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화 뒷거래 (6)
『 론도 후작님의 주최로 열리는 경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많은 모험가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고,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물건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니 많은 입찰 부탁드리겠습니다. 』
화려한 옷을 입은 한 NPC가 경매장 상단에 오르더니 론도 후작이 주최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못 박았다.
잠시 후, 경매장 안이 전부 어둡게 변하면서 오직 상단의 무대만 빛나도록 변경되었다.
사실 이런 경매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제국의 작위를 획득했을 때, 집사에게 분명히 들었다.
귀족들만 참여가 가능한 경매가 있다고.
가끔 희귀한 물건도 나오고 한다는데, 굳이 관심을 끌만큼 굉장한 물건이 나온 적도 없었기에 딱히 찾아다니면서 경매를 참가하진 않았었다.
그동안은 제국으로 돌아와 한가하게 경매에 참여할 시간이 없었기도 하고.
귀족들의 경매는 정해진 일정이 있는데, 그 일정을 맞추고자 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내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귀족들이 경매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론도 후작에게 경매를 해 달라고 작업한 것이었다.
론도 후작이라면 아무런 의심 없이 경매를 열 수 있으니까.
단순히 유저들이 임시로 여는 경매와는 형식부터가 달랐다.
신원이 확실한 경매 NPC들과 귀족의 경비원들.
그리고 물건을 분실할 염려도 없고 해당 귀족의 보증까지 있기 때문에 이쪽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유저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으니 물건을 사는 입장에서는 이런 보증된 경매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거기다 귀족이 주최하는 경매에 유저들을 초대하는 일은 이번이 최초였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곳에는 서버에 내로라하는 길드의 길마들은 거의 다 참석을 했다.
특히 이번에 레릭 왕국에서 고강 아이템을 드랍한 길드들.
탐사대에 뛰어들었다가 극심한 손해를 본 길드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돈을 들여서라도 무조건 여기서 전력을 복구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더욱이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목을 맬 필요는 없었지만.
생각지도 문제가 생겨 버렸다.
바로 상위 사냥터의 증발.
레릭 왕국을 터트릴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사건이 그 이후에 일어났다.
고대 드워프 왕과 드워프들이 레릭 왕국과 함께 사라지면서 사냥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드워프 악령들도 한꺼번에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 예전의 지하 무덤도 레릭 왕국이 폭발하면서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고.
그냥 레릭 왕국를 받치고 있던 지대 전체가 폭삭 주저앉았다고 할까?
용혈이고 암흑혈이고 이제 폐허가 된 곳에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레릭 왕국이 터지면서 아이템을 드랍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장비를 더 구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
고대 드워프 왕이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주네.
재중이 형도 느긋하게 앉아서 경매를 구경하다가 내게 물었다.
<불멸> 고대 드워프 왕이 어디로 간지 알아?
<주호> 저도 모르죠. 아예 잠수를 탄 것 같은데.
<불멸> 흠, 이놈 어디 가서 사고치는 거 아냐?
<주호> 당분간은 얌전히 있겠죠. 자기도 기반이 싹 날아갔으니.
<불멸> 혹시 모르지. 연락 가능하면 계속 위치 확인해 봐.
<주호> 네, 알았어요.
사실 고대 드워프 왕이 날뛰어 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전과 다르게 재중이 형도 마족으로 변할 수 있는데다가 이쁜소녀도 영웅의 무기를 가지고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정면에서 한판 붙어도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고대 드워프 왕은 재중이 형이 가진 마검을 모르니.
“둘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화련이 옆에서 눈을 갸름하게 뜨고 물어보자 손사래를 쳤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음? 수상한데?”
“그냥 이번 경매에서 얼마나 쓸지 이야기 중이었죠. 그렇죠, 형?”
“뭐, 그렇지. 우린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런 우리 대답에 화련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나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엄살은. 네가 가진 요새 하나만 해도 얼마나 들어오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나도 똑같은 요새를 가지고 있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랬죠.”
심지어 난 용의 지대에 거점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
특별히 누군가 손만 대지 않는다면.
약속된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그 아래의 유적지 같은 경우는 너무 멀어서 다른 유저들이 차지한 상황이지만.
