전에 이벤트 보상으로 받았던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1 확정 강화석. 아직 쓰지 않은 유저들이 상당히 많을 거예요.”

아무리 봐도 이벤트로 풀린 숫자보다 쓴 숫자가 적었다.

이건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했고.

재중이 형과 이야기는 나눠 본 결과.

나중에 구할 네임드 템에 쓰려고 고스란히 창고에 넣어둔 유저들이 상당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일반템에 쓰긴 아깝다 이거지.

당장 급해서 쓴 유저들도 있긴 하겠지만.

“교환 조건으로 작위를 넘겨준다고 해 주세요.”

“흠, 작위에 비해서는 너무 값어치가 적지 않나? 차라리 돈으로…….”

사장님의 우려 섞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돈은 레릭 왕국을 터트려서 벌 만큼 벌었어요. 당연히 더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으로 쉽게 구하기 힘든 녀석들이에요.”

작위를 대가로 더한 보상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내 쪽은 오히려 정제 강화석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제국 작위도 돈으로 구하기 힘들었다.

아니, 거의 불가능.

그러면 거래 조건으로는 차고 넘친다.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만큼.

정제 강화석을 얻어내려면 이 방법뿐이고.

“이제 우리는 새 지역으로 넘어갈 거예요.”

또 다른 영웅의 무기.

그리고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신성 제국과 마검을 찾기 위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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