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가짜 전쟁 (3)
재중이 형이 나와 이쁜소녀를 번갈아보면서 재밌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재중이 형은 눈치를 챘다.
“진 토르를 보여 줘서 론도 후작의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릴 셈이냐?”
“네, 정확하게는 진 토르는 아니에요.”
“모조품?”
재중이 형이 모조품이라는 말을 꺼내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드워프 왕한테서 얻어내려고?”
“네, 하나 정도는 더 있지 않을까요?”
“없으면?”
“음, 그건 상황이 좀 복잡해지기는 한데……. 있길 바라야죠.”
아마도 있을 것이다.
고대 드워프 왕도 맨손으로 싸우진 않을 테니까.
만약 없다면…… 좀 수고스럽지만 진 토르로 그림을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이쁜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진 토르 당분간 숨기고 다니고.”
내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이쁜소녀가 곧 이해를 했는지 대답을 했다.
“네! 이 토르는 보이면 안 된다는 거죠?”
“특히 귀족파에게는.”
예전에 레릭 왕국에서 한 번 깽판을 친 적이 있긴 한데.
귀족파에게는 아직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이는 유저와 NPC들이 서로 아이템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럼 다시 다녀올게요.”
* * * * *
귀족파 귀족들과 NPC들이 결국은 바이탄 요새로 복귀를 해버렸다.
드워프 종족에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일방적으로 당하다 보니 피해가 크기도 했고.
아마 복구를 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터.
그동안은 론도 후작도 절대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황제파가 움직인다고 해도.
유저들 사이에서도 드워프들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일단 탐사대가 마냥 장밋빛은 아니라는 점.
탐사대에만 들어가면 꿀을 따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나갈 수 없는 진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유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대로 탐사대에 남아 있자니 계속 붙잡혀만 있을 것 같고.
그렇다고 나가자니 탐사대 자리가 아깝고.
가장 불만이 큰 유저들은 이번 산불로 인해 아이템을 떨어뜨린 유저들이었다.
그들의 불만은 피해를 봤는데 정작 탐사대에서는 전혀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아놔, 무기 떨어뜨렸는데 복구 안 해 준다네.
- 이 새끼들 우리 부려먹을 때하고는 말이 다름.
- 완전 얼굴에 철판 깔았잖아.
- NPC들한테 뭘 바랐냐. 그런 거 안 해 준다니까.
- 보상도 적은데 여기 붙어 있어야 하나?
- 난 탐사대 안 할란다. 드워프한테 죽으니까 드랍 엄청 잘 되드만.
- 복구도 없어, 보상 적어, 탐사대는 언제 끝날지도 몰라. 무슨 이런 이벤트가 다 있나.
- 이기면 장땡이긴 한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려서야…….
- 황제파 쪽으로 갈 걸 그랬나? 넣어준다고 너무 막 잡은 것 같다.
- 우리 길마는 귀족파하고 더 안 할 거란다. 오늘부로 탈퇴임.
- 이번엔 구경이나 해야겠다. 손해가 너무 큼.
이제는 유저들도 감을 잡은 것 같았다.
탐사대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결국 귀족파의 탐사대에서 꽤 많은 길드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었다.
귀족들의 탐사대에 들어가면.
하는 일에 비해서 보상이 적을 수밖에 없지.
그래서 전신이나 다른 유저들이 귀족 작위를 얻으려고 그렇게 돈을 써댄 것이다.
아직 전신은 귀족파 쪽에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면 그쪽도 장담은 못 하겠지.
자체적으로 탐사대를 운영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판단되면 바로 빠져나올지도 모른다.
흠, 전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솔직히 귀족파는 그렇게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안에 속해 있는 전신이 더 문제겠지.
거기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그리고 몇몇 작위를 사간 프로 길드들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다행이기는 한데…….
그렇게 쉽게 이번 탐사대를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드시.
어느 순간에 방해가 들어올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내가 드워프 왕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 내게 뭔가의 제스처를 취해 오진 않겠지만.
레릭 왕국 내의 건물에서 대전사 칼룬을 기다리며 채팅과 게시판을 읽고 있다 보니 어느 사이에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덕분에 많은 제국 병사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고대 드워프 왕께서도 감사를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대전사 칼룬이 감사의 인사만 할 뿐 다른 뭔가의 선물은 주지 않았다.
이거 참.
손님 대접이 영 별로인데?
하지만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얻어 내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이 감사를 빌미로 얻어 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고.
“다 서로 좋자고 하는 일 아니겠나. 그래서 말인데. 고대 드워프 왕이 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 고대 드워프 왕께서 직접 하셔야 하는 일입니까? 』
그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짜 토르, 그거 여분이 있는가 해서 말이야.”
잠시 생각을 하던 대전사 칼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모조품이라……. 전투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
“아, 내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 달라는 건 아냐. 전투에 쓸 것도 아니고.”
『 그렇습니까? 그럼 왜? 』
대전사 칼룬도 의아할 것이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물어오니까.
그런 대전사 칼룬을 쳐다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네가 좀 수고해 줘야겠어.
“가짜 토르를 들고 좀 연기를 해 달라고.”
『 연기…… 말입니까? 』
“그래, 연기. 이왕이면 칼춤 한 번…… 아, 이건 이해 못 하려나. 그냥 네가 그거 들고 레릭 왕국 주변에 있는 모험자들을 좀 죽이고 다녀 주면 돼.”