지금처럼 황실 비공정이 있는 상황에서야 하려고 들면 다시 돌아가서 빼앗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날아가서 모든 유적지를 관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효율의 문제.
가장 큰 파이만 무조건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
내 몸은 하나가 아니니까.
지금은 두 곳만 해도 충분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경매가 계속 진행되었다.
낮은 가격의 물건부터 시작해서 점점 높은 등급의 물건으로 이어지는 경매.
『 이번에 좋은 물건들이 들어왔습니다! 모험가분들께서 좋아하시겠군요. 』
경매자의 진행에 각종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자, 유저들이 불이 나게 손을 들어서 아이템들을 쓸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낮은 강화는 크게 비싸진 않으니까.
싸게 좋은 물건을 건져 가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조금 경쟁이 붙긴 했지만 현 시세와 그렇게까지 차이 날 정도로 가격을 올리진 않았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주호> 생각보다 비싸게 팔리진 않네요.
<불멸> 보강 차원에서 온 녀석들도 많아. 대부분이 그런 놈들이고. 그래도 이쪽은 개수가 많으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가격이 낮을지언정 개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어마어마한 개수의 아이템들이 경매로 팔려 나가자 정작 경매를 하고 있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많은데?”
“원래 이렇게 많이 푸는 건가?”
“잘하면 여기서 풀셋 맞추겠어.”
“돈은 있고?”
“있는데 여기서 더 질러나 하나? 더 좋은 거 안 나옴?”
아마도 처음에 예상한 숫자를 훌쩍 뛰어넘었을 테니.
<주호> 확실히 낮은 강화에서는 다들 모르나 봐요.
재중이 형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레릭 왕국에 들어가서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죽었는지 잘 모를 거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아이템이 떨어졌는지도. 대략적으로 파악은 하고 있더라도 정확히는 아무도 몰라.
이것도 론도 후작을 통해 경매를 진행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워낙 아이템이 많다 보니까 어느 것이 누구의 아이템인지 정확히 알 수조차 없었다.
누군가 그걸 알려면 일일이 아이템 개수를 파악해야 하는데 솔직히 이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다른 길드의 아이템의 드랍 개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론도 후작이 이 많은 아이템을 전부 들고 나왔다라는 사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레릭 왕국의 사방에서 영상을 찍는 유저들이 즐비했는데 그걸 뚫고?
이 많은 아이템들을?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불가능.
그러다 보니 지금 론도 후작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경매가 진행되면서 슬슬 8강 이상의 아이템들이 공개되었다.
“1500!”
“1700!”
.
.
.
그러자 그동안 기다렸다는 듯 큰 손들이 하나둘 손을 들어 가격을 올려 댔다.
9강도 마찬가지.
돈 좀 있다 싶은 유저들이 이제야 손을 들면서 경매에 참여해 열기를 올려 갔다.
여기까지는 좋아.
8강, 9강 드워프 무기, 방어구 할 것 없이 엄청난 가격을 뽑아내면서 유저들에게 낙찰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가격이 높다 보니까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리고 서로 눈치작전도 많이 펼쳐졌다.
<주호> 아직까지는 좋네요.
<불멸> 그래, 여기까지는.
옆을 바라보니 화련은 아예 손 자체를 들지 안하고 그대로 기다리는 중.
애초에 10강 이하로는 쳐다볼 화련도 아니었고.
그리고 전신을 비롯해 돈 좀 있다 싶은 상위 길드의 길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마지막이 문제.
10강 템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략 어느 길드의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정보가 알려져 있었다.
10강이 뜨면 시스템 메시지로 올라오니까.
유저들이 내가 들고 있는 무기가 몇 강인지 확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런 내용만을 추려서 올리는 정보글도 있다고 하니.
거기다 아이템 종류까지 다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 아이템을 속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
만약 누군가 경매로 풀린 10강 아이템과 이번에 레릭 왕국이 폭발하면서 사라진 10강을 대조해 보는 일이 생기면?
그건 론도 후작이 아이템을 빼돌렸다는 사실로 직결되게 된다.
물론 론도 후작이 아이템을 쓸어 갔다고 해서 유저들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건 추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라.
