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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40화 (630/1,404)

#640화 숨겨진 힘 (1)

이 모든 일의 답은 결국 하나다.

현재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비록 주력 스킬이 아닌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쓰는 스킬이기 때문에 챠밍과 같은 지속시간과 위력을 내진 못하겠지만.

병사 하나하나의 위력이 약하다면.

그냥 숫자로 밀어붙이면 돼!

그리고 그 역할을 해 줄 녀석들은 이 불타오르는 레릭 왕국 내에 너무나도 많이 존재했다.

마력만 불어넣어 주면 다시 일어나서 싸워 줄 최강의 병사들.

만약 예전의 미치광이 리치가 이 장소에서 네임드로 존재했다면?

지금의 내가 나선다고 해도 잡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금의 조건은 좋았다.

여기도 시체.

저기도 시체.

눈만 돌리면 내 힘이 되어 줄 녀석들이 즐비하다.

거기다.

이 시체 부활 스킬이 가지는 좋은 점은 하나 더 존재했다.

분명 챠밍이…….

유저들의 시체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했었던가?

일단 유저들은 죽고 나면 죽음의 빛으로 변해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예전에 미치광이 리치는 그런 유저들도 싹 부활시켜 병력으로 썼었다.

그래서 챠밍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저들이 죽은 자리에 따로 이펙트가 보인다고.

지금 확인해 보니, 시체 부활을 쓸 때마다 그전엔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붉은색 혈흔 같은 이펙트가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궁금한 건 바로 해봐야지.

【 시체 부활! 】

그러자 붉은색 혈흔에서 뭔가가 꾸물꾸물 일으켜 세워지더니 곧 보랏빛의 창백한 피부를 가진 시체로 변형이 되었다.

그것도 생전 가지고 있던 아이템과 장비를 모두 걸친 채.

하.

이거 완전히 남는 장사 아냐?

마력을 조금 넣어 줬을 뿐인데 이쪽은 이미 풀 무장한 상태의 전투 병력을 손에 넣었다.

만약 방금 부활한 저 녀석이 10강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그럼 그냥 10강을 휘둘러대는 유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 시체 부활 Lv.1 】이 【 시체 부활 Lv.2 】 로 상승합니다. 》

《 부활하는 시체의 지속 시간이 5% 증가합니다. 》

《 부활하는 시체의 근력이 5% 증가합니다. 》

《 부활하는 시체의 체력이 5% 증가합니다. 》

.

.

《 시체 부활에 들어가는 마력이 5% 감소합니다. 》

시체 부활을 단시간에 하도 많이 써 댔더니 스킬 숙련도가 바로 상승해 버렸다.

이거 참.

뜻하지 않게 여기서 스킬 숙련도를 올리네.

어차피 지력이 낮아지면 다시 못 쓸 스킬이라 숙련도가 큰 의미가 없긴 한데…….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훨씬 나으니까.

만약 시간이 널널했다면 주야장천 여기서 시체 부활을 하면서 숙련도를 올렸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마력이 빠듯한 정도로만 시체들을 일으켜 세운 뒤.

곧장 론도 후작이 있었던 좌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좌표 근처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

귀족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는 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은 또 처음이네.

부상을 입은 론도 후작 주변으로 두 명의 NPC들이 서로 론도 후작을 죽이려고 포위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회색 머리의 중년이 버몬트 백작이라고 했던가?

짙은 갈색은 그렌 백작이었고.

둘 다 기사단의 표식이 새겨져 있는 장비를 입고 있는 것을 봐서는 한 가닥 하기는 하는가 본데…….

거기다 무슨 수를 쓴지는 모르겠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온전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도 다른 NPC들을 방패막이로 썼나?

물론 그게 지금의 상황을 다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일단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지켜볼까?

시간이 얼마 없긴 해도.

셋 다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잠시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변수는 적을수록 좋아.

『 론도 후작. 얌전히 죽어 주는 게 좋아. 』

『 네 이 녀석!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

『 여기서 얌전히 죽어 주면 내가 당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귀족파의 수장 자리를 말이지. 』

정말 개판인데?

맹수 무리에서 우두머리가 아프면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런 꼴이었다.

