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뒷거래 (5)
론도 후작 때도 봤듯이 일단 마검을 들면 마족으로 변하게 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마검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마족으로 만들어 주는 대신 마검이 그만큼 힘을 준다?
딱 그런 느낌?
그래서 실험을 해 봤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먼저 마족이 된다면?
마검을 든 자가 마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가정.
아마 다른 유저들은 이런 가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실행에 옮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족이 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존재했다.
바로 마족의 심장.
재중이 형이 먼저 마족이 된 뒤.
마검을 들어 본다.
만약 안 된다면 재중이 형 말대로 그냥 목을 날리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노림수는 지금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마검이 마족의 심장과의 주도권 싸움에 완전히 밀려 얌전히 재중이 형의 손에 잡혀 있었다.
“마족의 심장이 해답이었군.”
재중이 형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검을 내려다보았다.
유저가 마검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걸 지금의 실험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마검은 어때요?”
“얌전해.”
재중이 형을 집어삼키려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그냥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럼 옵션은 이제 보여요?”
“아아, 그래. 봉인이 풀렸어.”
재중이 형이 잠시 마검 베사노스의 옵션을 살펴보더니 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정도길래 저러지?
내가 궁금해서 옆에서 바라보고 있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마검의 옵션의 띄워서 보여 주었다.
『 +0 베사노스 (마검) / 출혈 40 타격 30
- 암흑력+30
- 민첩-15
- 모든 화염 흡수.
- 오러 블레이드(암흑) 상시 적용.
- 화염 흡수 시 오러 블레이드(화염) 추가 적용.
- 블레이즈 슬래셔.
- 화염 상태에서 공격력 300% 상승.
- 암흑 상태에서 공격력 150% 상승.
- 마족화 』
옵션을 띄워 준 뒤 재중이 형이 한마디를 했다.
“좀 미친 녀석이군.”
나 역시 놀란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짜 영웅의 무기하고 맞먹는 수준 아냐?
출혈과 타격력은 거의 진(眞) 드래곤 슬레이어와 맞먹는 정도고 토르에는 좀 못 미치는 정도.
대검의 무게에 민첩이 깎이는 것을 감안해 보면 얼핏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무기라는 점.
더 성장을 시켜야 할 필요가 없이 지금 이 자체로도 충분히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
먼저 보이는 옵션은…….
“암흑력?”
재중이 형이 잠시 상태창을 보고는 말해 주었다.
“아예 새로 스탯이 추가돼. 아마도 신성력과 반대되는 개념인가 본데.”
“마검이 괜히 마검이 아니네요.”
이제껏 암흑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녀석 자체가 엄청난 옵션이 가진 것이다.
그리고 옵션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 오러 블레이드였다.
“설마 오러 블레이드를 두 가지 동시에 걸 수 있는 건가요?”
“그런가 보네. 어둠의 오러 블레이드는 상시 걸려 있고. 화염을 흡수하면 화염의 오러도 같이 쓰고.”
“정말 미쳤네요.”
“대신 다른 영웅의 무기와 달리 조건이 까다로워. 화염 속에서 싸워야만 옵션이 발동되니까. 평소에는 거의 못 쓴다고 봐야지. 반쪽짜리 마검이지.”
“반대로 화염 속에서는 거의 무적 아닌가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화염 흡수에, 공격력 상승. 오러 블레이드까지 치면. 화염 속에서 이 녀석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지.”
베사노스는 드래곤 슬레이어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성격이 아예 달랐다.
둘 다 화염에 강한 것은 맞긴 한데.
조금 더 화염에 특화된 쪽이 이쪽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드래곤을 잡는데 특화된 녀석이고.
이런 무기를 든 론도 후작과 화염에 휩싸인 레릭 왕국에서 싸웠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끔찍한데?
“시체들이 없었으면 론도 후작을 절대 못 잡았겠어요.”
저렇게 화염 속에서 각종 버프를 받는다면 나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답도 안 나왔을 것이다.
어지간한 네임드 뺨치는 수준으로 강할 테니까.
특히 재중이 형 쪽은 고전을 면치 못했을지도.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무기인 듀라한 스피어가 현 네임드 무기 중 최고로 좋다고는 하지만, 이 무기에 비해서는 꽤 부족했다.
단순히 부딪치기만 해도 재중이 형의 피해가 심하게 누적될 터.
이 정도로 급수 차이가 나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겠지.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운이 많이 따랐네. 길드 수십 개를 때려 박아도 못 잡아, 이건.”
