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화 뒷거래 (4)
“마족?”
“네, 마족요.”
그 말과 함께 인벤에서 마족의 심장을 꺼내 재중이 형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내 엉뚱한 행동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재중이 형은 오히려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놀리려는 듯 미소지었다.
“이 형이 대신 몸빵을 해 달라는 거지?”
“하하…….”
역시 재중이 형.
한마디만 해도 다 알아듣네.
이래서 재중이 형이 좋다.
그리고 이전에 아스티아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마족의 심장을 쓰면 마족으로 변한다고.
이게 일시적으로 변하는지 영구적으로 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심장들은 교체할 경우 바로 적용이 풀려 버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아마도 전자가 맞지 않을까?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했고.
“괜찮겠는데……. 잘하면 써먹을 수도 있겠어.”
그러면서 내게 마족의 심장을 바로 받아 갔다.
“아니라 해도 딱히 상관없고.”
죽으면 곤란한 나를 대신해 재중이 형이 몸소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여기서는 곤란하고 일단 나가자.”
“네.”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
가르시아 제국 내에서 난장판을 치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한참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날아와 재중이 형과 섰다.
“여기라면 아무도 안 오겠지.”
“네, 사냥터하고는 완전 동떨어져 있으니까요.”
몬스터라고는 1도 나오지 않는 산맥 깊은 곳의 한가한 장소라 유저들의 발길조차 없었다.
이동로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보자, 그럼 한번 해 볼까?”
마족의 심장을 손에 든 재중이 형을 보고는 바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 들었다.
“크큭, 아. 이거 형을 바로 죽이려고 하네.”
“하지 마요?”
그러자 웃으면서 자기 목을 쳐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니, 바로 목을 날려. 괜히 망설이지 말고. 잘못됐는데 살아 있으면 귀찮아져.”
“한 번에 날려 드릴게요.”
“쳇, 매정한 놈. 싫다는 소리는 안 하네.”
재중이 형이 웃어 버리자 나도 같이 웃었다.
“자, 간다.”
아스티아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에 마족의 심장을 쓰지 않고 그대로 놔뒀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결국은 한 번은 해 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마족의 심장을 가져가 몸에 장착시킨 재중이 형의 심장에서 검은 기운이 확 퍼져 나와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바닥에 처음 보는 검은빛의 마법진이 2중으로 형성되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게 퍼져 나온 검은 기운과 마법진에서 퍼져 나온 빛이 뒤엉켜 재중이 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여차하면 바로……!
스킬을 걸어 재중이 형에게 뛰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소용돌이처럼 검은빛이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저건.
암흑 지대?
설마 유저 개인의 힘으로 암흑 지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가?
생각 이상의 변화에 깜짝 놀랐지만 재중이 형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이 정도라면 잘못되었을 경우가 더 위험해.
단순히 개체가 강해지는 정도를 넘어 정말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폭풍처럼 검은빛이 한차례 몰아친 후.
검은빛이 갈무리되듯 재중이 형에게 빨려 들어가자 주변의 암흑 지대도 같이 흡수되어 사라져 갔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낸 재중이 형의 외형은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냐.
느낌이 달라.
서늘하게 퍼져 나오는 기운이 감각에 전해지면서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괜히 마족의 심장을 실험해 봤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달려들려면 지금 밖에 없어.
그렇게 뛰어나가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크아악!”
재중이 형의 감겼던 두 눈이 떠지면서 검은색의 눈빛이 흘러나왔다.
칫.
역시 잘못됐나.
【 헤이스트! 】
【 오러 블레이드! 】
【 대쉬! 】
곧장 박차고 튀어나면서 재중이 형의 목을 향해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빠르게 휘둘렀다.
이 속도라면.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재중이 형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휘두른 검들에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했어?
순간 재중이 형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신기루처럼 몸이 흩어져 버렸다.
이건 설마……!