『 네 녀석이 나를 죽인다고 귀족파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

『 당연하지, 네놈의 그 잘난 검만 내가 가질 수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

아마 버몬트 백작이 주범인가?

옆에서 지켜보는 그렌 백작은 버몬트 백작과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 모양인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메트 후작은 어디 있는 거지?

만약 메트 후작이 옆에 있었다면 저 둘이 저렇게 이빨을 드러내진 못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메트 후작은 마법사니까 폭발하는 순간에 이동 스킬로 빠져나갔을지도.

여기서 죽었다기보다는 살아 있을 확률이 좀 더 높았다.

메트 후작도 기회가 되면 잡긴 잡아야 해.

『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 다른 때라면 당연히 무리겠지. 하지만 이 불바다를 보아라. 지금은 하늘이 주신 기회지 않느냐. 흐흐, 넌 지금 부상을 입었고. 네 녀석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이젠 대놓고 후작한테 이 녀석, 저 녀석 해대는군.

그리고 론도 후작이 부상을 입은 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것 같았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 이제 죽어라. 』

바로 검에서 오러를 끌어낸 버몬트 백작. 그런 버몬트 백작과 함께 그렌 백작 역시 오러를 피어 올렸다.

이건 뭐.

개나 소나 다 오러를 쓰네.

예전에 가짜 황제나 드래곤이 난동을 부릴 때는 어디 갔다가 이제야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론도 후작도 대검에 오러를 피워 올렸는데 오러가 흔들거리는 것을 보면 부상이 심각해 보였다.

잘하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으려나?

저 셋은 서로 싸운다고 지금 주변에 시체들이 개떼처럼 대기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저러고 있을 수가 없지.

그런 셋을 보면서 한심한 듯 속으로 말했다.

얼른 싸워라.

시간 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들었다는 듯 버몬트 백작, 그렌 백작이 동시에 론도 후작에게 쇄도했다.

협공으로 한 번에 죽이겠다는 건가.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시간은 버몬트 백작의 편이 아닐 테니.

이미 둘 사이는 강을 건넜다.

이 화염이 걷히면서 론도 후작이 살아남는다면 앞으로 버몬트 백작을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시간제한이 있는 미션이지.

『 쳐! 』

그렇게 두 개의 검에서 피어오른 오러가 마구잡이로 휘둘러지자 론도 후작도 꽤 밀리는 분위기였다.

생각 이상으로 버몬트 백작의 실력이 좋은데?

거기다 그의 뒤를 받치는 그렌 백작 역시 마찬가지.

론도 후작만큼 패기가 넘치는 그런 위력적인 일격을 가하진 못했지만 둘 다 밸런스가 너무 좋았다.

그렌 백작은 약간은 수비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론도 후작의 일격을 계속 맞받아쳤다.

버몬트 백작이 빈틈을 노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게.

그러다 보니 그렌 백작에 비해 버몬트 백작은 좀 더 공격적인 색채가 강했다.

만약 예전과 같이 론도 후작의 공격이 묵직했다면 그렌 백작이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을 터.

거기다 버몬트 백작의 일격들도 대검에 거의 다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조금 버겁게 보이긴 해도.

론도 후작이 너무 약해졌어.

『 큭! 』

지금도 계속해서 버몬트 백작에게 일격을 내어 주며 갑옷 곳곳이 구겨지면서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론도 후작은 확실히 강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부상을 입고도 오러를 쓰는 둘의 협공을 끈질기게 막아 냈으니.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주 치명적인 급소는 내어 주지 않아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려나?

그 와중에 론도 후작이 계속 멀리 있는 성벽을 흘깃흘깃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여차하면 도망가겠다는 건가…….

후작의 자존심은 일단 접어 두려는 모습.

하지만 론도 후작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렌 백작이 철저하게 퇴로를 막아섰다.

저러면 도망가기도 쉽진 않겠어.

셋이 뒤엉켜서 싸우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다르게 점점 화염이 걷혀 갔다.

옅어진 하늘이 얼핏 보이는 것을 봐서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도 않았고.