재중이 형의 평도 나와 비슷했다.
내장된 스킬 중 블레이즈 슬래셔는 아마 용격과 비슷했던 그 스킬일 테고.
화염을 흡수해서 쓰는 것을 보면 거의 비슷한 종류라고 생각되었다.
무기 자체의 위력도 좋고.
스킬도 굉장했다.
뭐 하나 빠지는 곳이 없는데?
이 정도면 영웅의 무기하고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토르 쪽이 더 앞서기는 한다.
모든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범용성 면에서나 스킬의 능력 같은 부분에서.
하지만 화염 상태에서는 이쪽이 훨씬 좋고.
“이게 아스티아의 무기일까요?”
“음, 그럴지도. 아닐 수도 있고.”
무기에 화염과 어둠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보면 용마족하고 어울리기는 한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말을 재중이 형에게 꺼내 놓았다.
“사실 이 방법이 안 됐다면 흡수시키려고 했거든요.”
“뭐?”
그러면서 르아 카르테를 들어 올려 보였다.
“하, 베사노스를 르아 카르테에 넣으려고 했다는 거냐?”
이 말에는 재중이 형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 통했다면 어차피 못 쓰니까요.”
“크큭, 이런 미친놈을 봤나.”
“정말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옵션을 모른다고 해도 흡수해보면 무슨 옵션이든 가져왔겠죠. 좋은 옵션이든, 나쁜 옵션이든.”
가짜 토르를 흡수해봤던 전적도 있고.
예전과 달리 대검도 르아 카르테에 흡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차피 못 쓰는 물건.
르아 카르테의 능력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흡수해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럼에도 흡수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혹시나 아스티아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나중에 아스티아가 ‘내 무기 어디 있어?’ 하고 물어보는데 이미 흡수해 버렸다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흠, 이 경우에는.
아스티아가 날 잡아먹을지도 몰라.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크게 웃더니 베사노스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넌 운이 좋았다. 세상에서 아예 사라질 뻔했었는데.”
그 순간 베사노스의 검신이 부르르 떠는 모습이 보였다.
“어?”
“이거 참. 알아듣는 건가?”
그리고 그때 뭔가가 떠올랐다.
이거.
잘하면?
“형, 베사노스 잠시만 제 쪽으로.”
“응? 뭐 알았다.”
재중이 형이 베사노스의 검신을 내 쪽으로 밀어 주었는데 그때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부르르.
베사노스가 내 쪽으로 오기 싫어하는지 검신을 있는 힘껏 떠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르아 카르테를 피한다고 해야 하나?
아예 닿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호오, 이거 참.”
재중이 형도 그 모습이 흥미로운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고.
“흡수되는 게 싫은가 본데?”
“네, 저도 그렇게 보여요.”
그리고는 딱 결론을 내렸다.
“형, 마검을 다룰 수 있는 방법요. 굳이 마족이 되지 않아도 될 것 같지 않아요?”
“크큭,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가능하겠다.”
르아 카르테에 이런 장점이 있었다니.
다른 마검은 모르겠지만 베사노스라는 마검이 어느 정도 지능이 있기에 지금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재중이 형이 장난치듯 베사노스에게 말했다.
“너, 말 안 들으면 그냥 저기 흡수시켜 버린다?”
재중이 형의 엄포에 베사노스가 급격하게 부르르 떨렸다.
“크큭, 이놈 다 알아듣는다니까? 앞으로 말 잘 들을 거냐?”
그러자 베사노스가 눈을 크게 두 번 깜짝이면서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말은 못 해도 눈치 빠른 것 보소.”
그리고 재중이 형이 뭔가 생각났는지 말했다.
“다른 마검도 찾으러 가자. 르아 카르테만 있으면 죄다 써먹을 수 있겠어.”
“역시 그렇죠?”
굳이 마족의 심장이 없더라도.
이젠 르아 카르테가 다 해결해 줄 터.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뭐.
그땐 마족의 심장이 필요하겠지.
“형. 이 녀석이 말을 알아듣는다면 한 가지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아요?”
“이놈이 정말 아스티아의 무기인지?”
역시 재중이 형.
한마디만 해도 바로 알아들었다.
판단 여부에 따라 이 녀석의 운명이 달라진다.
뭐 당장 흡수하지는 않겠지만.
재중이 형이 베사노스를 보면서 물었다.
“너 아스티아의 무기였냐?”
그 물음에 베사노스의 눈이 잠시 멈칫하더니 좌우로 눈을 돌리면서 아니라는 표시를 했다.