그래서 지금 나와 재중이 형이 일부러 여기에 와 있었다.
어차피 론도 후작을 통해 아이템을 파는 입장인 우리가 굳이 여기 참석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멸> 슬슬 시작하자.
<주호> 네.
『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이 경매의 하이라이트 순간이 되어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군요. 그럼 지금부터 최고의 장비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곧장 보조하던 NPC들이 장비를 가지고 들어왔다.
『 +10 드워프 악령 롱 보우 』
이전에 내가 마족이 된 론도 후작을 떨어뜨렸을 때 썼던 활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
『 시작가는 5천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길마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다.
“5천!”
“6천 4백!”
“7천 2백!”
.
.
시작부터 화끈한 열기.
바로 옆에 있던 화련을 보자 그녀는 그다지 활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고.
가격 상승이 주춤해지고 어느 정도 한계가 오는 듯하자 화련이 손을 들어 보였다.
역시 고양이가 생선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못 먹어도 일단은 여유가 있으니 찔러보는 건가?
화련 덕에 다시 가격이 몇 번 더 올랐고 경쟁자가 둘셋만 남더니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프로 팀 쪽 길드뿐만 아니라 다른 상위 길드에서도 이번에는 실탄을 많이 준비했는지 화련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다가 결국 호가를 외치는 소리가 멈추자 진행자가 유저들에게 물었다.
『 더 없으십니까? 』
이대로 있으면 낙찰자는 화련.
화련이 슬쩍 전신을 쳐다보는 것은 전신의 뒤를 받쳐 주는 그 언니라는 사람 때문이겠지.
자금력만큼은 저쪽도 뒤지지 않을 터.
잠시 고민하던 전신이 손을 내렸다.
더 이상은 쓰지 않겠다는 뜻.
그러자 이번에도 참가한 해원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한두 번의 입찰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결국 해원이 인상을 쓰면서 손을 내렸다.
아마 아직 10강은 많이 남아 있으니.
여력을 남기려는 거겠지.
화련을 보면서 물었다.
“활은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아니었나요?”
“길드 애들에게 줄 거야.”
“흐음, 그런가요. 그럼.”
그 순간 손을 들어 올렸다.
“한 장 더.”
한 장은 천 단위를 올리는 표시였다.
그 말에 화련의 표정이 구겨졌다.
“야!”
“왜 그러시나요?”
“이씨, 아무리 10강이라도 일반 템이잖아. 너무 나가는 거 아냐?”
“호오,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셨나요?”
확실히 화련에게는 그냥 용돈 수준이지.
잠시 고민을 하던 화련이 이내 손을 저었다.
“칫, 너 가져.”
화련이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쓸데없는 돈은 안 쓰겠다는 건가?
지금도 경쟁이 붙어서 상당히 가격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
그래도 아쉬웠는지 화련이 내게 말했다.
“너네는 네임드를 그렇게 가지고 있으면서 저게 탐나?”
“뭐 이쪽도 길드에 돌리려고요. 좋은 기회잖아요.”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물건도.
그 다음 물건도.
“한 장 더!”
“한 장 더!”
“한 장 더!”
유저들이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가격을 올려놓으면 마지막 순간.
내가 나서서 판을 다 엎어 버렸다.
한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나니 당황하는 녀석들도 나왔고.
화련도 매번 내가 물건을 채어 가니 슬슬 열이 붙은 모양새였다.
“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뭐 하긴요. 경매 중이잖아요. 좀 더 쓰시던가요?”
“이씨. 됐어, 너 많이 해먹어.”
화련의 표정이 뾰로통한 게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한 번은 화련과 전신, 해원 셋 다 끝까지 따라붙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여지없이 내가 판을 엎어 버렸다.
그렇게 시작부터 무려 20개가 넘는 아이템을 쓸어왔다.
대충 예상되는 돈만 이미 수십억을 쓴 상황.
하지만.
난 아직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주호> 사장님. 론도 후작에게 물건 다시 올리라고 해요.
팔려?
그럼 그대로 다시 올리면 되지.
짜고 치는 고스톱.
그 말도 안 되는 가짜 경매가 이제 시작되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