잔상!?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이전에 있었던 움직임이 그대로 남아서 잔상처럼 흩어지는 모습에 바로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온몸의 감각들이 경고를 울렸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생각할 틈도 아까워 몸을 억지로 뒤틀면서 뒤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연속으로 휘두르자, 이번에는 뭔가가 손에 강하게 걸려들었다.
엄청난 반탄력과 함께.
까강!
카앙!
크윽.
두 팔이 저릿저릿하게 울릴 정도의 위력인가?
강하게 쥐고 있지 않았다면 오히려 튕겨 나갔을 지도.
몸에 걸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몸이 밀려 나가자 겨우 자세를 잡고는 한 번 더 달려들기 위해 몸을 낮췄다.
정말 최선을 다해야……!
그 순간.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데?”
어이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재중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긴장한 것을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하…….”
내가 허탈한 마음에 지금은 모습을 드러낸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와, 진짜 죽이려고 드네.”
“놀랐잖아요.”
“크큭, 장난 좀 쳐 봤다.”
재중이 형이 장난이라고는 했는데.
솔직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방금 보여 준 능력이라면…….
거의 테인 공작 수준 아냐?
어떻게 이 정도까지?
거기다 듀라한 스피어는 르아 카르테나 발루딘에 비해 한 끗 밀리는 네임드 무기였다.
그런데도 충돌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본연의 능력이 내 스펙을 압도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내 놀란 표정에 듀라한 스피어를 집어넣은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꽤 좋아. 이 변신은.”
“역시 변신인가요?”
“흐음, 정확하게는 성향 자체를 바꿔 버리는 것 같기도 해. 화룡화나 수룡화와 비슷하다고 봐야지. 아니 이쪽이 훨씬 윗급인가. 중복은 되나 모르겠다. 잠시.”
기다릴 틈도 없이 재중이 형은 곧장 화룡화를 시도했다.
그러고는 바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안 걸린다.”
“걸리면 사기죠.”
“아깝네.”
지금 마족의 심장으로 변해 있는 상태만 해도 넘사벽인데.
추가로 화룡화까지 겹쳐지면 완전 사기지.
잠시 이리저리 살펴본 재중이 형이 한마디 말을 꺼냈다.
“원천마력.”
“네?”
“아스티아가 준 그 원천마력. 이젠 나도 있다.”
“흐음, 그건 정말 좋네요.”
이미 원천마력을 써 봤기에 얼마나 좋은 스탯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족의 심장이란 게 정말로 마족으로 스탯을 바꿔 주는 모양인데?
“뭐 너처럼 영구적으로 스탯이 박히는 건 아니고. 변해 있을 때만 쓸 수 있지만.”
“얼마나 추가돼요?”
나처럼 1인가?
아님…….
“흐음, 기본 수치가 20이네. 다른 스탯도 꽤 많이 올랐어.”
“그 정도나 많이 줘요?”
기본이 20이면 올스탯 악세가 많은 재중이 형이 쓰면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변신해 있을 때만큼은 나보다 원천마력에서는 한참 앞선다는 말이었고.
저 정도면 거의 스킬을 난사할 수 있지 않나?
원천마력 자체가 마력 회복속도가 워낙 빨라서 어지간해서는 고갈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러 블레이드 같은 경우도 거의 무한에 가깝게 쓸 수 있을 테고.
그때 재중이 형의 의외의 말을 했다.
“이거 전에 지하에 그 구렁이 잡고 받은 거지?”
“네, 그렇죠.”
이번에 나온 마족의 심장과 전에 가지고 있던 마족의 심장은 서로 다른 개체에서 받았으니.
“흐음, 그래서 힘이 이렇게 높은 건가?”
“그래요?”
“어, 민첩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오르긴 했는데 힘 쪽이 압도적으로 높네.”
“설마 개체마다 다르다는 말이에요?”
“아마도?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그래서 내 공격을 그렇게 쉽게 막은 거였나?
검을 부딪쳤을 때 오히려 내 쪽이 밀렸으니.
아니, 그보다는 그 속도는 뭐였지?
