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화 뒷거래 (2)
『 경매입니까? 』
“어, 그리고 그냥 공짜로 해달라고는 하지 않아.”
론도 후작이 일단은 내 쪽에 섰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무작정 내 말을 따라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녀석을 다루려면 그만한 대가는 쥐어 줘야 해.
“이번에 후작의 병력을 많이 잃었지?”
내 물음에 론도 후작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 크흠. 』
레릭 왕국의 폭발로 많이 잃은 정도가 아니라 싹 날려 먹었으니.
물론 론도 후작 정도라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될 테지만.
그 시간을 다른 귀족들이 주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당장 가르시아 제국으로 돌아가면 여기저기 물어뜯길지도 모르지.
그런 론도 후작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분간 네게 생기는 문제들을 막아 주지.”
『 바람막이가 되어 주시겠다는 겁니까? 』
“듣기에 따라선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 알다시피 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그런 내 한 마디면 황제파에서 너를 당장 어쩌지는 못할 거다.”
론도 후작에게 필요한 시간을 벌어 준다.
이게 내 첫 번째 제안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론도 후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나쁘지 않군요. 』
속으로는 좋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사실 굳이 내가 론도 후작의 편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황제파에서는 론도 후작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 황제파의 귀족들 역시 레릭 왕국에서 싹 죽어 버렸으니까.
세력이 약해진 것은 양쪽 다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막아 줘야 하는 것은 황제 정도인데.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론도 후작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벌어 주는 일.
이것만 해도 지금 론도 후작에게는 가뭄에 내린 비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 있던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이저> 원래는 수수료를 주기로 하지 않았나?
<주호> 네, 그랬죠.
사장님과 이 일로 잠시 의논을 했을 때 처음 나온 이야기가 론도 후작에게 경매에 대한 수수료를 지불하고 진행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론도 후작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병력이나 자금은 론도 후작의 영지에서 나오는 돈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전에 듣기로 론도 후작의 영지가 꽤 부유하다고 들었으니.
그래서 론도 후작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을 긁어 주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론도 후작은 이 제안 하나만으로 꽤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러면 굳이 돈을 들일 필요가 있나.
<카이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렇구나.
<주호> 저도 나름 공작인데요. 제 말 한 마디는 꽤 비싸다고요. 바로 약빨 먹히는 거 보세요.
<카이저> 흐흐, 그렇지. 그럼 이대로 진행하면 되나?
<주호> 네. 전사 형하고 나르샤 누나에게 창고에 있는 물건을 받아서 론도 후작의 경매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카이저> 정체는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몰래 말이지?
<주호> 네, 그게 이번 일의 핵심이죠.
경매를 진행을 하되.
절대 우리 쪽의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론도 후작을 이용하는 거니까.
그렇게 론도 후작을 일에 끌어들이고부터는 경매에 대한 준비는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장소는 어디가 좋겠어?”
『 여기 바이탄 요새에서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
론도 후작의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론도 후작. 바이탄 요새는 안 됩니다. 자칫하다가는 주호 공작과의 연계성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 흠, 불멸 백작. 그럼 어디가 좋겠는가?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고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이거 참.
족보가 이상하게 꼬여 있네.
그런 내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고는 다시 론도 후작과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바이탄 요새, 쿠론 요새는 안 됩니다. 이쪽의 동맹이 엮여 있습니다.”
『 흠, 그럼 레티어스 요새는? 』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레티어스 요새 역시 한 탐사대입니다.”
확실히 레티어스 요새가 화련의 소유라 그쪽에서 일을 벌이기에도 난감했다.
어떻게든 화련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면 나와 론도 후작과의 연관성이 드러날 수도 있었고.
『 하, 세 곳의 요새가 모두 같은 탐사대란 말인가? 』
론도 후작이 이제야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무려 세 곳의 요새가 전부 한 세력에 들어가 있으니.
