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화 숨겨진 힘 (4)
쾅!
콰앙!
쿠아앙!!
이미 이전에 내려놓은 명령으로 시체들이 주변에서 계속 폭발하자 론도 후작이 바닥에 떨어뜨린 마검이 결국 더 멀리 튕겨나가 버렸다.
그것도 꽤 멀리.
터엉!
하지만 아쉽게도 론도 후작에게 거리가 멀어진 만큼 내게서는 훨씬 더 멀어진 방향으로 마검이 튕겨나갔다.
칫.
저렇게 날아가 버리면 내가 뛰어서 도달하는 시간보다 론도 후작이 달려가서 줍는 시간이 훨씬 빨라.
그래서 순간 기사단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검을 주우라고.
아무래도 나보다는 기사단이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으니까.
론도 후작보다는 먼저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기사단 시체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간 앗차했다.
쟤들이 물건을 주우라는 명령까지 알아들을 수 있던가?
그간 시체를 불러내서 단순히 싸우라는 명령만 내렸지, 한 번도 이런 세세한 명령을 내려 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바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기사단 기사들이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곧 떨어져 있는 마검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
아주 복잡한 명령만 아니라면.
일단 인식은 하는 것 같았다.
개별적으로 판단을 한다던가 아니면 좀 더 분화된 그런 명령은 나중에 한 번 실험을 해봐야겠고.
그사이 기사단 기사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검을 향해 몸을 날리자 론도 후작이 바로 고함을 질렀다.
『 안 돼!! 』
그리고 론도 후작도 빨리 몸을 추슬러서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걸 보자마자 바로 시체들로 론도 후작을 앞을 차단하면서 막아서게 했다.
『 저리 비켜라! 』
그럴 순 없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전부 론도 후작에게 달려들어서 터져!”
이왕 이렇게 된 것.
여기서 시체를 다 쓰더라도.
론도 후작을 날려 버리는 편이 나아.
어차피 이제 시체들의 소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바깥에서 유저들이 들이닥칠 시간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걸로 깔끔하게 끝낸다.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콰앙!
쾅!!
쿠아앙!!
시체들이 론도 후작에게 죄다 달려들어서 터지자 또다시 사방으로 폭발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 소리를 듣고 바깥에 있는 유저들은 아마 안에서 폭발물이 더 터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크아악! 주호 공자악!!!!! 』
시체들이 달라붙어서 계속 터지자 론도 후작에게서 바로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로 악에 받치는 듯 나를 부르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고.
기사단 기사가 마검을 줍는 순간까지 방심은 금물.
계속해서 간다!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아예 론도 후작이 여기서 죽어 주면 더 좋고.
그리고 마검을 놓친 이상.
이전과 같은 폭발적인 공격 능력은 아마도 보여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능력치의 대부분이 마검에 몰빵되어 있는 느낌이라.
아까의 그 준비하던 스킬도 론도 후작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마검이 쓴 것을 보면 이 가정은 아마 맞지 않을까.
계속해서 시체를 터트려 론도 후작을 폭발 속에 파묻은 뒤 고개를 돌리자 기사단이 멀리 뛰어나가 바닥에 떨어져서 부르를 떨고 있는 마검을 주우려는 모습이 보였다.
좋아.
저것만 회수하면.
이번 돌발 퀘스트도 끝난다.
처음에는 거의 테인 공작급으로 빡세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어.
주변에 시체들이 넘쳐나는 이 특수한 상황이 론도 후작과 마검이라는 대어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사단의 한 기사 시체가 먼저 달려가 마검을 주워서 들더니 내게 확인을 시켜주듯 마검을 하늘 높이 번쩍 올려보였다.
마치 영웅의 검이라도 되는 양.
그래.
그래.
잘했다.
이제 내게 가지고 오면 돼.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하는 상황이 일어나 버렸다.
『 크어억! 』
마검을 잡은 기사단의 기사가 현기증이라도 나는 듯 잠시 휘청이더니 갑자기 두 눈과 함께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같이 있던 주변의 다른 기사단 시체들에게 마검을 크게 휘둘러서 허리를 죄다 갈라 버렸다.
파악!
퍼어억!
촤아악!
미처 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에 시체들은 가만히 서 있다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론도 후작이 그랬던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는 녀석을 보고는 바로 혀를 찼다.
하, 저건 또 뭐야?
설마 마검을 잡은 놈이 전부 변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게 내가 스킬로 불러낸 NPC라도?
내 예상은 틀리지 않은 듯 마검의 눈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곧장 주변에 남아 있는 기사단의 기사들을 공격했다.
“반격해!”
뒤늦게 명령을 내리자 남아 있던 몇몇의 기사들이 반응을 해 새로 변한 녀석과 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거 참.
어이가 없네.
시선을 돌려 계속되는 시체 폭발로 푹 파여진 바닥에 반쯤 파묻힌 론도 후작 쪽을 바라봤다.
그럼 저놈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마검만 손에서 놓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건가?
아님 계속 마족인 상태?
당장 마검을 잡고 휘두르고 있는 저 기사단의 기사도 문제였지만, 론도 후작의 현 상태도 문제였다.
거기다 만약 내가 저 마검을 잡았는데 저렇게 이성을 잃고 지배당하면 곤란해.
정말 내 신체가 저 마검이 하고픈 대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었다.
어디 가서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건 더 최악일 것이고.
확실히 확인을 해야 해.
다행히 마검을 잡은 숙주의 영향을 많이 받는지 새로 숙주가 된 기사는 그렇게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론도 후작 때와는 달라.