이번 일의 첫 번째 포석.
토르라는 무기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
한참 사냥을 하고 있을 유저들에게는 날벼락이겠지만.
이보다 확실하게 토르를 보여 줄 방법은 없었다.
『 그런 일이라면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레릭 왕국 주변에 돌아다니는 모험자들 때문에 고대 드워프 왕께서 언짢아하셨으니까요. 』
지금은 서로 원하는 바가 같으니까.
대전사 칼룬이 흔쾌히 동의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후에 진행될 이야기를 해 주자 대전사 칼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정말 악마가 울고 가겠습니다. 』
“칭찬으로 듣지.”
앞으로 누가 천사가 될지 악마가 될지는 한번 지켜봐야겠지만.
* * * * *
복귀해 보니 패잔병처럼 초췌한 몰골을 한 귀족파의 병사들이 바이탄 요새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나갈 때보다 절반은 줄어든 건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얼핏 살펴본 바로는 NPC들의 숫자가 그만큼이나 줄어 보였다.
론도 후작의 속이 꽤 쓰리겠는걸?
집무실로 들어가자 역시나 론도 후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불꽃놀이라도 한 것처럼 붉게 변해 있는 모습이란.
옆에는 메트 후작도 앉아 있었다.
메트 후작은 의외로 동요가 없는 표정이었다.
“다녀오신 일은 잘 안 된 모양입니다.”
내 말에 론도 후작이 크게 기침을 했다.
『 크흠. 악랄한 드워프들의 잔꾀에 그만……! 』
악랄한…… 인가?
뭐 론도 후작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걸 시킨 사람이 나라는 것은 전혀 모르겠지만.
알면 지금 당장 칼부림이 나겠지.
“병력이 많이 소모되었군요.”
이미 다 보고 온 상황이라 론도 후작도 쓰린 표정만 지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 했다.
대신 옆에 있던 메트 후작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 이번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귀족들과 병력이 많았습니다. 』
귀족들도 죽었나?
이건 의왼데?
“귀족들도 죽었나요?”
급하게 시스템을 열어 확인해 보자 몇몇 귀족들의 탐사대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 보였다.
강제로 탐사대가 해체된 것.
이게 뜻하는 건 귀족들이 죽었을 때밖에 없지.
거기다 41개에서 무려 9개나 줄어 버렸다.
『 정찰을 갔거나 경계에 나갔던 귀족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
마리아 가르시아가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군.
이러면 귀족들의 작위가 그만큼 비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자신의 세력을 더 집어넣을 수 있다는 말이고.
거기다 유저들의 길드들이 지금도 탐사대에서 계속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아픈 곳을 살살 긁어 봐야겠군.
“모험가들도 떠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자 오히려 론도 후작이 크게 노여움을 표했다.
『 이래서 모험자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국을 위해서 한 몸 바치지는 못할망정……! 』
그건 네 생각이고.
유저들이 이득에 얼마나 빠삭한데.
지금 탐사대의 구조로는 결코 유저들을 붙잡아 두지 못한다.
더 높은 보상을 걸거나.
아니면 드랍된 아이템들을 보상해 주어야 하는데 과연 이 론도 후작이 그런 판단을 내릴까?
그리고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태도만 봐도 뻔하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이미 알고 있지만 예의상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 물음에 론도 후작이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자, 메트 후작이 한숨을 쉬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직접 이야기하기는 자존심이 상한다 이건가?
『 바이탄 요새에서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만. 다시 병력을 정비하고……. 』
“뭐 편하신 대로 하시죠. 바이탄 요새는 항상 여러분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는 최대한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귀족파를 이 상황에서 쫓아내면 그림이 많이 안 좋아지지.
《 론도 후작과의 우호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메트 후작과의 우호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자 두 후작들과의 사이가 꽤 좋아져 버렸다.
당연하겠지만 난 이 두 녀석을 여기 계속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때 집무실을 누군가 노크하더니 론도 후작의 가신 중에 하나로 보이는 녀석이 들어왔다.
흐음, 슬슬 때가 되긴 했지.
『 흠, 잠시 실례를. 』
그리고 그 가신에게서 뭔가를 전해 들은 론도 후작의 표정이 급변했다.
『 정말이냐? 』
꽤 놀란 눈빛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론도 후작.
그런데 그때.
뜻하지 않는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
응?
챠밍과 화련이 동시에?
귓속말을 받자 둘 다 똑같은 말을 내게 전달했다.
<챠밍> 오빠, 중립파가 멋대로 쿠론 요새를 나섰어요!
<화련> 황제파 이것들, 레티어스 요새를 막 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 막아? 말아?
챠밍과 화련에게서 연락을 받고 난 뒤에 바로 혀를 찼다.
하, 이것들 봐라?
내가 뿌린 먹이에 걸려들지 않아도 될 녀석들이 동시에 걸려들었다.
특히 황제파 쪽은 요새로 돌아가 대기하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완전 개판이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것은 눈앞에 있는 론도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 미안하지만 아까의 부탁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그렇게 론도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메트 후작과 같이 급하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중립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설마 황제파가 제어가 안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욕심에 눈이 먼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귀족들 나선 것 들었어요?
<불멸> 지금 챠밍에게서 들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주호> 아무래도 새 판을 짜야 할 것 같아요. 말을 안 듣는다면…….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밖에.
모든 귀족들의 목을 비틀어서라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