“흐음?”
“아니네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일단 아스티아의 무기는 아니었다.
“역시 가짜 황제가 가지고 간 건가?”
“네, 아마 그런 듯해요. 가르시아 제국에는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흐음, 베사노스가 아스티아의 무기가 아니면 그럼 대체 그 가짜 황제는 마검을 몇 개나 들고 있는 거지?
일단 적어도 본인의 마검이 하나가 있을 것이다.
가짜 황제가 미치지 않은 이상 자신의 무기를 론도 후작에게 줬을 리는 없을 테니.
거기다 론도 후작에게 준 베사노스.
마지막으로 아스티아의 무기까지.
이미 확인된 마검만 해도 세 개.
“가짜 황제가 들고 있었던 무기만 최소 세 개네요.”
“아마 더 있을 수도 있어.”
더 있을 수 있다라…….
단순한 마족은 아닌 건가?
“아스티아에게 한번 물어볼 걸 그랬어요.”
아마 아스티아라면 뭔가를 알고 있었을지도.
흐음, 200년이나 지나서 모르려나?
그렇다고 베사노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베사노스가 맞다 아니다 정도는 확인해 줄 순 있지만 대답을 하진 못하니까.
그래도 한 번 물어는 봤다.
“원래 널 들고 있던 놈은 뭐 하는 놈이야?”
내 물음에 베사노스는 잠시 몸을 부르르 움직일 뿐.
역시 원하는 대답을 얻긴 힘들어 보였다.
그때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형, 연락 왔어요.”
“어, 나도 왔다. 이제 준비된 모양인데?”
<카이저> 어디냐? 론도 후작과 경매 준비가 끝났다.
<주호> 아, 형이랑 잠시 나와 있었어요. 유저들은요?
<카이저> 이제 론도 후작이 NPC들을 써서 불러들일 거다. 우리도 포함이고.
<주호> 우리가 드러나지 않게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카이저> 알았다.
“그럼 우리도 가 보죠.”
* * * * *
가르시아 제국에 다시 들어갈 때 재중이 형은 마족의 심장을 다른 걸로 교체했다.
아무래도 마족인 상태로 제국 내에 들어가면 결계에 영향을 받으니까.
가짜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다녔지만.
혹시라도 모르는 일이라.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네, 마검은 어때요?”
“집어넣었어. 이 녀석도 일단은 마검이니까. 유저들 중에 알아보는 놈은 없겠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감추고는 미리 안내받은 회관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장소에는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휘유, 많이도 왔네.”
아마 이번에 나올 물건 중에 무려 10강짜리 물건들이 있기 때문인지 유저들이 더 많이 몰린 듯했다.
그동안은 상위 길드가 꽉 잡고 있어 돈으로도 살 수 없었는데 경매로 나와 버리니 다들 몰릴 수밖에.
그런 유저들 틈으로 섞여 들어가 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눈에 익은 유저들도 보였다.
심지어 화련도 자리를 잡고 있었고.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는데 화련이 돌아보다가 날 발견했는지 귓속말을 날렸다.
<화련> 어디 가?
<주호> 하하, 먼저 오셨네요.
<화련> 이리 와.
<주호> 네?
<화련> 이리 오라고. 안 들려?
끙.
지금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화련은 지금 이 경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돈을 지르러 친히 납신 거고.
내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불멸> 크큭, 큰 손님이 부르시는데 가야지.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먼저 화련 옆으로 다가갔다.
“레이디. 실례해도 되겠죠?”
“알아서 해.”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아 나를 불렀다.
“얼른 와라.”
“네네, 가야죠.”
결국 나란히 앉아서 경매가 시작하는 것을 지켜봤다.
“너희도 할 거야?”
“뭐, 일단은요.”
“갑자기 경매라. 이상하지 않아? 하필 지금? 이때?”
화련이 이상한 눈치로 경매를 주도하고 있는 NPC를 바라보았다.
눈치 하나는 끝내주네.
아마 본능적으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모른 척하며 화련 주변을 둘러보는데 돈 좀 있다 싶은 유저들이 바글바글하게 앉아서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눈을 활활 불태우는 모습까지 보이며.
“아무튼. 이번엔 내가 좀 가져가야겠으니 적당히 해.”
화련의 그 말에 어깨를 그저 으쓱해 보였다.
이런, 이런.
나중에 혹시라도 알게 되면 정말 날 죽일지도 모르겠어.
난 이 경매를 간단히 끝낼 생각이 전혀 없거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