이건 좀처럼 보기 힘든 세력 구도였다.
『 그럼 세 요새 모두 힘들겠군. 』
듣고 있던 내가 끼어들었다.
“가르시아 제국으로 가지.”
『 흠, 어쩔 수 없군요. 』
지금 가르시아 제국은 론도 후작에게 굉장히 불편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결국 황실 비공정으로 가르시아 제국에 돌아왔다.
“전사 형, 남은 준비 좀 부탁해요. 론도 후작하고 황제를 알현해야겠어요.”
“알았다. 잘 하고 와.”
작위가 있는 나와 재중이 형, 챠밍, 그리고 론도 후작까지.
넷이 가르시아 제국성에 들어서자 곧 안내를 받아 바로 마리아 가르시아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주호 공작, 어서 와요. 』
따뜻하고 반가움이 가득한 마리아 가르시아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이와는 전혀 반대로 마리아 가르시아가 표정을 내리깔고는 론도 후작을 압박감을 주듯 내려다보았다.
분명 나를 보는 시선과 론도 후작을 보는 시선 사이에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존재했다.
『 론도 후작. 소식은 들었다. 살아남은 탐사대가 그대뿐이라고? 』
이 소식은 다름 아닌 제국군을 싹 말아먹었다는 소식이었다.
의외로 빠르네.
내 입으로 직접 얘기를 해야 하나 했는데.
당연히 론도 후작의 허리가 더욱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 죄송합니다. 임수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
그런 론도 후작에게 마리아 가르시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 귀족들도 모두 죽었지. 전부. 몇 명이나 되지? 』
그 말에 론도 후작의 무릎까지 굽혀졌다.
어느 정도 적당히 죽었어야 고개를 들 건데, 지금은 그게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많이 죽어 버렸다.
『 총 152명입니다……. 』
귀족파 41명.
중립파 87명.
황실파 25명.
정확하게는 153명인데 론도 후작이 살아남아서 152명이 되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이걸 몰라서 물어본 것은 절대 아니다.
론도 후작의 입에서 사망자수를 직접 말하게 만들어 더욱 기세를 잡기 위함이었다.
『 저주받은 마족과의 싸움의 대패가 그대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터. 』
『 하면……? 』
『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은 귀족이 그대밖에 없기에 그대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느니라. 』
아마도 이건 우리가 오기 전부터 결정이 나 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고.
황실파, 중립파, 귀족파의 귀족들이 다수 죽어 버린 상황은 제국 전체로 보면 악재겠지만, 분명 마리아 가르시아에게는 호재였다.
남은 세력을 확실히 휘어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 론도 후작은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그대의 영지로 돌아가 자숙할 수 있도록. 』
방금 마리아 가르시아가 명령한 영지로 돌아가라는 말은 한 마디로 중앙 세력에서 빠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좌천.
죽이지는 않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으란 말이네.
『 허나……. 』
『 내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목숨을 살려 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기거라. 』
<불멸> 호오, 우리 황제님이 할 때는 확실히 해 주시는데?
<주호> 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요.
<불멸> 그래, 넌 저걸 말려야 하는 입장이지.
<주호> 슬슬 나서야겠어요.
“황제 폐하.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주호 공작? 』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마리아 가르시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기다렸다가 마리아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해 보라. 』
이 정도면 내 이야기는 어떤 상황이 와도 들어준다고 봐야 했다.
고맙네.
“론도 후작을 선처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내 제안에 마리아 가르시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건 생각도 못 했겠지.
설마 귀족파 수장의 편을 들어 준다고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을 테니.
『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
조금 미움을 받았나?
그래도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봐서는 아직까지는 괜찮은 모양인데.
“이번 레릭 왕국의 폭발 사건은 일종의 천재지변과 같은 일입니다. 어느 누가 와도 왕국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계략을 눈치채지 못 했을 겁니다.”