다른 기사단의 기사들 다수를 벗겨 내지 못하고 계속 묶여 있었었다.
저것도 나중에 알아봐야겠고.
일단은 론도 후작부터.
폭발 명령을 전부 해제하고 멈추자 곧 론도 후작 쪽의 폭발도 사그라들었다.
곧장 몸을 날려 폭발이 멈춘 곳으로 걸어가자 론도 후작이 쓰러져서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박살을 내 놨네.
마검이 보호를 해주지 못하자 이전의 상처 입은 상태로 돌아간 듯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하지.
시체들은 빼도 되겠어.
곧장 모든 시체들을 론도 후작이 아닌 마검을 쥔 기사단의 기사 쪽으로 보내 버렸다.
시체들이 우르르 몰려간 후 남아 있는 론도 후작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정신이 좀 드나? 론도 후작?”
『 크윽! 네 녀석이!! 』
이게 이전의 론도 후작인지.
아니면 마검에 지배당하고 있는 론도 후작인지.
확인해 봐야 해.
만약 아직도 마검에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 상황이 꽤 복잡해진다.
“아직 살 만한가 보네. 마저 죽여 줘? 마검도 없는데, 이번엔 살 수 있으려나.”
내 으름장에 론도 후작이 순간 움찔하더니 곧장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있는 마검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 저게 마검이라고?! 』
흐음.
론도 후작은 역시 잘 모르는 건가.
그리고 하나는 확인했다.
두 눈이 마족처럼 벌겋게 변해 있던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
현 론도 후작의 상태는 마검의 지배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었다.
아무래도 마검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만.
한정적으로 마족으로 변하는 딱 그런 케이스였다.
마치 유저들이 변신을 하듯이.
이것도 쓰기에 따라 재밌게 만들 수 있으려나?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단은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했다.
잠시 고민 끝에 론도 후작에게 물었다.
“좀 전까지 기억은 나냐?”
『 그래…… 난다. 』
호오, 기억은 있다는 건가?
마검이 지배를 하되.
완전히 하지는 못하는군.
“그럼 저 마검이 너를 마족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도 알겠네?”
『 마족!! 』
“그래, 마족처럼 변해서 실컷 날뛰었잖아. 주변에 안 보여?”
내 말에 고개를 돌려 엉망이 된 레릭 왕국을 바라보았다.
『 하하하…… 내가 미쳤었구나. 마족이 되려 했다니. 』
그리고는 땅이 꺼져라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 이런 힘을 얻고 싶진 않았는데……. 』
일단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이거군.
론도 후작이 저 마검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니까 저렇게 대놓고 썼을 것이다.
이젠 확인.
“너, 그거 가짜 황제한테 받은 거지?”
내 물음에 론도 후작이 잠시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을 해 주었다.
『 그렇다. 예전 황제가 준 물건이다. 』
“너 그놈이 마족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저거 쓰면서 안 찝찝했어?”
가르시아 제국 내에 알 만한 놈들은 죄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족인 가짜 황제가 줬다면 의심이라도 해 봤어야지.
『 그냥 좀 좋은 무기인 줄 알았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귀족파가 테인 공작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저게 꼭 필요했다. 』
가짜 황제가 직접 테인 공작은 건드리지 못하고 이 녀석을 점찍은 거였나?
제국을 엎어 버리기 위한?
일단 이놈도 나름 자기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듯 보이는데.
그게 가짜 황제에게 놀아났다는 것은 몰랐겠지.
“속았다고는 하지만 마족이 되었다는 걸 알면 황제 폐하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잘 알겠지만 너 이대로 돌아가면 최소 사형이다. 목이 달아난다고.”
내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이자 론도 후작이 몸을 움찔했다.
뭐 죽는 걸 좋아하는 놈은 없으니까.
유저들이야 죽인다고 해 봐야 웃고 치우겠지만.
NPC들은 입장이 다르다.
갑자기 론도 후작이 내 쪽을 노려보다가 곧 눈을 감아버렸다.
『 저런 마검을 들고도 손도 못 댔는데 아마 당신을 이기진 못하겠지. 』
“설마 날 죽이려고 했나?”
『 그게 안 된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이제 난 죽는 건가? 몸이 말을 안 듣는군. 』
이미 연이은 시체 폭발로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거기다 마검에 계속 피를 빨리기도 했고.
흐음.
지금 더 마검을 든 기사가 전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아마도 숙주의 피를 가져가지 못해서가 아닐까?
아무리 봐도 그냥 좀 좋은 검을 들고 휘두르는 딱 그 정도 수준이라.
당장이라도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기는 한데.
찝찝해서 그냥 두고 있었다.
저 마검을 잡았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리고 이 녀석은.
써먹을 데가 있으려나?
잠시 론도 후작을 바라보다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이런 녀석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힐! 】
곧장 힐을 써서 녀석의 상태를 호전시켰다.
그러자 론도 후작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아니, 왜……? 날 죽일 생각이 아니었나? 』
그런 론도 후작에게 물약을 던져 주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너, 내가 살려 주면 뭘 해 줄 수 있냐?”
내 말에 론도 후작이 몸을 추스르며 힘겹게 일어나더니 곧장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내게 고개를 조아졌다.
『 주호 공작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좋아.
좋아.
아주 멍청한 녀석은 아니었어.
이제 상황을 정리해 볼까.
바로 멀리 있는 기사단의 기사를 보면서 외쳤다.
“그 정도 놀았으면 됐다.”
【 시체 폭발! 】
그러자 마검을 들고 있던 기사의 시체가 곧장 터져 나가며 마검이 다시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내렸다.
자아.
이제 저 마검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