잔상이 생길 정도로 빨랐는데.
“형, 아까는 어떻게 한 거였어요?”
“아, 그거?”
역시.
의도적으로 했구나.
스킬인가?
아님?
그런데 그 순간 내 정면이 아닌 사이드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해 봤는데 말이야. 지금의 이 신체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것 같다.”
말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잔상만을 남기고 이동한 건가?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그리고는 잔상이 흩어지면서 재중이 형이 옆에서 나타났다.
“뭐 어렵진 않아. 급가속과 스탭의 제어를 적절하게 하면. 예전에 많이 하던 건데, 여기선 이제 몸이 빨라져 겨우 되네.”
“그럼 이전까지는 느려서 못 했어요?”
“어, 신체가 안 따라 주면 잔상을 만들지는 못하니까. 이제 좀 컨트롤 하는 맛이 나겠네. 이전에는 너무 느려서 말이야. 답답하기도 했고.”
하.
이 정도까지 빨라져야지 즐길 만하다는 건가?
그리고 저런 속도에서도 자유자재로 컨트롤이 된다는 것에 더 놀랐다.
그런 날 보면서 재중이 형이 웃어 보였다.
“너도 익숙해질 거다. 네 능력이라면 말이야.”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프로들은 다 할 수 있어요?”
“아, 걔네들? 좀 격차가 있기는 한데. 속도가 좀 올라갔다고 어리바리할 녀석들은 없다고 봐야지. 그리고 가면 갈수록 더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닐 거다. 마음먹은 대로 컨이 되기 시작하면. 지금이야 너무 느려서 일반인 코스프레하는 정도라.”
이거 참.
그동안은 적당히 했다는 건가?
재중이 형의 말은 속도가 일정 이상은 올라가야 진가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일단 능력 확인은 됐고. 궁금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지?”
“네, 그렇죠. 현재 상태가 마족이 맞아요?”
“어, 상태 창에서는 확실히 마족이다. 그럼 꺼내 봐.”
내가 생각한 것은.
그냥 마족의 무기를 들게 되면 바로 론도 후작처럼 이성을 잃고 휘둘리게 된다.
유저 같은 경우야 이야기가 다르기는 할 테지만.
혹시라도 제어가 안 된다던가 하는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었다.
그럼 없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고.
그런데 만약.
이미 마족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어떨까?
지금 재중이 형과 하려는 실험이 바로 그것이었다.
“꺼내서 던져.”
재중이 형의 말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벤에서 마검을 꺼냈다.
그리고 손에 닿자마자 주저 없이 재중이 형 쪽으로 던졌다.
텅그렁!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마검을 본 재중이 형이 손을 뻗어 마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어디 그럼 한번 마검이 어떻게 나오나 볼까나?”
아니나 다를까.
마검의 눈이 커지면서 붉고 검은 기운들이 줄기줄기 흘러나와 재중이 형의 팔을 감아 갔다.
재중이 형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으니 더욱 빠르게 기운을 뻗어 나갔고.
얼마 뒤 몸 전체를 덮을 정도로 기운이 퍼지자 마검에 있던 눈이 가늘게 떠지면서 마치 웃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치 마검에 감정이라도 있다는 듯.
저건 좀 으스스하군.
그리고 완전히 검의 기운이 재중이 형의 몸을 덮었을 때.
마족의 심장에서도 역시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와 검의 기운과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이 서로 끌어당기고 밀기를 반복했다.
세력 싸움인가?
아마 저기서 이기는 쪽이 몸을 차지하게 될 터.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기운들의 줄다리기는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나버렸다.
검의 기운들이 모두 재중이 형의 심장에 빨려들어서 곧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전에 론도 후작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반응.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재중이 형의 두 눈이 검은빛을 발하다가 곧 사라졌다.
오히려 마검의 눈은 당황한 것처럼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고는 확신했다.
이겼구나.
그리고 재중이 형이 마검과 나를 번갈아 보고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놈, 쓸 수 있겠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