『 하나, 그걸 미리 예측하는 것이 전투 지휘관의 일이다. 』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론도 후작뿐만 아니라 황실파, 중립파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지 않나 싶습니다.”
『 흐음, 그건……. 』
조금은 망설이는 모습.
마리아 가르시아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내린 명령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내 의견에 크게 반대하지 못했고.
아마 귀족파가 원래의 세력을 지녔다면 이런 의견이 나왔었겠지.
마리아 가르시아가 푹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 그들은 이미 죽고 없다. 그럼 수도에 남아 있었던 귀족들에게 책임이라도 묻겠다는 것이냐? 』
오케이.
절반은 왔어.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재중이 형이 반쯤은 만들어 준 작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대로 흘러가는 중이었고.
론도 후작을 살리면서.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는 그런 작전을.
“아뇨,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죽어 각 영지로 돌아갈 귀족 작위를 일부 회수함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내 의견에 마리아 가르시아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 세습되는 귀족 작위를 회수하라는 말인가? 』
“네, 그렇습니다.”
단순히 죽어서 명맥이 끊긴 작위뿐만 아니라.
이번 대패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의 작위 회수.
이건 마리아 가르시아가 절대 거부하지 못할 그런 패였다.
국가로 작위가 회수된다는 것은 곧.
앞으로 황제의 입김이 더욱 커지게 된다는 뜻이니까.
론도 후작 하나를 잡고 끝낼 것이냐?
아니면.
쓸 수 있는 패를 잔뜩 만들어 낼 것이냐.
이건 이제 마리아 가르시아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황제에게 주는 퀘스트이기도 하고.
잠시 생각을 하던 마리아 가르시아가 솔깃한 듯 말을 꺼냈다.
『 작위를? 귀족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
평소에는 절대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당연히 귀족들의 반발이 심하게 일어날 테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론도 후작이 있었다.
귀족파의 수장.
그가 반대로 마리아 가르시아의 손을 들어 준다면?
내가 고개를 돌려 론도 후작을 보자 역시 고민이 가득 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 너도 선택하라고.
네가 좌천을 당해 영지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네 직위를 지키고 밑에 녀석들을 희생할 것인지.
결국 론도 후작이 졌다는 듯 표정을 굳히고는 나와 마리아 가르시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했다.
『 귀족파들의 입은 제가 막아 드리겠습니다. 』
그 말에 마리아 가르시아가 깜짝 놀라 말했다.
『 론도 후작, 네가 말인가? 』
『 그렇습니다. 하명하시면 따르겠습니다. 』
이건 서로 윈윈인가.
마리아 가르시아는 아무 반대 없이 세력을 늘려서 좋고.
론도 후작은 살아남아서 좋고.
급격하게 기울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론도 후작은 살아남았다.
그럼 여기서.
우리도 챙길 것은 챙겨야겠지.
이미 경매를 진행해 줄 론도 후작을 살려놓은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으로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폐하, 회수되는 귀족 작위 중에 반을 모험가에게 돌려도 되겠습니까?”
『 모험가에게? 』
“네, 그들은 급격하게 강해지고 있고 제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작위가 세습되지 않아도 폐하의 충실한 검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험가.
이건 곧 유저에게 작위를 뿌려 달라는 말이었다.
세습할 필요도 없고.
황제가 언제라도 귀족 작위를 회수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어떤 귀족 세력에 속하지 않는 오롯이 황제에 속한 귀족이 되는 셈이고.
지금의 나처럼.
『 모험가라……. 그대와 같은 능력 있는 모험가라면. 내 허락하지. 』
좋아.
거의 다 왔어.
이제 한 마디만 더.
『 허나, 난 모험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여 주호 공작 그대에게 새로운 작위에 대한 수여권을 부여하노라. 그대가 짐을 따를 수 있는 새로운 귀족들을 선별하거라. 』
마리아 가르시아의 명에 손을 불끈 쥐었다.
역시.
황제가 최고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