대신 싸워 주는 것은 고맙긴 하지만 저렇게 이도 저도 아니게 싸우면 시간만 날아간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이제 손을 써야겠어.

그때 론도 후작에게서 갑자기 큰 변화가 감지되었다.

몸 전체가 팽창하며 몸 곳곳에서 핏줄이 서더니 하나둘 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론도 후작이 가진 대검이 그 피들을 흡수하듯 검신으로 빨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체력 강탈?

아니, 시전자의 체력을 가져다 쓰는 그건 종류인가?

그리고 한순간.

론도 후작이 가진 대검의 검신 한가운데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신이 옆으로 벌어지며 그사이로 새빨간 눈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렇게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좌우로 움직이는 눈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뭐지?

저런 형태의 검도 있었어?

당연하게도 버몬트 백작과 그렌 백작 역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뭐냐……! 그건! 』

『 검이 변했어?! 』

혹시 같은 귀족이라면 평소에 론도 후작을 봤을 테니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모습을 봐서는 전혀 모르는 모양새였다.

저 모습을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론도 후작이 저 상태를 숨기고 쓰지 않았다는 것을.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오자 진짜 대검의 위력을 꺼내 든 것이다.

빨아들이는 핏줄기만큼 대검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더니 이번엔 론도 후작의 두 눈도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붉게 변해 버린 눈을 보고는 순간 손이 움찔했다.

내가 저걸 어디서 봤었지?

『 키하악! 』

거기다 갑자기 인간의 음성으로 낼 수 없는 기형적인 피어를 론도 후작이 뿜어내더니 그렌 백작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것도 잠시나마 시야에서 놓칠 정도의 빠른 속도로.

『 헉! 』

그리고 어느새 그렌 백작의 후방에 나타난 론도 후작이 대검을 휘두른 그대로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테인 공작……?

저건 분명히 테인 공작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당연히 그렌 백작은 전혀 반응도 못 했고.

붉게 타오르는 대검에 그렌 백작의 허리가 한 번에 두 동강 나면서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강해.

위력도 위력이지만 속도가 미쳐 있었다.

테인 공작이 온다고 해도 장담 못 하겠는데……?

붉게 변한 두 눈과 대검의 눈이 이번엔 동시에 버몬트 백작을 노려봤다.

『 헉! 넌 대체 뭐냐! 』

『 크륵?! 』

론도 후작?

설마 이성을 잃었어?

확실히 지금 상황이 정상적인 형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저건 평범한 검이 절대 아니야.

단순히 좀 위력이 강하고 드래곤 슬레이어의 하위 호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분명히 뭔가가 더 있다.

내가 모르는.

그렌 백작이 한 번에 썰려 나가자 겁을 잔뜩 집어먹은 버몬트 백작에게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 황제 폐하께서 하사한 검이 어찌……! 』

뭐?

누가 줬다고?

그때 정신이 돌아오는지 론도 후작이 갑자기 광소를 냈다.

『 크크크큭! 그래, 이 힘이다. 이 힘! 이 넘치는 힘만 있으면! 』

아무리 봐도 검에 먹힌 것 같은 모습인데…….

설마 자기가 가진 검에 대해서 론도 후작도 잘 모르는 건가?

그리고 황제가 줬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저런 검을?

아냐.

만약 저런 위력을 가진 검이 있었다면 진작에 알려 줬을 것이다.

저건 마리아 가르시아도 잘 모를 확률이 높았다.

그럼.

다른 황제는 딱 한 녀석뿐.

순간 론도 후작이 신형이 사라지더니 버몬트 백작도 허리가 불타오르면서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는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 젖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와는 완전 차원이 다르군.

전혀 다른 개체가 됐어.

그때 론도 후작이 내 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 나와라. 』

하, 감지 능력도 좋아졌나?

이건 뭐.

정말 괴물이군.

어쩔 수 없이 장비를 드래곤 플레이트로 교체한 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 쉽게 가는 녀석이 없냐.

하지만 저 녀석을 꺾으려면.

지금뿐이다.

오직 이곳, 시체로 가득한 장소만이.

녀석을 잡을 수 있어.

“넌…… 여기서 꼭 죽어 줘야겠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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